메뉴 건너뛰기

close

누구나 한 번쯤 살고 싶은 멋진 이상향을 꿈꿔 봤을 것이다. 어린아이들이라면 어른들의 간섭이 없이 자기들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있는 곳, 어른 역시 고달픈 노동에서 벗어나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만 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꿔 보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번질 것이다.

현실개혁의 꿈을 그린 이상향
▲ 유토피아(UTOPIA) 현실개혁의 꿈을 그린 이상향
ⓒ 을유문고

관련사진보기

토마스 모어는  바로 <유토피아(UTOPIA) -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라는 책을 통해서 그런 이상적 공동체를 그려 보이고 있다. <유토피아(UTOPIA)>는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는데, 토마스 모어가 라파엘이라는 선장을 만나 경험담과 충고를 듣는 1부, 라파엘이 5년간 살았다는 신세계(유토피아)의 여러 제도에 대해 듣는 2부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토마스 모어가 자신이 살던 1516년 당시의 현실세계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그 비판을 토대로 이상사회를 그려 보인 <유토피아(UTOPIA)>가 5세기 이상의 시간의 벽을 훌쩍 뛰어넘어 여전히 공감을 끌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현대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문제점을 토마스 모어가 날카로운 시각으로 짚어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기 때문이다.

사실 이상적 공동체라고는 했지만 현대인의 눈으로 볼 때 여러 가지 모순점들이 내재되어 있고, 현대적 사고에 맞지 않는 부분들도 상당히 많다. 그러나 물질이 인간 정신을 잠식하고 인간 삶 자체가 물신의 노예로 전락한 시점에, 물질을 희화하고 공공복지(common wealth)를 이상적 삶의 방식으로 바라본 유토피아적 세계관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내게 무엇보다 강렬하게 다가온 부분은 사유 재산과 화폐가 존재하지 않는 공동체를 이상사회의 기본으로 그려낸 점이다. 부가 편중되지 않으므로 노동시간은 줄어들었지만 아무도 가난하지 않고, 놀고먹는 게으름뱅이나 유한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직자나 극소수의 학자들을 제외하면 남녀 모두 기본적인 노동을 하루 6시간씩 한다. 일들은 모두 생산에 관계된 것들이다. 그곳에는 노동력을 착취하는 부자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토마스 모어는 라파엘의 입을 빌려 가난한 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부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한다.

"국가로부터 최대의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것만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기본적으로 부정의입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서 그런 착취에 법의 이름을 들이대면서 더욱 정의를 왜곡하고 타락시킵니다. 즉 그들은 부정의를 '합법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번영을 구가하는 여러 공화국들에서 내가 찾아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지 공화국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이익만을 더욱 불려나가는 부자들의 음모뿐입니다.

그들은 사악하게 얻은 것을 지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노력과 수고를 가능한 헐값에 사들일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 것을 두고 부자들이 공화국의 이름으로 꼭 지켜야만 하는 것인 양 주장하면 곧 법이 됩니다. 도대체 공화국에 빈민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까?" - 책 내용 중에서

마치 현대 신자본주의를 등에 업은 부자들의 음모를 들여다보는 것 같지 않은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피할 수 없는 가난이 법의 이름으로 가난한 이들의 노동을 무자비하게 착취하는 소수 자본가들과, 그들을 비호하는 국가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니 얼마나 놀라운 통찰력인가?

토마스 모어는 돈은 생필품을 얻는 도구가 아니라 생필품을 얻는데 방해가 될 뿐이니 화폐를 아예 없애자고 주장한다. 또 그는 쓸데없는 사치품을 많이 갖는 것보다 실제 우리 삶에 필요한 물품을 충분히 갖는 것이 더 낫다고 역설한다. 그가 제시한 나름의 해법을 들여다보자.

"만인이 풍족하게 나누어 쓸 수 있는 재화를 탐욕스럽고 사악한 사람들끼리만 나누어 가질 때 유토피아인들의 행복과는 얼마나 큰 차이입니까? 유토피아인들은 돈을 없앴을 뿐 아니라 그와 함께 탐욕까지 없앤 것입니다! 그 한 가지만으로 도대체 얼마나 큰 고통이 사라진 것 입니까? 얼마나 많은 죄의 뿌리를 잘라 낸 것입니까? 돈이 없어진다면 사기, 절도, 강도, 분쟁, 소란, 쟁의, 살인, 반역, 독살 등 온갖 범죄들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범죄들에 대해서 형 집행관이 응징하는 정도일 뿐 막지는 못합니다. 만일 돈이 사라진다면 공포, 고뇌, 근심, 고통, 잠 못 드는 밤이 함께 사라집니다.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돈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로 돈이 사라지면 빈곤도 완전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 책 내용 중에서

토마스 모어는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오만을 뿌리 뽑아 버리면 다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신이 인간 정신을 잠식해 돈이 인간의 우위를 규정하는 현대에도 오만과  탐욕을 버린다면, 특히 화폐가 사라진다면 진정한 공화국(common wealth)이 가까워질 수 있으려는지.


유토피아

토머스 모어 지음, 나종일 옮김, 서해문집(2005)


태그:#유토피아, #토마스 모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