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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혹시나 해서 '상조회(아르헨티나 상인들의 커뮤니티)' 게시판을 확인하니, 오전 8시였는데도 내가 올려놓은 글의 조회 수가 200이 넘어있었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분들이 많은가 보다. 아침예배를 드리고 나서 확인하니 조회수는 300을 넘겼고 다양한 댓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가는 갓길도 없고 치안도 너무 위험하다."(각종 사례까지 곁들여 주셨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위험한 경우도 있으니 강선생님(강도)께 드릴 선물용 현금은 미리 챙겨두라."
"돈 가방을 뺏긴 경우에는 돈은 가져가고 여권만이라도 돌려달라고 말하라."
"지역마다 한국인이 있으니 도와줄 것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줬고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이미 가기로 결정했고 계획상 꼭 지나가야만 하는 길이기에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분들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며 가야겠다.  

며칠 전 한국에서 온 MTB(산악자전거) 마니아 서 전도사님에게 조나단(자전거)을 잠시 살펴 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위아래, 좌우를 살펴보시고 진단을 하셨다.  

"기어 변속선 바꾼 지 1년은 됐죠? 체인도 많이 늘어났네요. 핸들이 내리막에서 좌우로 흔들리는 건 헤드셋(핸들바가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는 베어링 구조물) 안의 베어링이 마모되어서 그런 거예요. 뒤쪽 변속기는 조금 손상 되었지만 아직은 괜찮고요. 체인, 베어링, 변속 선은 멘도사에서 교환하시고(약 350km), 뒤쪽 브레이크 패드는 부에노스아이레스(약 1500km)에서 교환하세요."

조나단 정비중인 서 전도사님
 조나단 정비중인 서 전도사님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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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길이 좋아서 조나단에게 무관심 했었는데, 알고 보니 성한 곳이 없었다.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장소에서 좋은 분을 만나서 다행이다.

조나단 정비를 마쳐갈 무렵, 한 아주머니가 다가오셔서 흰 봉투를 건네주고 가셨다. 알고 보니 나에게 "자전거 세계여행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지만, 자만하지 말고 '사명'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하세요"라고 좋은 말씀을 들려주셨던 김 장로님의 사모님이었다. 봉투 안에는 '사랑의 점심 값'이 들어 있었는데, 아르헨티나 돈까지 들어 있었다. 미처 내가 환전을 하지 못한 걸 아셨던 걸까?

그동안 나에게 점심을 대접해주었던 한국식당(초심)에 인사하려고 갔는데, 산 올라가려면(안데스) 든든하게 먹고 가야 한다면서 '삼계탕'을 챙겨주신다. 거의 일주일 동안 매일 밥 두 공기씩을 챙겨 주시며, "이럴 때라도 잘 먹어야 해요. 즐거움으로 주는 거니까, 눈치 보지 말고 많이 먹어요~"라고 선하게 웃으시던 마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다음은 라파스 한인중앙교회에서 4개월 전에 만나서 이곳에 오면 연락하라고 하셨던(진짜 도착해서 연락했다. 그리고 저녁마다 식사를 함께 했다) 한국마켓(아씨마켓)으로 갔다. 그러나 내가 예정보다 늦게 도착해 김 장로님을 만날 순 없었다. 장로님은 나를 기다리다 운동을 가셨다고 사모님이 전하신다.

어제 빌려드렸던 내 저서를 돌려받으려고 했는데, 장로님이 운동하러 가시면서 들고 가시는 바람에 내년 언젠가 한국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또 한 번의 만남을 남겨두게 되었다. 바로 모퉁이를 돌아서 내 가방을 기어코 새것으로 바꿔주겠다고 고집을 부리시던 이 권사님(결국은 수리만 하고, 배낭, 카메라 가방을 후원 받았다) 가게에 갔다. 잠깐만 기다려 보라고 하시고서는 잠시 후에 나타나셔서 '용돈'이라면서 봉투를 건네주셨다.

건너편의 용 집사님 가게, 한 블록 뒤 최 집사님 가게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마지막으로 도로 가에 있는 공 권사님 가게에 갔다….

많은 도움을 주셨던 김천성 장로님 부부(아씨마켓)
 많은 도움을 주셨던 김천성 장로님 부부(아씨마켓)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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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점심을 대접해주신 최 집사님(초심)
 따뜻한 점심을 대접해주신 최 집사님(초심)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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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권사님은 오랜만에 찾아온 손자가 떠나는 것처럼 필자의 손을 잡고 말하신다. "섭섭하네요, 잠깐만 기다려봐요~" 아쉬움의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여행 길 떠나는 손자의 손에 '삶은 달걀' 대신에 '담요' 한 장을 쥐어 주신다. "어제 텐트 안 보니까 추워 보여서요(세계 자전거여행 물품 전시회를 했었다)." 길이도 무겁지 않을 만큼 적당하면서 온기가 느껴지는 담요를 고이 챙겨 여러 가지 생각을 뒤로한 채 안데스로 향했다.

온천이 있다는 걸 알리는 흥미로운 표지판
 온천이 있다는 걸 알리는 흥미로운 표지판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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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라이더에게 길을 물었는데, 필자가 염려스러웠는지 주 도로 입구까지 동행해준다. 

어, 안내 표지판 자전거 그림에 X표가 있다. 분명히 많은 라이더들이 안데스를 넘었는데, 길은 지금 가는 길 하나인데…. 일단 가보자! 자세히 보니 자전거 그림은 조나단과 다르지 않은가? 아무 짐도 달려 있지 않은 일반 자전거 그림이니까, 조나단은 예외다!

하하. 나 자신의 합리화에 저절로 웃음이 났다. 달리면서 상황에 대처하자는 생각으로 조심스레 한 페달 한 페달 밟기 시작했다. 톨게이트의 갓길을 돌아서 통과하는데 아무런 제재가 없다. 평지를 약 57km 달리자 터널이 보이는 오르막이 나왔다. 터널 앞에 도로 관리소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는데, 직원이 웃으며 나와서 트럭(밴) 뒤에 조나단을 싣고 가자고 제안한다. 사실 갓길 없는 2km 가량의 내리막 터널은 위험해 보였다….     

자전거 진입을 금지하는 표지판 ( 조나단과 분명히 다른 모습니다. -_-)
 자전거 진입을 금지하는 표지판 ( 조나단과 분명히 다른 모습니다. -_-)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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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을 과장되게 나타낸 표지판
 오르막을 과장되게 나타낸 표지판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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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을 신나게 내려간 후 평지를 조금 달리자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로스안데스(Los Andes)' 표지판이 보인다. 오늘은 '숙소'를 갈 예정이기 때문에(안데스 넘기 위한 컨디션 조절) 식량을 사기 위해 '과일가게'로 들어갔다. 인심이 푸근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이것저것 물어보시다가 잠은 어디서 자느냐고 묻는다.

"보통 현지인들의 집을 찾아가서 캠핑도구가 있다고 말해요"라고 답하자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어떤 남자를 부른다. 잠시 상의 하더니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란다. 남자가 길을 안내한다. 두 명이 앉아야 할 것 같은 모든 방향으로 가지를 뻗은 나무 아래이자 재래식 화장실 2m 좌측의 '터'를 가리킨다. 동물들의 마른 '응아'가 제법 보이지만 아늑해 보인다.

먼저 이 권사님이 챙겨주신 은박지를 바닥에 깔고 텐트를 편 뒤 그 안에 매트리스, 슬리핑 백, 그리고 공 권사님이 챙겨주신 담요를 펼치자 잠자고 싶은 집이 완성되었다. 아, 비가 와도 맘 놓고 잘 수 있는 그늘 막을 마지막으로 설치하자 정말 '캠핑'하는 기분이 났다.

과일가게 주인인 마리아가 자신의 집 안에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같이 한국 이야기도 하고 귀여운 두 딸, 애완견과 함께 놀기도 했다. 내일은 본격적인 안데스를 만나는 날이 될 것 같아 일찍 인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드디어 그럴듯한 모습을 갖춘 텐트
 드디어 그럴듯한 모습을 갖춘 텐트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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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마리아의 딸
 귀여운 마리아의 딸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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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10일 칠레 로스안데스에서
꿈을 위해 달리는 청년 박정규 올림.

희망 여행 여행노트
1. 이동경로.  
Santiago -> Los Andes
2. 주행기록.
주행거리: 71.68km / 주행시간: 5시간 9분 / 평균속도: 13.9km/h
3. 사용경비: 4,900 PESOS ( 1U$ = 500 PESOS)
호두 2봉지, 오렌지 8개, 사과 2개, 치리모야 2개, 팔따 1개: 4,000
빵 1봉지: 900
4. 음식
아침: 빵, 커피
점심: 삼계탕
저녁: 빵5개, 계란 후라이 2개, 차 2잔
간식: 물 1.4리터, 오렌지 2개
5. 숙소: 현지인 집 근처 캠핑
6. 신체: 왼쪽 종아리 뻐근함.
7. 위생: 양치, 물수건으로 세수
8. 길 정보: 포장상태가 양호함, 갓길 충분히 넓음, 자전거 진입금지라고 표시되어 있으나 도로관리소 등 톨게이트 사람들도 아무런 말이 없음. 

덧붙이는 글 | 박정규 기자는 '희망을 찾고, 나누며, 만드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2006년 5월 16일, "희망을 찾아 떠나는 자전거 세계일주"를 시작하였습니다. 2009년 2월 28일까지, 몽골여행, 중국종단, 인도여행, 미국횡단, 쿠바일주, 남미일주, 북아프리카 횡단을 계획 중입니다.



태그:#안데스, #자전거여행, #안데스자전거, #칠레, #아르헨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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