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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국악당이 주최한 "추석, 이렇게 좋은 날"의 리플릿 표지
▲ 리플릿 남산국악당이 주최한 "추석, 이렇게 좋은 날"의 리플릿 표지
ⓒ 남산국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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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열양세시기>에 “더도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라고 했던가? 8월 한가운데 있는 큰 날 한가위. '가위'라는 말은 신라 때 길쌈놀이(베짜기)인 '가배'에서 유래한 것이라는데 <삼국사기> 기록에는 "부녀자들을 두 편으로 갈라 길쌈을 한 뒤 밤새 '강강술래'와 '회소곡(會蘇曲)'을 부르고, 춤을 추며 질탕하고 흥겹게 놀았다"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우리 겨레 가장 큰 명절 한가위는 민속놀이를 하고 민요를 부르며 모두가 함께 흥겹게 노는 날이다. 2008년 9월 14일 무자년 한가위, 서울 남산국악당에서는 음악평론가이며, 작곡가인 현경채 교수의 사회로 '추석, 이렇게 좋은 날'이라는 민요 공연이 열렸다.

이날은 이색적으로 모든 자리를 중국 여행자들이 차지했다. 아니 한가위를 맞아 명절 분위기를 느끼려고 특별히 요청한 별도의 공연이란다. 따라서 사회자의 특별한 능력이 요구된 공연이다. 현경채 교수는 유창한 중국어로 청중을 사로잡는다.

"추석, 이렇게 좋은 날" 공연에서 유창한 중국어로 사회를 본 현경채 교수
▲ 현경채 "추석, 이렇게 좋은 날" 공연에서 유창한 중국어로 사회를 본 현경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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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민요를 부르는 최수정(오른쪽)과 박영희
▲ 경기민요 경기민요를 부르는 최수정(오른쪽)과 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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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먼저 한국국악협회 전국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던 경기민요 이수자 최수정과 박영희 부여충남국악단 단원이 함께 노랫가락, 청춘가, 창부타령, 뱃노래 등의 흥겨운 경기소리로 시작한다. 두 사람이 농익은 소리로 명절 분위기를 한껏 살려준다. 우리 귀에 익숙한 경기민요지만 중국인들에게는 어떻게 들릴까?

이어서 텔레비전 방송에 자주 등장하여 많은 이에게 알려진 KBS 국악대상 장원 출신의 남상일과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춘향가) 이수자인 박애리가 흥보가 중 "박타는 대목"을 구수하게 들려준다. 그들이 익살스럽게 소리했지만 사설을 모르는 중국인들의 큰 호응이 없자 즉석에서 사회자에게 물어 토막 중국어로 중국인들과 호흡을 하려 노력한다.

역시 중국인들은 '대장금'엔 익숙한가? 박애리가 긴급 투입한 노래 대장금의 '오나라'를 부르자 중국인들은 한껏 흥겨워한다. 여기서도 한류의 위력은 드러나고 있다. 남상일·박애리는 판소리에 이어 추석노래, 성주풀이, 풍년가, 진도아리랑 등의 남도소리로 한국인의 아름다운 정서를 중국인에게 선물했다.

걸쭉한 목으로 판소리와 남요민요를 부른 남상일(오른쪽)과 박애리
▲ 판소리와 남도민요 걸쭉한 목으로 판소리와 남요민요를 부른 남상일(오른쪽)과 박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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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현 가야금으로 아리랑, 캐논변주곡, 비틀즈의 렛잇비, 첨밀밀 등을 연주한 '숙명가야금연주단'
▲ 숙명가야금연주단 25현 가야금으로 아리랑, 캐논변주곡, 비틀즈의 렛잇비, 첨밀밀 등을 연주한 '숙명가야금연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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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퓨전국악으로 인기몰이 중인 숙명가야금연주단 6명의 연주자가 25현 가야금으로 민요 아리랑과 그들의 대표 연주인 캐논변주곡 그리고 비틀즈의 렛잇비(let it be)와 헤이주드(Hey Jude)가 이어진다. 하지만, 역시 이 부분에서도 중국인들에게 익숙한 첨밀밀이 연주되자 손뼉으로 호응하면서 즐거워한다.

이제 서도소리 마당이다. 전국국악경연대회 성악부 금상 수상자이며,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전수조교인 유지숙과 그의 제자들이 함께 서도소리의 매력을 발산한다. 유지숙은 지난 8월 남산국악당이 주최한 여름날의 국악여정 '송혜진 교수의 서도소리이야기'에서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보유자 김광숙·이춘목 선생과 함께 공연을 했던 서도소리의 스타이다.

서도소리에는 이날 공연 중 가장 많이 사람이 출연했는데, 이는 유혜숙, 최병문, 오영옥, 유의숙, 김수진, 이나라, 장효선, 박은혜, 주예슬, 류지선, 이유선 등 제자들의 앞길을 열어주기 위한 스승 유지숙의 따뜻한 마음이 빚어낸 것이었다.

제자들과 함께 서도소리를 하는 유지숙 명창
▲ 유지숙 제자들과 함께 서도소리를 하는 유지숙 명창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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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명창 유지숙의 제자들이 익살스럽게 굼베타령을 하여 청중들의 손뼉을 받았다.
▲ 굼베타령 서도명창 유지숙의 제자들이 익살스럽게 굼베타령을 하여 청중들의 손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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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소리는 방아찧기, 연평도난봉가, 굼베타령, 투전풀이, 사설난봉가로 이어졌다. 역시 사설을 몰라 좀 어렵게 느껴졌을 중국인들도 굼베타령·투전풀이에서 익살스러운 동작을 보자 큰 손뼉이 나온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진정한 예술은 세계공통어임을 실감되던 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전주대사습 민요부분 장원을 한 고금성이 서울·중부지방에서 대감신을 모시는 굿거리인 대감놀이를 올린다. 어느 공연이나 이 대감놀이는 대미를 장식하며 청중을 흥겹게 한다. 사회자가 잠시 중국어로 상세히 대담놀이를 소개하고 고금성이 듬뿍 복을 보내주는 소리와 동작을 하자 중국 청중들은 흥겨워했다. 역시 복을 준다는데 싫다는 사람은 없다는 증거이다.

고금성이 대감놀이를 하면서 중국인 청중들에게 복을 몰아준다.
▲ 대감놀이 고금성이 대감놀이를 하면서 중국인 청중들에게 복을 몰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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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뒤 고금성(왼쪽)과 출연자들이 청중들에게 송편을 나눠주었다.
▲ 송편나누기 공연 뒤 고금성(왼쪽)과 출연자들이 청중들에게 송편을 나눠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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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성과 출연진들은 객석을 돌아다니며 직접 송편을 나눠주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우리 겨레의 나눔의 삶, 더불어 사는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모든 공연이 끝난 뒤 현경채 사회자의 도움을 받아 한 중국인 청중에게 공연을 본 소감을 물었다. 북경에 산다는 자오위강(59)씨는 "가야금 소리가 아름답군요. 한국에 와서 첨밀밀을 들으니 참 좋았어요"라며 "드라마에서 듣던 대장금의 '오나라'도 반가웠어요.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익살스러운 공연도 재미있었어요"라고 말했다.

공연 뒤 사회자 현경채 교수(왼쪽)의 도움을 받아 중국인 자오위강(오른쪽)과 잠깐 대담을 했다.
▲ 자오위강 공연 뒤 사회자 현경채 교수(왼쪽)의 도움을 받아 중국인 자오위강(오른쪽)과 잠깐 대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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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공연에도 옥에 티가 눈에 띄어 아쉽게만 느껴졌다. 음향기기를 쓰지 않고 공연하도록 지어진 국악당인 까닭에 마이크가 제대로 동원되지 않아 일부 소리꾼의 소리가 명쾌하지 않았다는 점은 남산국악당이 신경 써야만 하는 일이란 생각이다. 또 이렇게 외국인이 올 경우를 대비해서 사설을 자막으로 보여줄 준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뿐만 아니라 이날 많은 중국인 청중들이 공연 도중 자리를 뜨고,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기저기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대는 통에 공연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국악당 측은 여행사 측에 청중들을 사전 교육해달라고 누누이 요구했는데도 이런 일이 생겼다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런 옥에 티가 없는 일이 있을까? 옥에 티가 있다 해도 이런 행사는 모두에게 바람직한 것이다. 더구나 우리 명절을 우리만이 아닌 외국인들과 함께한 것은 우리 겨레의 '더불어 삶'을 제대로 실천한 모습이리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한가위, #남산국악당, #민요, #유지숙, #현경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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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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