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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1년사와 2년사의 차이

 

2007년 9월 25일자 <시사IN> 추석합본 신간호(9월 17일 발행)가 나오고 꼭 1년이 지나 두 번째 추석합본호가 나왔다. <시사IN>은 11일(목)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창간 1주년 기념회를 성대히 치를 예정이다.

 

작년의 창간 선포식과 멤버는 다르지 않다. 최광기, 권해효가 사회를 맡고, 손병휘(가수), 연영석(가수), 정태춘(가수), 허클베리핀(록밴드) 등 <시사IN> 홍보대사들이 출연한다. 금요일에는 이에 대한 기사가 몇몇 매체에 뜰 텐데, 언론식으로 표현하면 "<시사IN> 1년 만에 착근에 성공"이라거나 "<시사인>의 다사다난했던 1년사" 같이 1년이라는 데 중점을 둘 것이다.

 

나는 언론과 생각이 다른데, 1년사가 아니라 2년사로 보아야 한다. 창간 후 1년은 사실 창간 전 1년의 결과물일 뿐이다. 왜 2년사가 중요한가를 보려면 미국 대선을 생각하면 된다.

 

오버마와 힐러리의 경선과 오버마와 맥케인의 대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사실상 1년 전에 대선레이스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고 볼 수 있다. 선거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시사IN>은 1년 동안 독자들과 함께 선거운동을 한 셈이다. 때로는 거리에서 때로는 언론노조사무소에서, 대여섯 번의 이사를 한 끝에 지금의 교북동 보금자리에 입주할 수 있었다.

 

<시사IN>의 과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PD수첩> 방영 이후 독자들이 <시사IN>을 열렬히 구독하기 시작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PD수첩> 방영은 1년 동안 싸워왔던 결실의 마침표일 뿐이다.

 

인식 공유의 3단계로 본 <시사IN> 2년

 

인식 공유(shared awareness)란 각기 다른 다수의 사람들이나 그룹들이 어떤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개인이나 집단이 마찬가지로 그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인식의 공유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면 '행동'에 도달하게 된다. 행동에 도달하기까지는 3개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1단계 : 모두가 무엇인가를 아는 단계

2단계 : 모두가 알고 있음을 모두가 아는 단계

3단계 : 모두가 알고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아는 단계

 

이명박이 부패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미 우리는 인식의 1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이명박이 부패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끊임없이 제기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뚜렷한 움직임은 없다. 2단계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이명박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방역권 포기 방침은 인식의 2단계를 넘어서 3단계에 도달했다. <PD수첩>이 고발하고, 청계광장·여의도에서 여중생들이 촛불을 들고 위험을 알렸기 때문에 3단계 인식에 도달할 수 있었다. 6월 10일의 촛불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시사IN>에도 인식의 3단계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시사저널>의 사장이 부당하게 기사를 도려냈다. 편집권이 있음에도 경영권이 편집권을 먹어버렸다.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인식의 1단계이다.

 

기자들이 파업을 하고 회사는 중징계와 고소 폭탄을 던졌다. 독자들이 가세해 힘을 보태 주었고, 시사저널의 부당성을 꾸준히 알렸다. 인식의 2단계이다. 인식의 2단계에서 인식의 3단계는 사실 뚜렷한 구분이 없지만, 직접행동이 일어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인식의 3단계로 갈 수 있는 우호적인 환경은 꾸준히 마련되었다. 시사저널 사태 이후 이와 관련된 보도를 분석해 보면, 대학신문 포함 총 73개의 매체에서 821개의 기사를 쏟아냈음을 알 수 있다. 하루에 2개 이상 시사저널 관련 기사가 떠올랐다. 독자들의 눈물겨운 지원도 큰 힘이 되었다. '시사저널을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시사모, 후에 참언론실천시사독자단으로 개칭/해단)'이 결성돼 기자들과 투쟁을 함께 했고 검찰 조사까지 당했다.

 

진품시사저널구독운동과 문화제, 일일호프, 시사IN 창간과정에는 전국적으로 '자발적 구독운동'을 추진해 전국 20곳에 6000여부의 '독자판' 시사IN과 기념물을 뿌렸다. 6천부라는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다.

 

배포 부수는 수천부이지만, 배포활동을 인터넷에 공유하며 이 일을 알게 된 사람은 수만명에서 수십만명에 달한다. 시사IN은 이미 인식의 3단계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창간선포식과 PD수첩 방영이 있었다.

 

방영 다음날 나는 서포터스로 시사인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매우 역사적인 순간에 그곳에 있게 된 것이 지금도 행복한 기억이다. 그때는 중국집에 요리를 시켜 놓고 전화기 옆에서 식사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화장실에 갈 짬도 못 내고 전화를 받았다. 후원계좌번호와 정기구독 예약을 받았다.(관련기사: 소액후원금, 벌써 2억원이 넘었습니다. <오마이뉴스>)

 

거액의 후원금과 투자금을 제외한 순수 소액후원금만 이틀 만에 1억이 모이더니, 하루 만에 또 1억원이 찼다. 지방의 유지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독자는 선친이 남긴 유산 20억을 기증할 용의가 있다며 의사를 타진해 오기도 했다. 하지만 지배구조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1대 주주의 지분은 17%로 제한한 상황이다. 창간기금 30억원이 모이는 것은 말 그대로 순식간이었다.

 

앞으로 1년이 더 중대한 고비가 될 것

 

창간 이후에 대해서 평가하라면 한 마디로 "결호 안 내느라 수고 많았습니다"이다. 시사인은 특종과 함께 화려하게 창간했는데, 이른바 신정아 단독 인터뷰다. 이 건은 뉴스데스크에서 다뤄지기도 헀다. 그 이후에 삼성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고발 건이라든지 김경준 씨의 메모 단독 보도와 에리카 김 인터뷰 등 1년 사이에 3번이나 특종을 터뜨렸다. 물론 이것은 언론에서 더 자세히 다뤄질 사안이다.

 

인식의 3단계는 지금도 유효하다. 이명박의 언론장악 시도에 방송사가 모두 쓰러진 상황에서 언론사도 힘겹게 버티고 있다. 그 중에서 시사IN이 가장 든든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언론자유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리고 시사인이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는 것도, 혹은 해야 한다는 것도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왜 시사IN인가'를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만약 그것이 설명이 되고 납득이 된다면 이미 시사IN은 두 번째 인식 공유의 3단계로 이어질 것이며, 그 행동은 시사인을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들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년 후에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대안으로서의 시사IN이 건재하기를 바랄 뿐이다.


태그:#시사IN, #시사인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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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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