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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0일 06시 40분 기상. 7시에 나가기로 했으니 서둘러 짐을 챙긴다. 이 사람들 새벽 5시까지 '흥겨운 소리'를 만들어 준 덕분에 선잠을 잤다. 새벽에 서리가 내려 조금 추웠다. 슬리핑 백이 축축할 정도로……. 신발을 뒤집어 놓기를 잘했다.텐트를 덮어 줄 큰 비닐이 필요하다. (필자의 텐트는 1인용이며 후라이가 없다.)

다 챙기고 빵으로 아침을 먹고 나도 집안은 고요하다. 8시쯤 집을 나와 도로로 접어든다. 역시나 오르막이 있지만 그리 심하지는 않다. 대신 태양이 더 가까이 다가와 쳐다본다. 점심은 진입로가 마을을 거쳐서 있던 La Ligua에서 먹는다. 슈퍼에서 1리터짜리 콜라를 700페소에 샀다. 식당에서는 350ml에 600이었는데…….

아름다운 해안마을
 아름다운 해안마을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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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골목의 식당의 2500페소짜리 메뉴가 부담되어서 싼 식당을 찾았다. 하지만 sopa(현지인들이 즐겨먹는 '국'류를 말한다)까지 시키니 가격은 처음 본 곳과 동일하다. 그래도 방금 끓인 것처럼 따뜻한 sopa 덕분에 힘이 난다. 국은 밥 그릇에 나왔고, 가격도 싼 편이다. 주인 아저씨가 친절하셔서 전화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산티아고 아씨마켓에 전화했다. 혹시나 가는 도중에 대도시에 한인교회가 없느냐고 물어보니, 없단다. 역시나 수도에만 있구나……. 있었다면 인터넷에서 검색 되었겠지.

아름다운바다에 빠진 필자
 아름다운바다에 빠진 필자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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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나 한인 공동체가 가는 길에 있었다면 하루 쉬다가 가려고 했는데, 식당 주인이 큰 오르막 2개만 넘으면 대부분 길이 룰루랄라~ 라는 말에 갑자기 오늘 밤에 가볼까? 라는 조금은 무모한 생각이 든다. 갈까? 말까? 일단 출발하자!

어, 갓길에서 '흰 천'을 위 아래로 흔드는 아주머니가 보인다. 뭐지? '뭐하세요? 빵을 팔고 있어요' 둘세(달콤한 초콜릿 시럽 같은 것이 들어있는 것. 단 것들을 말한다)가 가득 발려있는 빵을 웃으며 건네준다. '어 안 살 건데요, 그냥 주는 거예요.' 이런, 멋진 아주머니! 감사촬영을 위해 깃발을 흔들어 달라는 부탁에 웃으며 깃발을 흔들어 준다. 

맛있는 빵을 주신 아주머니
 맛있는 빵을 주신 아주머니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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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순조로운 평지다. 어, 터널이 보인다. 돈을 내면 지나갈 수 있는 유료터널과 그냥 산을 빙빙 돌아서 지나가는 길이 있다. 설마 자전거 여행자에게 돈을 내라고는 하지 않겠지? 일단 가보자! 돌아가라면 돌아가면 되지 뭐……. 

터널 발견
 터널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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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송용 차량을 타고있는 조나단
 호송용 차량을 타고있는 조나단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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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터널 앞에 작은 신호등이 있다. 건너편 도로의 부지에는 관리소가 있다. 직원이 날 발견하고는 천천히 걸어온다. '아, 돌아가야 하나?' 직원이 손짓한다. 따라가서 한 쪽에 조나단을 세워두고 일단 수돗가에서 땀을 흘려 보낸다. 직원이 2.5톤 탑차 뒤의 공간을 가리킨다. '아, 태워주려고? 잠깐만요! 사진 좀 찍고요! 조금 무거워요, 자-아 으샤!' 조나단을 겨우 싣고 출발!  조나단의 두 손을 꼭 잡는다. 2-3km의 터널을 벗어나자 내리막에 있는 톨게이트에서 내려준다. 녹색 기운이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산티아고 111km지점에서 파이팅을 외치며
 산티아고 111km지점에서 파이팅을 외치며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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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시. Copec주유소 편의점. 88km 지점. 그렇게 copec를 바라다가 이제야 도착했다. 여기를 그토록 찾은 이유는 바로 '무선인터넷' 때문이다. 여행자에게 세상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다리' 같은 존재가 바로 인터넷이기에……. 피로가 몰려온다. 일단 잘 달려온 나 자신에게 핫도그를 하나 대접한다. 슈퍼에서 구입한 주스를 함께 마시며 생각한다. 여기서 100km만 더 가면 산티아고인데……. 내일 아침 예배가 11시니까 그 전에 도착하려면 조금 쉬다가 출발해서 쉬엄쉬엄 가면 되겠지?

산티아고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로 꽃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산티아고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로 꽃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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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회의 소집! 긴급회의 소집! (마음이 다급히 외친다.)

대상은 몸, 머리, 마음, 조나단이다. 마음이 회의를 진행한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무박 2일 100km 주행에 대해서……. (지금 88km 지점이며, 총 거리는 200km인 셈이다.)

머리: 뭐라고? 지금 간다고? 내일 아침에 도착한다고? (어이없는 표정) 

몸: 오늘은 길이 좋았어, 약간의 근육통 말고는 괜찮은 것 같아, 콧물 조금(감기기운) 나오는 거야 뭐…….(흥! 하고 코를 푼다.)

조나단: …….(무표정)

마음: 애들아, 갓길도 1차선 정도이고, 먹을 거 좀 사서 쉬면서 가면 괜찮을 거야!(조금 두려움이 섞인 떨리는 목소리로)

머리: 잘 생각해봐! 평소에 너 70-100km 정도 달리잖아, 몸도 그 거리에 익숙해졌어. 누구랑 약속한 것도 아니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난 정말 ' 무모(無謀)하고 위험'하다고 생각해! 꼭 가야만 하니? ('무모(無謀)'를 강조하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코펙 주유소 안에서 인터넷중인 필자
 코펙 주유소 안에서 인터넷중인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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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그래, 니 말이 옳은 건 나도 인정해! 무엇보다 한국에서 길 위에서 도와준 많은 이들에게 '위험'한 걸 알면서도 간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려, 하지만…….(망설이는 표정) 

머리: 그래! 부모님하고 친구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니? 건강이 먼저잖아! (열정적으로) 그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큰 일 이잖아, 할 말도 없고……. (고개를 흔들며)

마음: 하지만 말이야, 뭔가 가야만 할 것 같은 '흐름'이 느껴져……. 제대 1주일 전에 울트라 마라톤을(100km부분, 1관문[53km: 7시간27분]에 도착 후 체력적 문제와 시간제한 초과로 탈락[1관문 제한시간은 7시간]) 신청할 때, 희망여행(자전거 세계여행)을 꼭 가야겠다고! 선택했을 때…….  온 몸의 피가 서서히 뜨거워지면서 한 곳으로 모이는 것 같은, 내가 믿어오던 것들의 변화를 요구하는 '그 무엇'이 주위를 맴돌고 있는 그런……. 그 때처럼 강하지만 않지만 말이야, 그 '흐름'이 지금 시작된 것 같아……. 모른 척 하고 싶지는 않아……. (담담하지만 확신이 느껴지는 어투로)

무박2일주행을 결심하며 스스로에게 대접한 저녁
 무박2일주행을 결심하며 스스로에게 대접한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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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조나단: 가보자! 가보자! 가보자! (소리를 점점 높이며 외친다.)

머리: 그래……. 한번 믿어볼게, 단! 조건이 있어! (눈빛이 반짝거리며 웃는다.)

몸, 마음, 조나단: 뭐? (다들 눈이 휘둥그래지며)

머리: '생각'을 바꾸자는 거야! 우리는 무모한 모험이 아니라, '희망여행 제1회 야간 자전거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다는 거지! 200km 부문. 제한시간은 내일 아침 10시. 골인지점은 산티아고 칠레 영락교회야! 안전장비(야광조끼, 비상등, 조명등), 간식 섭취, 페이스 조절은 기본! 갈 수 있는데 까지 가는 거야!

다들 일제히: 그래! 가자!

2008년 9월3일 수요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꿈을 위해 달리는 청년 박정규 올림.


태그:#칠레자전거여행, #칠레, #산티아고, #남미자전거여행, #희망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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