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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커덕덜커덕 버스가 도착한 거 같다. 눈을 떠보니 올드델리역이었다. 오토릭샤를 타고 빠하르간지로 향했다. 아침부터 쏟아지는 수많은 사람들과 매캐한 공기가 델리에 왔음을 느끼게 한다.

일주일 넘게 똑같은 빨간색 티를 입고 오늘도 성실하게 장사를 하는 라시 청년. 단골이 될 수밖에 없었다.
▲ 라시 청년 일주일 넘게 똑같은 빨간색 티를 입고 오늘도 성실하게 장사를 하는 라시 청년. 단골이 될 수밖에 없었다.
ⓒ 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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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를 잡아 짐을 풀고 가볍게 씻고 밖으로 나왔다. 다시 찾은 라시가게 청년은 우리를 발견하고 또 손을 번쩍 들어 반가움을 표시한다. 바나나라시를 맛있게 한 잔 먹고 20분 정도 걸어 코넛플레이스로 갔다.

코넛플레이스는 뉴델리에 새롭게 방사형으로 건설한 시내 중심지이다. 깔끔하게 만들어진 건물들과 깨끗한 건물들이 다른 인도 지역에서 느끼던 분위기와 다르다. 마치 강남이나 분당, 일산 같이 계획한 지역 같다. 그런 면에서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다.

세상 어디에나 있다는 맥도날드를 새삼 인도에서 보니 무서워졌다.
▲ 코넛플레이스에 있는 맥도날드 세상 어디에나 있다는 맥도날드를 새삼 인도에서 보니 무서워졌다.
ⓒ 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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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지은 소비 중심지라 맥도날드, TGI 프라이데이, 나이키, 리바이스 등등 매장이 쉽게 눈에 띈다. 9시쯤이었는데 인도에서는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연 곳이 없다. 새벽부터 출근하는 사람들로 바쁘고 정신없을 한국과는 분위기가 참 다르다. 조용한 코넛플레이스를 기웃거려 본다.

시크교인들이 모여 잔치를 벌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 시크교 잔치 시크교인들이 모여 잔치를 벌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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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여기저기서 공짜로 나눠주었다. 줄을 서서 얻어먹었다.
▲ 음식을 나눠주는 축제 음식을 여기저기서 공짜로 나눠주었다. 줄을 서서 얻어먹었다.
ⓒ 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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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을 인디아 게이트로 향한다. 걷고 싶은 마음이 들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가는 길에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나눠먹고 웅성웅성 복잡하였다. 다들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젊은 친구들은 검은색 천을 머리에 쓰고 있어 시크교도 축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여기저기 껴서 나눠주는 음식을 맛보았다.

한 시간 넘게 걸어서 만난 인디아 게이트. 반가웠다.
▲ 반가운 인디아게이트 한 시간 넘게 걸어서 만난 인디아 게이트.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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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즈파트를 사이에 두고 대통령궁과 마주본 채 우람하게 서있는 인디아게이트
▲ 인디아게이트 라즈파트를 사이에 두고 대통령궁과 마주본 채 우람하게 서있는 인디아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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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대통령 궁이 보인다. 한국에 세종로라 할 수 있는 라즈파트에 별로 차가 없어 한적한 느낌이다. 주변으로 공원조성이 잘 되어 있다.
▲ 대통령궁 저 멀리 대통령 궁이 보인다. 한국에 세종로라 할 수 있는 라즈파트에 별로 차가 없어 한적한 느낌이다. 주변으로 공원조성이 잘 되어 있다.
ⓒ 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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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걸어도 인디아 게이트는 나오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 걸은 듯하다. 어제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던 장은 무척 피곤해보였다. 그래도 걷고 걸어 인디아 게이트에 도착하였다. 그 앞으로 라즈파트라고 대통령궁까지 쭉 이어진 대로가 나타났다. 한국으로 치면 세종로라고 할 수 있는데 차들도 별로 없고 주변에 공원으로 되어 있어 풍경이 시원했다.

간디가 암살당하기까지 머물렀던 간디 슴리띠까지는 차마 이 날씨에 계속 걷자고 할 수 없어서 오토릭샤를 타고 갔다. 간디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장은 첫날 델리 대학 근처 책방에서 영어로 된 간디 자서전을 사서 틈틈이 보고 있었다.

장이 힘내라고 간 간디 슴리띠는  간디의 일생과 사건들, 언행들을 기록한 간디 기념관이라 할 수 있다. 커다랗게 조각된 간디 동상과 간디가 돌렸던 물래, 간디 모형들을 해놓았다. 그저 관광지가 되지 않도록 입장료는 무료다. 그날도 대형버스를 타고 인도 다른 지역에서 보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인도인들이 갖는 존경심을 엿볼 수 있었다.

간디의 생애 행적을 잘 모아놓은 간디슴리띠
▲ 간디 동상 간디의 생애 행적을 잘 모아놓은 간디슴리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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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토릭샤를 타고 코넛 플레이스로 왔다. 아침 내내 걸어 다녀서 흠뻑 젖은 땀으로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만 채식 고급 식당인 베가로 갔다. 이곳은 인도 지배 계급인 브라만이 즐기는 채식 요리들이 나오며, 양파나 마늘 같은 구근 식물은 재료로 사용하지 않는다.

가격은 세트를 시켰는데 하나에 450루피라는 엄청난 가격이었고 부가가치세도 붙었다. 그리고 너무 더워 찬물 한 병을 시켰는데 물값도 받았다. 가격이 비싼 만큼 손님은 별로 없었지만 맛은 좋았다. 

고급 채식 음식점에서 호사를 누려봤다. 배고픈 나머지 한 입 베어물고 다시 쟁반 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 인도 고급 채식 음식점, 베가 고급 채식 음식점에서 호사를 누려봤다. 배고픈 나머지 한 입 베어물고 다시 쟁반 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 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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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와 씻었다. 저녁에 위렌드라와 델리대학에서 만나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인도는 저녁식사를 늦게 하기에 8시에 만나기로 했다. 장은 몸이 좋지 않아 방에서 쉬기로 하고 나는 나가면서 다섯 시까지 돌아오기로 했다.

코넛 플레이스에 있는 팝인디아라는 친환경 의류점이 있는데 인도여행 가기 전에 여기서 스카프를 사다 달라는 부탁을 받았기에 팝인디아로 향했다. 아침에 갔을 때는 문이 굳게 닫혀 있던 팝인디아는 오후에 사람들로 붐비었다.

더운 나머지 일하시는 분에게 "탄다 바니헤(찬물 주세요)"라고 말했더니 크게 웃으시면서 '탄다 바니'를 유리컵에 물을 떠다 주셨다. 나는 "보훗 단야밧(매우 고맙습니다)"라고 말해 다시 그 사람을 흐뭇하게 했다.

우선 스카프를 고르고 친환경이란 말에 혹하여 여기저기 눈을 떼지 못하고 입어보기도 하고 신어보기도 했다. 가격이 시장 것보다 3-4배 비싸서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서야 했다. 장도 가족들에게 사다줄 물품을 몇 가지 사야하기에 먼저 이것저것을 둘러보고 나왔다.

한 30분 정도 떨어진 인도 정부에서 하는 기념품가게를 갔다. 정부에서 하는 것이기에 품질이 더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팝인디아보다 조금 싼 가격에 괜찮은 물건들이 많았다. 친절한 종업원이 안내를 해주면서 계속 이것저것 사라고 부추겼다.

수건과 이불보, 스카프, 그리고 장이 땀을 흘리며 필요하다고 찾아다녔던 손수건을 골랐다. 정찰제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팔았는데 특별히 종업원 분이 깎아달라고도 안 했는데 깎아줬다. 어느새 조금 입에 붙은 힌두어를 썼더니 좋게 본 듯하다.

아, 성과 자본은 무섭구나. 자연스럽게 사람들 속으로 파고든다. 여기서도 헐벗은 그녀가 표지 모델로 나오고 있다.
▲ 인도판 맥심 아, 성과 자본은 무섭구나. 자연스럽게 사람들 속으로 파고든다. 여기서도 헐벗은 그녀가 표지 모델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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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넛 플레이스 한쪽 벽에 그려져 있는 그림.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인도 역시 TV 를 켜니 떠들석한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나오고 있었다.
▲ 코넛 플레이스 벽그림 코넛 플레이스 한쪽 벽에 그려져 있는 그림.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인도 역시 TV 를 켜니 떠들석한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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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빠하르간지에서는 20루피면 사는 사과를 코넛플레이스에서는 70루피에 팔고 있었고 여기저기서 남녀가 모여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군인 시절, 많은 군인들이 안타깝게 즐겨보는 '맥심'이란 저급한 잡지가 있다. 헐벗은 여자 연예인들을 표지모델로 내세운 선정적인 잡지인데 인도판 맥심을 만났다. 이럴 수가!

숙소로 돌아와 장과 나갈 채비를 다시 하였다. 바나나라시를 또 한 잔 들이키고 낙타몰이꾼에게 장이 시계를 주었기에 시장에서 파는 시계를 하나 샀다. 그런데 이게 웬걸, 모양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정확하게 시간이 가지 않고 조금씩 느리게 갔다.

다음날 다른 시계랑 비교해보니 실제로는 아침 9시인데 시계는 7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장은 달러 가져온 걸 환전하고 오토릭샤와 흥정에 나섰다. 빠하르간지에서 델리 대학까지는 멀기에 가격이 꽤 높았다. 150루피 달라는 운전자에게 장은 120루피를 고집했다. 보통 같으면 20-30루피 얹어주고 가는 장이었지만 이번에는 꽤 완고했다. 옆에 있던 어느 인도인이 끼어들어 중재에 나섰다.

델리 대학이 조금 멀긴 하지만 120루피면 괜찮은 가격이잖아
▲ 120루피에 가자고! 델리 대학이 조금 멀긴 하지만 120루피면 괜찮은 가격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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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루피에서 깎아줄 수 없다는 기사, 곁에서 구경하던 인도 아저씨가 껴든다.
▲ 꼭 150루피여야 해? 150루피에서 깎아줄 수 없다는 기사, 곁에서 구경하던 인도 아저씨가 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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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부자고 150루피에 가면 기사도 너도 행복할거야. 아저씨는 행복으로 중재했다.
▲ 150루피를 주면 행복할거야. 넌 부자고 150루피에 가면 기사도 너도 행복할거야. 아저씨는 행복으로 중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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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장난 같은 논리대결을 하며 가격을 협상했다. 결국 150루피를 줬다. 그런데 가면서 느끼는 거지만 멀고도 멀었다. 벌써 시계는 8시를 넘었는데 아직 가려면 멀었다. 조금 더 일찍 나왔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인 법과대학 앞으로 갔지만 위렌드라는 없었다. 위렌드라를 찾아 여기저기 “위렌드라”를 외치며 돌아다녔다. 개강을 하여 여기저기 모여 있는 델리 대학생들에게 물어봤는데 위렌드라를 모른다고 했다.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다가 어느 대학생이 길동무를 해주었다. 그에게 이름 소개를 하면서 장이 “메라 남 장헤(제 이름은 장입니다)”라고 하자 그 대학생은 쓰러지도록 웃었다. 장은 힌두어로 허벅지란 뜻이기에 장은 이걸 이용하여 인도인에게 자기소개를 할 때 꼭 허벅지를 한번 손바닥으로 치면서 “메라 남 장헤(제 이름은 허벅지입니다)”라고 하여 호감을 얻었다.

위렌드라와 신발을 벗고 풀밭에 앉았다. 풀밭에 들어가도 되냐니까 "노 프라블럼"이라고 씨익 웃는다. 장은 순박한 위렌드라를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 극적으로 만난 위렌드라 위렌드라와 신발을 벗고 풀밭에 앉았다. 풀밭에 들어가도 되냐니까 "노 프라블럼"이라고 씨익 웃는다. 장은 순박한 위렌드라를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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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발행한 한국어로 공부하고 있었다. 열어보니 기본 회화 위주로 영어로 설명이 되어있었다.
▲ 한국어교재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발행한 한국어로 공부하고 있었다. 열어보니 기본 회화 위주로 영어로 설명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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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증은 어설프게 코팅도 안 되어 있고 종이로 되어있었다. 학생증이 무엇이 중요한가. 어떠한 학생들이 모여있는 게 중요하지.
▲ 델리대학학생증 학생증은 어설프게 코팅도 안 되어 있고 종이로 되어있었다. 학생증이 무엇이 중요한가. 어떠한 학생들이 모여있는 게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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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학생과 헤어지고 끝내 위렌드라를 만났다. 위렌드라도 가지 않고 계속 돌아다녔다고 한다. 반가움에 장은 달려가서 위렌드라를 안았다. 벌써 시간이 8시 40분이었다. 40분이나 늦은 것이다. 잔디밭에 앉아서 여행한 이야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어과 대학원생인 위렌드라는 계속 한국말을 하면서 한자라도 더 배우려고 애를 썼다. 위렌드라는  연세대학교 어학당에서 발간한 한국어교재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보통 도서관에서 12시까지 공부하고 밤새서 도서관이 운영되기에 1-2시 넘을 때도 많다고 한다. 델리 대학생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위렌드라는 구루(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사진이 커다랗게 찍힌 잡지를 선물로 주며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 구루가 대단하기는 대단한지 이튿날, 숙소를 나가면서 관리인에게 선물로 주자 상당히 고마워했다.

인도에 구루와 바바지들은 많은데 이 분은 현재 대단히 인기를 얻고 있나보다. 힌두교인 위렌드라가 이렇게 좋아할 정도이면.
▲ 위렌드라가 준 구루사진 인도에 구루와 바바지들은 많은데 이 분은 현재 대단히 인기를 얻고 있나보다. 힌두교인 위렌드라가 이렇게 좋아할 정도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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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렌드라와 저녁을 먹기 위해 대학교 내 인도음식 체인점을 갔다. 파파이스, 롯데리아 같은 인테리어에 파는 것만 인도 요리였다. 달과 짜파티와 여러 가지 양념이 어우러진 탈리를 시켜 맛있게 먹었다. 어느새 10시 반, 헤어질 시간이었다. 다시 이메일 주소를 확인하고 포옹을 하였다.

안녕, 위렌드라! 공부 열심히 해서 부인과 아들과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게!


태그:#인도여행, #델리대학, #시크교, #코넛플레이스, #맥도널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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