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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 어떤 음식보다 혀를 착착 감기게 하는 깊은 맛이 일품인 애호박조림 맛의 비결은 새우젓에 있다
▲ 애호박조림 그 어떤 음식보다 혀를 착착 감기게 하는 깊은 맛이 일품인 애호박조림 맛의 비결은 새우젓에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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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왜 그리 거친 손을 하고 있느냐
이 세상이 너를 마구 조롱하더냐
못 견디게 서럽고 가난한 나날들이
네 손등에 깊은 칼집 새기더냐
눈물방울로 구르던 슬픈 사랑 하나가
네 손 마디마디 파랗게 피멍들이더냐

너는 왜 그리 깊은 주름살을 쥐고 있느냐
사람들이 네 발등 마구 찍더냐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파아란 연기가
네 굶주린 뱃속 걸레처럼 마구 쥐어짜더냐
다시 오마 떠난 그 사내의 긴 그림자가
네 앞에 아침햇살처럼 일렁거리더냐

너는 왜 그리 노랗게 시들고 있느냐
웽웽거리는 말벌이 네 목을 마구 조르더냐
간밤 훠이훠이 떨어진 별똥별들이
네 꽃술 뿌리까지 몽땅 뽑아내더냐
들숨 날숨으로 매단 그리움 하나가
날이 갈수록 자꾸 커지기만 하더냐

- 이소리, '애호박' 모두

애호박에 흠집이 없고 모양이 고르며, 연두빛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무거운 것을 사는 것이 좋다
▲ 애호박조림 애호박에 흠집이 없고 모양이 고르며, 연두빛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무거운 것을 사는 것이 좋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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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메달'(?)을 입버릇처럼 외치는 이명박 정부 출범 6개월이 지나면서 서민을 울리는 2고 시대가 열리고 있다. 물가고(高), 서민고(苦)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올 하반기에 전기, 가스 요금을 또 올린다고 한다. 서민경제에 미칠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단계적으로 인상키로 했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달면서.

이론경제와 실천경제 사이에서 헛갈리고 있는 이명박 정부를 지켜보면 얄밉다 못해 안쓰럽기까지 하다. 서민들도 안절부절이다. 이러다가 제2의 IMF를 맞는 것은 아닐까, IMF 때보다 더 살기 어렵다는 볼 멘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는 新보릿고개, 新공안정국이라는 2신(新)까지 얹고 있다.

기가 찬다. 서민들은 끝없이 오르는 생필품값에 사지를 뒤틀고 있다. 이제는 반찬값까지 줄여야 할 지경이다. 그렇다고 간장 한 종지에 밥 한 그릇 달랑 올려놓고 끼니를 때울 수는 없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뾰쪽한 답이 나올 것 같지 없는 이러한 때는 값 싸면서도 맛있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찾는 것도 생활의 지혜다.

요즈음 가까운 재래시장에 나가보면 곳곳에 애호박이 널려 있다. 값도 싸다. 잘 고르면 천 원짜리 한 장에 애기 팔뚝만한 애호박 두어 개 살 수 있다. 애호박은 조림 부침개 나물로 조리해 먹으면 달착지근하고 부드럽게 감기는 맛이 그만이다. 게다가 된장찌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찌개류, 국수류 등에도 빠지지 않은 음식이 애호박이다.

애호박을 깨끗이 씻은 뒤 적당한 크기로 잘라 네 토막을 내 도톰하게 썰어야 한다
▲ 애호박조림 애호박을 깨끗이 씻은 뒤 적당한 크기로 잘라 네 토막을 내 도톰하게 썰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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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토막 난 애호박을 널찍한 그릇에 담아 천일염을 약간 뿌리고 새우젓 서너 방울을 떨어뜨린 뒤 골고루 섞어 한동안 재워둔다
▲ 애호박조림 예쁘게 토막 난 애호박을 널찍한 그릇에 담아 천일염을 약간 뿌리고 새우젓 서너 방울을 떨어뜨린 뒤 골고루 섞어 한동안 재워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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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니 음식솜씨도 빛 좋은 개살구네"

"누가 이 아까운 애호박 씨를 칼로 다 깎아냈냐?"
"애호박 씨는 원래 버리는 거 아입미꺼?"
"원래에~에? 원래는 기장(양산시) 위에 있는 기고. 도시에 사는 너거 친정집에서는 애호박 씨로 이렇게 버리뿌나? 가만 보이(보니까) 너거 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것도 다 이유가 있었구먼."
"???"

1970년대 끝자락. 길라잡이(나)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해 초가을이었던가. 길라잡이가 살고 있었던 동산마을(지금의 창원시 상남동)에 갓 시집을 온 예쁘장한 새댁이 있었다. 부산에서 우리 마을 산수골 총각과 결혼한 그 새댁은 여러 가지 음식을 깔끔하고 맛깔스럽게 잘 만들기로 입소문이 났었다.

하루는 새댁의 시어머니가 앞산가새(앞산 비탈) 밭둑에 널브러져 있는 호박넝쿨을 헤집어 애호박 4~5개를 따내 며느리에게 저녁 반찬으로 호박조림을 만들라 했다. 새댁은 친정어머니에게서 배운 대로 애호박을 다듬기 시작했다. 새댁은 먼저 애호박을 길이대로 4등분한 뒤 애호박 씨가 있는 곳을 부엌칼로 조심스레 깎아냈다.

새댁은 애호박을 예쁘게 토막을 친 뒤 소금과 새우젓을 약간 뿌려 재워놓고 깎아낸 애호박 씨를 소 여물통에 넣었다. 그때 소 외양간 옆에서 호박잎을 다듬던 시어머니가 새댁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애호박 씨로 함부로 버리는 거 보이(보니까) 니 음식솜씨도 별 거 아이네. 아가, 니 음식솜씨도 빛 좋은 개살구네."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 뒤 잘게 썬 양파와 빻은 마늘을 볶다가 재운 애호박을 얹고 센불에 볶는다
▲ 애호박조림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 뒤 잘게 썬 양파와 빻은 마늘을 볶다가 재운 애호박을 얹고 센불에 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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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박을 볶을 때 센불에서 볶아야 애호박 특유의 파릇파릇한 빛깔을 살릴 수 있다
▲ 애호박조림 애호박을 볶을 때 센불에서 볶아야 애호박 특유의 파릇파릇한 빛깔을 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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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박 씨는 치매를 막아주고 머리를 좋게 한다

달착지근 부드럽게 혀끝을 휘어 감는 맛도 좋고 건강에도 아주 좋은 애호박조림. 애호박조림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민족음식이다. 그래서일까. 호박에 얽힌 이야기도 많다. 놀부 심보를 가진 사람을 빗대 '애호박에 말뚝 박기', 황재 한 사람들이 '호박이 넝쿨 째 굴러 들어온다', 숨어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을 빗대 '뒤에서 호박씨 까기' 등.

호박은 박과식물 중 영양가가 가장 많이 들어 있는 채소로 알려져 있다. 특히 애호박은 꼭지부터 씨앗까지 버릴 게 하나도 없다. 중선 중기 명의 허준(1539~1615)이 쓴 <동의보감>에는 "애호박은 성분이 고르고 맛이 달며 독이 없고 오장을 편하게 하여 눈을 맑게 하고 혼백을 밝게 한다"고 씌어져 있다.

중국 명나라 때 본초학자 이시진(1518∼1593)이 엮은 약학서 <본초강목>에는 "애호박은 '보중익기'(補中益氣)여서 위와 비장 등 소화기 계통을 보호하고 기운을 더해 준다"고 나와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는 따르면 애호박은 당질(탄수화물 74g)과 칼슘, 비타민 A,C가 많아 위궤양 환자도 쉬이 먹을 수 있으며, 아이들 영양식이나 이유식으로도 그만이다.

특히 애호박 씨에 들어 있는 레시틴 성분은 치매 예방과 두뇌 개발에 아주 뛰어나다. 하지만 요즈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애호박조림을 할 때 애호박 씨앗을 칼로 깎아내 버리고 조리를 한다. 애호박 씨가 조림 곳곳에 묻어있는 것이 보기에도 안 좋고 먹기에도 불편하다는 이유에서다.  

애호박이 연초록빛을 띠기 시작하면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린 뒤 애호박이 반쯤 잠길 정도의 물을 붓고 끓인다
▲ 애호박조림 애호박이 연초록빛을 띠기 시작하면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린 뒤 애호박이 반쯤 잠길 정도의 물을 붓고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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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박이 먹음직스럽게 익으면 깨소금을 살짝 뿌려 한동안 식힌 뒤 반찬그릇에 담으면 끝
▲ 애호박조림 애호박이 먹음직스럽게 익으면 깨소금을 살짝 뿌려 한동안 식힌 뒤 반찬그릇에 담으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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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박조림 맛의 비결은 새우젓

길라잡이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께서 만든 달착지근한 애호박조림을 참 좋아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 위에 얹어 먹는 부드러운 애호박조림의 그 기막힌 맛은 지천명이 된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때 애호박조림은 형제들 중 소화가 잘 안 돼 배가 더부룩하다거나 속이 쓰리다고 할 때 어머니께서 만들어주던 특식 중의 특식이었다.

길라잡이는 올해 들어 초여름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애호박조림을 빠뜨린 때가 없다. 보리밥을 비벼 먹을 때도 애호박조림을 넣어야 제 맛이 났다. 특히 간밤 술을 많이 마신 뒤 속이 쓰리고, 밥을 입에 떠 넣어도 마치 자갈을 씹는 듯한 느낌이 들 때 애호박조림을 꺼내 먹으면 속이 스르르 풀리면서 밥맛이 돌아오곤 했다.

애호박조림을 만드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가까운 재래시장에 가서 애호박 천 원어치(2~3개)를 산다. 이때 애호박에 흠집이 없고 모양이 고르며, 연두빛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무거운 것을 사는 것이 좋다. 애호박조림을 만들기 위해서는 애호박을 깨끗이 씻은 뒤 적당한 크기로 잘라 네 토막을 내 도톰하게 썰어야 한다.

그 다음, 예쁘게 토막 난 애호박을 널찍한 그릇에 담아 천일염을 약간 뿌리고 새우젓 서너 방울을 떨어뜨린 뒤 골고루 섞어 한동안 재워둔다. 30분 정도 지난 뒤 애호박 빛깔이 노르스럼한 윤기를 반짝이면 국물을 남김없이 따라 버린다. 이어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 뒤 잘게 썬 양파와 빻은 마늘을 볶다가 재운 애호박을 얹고 센불에 볶는다.

새우젓을 적당히 넣고 조리한 애호박조림은 위궤양 환자는 물론 수험생과 성장기 어린이들에게 아주 좋다
▲ 애호박조림 새우젓을 적당히 넣고 조리한 애호박조림은 위궤양 환자는 물론 수험생과 성장기 어린이들에게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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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음식과 같이 조리해도 궁합 척척 맞는 애호박 

애호박이 연초록빛을 띠기 시작하면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린 뒤 애호박이 반쯤 잠길 정도의 물을 붓고 끓인다. 물이 자작하게 줄어들면서 애호박이 먹음직스럽게 익으면 깨소금을 살짝 뿌려 한동안 식힌 뒤 반찬그릇에 담으면 끝. 이때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애호박을 볶을 때 센불에서 볶아야 애호박 특유의 파릇파릇한 빛깔을 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달착지근하고 부드럽게 씹히는 애호박조림. 그 어떤 음식보다 혀를 착착 감기게 하는 깊은 맛이 일품인 애호박조림 맛의 비결은 새우젓에 있다. 예로부터 애호박과 새우젓은 찰떡궁합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새우젓을 적당히 넣고 조리한 애호박조림은 위궤양 환자는 물론 수험생과 성장기 어린이들에게 아주 좋다.

왜? 새우젓에 절인 애호박을 프라이팬에 달달 볶으면 새우젓이 발효되면서 수많은 소화 효소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우젓은 애호박에 부족한 단백질까지 보충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도 넘치면 탈이 난다. 새우젓과 애호박이 찰떡궁합이라 해서 새우젓을 너무 많이 넣어 짜게 조리하면 위산이 분비되므로 조심해야 한다.

국수류, 수제비, 비빔밥, 된장찌개를 비롯한 각종 찌개류 등 어떤 음식과 같이 조리해도 궁합이 척척 맞는 애호박. 단돈 천 원으로 가난한 식탁을 부자 식탁으로 이끌고 가는 정겨운 채소 애호박.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슬슬 불면서 애호박이 깊은 맛을 뽐내고 있다. 오늘 저녁은 값싸고 맛난 애호박조림으로 이명박 정부가 낳은 깊은 시름을 훨훨 날려보자.


태그:#애호박조림,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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