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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길은 늘 사람을 깊게 만든다. 도량이 깊은 어진 수행자는 눈이 맑다. 몸이 말랐다. 전북 실상사 도법 스님을 만나면 그의 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읽게 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끊임없이 화두를 던지고 삶을 반추하며 사는 순례자의 길. 오는 5일부터 100일간 서울에서 또 그 길을 나서는 도법 스님은 이명박 정부의 불교계 종교차별로 시끌시끌한 세상에 대해 어떤 화두를 던질까.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수송동 희망제작소에 마련된 '서울탁발순례' 임시 사무실에서 순례단장을 맡은 도법 스님을 만났다. 승복을 입고 밀집모자를 쓴 도법 스님은 한여름 뙤약볕에서 밭일하는 농부와 닮았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불교계 주장을 계속 무시하면 아마도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문제가 확산될 가능성도 크다고 내다봤다. 할복은 물론 소신공양도 생각할 승려들이 많다는 얘기다. 그 정도로 불교는 심각하게 아파하고 있는데,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다음은 도법 스님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기독교의 공격적 선교활동, 이명박 정부 들어 노골화"

 

- 2004년부터 시작된 탁발순례가 벌써 5년째다. 5일부터 서울탁발순례를 시작하는데.

"생명평화 탁발순례는 사람들이 사는 삶의 현장을 둘러보고, 느끼고, 듣고 얘기하는 방식이다. 더러는 바닷길과 산길로 다니기도 했지만 95% 이상은 포장도로로 다녔다. 서울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건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삶에서 모두가 동의하고 공감할 수 있는 진실이 뭔가, 참된 가치가 어떤 것인지 끊임없이 묻고 답을 찾아 모색해왔다. 기독교인이 말하면 불교인은 동의하지 않고, 또 보수가 말하면 진보가 동의하지 않고, 노동자가 말하면 자본가가 동의하지 않는 등 좌우가 동의할 수 있는 진실은 없는 걸까 길을 찾아 나서는 일이었다.

 

편 가르기 없이, 잘났든 못났든, 원수이든 관계없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진실은 없나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탁발순례의 길이다. 이번 서울순례도 그런 문제의식으로 시작한다."

 

- 서울순례는 어느 곳을 시작해서 어떻게 마무리되나.

"서울시청에서 시작해 차근차근 돌아 다시 서울시청으로 오는 순서다. 100일이면 웬만한 곳은 다 다녀본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낮에는 걷는 순례를 기본으로 하고, 저녁에는 대화모임과 강연 등 만남과 소통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매주 월요일 낮은 쉰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산책을 하고, 오전 8시부터 9시까지 한 시간동안 아침명상을 한다. 하루에 15~20km를 걷는 일정을 갖고 있다." 

 

- 최근 불교계는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어떻게 보나.

"현실적인 힘의 논리에 따른 편향은 어느 시대나 있어왔다. 불교든 기독교든 다 마찬가지라고 본다. 핵심은 구체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냐이다. 기독교 선교가 공격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이로 인해 불교가 피해를 본 것 또한 사실이다. 불교계는 그동안 기독교에 상당한 불편함을 가져왔다. 피해의식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더 노골화됐다. 그게 폭발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노골화 된 종교편향 사실이 있으니 불교계가 저항하는 거다. 정부도 스스로 그 같은 일을 조장했다면 책임 있는 사과를 하는 게 옳다. 그것은 기독교 스스로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지난달 27일 열린 범불교도대회에도 참석했었나.

"한 종도로서 당연히 참여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순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점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정당하게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본다. 문제는 불교가 자기 문제로 대회를 시작했지만 범종파적으로 함께 했다는 것은 중요한 경험이 될 것 같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평소 불국정토를 실현했다면 더 큰 박수 받았을 것"

 

- 어떤 점이 아쉬웠나.

"불교계가 평소 자기문제만이 아니라 중생을 구제한다는 '불국정토'를 실현해왔다면 좋았을 텐데, 사회적으로 부당하게 정의가 짓밟히고 인권이 함부로 취급되고, 민중이 불행한 상황에 몰려가고 있을 때 불교계가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오다 종교편향 문제를 다뤘다면 모두 박수쳤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다.

 

평소 이런 부분을 소홀히 하거나 충분히 자기역할을 못하다가 이번에 자기 문제만 갖고 나오니까 드는 아쉬움이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불교계가 이렇게 나서게 된 것은 불가피했던 면이 있고, 정당하게 할 만한 일들을 한 것이라고 본다."

 

- 정부가 잘못했다고 보는 건가.

"안목과 철학이 있는 정부라면 불교가 들고 나오기 전에 미리 조치했을 것이다. 종교갈등은 문명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종교문제는 어마어마한 불씨가 될 수 있다. 미리 정부가 우리가 불교계의 문제의식을 간과했다거나 소홀한 것에 사과한다고 했다면 이 정도까지는 안 갔을 게다.

 

정부는 국가와 사회, 국론통합을 해야 한다. 그런데 불교계의 요구를 자존심이나 힘겨루기로 끌고 가고 있다. 대단히 실망스러운 일이다. 불교계는 계속 상처받을 것이고 분노는 증폭될 수밖에 없다. 더욱 극단적 형태의 문제점들이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사회의 종교분쟁을 가속화 하는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상당히 안일하다."

 

- 과거 정권에서도 기독교 편향의 문제점이 있었던가.

"대한민국 정부수립 직후 이승만 정권은 크리스마스를 국가공휴일로 제정했다. 한국에서 기독교의 역사는 굉장히 일천했다. 신자도 기십만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기독교 신자가 권력을 잡았으니 밀어붙였던 거다. 반면, 초파일이 공휴일로 제정된 건 얼마 안 되는 일이다.

 

불교 역사나 신도수·민족사 공헌도·문화유산 등으로 볼 때 기독교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공로가 높다. 초파일을 공휴일로 제정하는데 상당한 싸움의 과정이 있었다. 이승만 시절의 기독교 편향이 재현되는 것에 우려하는 불교계의 시선이 있는 게다."

 

진보-보수성향 종교인과 지식인이 나서 갈등 풀어야

 

- 요즘 종교차별에 항의하는 뜻으로 승려의 소신공양 얘기도 나온다.

"소신공양이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종단의 정치와 행정을 담당하는 분들은 정부 회유에 물러설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불교계 대중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게다. 지난 범불교도대회 때 모인 인파는 불교 행정력만으로는 도저히 모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정부는 경찰력을 통해 엄청나게 회유했었다. 나한테도 전북경찰청장이 찾아올 정도였으니까.

 

그런데도 그렇게 많이 모였다. 그것은 그만큼 불만과 분노가 쌓였다는 방증이다. 이런 현실을 조계종 총무원 종단 관계자들이 알면 섣불리 타협 안 하겠지만, 참으로 불교대중의 불만과 분노는 크다. 극단적으로 나가고 있다."

 

- 어떤 형태로 번지겠나.

"또 다른 형태로 폭발할 것이다. 분신이나 할복이 그것이다."

 

- 극단의 상황에서 어떤 해법이 있겠나.

"정부가 달래는 식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불교계의 요구에 걸맞은 수준은 해야 한다. 그리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진보성향, 보수성향의 종교인과 지식인의 역할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종교인과 지식인이 머리를 맞대고 올바른 방향과 길을 찾아내야 한다. 긴 호흡으로 차근차근 모색해야 한다."

 

- 문규현 신부님과 수경 스님이 4일 오체투지에 나선다.

"그 결단은 놀라운 일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특별하게 주목할 것이다. 지리산에서 묘향산까지 오체투지를 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다. 나는 그런 용기가 없다. 그래서 누구나 마음을 조금 내면 할 수 있는 '탁발순례'나 한다. (웃음)"

 

- 100일간 진행하는 건가.

"하루 50리를 걷는다. 모든 사회가 집중하는 이슈가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삶의 근원에 대해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생각하고 모색한다. 1년에 9개월 정도씩 순례를 했다. 생명평화, 걸으면서 생각한 것이다. 누구나 동의하고 함께해야 하는 게 생명평화인데, 잘 안 됐다. 지난 5년간 가장 큰 성과라면 누구나 이제는 생명평화의 필요성은 언급하는 게다. 심지어 지방자치단체들도. 일반 대중도 슬로건으로 생명평화를 내세운다. 그게 엄청난 변화다."


태그:#도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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