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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무더운 여름이다. 연일 계속되는 뜨거운 날씨는 온도계의 수은주를 30도 이상으로 올려놓고 맹렬한 화기를 좀처럼 가라앉힐 줄 모른 채 난폭한 불볕더위로 그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7월 초순인 현재 경남 남해안 지방과 대구를 비롯한 일부 영남지방의 낮 최고기온은 35도를 넘어서서 36~37도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밤에도 25도를 넘는 '열대야'를 이뤄 지역주민들에게 '폭염에 잠 못 이루는 끔찍한 밤'을 억지로 맞이하게 하고 있다.

이처럼 고온다습한 한여름의 날씨는 사람들을 지치게 하고, 불쾌하게 하고, 힘들게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방학을 하고, 직장에서는 여름휴가를 가져 무더위에 지친 심신의 피로를 풀고, 휴식을 통한 재충전의 기회로 삼도록 시간을 배려한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여름 휴가철만 되면 누구나(?) 또 해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고민이 생긴다. 아마도 무작정이 아닌, 그래도 나름 알차고 색다른 여름휴가에 대한 계획을 아롱다롱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진지하게 휴가와 관련하여 이것저것을 고민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름휴가를 어디로 갈 것인가?'
'어떻게 색다르게 보낼 것인가?'
'어떻게 하면 저비용 고효율의 이색적인 휴가로 기억에 남을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우리는 이런 고민들을 마주하며 즐겁고도 유쾌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여름휴가에 대한 비교적 강렬하며, 오싹한 체험과 추억을 안겨줄 나만의 '납량특집 여름휴가' 방법을 살짝 소개한다.

요즘은 도로망이 발달해서 도심을 벗어나 경기도 외곽지역의 비교적 한적한(외진) 곳으로 빠져나가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굳이 어렵다면, 서울 외곽의 재개발지역에 가옥과 토지가 수용되어 철거가 진행 중인 곳도 아쉬운 대로 봐줄 만하다.

그러니까, 큰 맘 먹지 않고서도 자동차를 몰고 가까운 교외로 나가거나 시골 분위기가 어지간히 살아 있는 곳으로 탐험하듯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기왕이면 혼자서, 오후쯤이면 금상첨화다.

옷걸이로 잠겨진 빈 집의 대문이 왠지 정겨워 보인다.
▲ 빈 집의 폐쇄된 문 옷걸이로 잠겨진 빈 집의 대문이 왠지 정겨워 보인다.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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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해서 우선 시골이나 농촌 마을의 산 속 깊숙한 동네를 찾아 들어가는 것이 또 중요하다. 내 경험상 으슥한 곳일수록 더 흥미진진하고 매력적인 스릴(모르는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 두려움, 호기심)이 넘친다.

작은 배낭에 마실 물 한 병, 그리고 빵 몇 조각과 약간의 간식을 챙기는 것도 빠뜨릴 수 없다. 그렇게 채비를 해서 시골마을의 허름하게 버려진 빈 집(폐가)을 찾아 무작정 걸어서 돌아다닌다. 빈 집을 발견하는 즉시 그곳으로 잠입하여 부엌에도 들어가 보고, 부셔져 삐걱거리는 마루에 올라 촘촘하게 거미줄이 쳐진 안방에 들어서면 땀으로 젖은 등줄기에 서늘한 긴장감이 독사처럼 은밀히 찾아온다.

폐가의 안방을 살피는 일은 사람의 흔적에 대한 '관음적 욕구'를 고조 시킨다. 누군가 살다간 흔적, 안방 아랫목에 누워 있던 흔적, 혹시 모를 어떤 사람의 임종에 대한 상상... 벽면에 박힌 녹슨 대못에 걸린 깨진 거울과 빨간 머리빗을 보며 이런저렁 상상을 할 수 있다.

빈 집 방 안에 걸려 있는 거울과 빗을 보니 과거에 살았던 누군가 사람의 흔적이 을씨년스럽게 내게 다가온다.
▲ 빈 집 벽면에 걸린 거울과 빨간색 빗 빈 집 방 안에 걸려 있는 거울과 빗을 보니 과거에 살았던 누군가 사람의 흔적이 을씨년스럽게 내게 다가온다.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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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을 지나 건넌방으로도 가보길 권한다. 문틀에 쓰러져 비스듬히 걸쳐 있는 낡은 방문을 걷어내고 들어서는 순간 방심한 얼굴을 느닷없이 덮치는 끈적끈적 불쾌한 거미줄. 거기에 하늘로 구멍이 뚫린 채 너덜거리고 있는 천장의 벽지를 만날 수 있다.

폐가의 네모난 창틀을 미술화랑 벽면에 걸린 초현실주의 화가의 그림처럼 바라보고, 방바닥에 쓰러져 뒹구는 고뇌와 한숨이 가득 서린 허탈한 빈 소주병을 감상하라. 그리고 방바닥에 쪼그려 앉아 습한 공기로 곰팡이가 찌든 벽면을 잠시 응시하노라면, 갑자기 고요한 정적을 깨뜨리는 쥐나 고양이의 기척에 이마에 맺힌 미지근한 땀방울을 식힐 것이다.

창틀에 놓여진 깨진 유리잔과 유리병, 무너진 천장이 보이는 빈 집의 풍경이 생경하다.
▲ 폐가의 창 창틀에 놓여진 깨진 유리잔과 유리병, 무너진 천장이 보이는 빈 집의 풍경이 생경하다.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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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침한 빈 방 안 한 쪽 벽면에 남아 있는 사람의 흔적
▲ 사람의 흔적 음침한 빈 방 안 한 쪽 벽면에 남아 있는 사람의 흔적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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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질 때쯤 그곳을 나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 현명하다. 사람은 이미 알고 있는 존재와 상황에 대한 적응력이 탁월하므로(적응하면 금방 식상해지므로) 하시라도 서둘러 다른 곳을 물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좀 더 특별한 느낌과 체험을 욕심 낸다면 그 마을에서 더 깊숙한 곳을 찾아 안으로 안으로 파고들어라.

혹, 전봇대나 허름한 벽면에 붉은색 페인트로 혐오스럽게(?) 쓴 '아무개 선녀보살'이나 '아무개 처녀보살'이라는 글씨가 보인다면, 필시 목표를 제대로 찾은 것이다. 발자국 소리가 크지 않도록 사뿐사뿐 조심스럽게 걸어가라. 그리고 선녀보살이 임하고 계신 당집 마당으로 사방을 숨죽이듯 주시하며 살며시 들어서라. 자칫 경계를 늦추다간 갑자기 짖어대며 기습적으로 달려드는 선녀보살의 악랄한 맹견에게 낭패를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재개발 시행으로 가옥과 토지가 모두 수용되어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폐허의 마을에 있는 선녀보살네 당집으로 가는 길
▲ 선녀보살 마을 입구 재개발 시행으로 가옥과 토지가 모두 수용되어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폐허의 마을에 있는 선녀보살네 당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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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보살이 살고 계신 당집 앞의 허름한 건물
▲ 선녀보살네 당집 입구 선녀보살이 살고 계신 당집 앞의 허름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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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으로 들어서면 허공을 가로지르는 알록달록 불규칙한 연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오색의 붉은 천이 당 나무에 걸려 바람에 스산하게 날리는 광경도 볼 수 있다. 아마도 그것들을 무심코 멍하니 바라보는 짧은 순간 짜릿하고 오싹한 찰나의 불안한 쾌감을 맛볼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는 그 쾌감의 진수는 정말 짜릿하고 강하다.

선녀보살네 당 집 마당에 어지럽게 걸린 연등을 보며 순간적으로 황홀함과 소스라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 당 집 마당의 연등 선녀보살네 당 집 마당에 어지럽게 걸린 연등을 보며 순간적으로 황홀함과 소스라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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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하나를 어깨에 걸고서 일상에서 숨겨지고 사라져가는 폐허가 되어가는 장소를 찾아 그 곳에 담긴 사람들의 역사와 삶과 흔적을 탐미하는 시간과 방법을 소개하는 것이 뭇사람들에게 과연 여름휴가에 대한 정보로서 무슨 흥미와 색다른 즐거움을 줄 수 있을는지는 솔직히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피폐한 농촌(시골) 곳곳에 널린 황량하고 썰렁한 폐가와 그곳의 더 깊숙한 곳에 숨겨지듯 자리 잡은 이른바 '처녀보살'의 당집을 살펴보며 평소 느껴보지 못한 으스스한 긴장과 오싹한 순간의 공포를 느껴보는 나만의 '체험휴가'는 그야말로 '납량특집'이 아닐 수 없다.

올 여름, 피로에 지치고, 더위로 힘들어 하는 허약한 심신을 일으켜, 엽기적이지만 매우 이색적인 느낌과 추억을 가져다 줄 나만의 독특한 여름휴가를 계획하는 분이라면 한 번쯤 용기를 내어 빈 집(폐가)으로 과감히 떠나보시라. 까짓 거 입장료도 공짜다.

덧붙이는 글 | 지난 7월 6일 경기도 고양시의 한 재개발지구에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2008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하는 글입니다.



태그:#폐가, #처녀보살 집, #남량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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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에 걷기 좋은 길을 개척하기 위한 모임으로 다음 카페 <고양올레>를 운영하는 카페지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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