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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일이다. 따르릉. 갑작스레 핸드폰 벨이 울렸다. 잠결에 빠져있던 난 요란한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속으로 누구야? 라고 툴툴거리며 요란하게 울리는 핸드폰을 살펴보니 웬걸, 외삼촌에게 온 전화였다.

 

'엥? 삼촌이 왜 꼭두새벽에 전화를 하셨지?'

 

이른 시간에는 절대 연락 하지 않으시던 삼촌, 그런데 평소와 달리 삼촌의 이른 전화가 참 이상했다. 그래서 조금은 걱정스런 마음으로 삼촌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런데 삼촌은 내 물음에 시원스런 대답은커녕 오히려 지금 대전 근처인데 시간이 되면 잠깐 보자고 하신다. 나로서는 삼촌의 생뚱맞은 대답으로 인해 참으로 궁금하고 답답한 노릇이었다.

 

평소에 대전 우리집에 내려오실때는 하루, 이틀 전 전화를 주시던 삼촌이다. 그런데 그런 삼촌이 연락도 없이 전화를 하신 것도 의심(?)스러웠고 아침 일찍부터 나를 보자고 하는 것도 뭔가 이상했다.

 

그래도 어찌하랴. 존경하는 삼촌의 말씀인지라 나는 얼른 일어나 준비를 하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는 내 심증은 외삼촌을 직접 뵙고서 더욱 굳어졌다. 평소에 보던 삼촌의 모습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40대 후반임에도 편한 캐쥬얼을 즐겨입으시고, 또 10년이 넘는 지프차를 자랑스럽게 끌던 삼촌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평소 너무 얌잔하다며 잘 끌지 않던 중형차를 타고, 게다가 격식이 팍팍 느껴지는 양복을 입고 나타나신 것이다. 게다가 세상에, 한 손에는 큼직막한 꽃다발까지 안고 계셨다. 정말 '오 마이 갓'이었다.

 

"삼촌, 무슨 일이에요? 평소랑 다르게 하시고 오셔서 놀랐어요."

 

나는 너무 놀라 삼촌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삼촌은 밝게 웃으시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평소와 다른 모습에 대전에 내려오게 된 이유에 대해 말이다. 그런데 삼촌의 이야기를 다 듣고나니 괜히 내 마음이 밝아진다. 뭐랄까,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삼촌의 변신 속에는 참 아름다운 사연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알고보니 삼촌은 자신의 옛 은사님을 만나러 오신 거였다. 그것도 1, 2년 정도 전에 만난 선생님이 아니라 자그만치 37년 전의 은사님을 말이다. 다른 표현을 하자면 초등학교 1학년때의 담임 선생님이었다. 그러니 그 세월의 깊이가 대단한, 정말이지 엄청난 인연을 만나뵙게 된 것이다. 그렇다. 삼촌은 바로 그분을 뵙기 위해 이렇게 격식을 차렸던 거였다. 그래서 양복을 입고, 중형차를 타고, 꽃다발을 들었던 것이다.

 

여태껏 삼촌이 그렇게 긴장하는 표정은 본 적이 없었다. 여느 사람에게나 당당한 모습이었던 삼촌, 하지만 이날 따라 괜히 쑥쓰러움을 타는 것 같았다. 그런 삼촌의 모습에 괜히 웃음이 나온다. 역시 누구에게나 옛 스승은 왠지 어려운 존재인 모양이다. 비단 삼촌뿐이 아니다. 삼촌의 그 스승분 역시 설레서 어제 잠을 못 잤다고 하신다. 하긴 왜 아니겠는가, 40년 가까이 지난 후 제자가 찾아온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삼촌은 학교 교실에서 스승을 뵈었는데 수업을 듣던 초등학교 아이들이 박수치고 너무 좋아하더라고 한다.  그리고 삼촌이 아이들에게 들려준 한 가지 말을 내게도 들려준다.

 

"저도 40여년 전에 여러분과 같은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여기 옆에 보이시는 선생님의 가르침이 너무 귀에 또렷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죠. 그래서 선생님을 찾아뵈러 온 거랍니다, 여러분도 시간이 지나서 자신에게 소중한 스승이 생각날 땐 꼭 찾아가길 바라요."

 

삼촌이 당시 상황을 말해줬다. 그때 아이들의 눈동자는 정말 반짝반짝 빛났다고 한다. 삼촌이 말한 그 상황이 조금은 상상되는 듯하다. 그 아이들처럼, 나 역시 잔뜩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40년 만에 만난 스승에게 삼촌은 요즘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촌지(?)를 드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 촌지는 분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촌지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가성이 아니라, 자신을 가르쳐준 40년 전 스승에 대한 작은 정성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삼촌#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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