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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국정원) 직원이 이명박 대통령이 개인 자격으로 제기한 'BBK사건' 관련 민사소송을 담당하는 재판장(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72단독 김균태 판사)에게 지난 5월 전화를 걸어 사건 진행 상황에 대해 문의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법원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사건은 이명박 대통령이 작년 7월 개인 신분으로 <한겨레>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사건으로, 국정원 직원은 지난 3일 변론기일엔 법정에서 기자를 사칭하며 재판을 방청하려다 재판장의 경고를 받기도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법원내부에서는 사법부 독립을 훼손하는 조치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의 정영진 부장판사는 4일 법원내부 전산망에 '사법부를 흔드려는 최근의 일련의 사태에 대하여'라는 글을 올려 입장을 밝혔다.

 

정 판사는 "현직 대법관의 감사원장 내정에 일선 법관과 다수의 법원 일반 직원들이 이를 비판하고 있는 와중에 국정원 관계자가 대통령 개인의 민사소송 재판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 진행 상황을 묻고, 법정에까지 기자를 사칭하고 들어와 재판을 사찰하였다는 것은 사법권 독립의 수호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고 우려했다.

 

정 판사는 "더구나 최근의 일련의 사태는 정권 교체 직후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어서, 권위주의 정권 시절 권력의 시녀였다는 불명예를 씻지 못하고 있는 사법부로서는 특별히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 판사는 이어 "제가 알고 있는 한 일선 법관들은 사법부를 흔들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굴종하지 않고 의연하게 법대로 재판에 임함으로써 국민들이 불안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면서 "강력한 사법권 독립 수호 의지를 천명하였던 대법원장께서는 최근의 일련의 사태에 대하여 단호한 입장표명을 함으로써 유사 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여 주실 것을 간곡히 건의드린다"고 말했다.

 

정 판사는 끝으로 "사법부 구성원들은 사법권 독립 수호의 결연한 의지를 외부에 천명하고, 구체적 실천 방안에 대하여 진지하게 토론하자"고 제안했다.  

 

법원공무원노동조합(법원노조)도 "과거 군사정부 시절 정보기관이 저지르던 사법부와 판사에 대한 '사찰'이 현실로 드러났다"며 국정원의 공식사과와 대법원의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법원노조는 4일 성명서를 통해 "국가 정보기관이 재판을 감시하고, 판사의 뒷조사를 했던 것은 군사정권 시절엔 비일비재한 일이었다"며 "하지만, 형식적이나마 민주주의가 확보된 오늘날 일개 정보기관원이 재판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 진행상황을 문의하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법부를 아직도 통제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밝혔다.

 

또한 법원노조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의 민사 사건에 대하여 국가기관인 국정원 직원이 담당판사에게 전화를 하고 심지어 재판을 감시하다가 결국 판사에게 적발이 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법원노조는 또한 이번 사건은 김황식 대법관의 감사원장 내정 강행에 이어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는 중대 사태로 규정하고 국정원의 공식사과와  대법원의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판사들도 4일 이번 사태에 대해 긴급간부회의를 갖고 대책을 논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을 놓고 법원내부 게시판의 반응도 뜨거웠다. 인천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일부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 정도로 가볍게 치부하고 넘길 지도 모르겠지만, 정보기관 직원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한 행동인 것 같다"며 "아울러 사법부의 독립성을 해칠 우려가 있는 행위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가 뒤따르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직원은 "정부가 사법부 알기를 우습게 알고 있다. 국정원의  사찰에 대하여 대법원이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대법원장의 국민을 섬기겠다는 구호는 공허해 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덧붙이는 글 |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국정원, #법원, #사법부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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