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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헌철폐, 독재타도”(1987년 6월 항쟁)

“2MB OUT, 수입산 쇠고기 전면 재협상”(2008년 6월)

 

전혀 다른 구호지만 두 구호를 비교해보면 큰 틀에서 볼 때는 그 주장하는 바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뜨거웠던 지난 87년 항쟁의 구호였던 ‘호헌철폐, 독재타도’는 군부정권을 이어가려는 전두환의 서슬 퍼런 계획에 맞서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그 당시 국민들의 뜨거운 바람이 담긴 구호였다. 최근 구호인 ‘2MB OUT, 쇠고기 전면 재협상’ 또한 이명박 정권의 퇴진운동과 최근의 가장 이슈이자 국민들의 바람인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대한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 두 구호에는 여름의 문턱에 들어선 6월을 더욱 뜨거운 열기 속으로 몰아갔다는 공통점이 있다.

 

1987년 6월과 2008년 6월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1987년 6월 항쟁과 2008년 6월은 다르다. 그것은 바로 그 뜨거운 열기 속에 내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것이다.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발생했던 그 당시 난 갓 중학교에 입학한 새내기였다. TV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시골에서 자란 난 6월 항쟁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해 여러 번 접해본 터라 항쟁의 의미를 잘 알고 있긴 하지만 그 당시에는 외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고 표현하는 편이 나을 듯싶다.

 

얼마 전 21년 전에 있었던 6월 항쟁의 사진을 보았다. 그 사진 속에서 민주화를 향한 국민들의 뜨거운 열망을 보았다. 최근 전 국민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촛불집회에서 드러나는 열망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난 그 사진들을 보면서 ‘만약 내가 저 현장 속에 있었다면?’이라는 가정을 두고 한장 한장 천천히 사진을 넘겨가며 사진에 몰두했다.

 

사진을 감상하던 난 더 이상 사진을 넘기지 않고 어느 한 사진 앞에서 깊은 상념에 젖게 됐다.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를 생각하며….

 

그 사진 속에선 ‘한 어린이가 최루탄 냄새에 못견뎌 얼굴에 비닐봉지를 쓰고 걷고 있’었다. 많은 의문이 들었다.

 

‘저 애가 뭘 알고 저 현장에 나갔을까? 위험한 줄은 알까?’

‘저 애는 과연 민주화라는 게 뭔지 알고나 있을까?’

‘민주화된다고 해서 저 아이에게 돌아오는 것은 무엇일까?’

‘촛불집회야 내가 먹을 것이기 때문에 나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문제라지만 민주화와 저 아이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온갖 잡념이 나를 지배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1987년 6월의 현장에는 어쩔 수 없이 나갈 수 없었다고 해도 2008년 6월 촛불현장에 세 살배기 어린아이도, 칠순을 넘긴 노인들도 모두가 손에는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멀다는 핑계로 딱 한 번 나갔기 때문이다.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훗날 후손들에게 당당할 수 있지 않을까.

 

예나 지금이나 국민 기만하는 정부의 대국민 코미디극 2편

 

 

“(책상을)탁치니 억하고 죽었다.”

“30개월 이상 쇠고기는 수입하지 않겠다.”

 

이 두 발언이 나온 시점은 다르지만, 국민 상대 코미디라는 것만은 틀림 없다.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은 박종철 열사의 고문 사실을 숨기려고 치안본부가 꾸민 발표문으로 당시 발표현장에 있던 기자들로부터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이 발표는 수많은 의문점을 들게 했고 결국 한 변호사의 끈질긴 추적 끝에 고문으로 인한 치사사건으로 판명났다. 이는 국민들의 분노를 사 결국에는 항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30개월 이상 쇠고기는 수입하지 않겠다’는 작금의 정부 발표는 오히려 전 국민을 광우병 전문가로 만들어 주었으며, 많은 국민들이 거리로 나서게 된 기폭제가 됐다. 특히 국민들의 화가 점점 치솟고 있는 시점에서도 정부는 계속해서 재협상할 의지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재협상은 없다’, ‘미국을 믿어야 한다’는 등 설득력 없는 말로써 국민들의 화를 돋웠다.

 

정부의 대국민 코미디극 2편을 보면서 되새겨야 할 교훈이 있다. 그것은 바로 민심을 기만하면 반드시 정권의 도덕성에 크나큰 흠집이 생긴다는 점이다. 또 국민들은 절대로 정권의 부도덕성에 대해 수수방관하지 않고 그 부도덕성을 바로잡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을 전개한다는 점이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이 있다. 정부는 이 말을 곧 진리로 알고 민심에 귀를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다.

 

민심(民心)은 천심(天心)

 

1987년 6월 10일. 이날 민주정의당 제4차 전당대회 및 대통령후보 지명대회가 잠실체육관에서 열렸다. 이곳에서 당시 민주정의당 총재이자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은 민주정의당의 제13대 대통령 후보로 노태우를 지목했다. 한편, 전당대회가 열린 잠실체육관 밖에서는 학생과 시민들이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고, 하루 전 날인 9일엔 연세대 재학생인 이한열 군이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시위구호는 ‘살인정권 물러나라’, ‘직선제 쟁취하여 민주정부 수립하자’는 등 더욱 구체적으로 바뀌었고 결국 전두환 정권은 6.29선언을 통해 직선제 수용을 선언하게 된다. 이는 정부가 국민의 요구조건을 수용한 것으로 결국 국민이 승리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대통령도 정부도 아닌 국민이다. 주인인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정권은 결국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된다. 강력한 군부의 권력을 바탕으로 정권을 유지했던 전두환 정권도 결국은 위의 사례처럼 국민들의 거센 저항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뜻을 수용하고 말았다.

 

너무 강해도 부러지는 법이다. 그리고 약하다고 해서 쉽게 부러지는 것도 아니다. 민심을 무시한 정부의 정책은 결국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국민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쳐 꺾이고 말 것이다. 현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명심하고 과거 정권처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민심은 천심’. 정부는 이 말은 곧 영원한 진리라는 것을 반드시 명심하기 바란다.

 

수많은 민주열사들의 죽음 헛되이 되지 않도록 숭고한 정신 계승해야

 

1987년 6월이 민주화를 향한 국민적 열망으로 가득 찼던 반면 2008년 6월의 대한민국은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독불장군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한 상황이다. 이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완전한 민주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고문치사사건의 희생양 박종철 열사,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아 사망한 이한열 열사, 전경이 휘두르는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한 명지대생 강경대 열사 등 그동안 대한민국 민주화의 길을 연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

 

우리는 오직 민주화를 향한 강한 열망으로 초개와 같이 목숨을 바친 젊은 열사들의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마음속에 되새겨 완전한 민주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계승 발전시켜야 할 것이며, 그들의 희생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6월 항쟁 응모글


태그:#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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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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