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상해를 향하는 20세 여인

열차가 움직이기만을 기다리는 정묘희(鄭妙喜)는 긴장한 탓인지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떨군 채 자기 발끝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통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눈 옆으로 스치고 있었다. 불현듯이 뭔가를 생각한 그녀는 허리춤에 손을 대 보았다. 허리에 묶은 전대가 잘 있는지를 확인해 본 것이었다. 열차 통로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는 것은 떠날 시간이 임박했다는 신호였지만 그녀는 한사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녀는 초초하게 기차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통로에서 사람들의 통행이 끊어졌다 싶었을 때 기차는 '뎅캉' 소리를 내며 차가운 겨울 공기를 찢었다. 기차는 순식간에 전진과 후진으로 몸을 뒤채더니 소리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의 입에서 가느다란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경성역을 빠져나온 열차는 육중한 쇠바퀴로 차디찬 선로를 짓이기듯이 갈고 비비면서 달렸다. 경성에서 상해까지의 먼 길, 20세 여인으로는 벅찬 여정이었다. 그리고 벅찬 만큼 그녀는 현실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놀라울 정도로 대담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대담이라는 것은 현실감을 제대로 못 느낄 때 비롯되는 경우도 더러 있는 법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어떤 목표를 정하면 두려움 없이 곧장 실천에 옮기는 기질이 있었다. 또한 그녀는 잘못되었다 싶은 일을 지체 없이 바로잡는 성미가 있었다. 그녀가 1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사직동의 시집에 들어간 것은 아무리 인습으로 치부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정상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그녀는 좀 더 자신의 미래를 헤아려 본 다음 결혼이란 것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 시대에 양반집 규수가 부모가 정해 주는 혼사를 거부할 세계관을 갖는다면 그녀는 선각자였을 터이다. 그녀는 주체적인 결혼을 감히 생각조차도 못하는 시대 풍습과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자신의 결혼이 정상인지 아닌지를 따져 볼 계제가 전혀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남편과 불화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남편은 순수하고 강직한 청년이었다. 그리고 시아버지는 교양 있고 친절한 노인이었다. 다만 안동 김씨 가문의 시집살이는 혹독했다. 그래도 그녀는 이 땅의 여인들이면 누구나 겪는 일로 여기며 며느리와 아내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녀가 법도에 어긋나는 일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그녀 집안의 가정교육 덕분이거나 아니면 그녀 자신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도 여인으로 성숙해 가면서 11세의 조혼이 정상일 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물며 자신의 결혼이 눈 감기 전 친정 할아버지의 채근으로 이루어진 것을 알았을 때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런 결혼을 파기할 만한 의지가 있을 수는 없었다. 다만 그녀는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길 경우 주체적으로 판단할 것이며, 자식들에게는 그런 일이 결코 없도록 하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겁 없는 여인을 태운 의주 행 열차는 밤을 패며 달리고 있었다. 차창에 나타나는 얼굴을 보며 그녀는 비로소 자신이 대륙으로 가고 있다는 현실감을 느꼈다. 그러자 두고 온 사람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먼저 떠오른 것은 시어머니의 얼굴이었다.

오로지 규방에서 세상과 담을 쌓고 혹독한 시집살이를 견디며 살던 그녀는 첫 아이를 낳자마자 잃었다. 이 일은 외로운 그녀에게 큰 상심을 안겨 주었다. 그 상심이 채 아물어지기도 전, 어느 날 시어머니는 신문 한 장을 며느리에게 건넸다. 그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시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을 나갔다.

인생의 행로를 처음 주체적으로 선택하다

그녀는 붓으로 동그라미가 그려진 기사를 읽었다. 시아버지 김가진과  남편 김의한이 상해에 망명했다는 기사였다. 그녀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남편이 일주일 넘게 집에 오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최소한 자신에게 알리고는 갔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녀가 주체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머니 친정에 좀 다녀왔으면 합니다.”

며느리의 말이 평소와 다르게 단호했던지 시어머니는 잠시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더니,"그래. 갔다 오너라“라고 선뜻 청을 받아주었다. 근엄한 시어머니였지만 말없이 가출한 남편을 둔 며느리의 심사를 모처럼 헤아렸던 것일까?

그녀는 시어머니에게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 그녀는 친정아버지에게 달려갔다. 그녀는 아버지에게서 많이 들어본 말이 있었다. 그것은 ‘예쁘고 영특한 것’이라는 다소 긴 호칭이었다. 예쁘고 영특한 딸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얼굴은 기쁨이 넘쳤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다짜고짜 상해에 가겠다고 말한다.

아버지의 얼굴에 수심이 드리워졌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주장이 명분 있는 일이라는 데에 동의했다. 아버지는 물끄러미 천정을 보더니, “그때 널 시집 대신 유학을 보냈어야 하는 건데...” 라고 조그만 소리로 말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시아버지에게 드리라며 거금 800원을 내놓았다. 그녀는 한나절 만에 상해 갈 준비를 마쳤다. 그녀는 붉은 노을을 보며 서울 거리를 걸었다. 노을은 야박하게도 오래 머물러 주지 않았다. 어둠이 깔리는 남대문 거리는 유달리 휑뎅그렁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부심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상해로 가는 일이 고난과 불행을 안길지라도 그녀는 자기 삶의 행로를 처음 주체적으로 선택했다는 자긍심으로 들떠 있었다. 다만 시어머니에게 미안할 따름이었다. 어쩔 수 없이 말하지 않고 떠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의주에서 봉천 가는 기차로 바꿔 탔다. 그녀는 압록강 철교를 건너야 했고 그것은 곧 국경을 넘는 일이었다. 친정아버지가 조치해 놓은 대로 정필화가 나서서 판사로부터 여행증명서를 만들어다 주었다.

“믿을만한 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왜놈과 끈이 닿아 있는 사람이니 여행증명서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압록강을 무사히 건너 봉천에서 하루를 묵었다. 태어나서 처음 밟아 본 외국 땅이었다. 그녀는 봉천에서 천진, 천진에서 남경, 남경에서 상해로 가는 기차를 연이어 갈아타며 꼬박 일주일을 기차에서 보냈다. 기차는 추웠고 의자는 딱딱했다. 그녀는 왁자하게 들리는 중국말이 처음에는 낯설고 무서웠다.

하지만 그녀는 대륙의 풍경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 그녀는 끝없이 펼쳐진 벌판과 지평선을 보았다. 기차는 도도히 흐르는 넓은 강물도 지났고 깎아지른 듯한 산협을 통과하기도 했다. 그녀는 뒷자리의 중국인이 시끄럽게 싸우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피곤하다고 느껴지면 참을 청할 수 있을 정도로 기차에 익숙해졌을 무렵 상해에 도착했다.

덧붙이는 글 | 식민지 역사를 창조적으로 온전히 청산하고자 쓰는 소설입니다.



태그:#상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