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을 싸려고 20년도 더 된 낡은 장롱 안을 정리하고 있는데, 처음 보는 가방이 보였다. 가방을 꺼내려고 손에 쥐니 꽤 무게가 나갔다.
'어? 이게 뭐지? 처음 보는 가방인데?'장롱에서 가방을 꺼내고는 이내 호기심에 가방 지퍼를 열었다. 순간 내 입에서 알 수 없는 신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아~ 아니 이게 아직까지 남아있다니…."25년이 넘은 사진과 상장, 통지표... 추억 속으로의 여행
가방 속에서 내가 꺼내든 물건은 20년도 더 된 우리 삼남매의 초등학교 상장과 앨범, 그리고 아주 어릴 적에 찍었던 사진들이었다. 순간 난 이삿짐 싸는 것도 잊어버린 채 멍하니 사진과 상장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의 회상에 잠겼다.
"오빠, 뭐해? 그건 뭐야?""어, 야! 이거 봐라. 우리가 초등학교 댕기면서 받았던 상장이 여기 다 있네. 사진도 있고…."짐을 정리하던 여동생이 말을 걸며 나에게로 다가왔다.
"다 버린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 남아있네?""돌아가신 엄마가 안 버리고 다 챙겨놨네."이야기를 나누던 여동생과 난 돌아가신 어머니 얘기에 잠시 숙연해졌다.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 상장을 받아오면 누구보다 기뻐하셨던 어머니인지라 행여나 없어질까봐 버리지 않고 꼼꼼하게 가방에 챙겨두셨을 것을 생각하니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처럼 가슴이 울컥했다.
"엄마가 챙겨둔 거니까 이사간다고 우리가 버리면 안돼. 그러니까 버리지말고 각자 자기 건 챙겨가자고.""그럼, 이것도 추억인데 버리긴 왜 버려."그리하여 우리 남매들은 각자의 상장과 사진을 챙겼다. 급하게 이삿짐을 챙겨야 하는 입장이라 긴 말은 나누지 못하고 각자 물건만 챙겨 한쪽 구석에 놓아둔 채 다시 이삿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이삿짐이 정리가 다 되고 이삿짐을 실은 익스프레스 차량이 이사할 집으로 떠난 뒤 마지막으로 빠뜨린 물건이 없나 방안을 확인하는데 조금 전에 한쪽 구석에 놓아두었던 내 물건이 보였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얼른 차에 실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바로 앨범 속에 꽂아두었던 상장과 사진을 들고 마당으로 나가서는 곧바로 차 트렁크 안에 넣어두었다.
이사 한달 후에 비로소 어린시절 추억을 회상하다
이사를 무사히 마치고 어느덧 한 달이 넘었다. 차 트렁크에 실어놓았던 추억의 물건에 대해서도 잊어버린 채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짐을 실을 일이 생겨 트렁크를 열었다가 앨범 속에서 흘러나온 상장 하나를 보았다.
'아차! 이사 끝나고 자세하게 본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네.'차에 짐을 실고 난 뒤 앨범을 손에 든 난 방으로 들어가서는 상장 하나하나, 사진 한장 한장을 문구까지 자세하게 읽어보며 다시금 추억에 젖었다.
우등상하며, 선행상, 저축상, 민속놀이 우수상 등 수많은 상장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상장 하나가 보였다. 바로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받은 '과학분야 공로상'이었다. 난 초등학교 당시 과학부와 새마을부(아마도 지금은 없는 부서일 것이다) 활동을 하면서 학교를 대표해 과학경시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을 거둬 학교를 빛낸 적이 몇 번 있었다. 그에 대한 공로로 준 상장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었다.
또한, 생활통지표도 있었다. 비록 초등학교 4학년 당시의 통지표 한 장뿐이었지만 그것을 통해 초등학교 시절의 나에 대해서 되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되었다.
특히, 뒤죽박죽 섞여 있는 사진 속에서는 2~3세의 나의 모습도 보였다. 자전거에 걸터앉아 어머니와 함께 포즈를 잡고 찍은 사진. 평생 간직할 소중한 사진이다.
난 지난 4월 13일 국가 대프로젝트인 행정중심복합도시의 희생양으로 태어나서 자란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선 곳으로 이사를 했다.
비록 고향은 떠나 타지에 살고 있지만 고향을 떠나면서 어머니께서 고이 챙겨두셨지만 20여년 동안 장롱 속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던 어린 시절 추억의 물건을 발견했다는 것으로 고향을 떠난 위안을 삼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