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무의 수액이 차오르기 시작하면 연두 빛이다가 연초록으로, 초록이다가 다시 진초록으로 옷을 바꿔 입습니다. 마침내 신록의 계절이 가까워지면 낮잠을 자는 척하다 사방팔방으로 가지를 뻗고 수많은 잎을 매달기 바쁩니다.

신록의 계절엔 나무들은 드디어 달리기를 시작합니다. 동안 초록 잎 폭포로 하늘을 향해 치솟는 척하다 기어이 뜀박질을 합니다. 발뒤꿈치가 닳도록 사방을 돌아치는 짐승들처럼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꽃을 피우고 향기로 몸살을 앓습니다.

나무들이 마지막 뜀박질을 하며 숨을 고르고 있는 신록 속으로 향기를 만나러갑니다. 층층나무, 쪽 동백, 함박꽃, 산 딸 나무 등... 꽃물이 한창 터져 오월 산속을 하얗게 물들이며 벌 나비를 유혹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층층나무는 예술가이다. 수많은 꽃들을 층층히 피어내 신록 숲을 하얗게 수를 놓는다.
 층층나무는 예술가이다. 수많은 꽃들을 층층히 피어내 신록 숲을 하얗게 수를 놓는다.
ⓒ 윤희경

관련사진보기


층층나무는 예술적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1층을 짓고 시간이 지나면 2층을 꾸미고 또 세월이 흐르면 3층을 짓습니다. 가지는 줄기에 층층으로 돌려나 수평으로 퍼지고 납작한 모양의 흰색 꽃이 수없이 매달려 피어납니다. 원체 잎과 꽃잎이 많아 다른 나물들을 휘어잡을 듯 하얀 꽃들이 피어 꽃물결로 장관을 연출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꽃가루 휘날려 초록숲속을 백설로 물들여놓습니다.

나무에 비해 콩알만 한 둥근 열매는 가을에 붉은 색이다가 검은색으로 변해 온갖 산새들의 먹이가 됩니다. 층층나무는 벌레가 없고 여름내 달걀형 잎으로 햇볕을 가려주다가 가을이면 온갖 새들을 불러옵니다. 어치, 꾀꼬리, 까마귀, 박새 등 산새들이 모여 한바탕 축제가 벌어집니다.

쪽동백의 '쪽'은 아주 작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앙증맞고 귀엽다.
 쪽동백의 '쪽'은 아주 작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앙증맞고 귀엽다.
ⓒ 윤희경

관련사진보기


쪽 동백도 지금 한창입니다. 쪽 동백은 부를수록 살가운 이름입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서 보듯 꽃물이 다소곳하고 씨가 작아 ‘쪽‘이란 이름이 붙었답니다. 쪽 동백 가지마다 꽃망울이 졸망졸망 매달려 하얀 구슬을 꿰어 놓은 듯 달랑거립니다. 며칠 전 초파일 절집에서 본 연등만큼이나 숲 속을 환히 밝히고 있습니다.

꽃 몽우리가 피어날 땐 방울 소리가 들린다하여 ‘옥령화(玉鈴花)’라 부릅니다. 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행여 구슬소리가 나나 귀를 기우려 봐도 소리는 들리지 않고 은은한 향기가 솟아 코끝을 스쳐갑니다. 이맘 때 꽃이 다 그렇듯 숲 속에 파묻힌 꽃물 속으로 벌 나비를 불러들이자면 특이한 냄새로 유혹을 해야 합니다.

함박꽃은 일명 '산목련'이라 부르기도 하며 이북의 국화입니다.
 함박꽃은 일명 '산목련'이라 부르기도 하며 이북의 국화입니다.
ⓒ 윤희경

관련사진보기


함박꽃도 깊은 산속에 살며 요즘 피어납니다. 꽃을 먼저 피우고 잎이 나는 목련과는 다른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푸른 잎에 가려 땅을 보고 피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꽃봉오리가 맺히면 백옥을 대하듯 눈이 시리고 가슴이 저릿해옵니다. 노란 꽃술, 담홍색 수술, 하얀 꽃잎, 잿빛과 노란빛이 섞인 갈색 가지, 달걀을 거꾸로 엎어 놓은 듯한 잎, 은은한 향기, 초록 속에 숨겨진 동양미인을 쏙 빼닮았습니다.

함박꽃나무, 천녀화, 이북에선 ‘목란’이라 부릅니다. 북한에선 ‘91년 4월부터 그동안 사용해오던 진달래를 버리고 목란을 이북의 공식 국화로 지정했습니다. ‘나무의 피는 난’이라 하여 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산속에서 바라보는 함박꽃 태는 특별합니다. 골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하얀 웃음이 뽀얗게 일어납니다. 수줍은 열아홉 순정인가 하면, 소복 입은 청상과부의 오월서릿발처럼 가슴을 쓸어내릴 듯 시려옵니다.

산딸나무는 꽃 변두리에 십자가를 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하기도 하는 이꽃은,가을이면 산딸기처럼 익어 먹을 수 있다.
 산딸나무는 꽃 변두리에 십자가를 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하기도 하는 이꽃은,가을이면 산딸기처럼 익어 먹을 수 있다.
ⓒ 윤희경

관련사진보기


신록 속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산 딸 나무입니다. 가지 끝에 차좁쌀처럼 생긴 꽃이 피고 턱 잎 가장자리로 +자 모양의 흰색 조각이 꽃잎처럼 보입니다. 이 하얀 열십자 모양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하듯 보는 순간 ‘오, 주여! 당신은 위대하십니다.’ 소리가 저절로 나오게 만듭니다.  

신록 속을 턱없이 달려와 피어난 꽃들을 보며 숨이 차 산골 개울물을 한 움큼 떠 목을 씻어 내립니다. 층층나무, 쪽 동백, 함박꽃, 산 딸 나무들도 초록 향기로 묻어와 나날이 푸르러가는 오월의 끝자락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틀림없는 여름입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과 농촌공사 '전원생활' 네오넷코리아 '북집'에도 함께합니다. 쪽빛강물이 흐르는 북한강 상류를 찾아오시면 시골과 고향을 사랑하는 많은 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태그:#층층나무, #쪽동백, #함박꽃, #산딸나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