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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서울대학교 봄축제에 등장한 원더걸스
 2008 서울대학교 봄축제에 등장한 원더걸스
ⓒ 최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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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걸스가 온다고? 별로 호응 없을 것 같은데? 요즘 취업 준비하느라 다들 바빠서 축제분위기도 안 나거든."

"원더걸스가 너희 학교 축제 때 온다며?"라고 부러움 섞인 말투로 물어보았을 때, 서울대에 재학 중인 친구는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때는 원더걸스가 서울대에 방문하기 이틀 전, 서울대가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있을 것이라는 나의 예감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하지만 친구의 무관심한 반응은 공연 당일에 이르러 감동과 경탄으로 바뀌었다.

"원더걸스가 대단하긴 한가 보다. 여기저기서 원더걸스 얘기뿐인데?"

조용하던 관악산이 '들썩'... 3m를 못 가 30분 묶여 있던 원더걸스

많은 사람이 원더걸스의 차를 에워싸 이들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많은 사람이 원더걸스의 차를 에워싸 이들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 최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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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 서울대 축제 마지막 날, 관악산 자락은 축제의 분위기로 한껏 들떠있었다. 특히 '서울대 축제는 재미가 없다'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주최 측에서 비장의 카드인 '원더걸스'와 '크라잉넛'의 공연을 준비했기에 캠퍼스 안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밤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저녁 8시 25분에 원더걸스가 탄 차량이 교정 안으로 들어왔다. 흔히 연예인의 상징이라 불리는 밴인 '스타크래프트'가 들어오자 눈치 빠른 사람들은 남들보다 몇 분이라도 빨리,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원더걸스를 보기 위해 차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공연 시각에 임박해 도착한지라 바로 공연을 위해 무대 뒤로 차를 옮겼다.

차가 멈추고, 원더걸스가 무대로 올라 공연을 하려 했으나 문제가 발생했다. 사람들이 차 주변을 에워싼 것이다. 무대 위의 사회자가 무대 주변의 관객들을 진정시키려 노력했지만 원더걸스를 가까이서 보겠다는 사람들을 막을 순 없었다.

주최 측의 행사 진행 요원의 수는 턱없이 부족했다. 통제 불능의 상황이었다. 이 과정에서 관객 일부가 탈진하거나 사람들에게 눌려 업혀나가기도 했다.

결국, 차를 무대 옆쪽으로 바짝 붙여, 원더걸스가 차에서 나오자마자 무대 위로 올라가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단지 3m의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데도 몰려드는 사람으로 진행 요원은 진땀을 뺐다. 가수가 도착해서 공연을 하는데 30분이 넘도록 지체되는 것을 보니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원더걸스를 보호하려면 경찰 1개 중대(약 100명) 급의 인력은 필요하지 않을까?'

'텔 미'가 끝나면, 축제도 끝난다?... 조용해진 캠퍼스

▲ 2008 서울대학교 축제의 페막제에서 공연한 원더걸스
ⓒ 박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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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공연이 시작되었다. "서울대는 개교 이래로 아이돌 스타가 축제 때 초대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친구가 귀띔했다. 서울대의 첫 아이돌 스타 공연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하기 위해 이 학교 학생은 물론, 인근 지역의 중고등학생까지 모여들었다. 

공연을 하는 동안에는 무대 앞으로 몰려드는 사람 때문에 가장 앞줄의 사람들이 뒷사람들에 눌려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관객들은 원더걸스를 가까이서 본다는 기쁨에 열광했다. 원더걸스가 음악에 맞춰 흔드는 몸짓에 따라, 디지털 카메라와 폰 카메라를 든 사람들의 손과 눈이 함께 흔들렸다. 공연 마지막 곡으로 '텔 미'가 나오자 관객 모두가 외치는 '텔 미' 후렴구에 관악산이 흔들릴 정도였다.

원더걸스의 공연이 끝나고 여러 행사가 뒤를 이었지만 사람들은 사라지고 쓰레기만 남았다.
 원더걸스의 공연이 끝나고 여러 행사가 뒤를 이었지만 사람들은 사라지고 쓰레기만 남았다.
ⓒ 최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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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걸스의 공연은 끝났다. 원더걸스가 떠난 후, 주변을 둘러보니 공연장과 그 주변을 에워쌌던 사람들은 흩어지고 공연장 안에서도 듬성듬성 빈틈이 보였다. 불과 10여분의 공연이 '한 순간의 꿈'이었던 것처럼….

다음 공연에는 이전 공연의 3분의 1도 안 되는 관객만이 남아 있었다. '코리안스탠다드'라는 가장 표준적인 서울대생 찾기 대회와 '피에스타'라는 재즈 댄스 동아리 공연이 시작됐지만, 달아올랐던 축제 분위기는 이미 식어 있었다.

오히려 학교 축제의 메인이벤트가 돼야 할, 주최 측과 학교 동아리에서 준비한 공연은 원더걸스 다음 공연이라는 이유로 썰렁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축제의 절정이라는 5월에 원더걸스의 인기는 수도권을 휩쓸고 있었다. 이튿날인 16일, 의정부에 있는 신흥대학 축제에서도 원더걸스를 만날 수 있었다. 역시 이곳에서도 '텔 미'의 인기는 여전했다. 공연의 마무리는 단연 '텔 미'였다.

주최 측도 공연의 인기와 공연 후를 고려해 원더걸스의 공연을 행사의 가장 뒤로 몰아놓았다. 물론 신흥대 캠퍼스도 원더걸스의 공연이 끝난 후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대학 축제와 연예인, '신종 딜레마'

원더걸스의 공연에 환호하는 서울대학교 학생들
 원더걸스의 공연에 환호하는 서울대학교 학생들
ⓒ 최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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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축제의 중심이 인기가수의 공연으로 굳어진 것은 언제부터일까? 많은 대학생들은 축제가 시작된다는 말을 듣자마자 '이번에는 어떤 가수가 온대?'라고 묻는다. 또한, 총학생회나 축제준비위원회 홈페이지에는 '어느 대학에 누가 왔으니 우리 축제에는 더 유명한 가수가 와야 한다"는 의견이 오르기도 한다. 따라서 축제의 성과를 '어떤 가수가 초대됐느냐'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축제와 초대가수. 요즘의 대학축제에 나타난 '신종 딜레마'다. 학생들이 '축제에 어떤 가수가 오느냐'를 최대의 관심사로 꼽는다면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공연보다 '전체적인 축제 행사에 학생들이 많이 참여하는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게는 100~200만원, 많게는 1000만원대의 개런티를 주고서라도 축제의 관심도와 호응도를 높이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축제 준비 관계자는 "가수 섭외비가 적게는 20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까지 다양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동아리 활동과 학교 행사 진행에 경험이 많은 국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생회장 박대웅(26)씨는 연예인을 섭외하는 이유를 '사람 모으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인기 연예인이 오지 않으면 축제 자체에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다. 대동제(축제)라는 것이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즐기는 것이라고 정의할 때, 인기 연예인 섭외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축제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긍정적이라고 본다."

"다양한 행사에도 관심 기울였으면" vs. "연예인, 못 올 이유 없다"

피켓까지 들고 환호하는 학생들
 피켓까지 들고 환호하는 학생들
ⓒ 최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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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축제에서 행사 진행 업무를 맡았던 박연(20·서울대 사회과학)씨는 "축제의 참여인원이 적어 행사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을 우려해 인기연예인을 섭외하게 된 것"이라면서도 "연예인 초대는 축제를 즐기기 위한 방법의 하나일 뿐 축제의 중심은 아니다"라고 설명하며 축제에 참여하는 연예인의 역할에 선을 그었다.

서울대 축제에서 스태프로 일했던 기경서(21·서울대 미학)씨 또한 "원하던 축제상은 단순한 소비가 아닌 대학문화를 창조하는 축제였기 때문에 원더걸스가 오고 이것에만 열광하는 것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은 인기 가수나 연예인이 오는 것을 꺼릴 이유가 없다. 이용구씨(33·신흥대학 안경공학)는 "우리학교 축제는 체육대회 등이 활성화되어 있어서 굳이 연예인이 오지 않아도 단합활동이 잘되는 편"이라고 말하면서 "평소에 마음을 먹고 찾아가지 않으면 즐기기 힘든 연예인의 공연을 학교에서 같이 보며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라며 연예인의 공연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강현주(22·신흥대학 치위생)씨는 "연예인들이 오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면서도 단순히 몸값만 높은 연예인이 와서 '10분 공연'만 하기보단, 축제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연예인을 섭외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대학 축제의 연예인 섭외는 '보내기 번트'다?

신흥대학 축제 현장. 원더걸스가 공연하자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신흥대학 축제 현장. 원더걸스가 공연하자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 김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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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에서 연예인을 섭외해 공연무대를 만드는 것은 축제 준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양날의 검'이다. 대학 축제라는 특성상 동아리 공연 등 학생들이 주인공이 되는 행사를 많이 마련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연예인을 배제한 축제를 준비하다간 성의없다는 비판을 받기 십상이다.

인기 연예인이 축제에 온다는 소식에 대학생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이벤트가 모든 행사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한계 또한 명확하다. 저녁 9시에 유명가수가 온다고 해서 한낮에 열리는 행사에도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인기 가수의 공연에 사람이 몰린다고 해서 재미있고 성공한 축제로 평가하기도 힘들다.

서울대에서 관객들이 '텔 미'를 연호하던 순간 한쪽에서 조용히 공연을 보던 서울대 졸업생 최아무개(28)씨는 자신의 새내기 시절을 떠올렸다.

"축제가 재미를 추구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학생들의 공개 프러포즈랄까, 재미보다는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프로그램이 많았거든요. 물론 이전 축제에도 연예인이 오고 그랬지만 요새는 단순히 노는 쪽으로 몰리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대학 축제와 연예인 섭외의 관계를 따져보니, 야구 감독의 '보내기 번트 작전'과 비슷하다. 번트 작전을 걸자니 돌발 상황을 예측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가만히 놓아두자니 무능한 감독이라는 비판을 받을까 걱정하는 그런 딜레마처럼….

앞으로 5년 뒤 10년 뒤의 축제는 어떤 모습일까? 촛불 문화제를 이끄는 2.0 세대가 만들 축제가 자못 궁금해진다.

신흥대학 축제에서 '텔 미'를 부르는 원더걸스
 신흥대학 축제에서 '텔 미'를 부르는 원더걸스
ⓒ 김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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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축제의 '파전' 꼭 먹고 싶어요!"
[인터뷰] 원더걸스가 말하는 '대학 축제‘

원더걸스의 소희
 원더걸스의 소희
ⓒ 최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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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축제의 섭외 1순위인 '원더걸스', 그들은 대학축제를 어떻게 생각할까?  아래는 축제 현장에서 만난 원더걸스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올해 대학 축제는 대략 몇 곳이나 갔었는지, 그 반응과 각자의 느낌은?
"한 15개 정도 대학교에 갔던 것 같습니다. 우선 대학 축제는 많은 분들이 공연을 하는 저희와 함께 해주시는 것 같아 무대에 있는 저희도 신이 나서 더 열심히 하게 돼요. 물론 대학 공연이 아닌 곳에서는 팬 분들이 함께 해주시고 있지만 다른 매력이 있더라고요.(선예)"

"젊음의 산실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죠. 대학축제와 같이 젊음을 같이 나눌 수 있는 곳에 가면 피곤하다가도 힘이 솟아나는 것 같아요.(예은)"

"저와 같은 또래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보니, 대학축제와 같은 공연은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유빈)

"저는 아직 대학을 가지 않아서 그런지 대학공연을 가서 느끼는 분위기가 아직 실감이 나진 않지만, 저도 친구들과 함께 자유롭게 대학 축제를 즐기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게 돼요.(선미)"

"저도 선미와 같은 나이이기 때문에 아직 대학 문화를 잘 몰라요. 그래서 대학에 대한 것은 축제 때 가서 공연할 때 보는 것이 다인데요. 그때 느끼는 것은  자유와 열정이 넘쳐난다는 거예요. 저도 즐거운 대학 생활을 꿈꿔보게 하는 거 같아요.(소희)" 

-대학 축제에서의 공연이 방송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방송과는 다르게 자유로움과 열정이 있다는 거겠죠."

- 대학생들의 뜨거운 반응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언니 오빠들이 저희에게 보내주는 반응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다가도 얼굴에 미소가 생겨요. 저희에게 보내주시는 성원에 항상 감사하고 있죠. 앞으로도 '이~~쁘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 그동안 참석했던 대학 축제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반응이나 기억은?
"2007 모 대학교 축제 때, 수천 명에 달하는 남자 대학생 분들의 뜨거운 호응과 묵직하게 들려오는 '텔 미'를 따라 부르는 소리에 공연하는 저희도 놀랐던 적이 있어요.  UCC로도 만들어져서 화제가 되었었답니다."

- 대학 축제에서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은?
"항상 공연만 하는 입장이라 축제의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축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직접 느껴보고 싶어요. 대학축제 때 먹는 파전이 그렇게 맛있다고 하던데 꼭 먹고 싶어요."


태그:#원더걸스, #대학교,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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