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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인 춘천교대 교수가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역사교과서 좌편향" 발언에 대한 비판 글을 보내와 전재합니다. <편집자주>

 

"일동 우향우"를 외치던 대통령의 아마추어리즘이 불과 두달 만에 국민적 저항과 함께 <조중동>의 직격탄을 맞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지율이 급락하고 나서야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0년'의 역사적 무게감을 의식하게 된 듯하다. 오늘날 혼란스런 정국은 성장지상주의적 잣대로 우리 현대사에서 민주화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경시한 외눈박이 역사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14일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광화문 문화포럼에서 "지금 역사교과서나 역사교육이 다소 좌향좌돼 있지 않나 생각한다"는 발언을 했다. 한 나라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장관 스스로 교육을 정치 논리에 종속시키는 언급을 하다니 놀랍다. 하지만, 그 발언 내용 자체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역사교과서, 특히 <한국근·현대사>의 좌편향 문제는 성장지상주의의 외눈박이 사관을 갖고 있는 뉴라이트 계열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한 바 있다. 지난 3월에는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 포럼에서 <대안 교과서 한국근·현대사>를 내놓기도 했다.

 

'대안 교과서'에 역사학계가 공식 대응하지 않은 까닭

 

이 '대안 교과서'에 대해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는 공식적 대응을 자제했다. 역사교과서로서는 여러 가지 결격 사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내용적으로 빈번한 사실 오류, 이념적 지향이 앞서 근거가 불충분한 서술, 각 장절 별로 편차가 큰 집필 수준, 빈약한 학습 자료 제공, 다양한 단조로운 편집 체제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집필진 구성에 결함이 있다. 한국 근현대사 전공자를 포함하여 한국사 관련 학자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것은 물론 응당 있어야 할 역사 교사도 배제되었다. 최근에는 역사교육 전공 학자가 교육적 배려에서 교과서 집필에 참여하는 것이 추세인데, 이 분야 전공자도 없다. 이처럼 학문적 전문성과 교육적 고려는 부족한 채 정치적 색채가 또렷한 이 책은 대중서라면 몰라도 교과서로는 부적절하다.    

 

이 '대안 교과서'는 역사학계나 역사교육계는 물론 국민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다. 뉴라이트의 외눈박이 사관이 국민이 역사적 경험 속에서 일구어 온 일반적 역사 정서에 배치되고 또한, 그런 국민을 탓하며 계몽하려 들기 때문이다. 과도한 계몽의 정치학이 너무 부담스러운 것이다. 

 

예를 들어, 뉴라이트가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의 좌편향을 시비하고 있지만, 이념적 잣대로만 겨룬다면 우경적 편향성 역시 문제 삼을 수 있다. 국민 누구나가 배워 알고 있는 민족운동사의 경우, 체제부터 일단 우편향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좌파가 민족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기존의 모든 한국사 관련 교과서는 예외 없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헌법 정신에 따라 우편향적 체제로 서술되었다.

 

뉴라이트는 <한국근·현대사> 교과서가 '자랑스런 대한민국사'를 제대로 서술하지 않았다고 공박하기도 한다. 기존 교과서가 민족사적 관점에서 현대사를 서술한 것을 못마땅해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걸맞은 현대사를 서술하자는 것이다. 실제 '대안 교과서'는 분단 현실의 한 축인 북한의 역사를 보론으로 다루고 있다. '자랑스런'은 이미 가치판단이 개입되어 있는 수식어로 성장지상주의적 역사 인식의 적나라한 표출이다.

 

탈민족·친자본의 논리로 점철

 

역사에는 위대한 패배자도 있고 치졸한 승리자도 있기 마련이다. 위대한 승리만을 강조하는 외눈박이 시선이 압도하는 교과서는 이런 '모든' 역사가 아니라, 만들어 내고픈 역사에 필요한 사실만이 나열되기 십상이다. 국민 정서에는 이러한 탈민족․친자본의 논리에 입각한 작위적인 역사 이야기가 버거울 뿐이다.  

 

지금 안타깝게도 교육 정책을 입안하는 장관과 관료들이 이 우향우의 계몽 정치학에 굴복하려 하고 있다. 올해 안으로 좌편향의 문제를 수정하겠다는 것이다. 교육과정의 운영에 관해 약간의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곤혹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처사이다. 기존의 교과서들은 제7차 교육과정에 입각해 집필되었고, 검인정 기준을 통과했다.

 

그러므로 집필자들에게 서술내용의 이념성을 문제 삼아 수정을 강제하거나 재검정을 요구할 법적 근거가 없다. 그리고 제7차 교육과정도 이미 개정되어 '2007년 개정 교육과정'으로 고시된 바 있다. 이에 따라 <한국근·현대사> 교과목은 2013년부터 사라진다. 그러니,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교육 관료들이 나서서 이 문제를 쟁론화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분명, 교육 관료들이 주도하게 된 역사교육의 우향우 시도는 우향우의 정치사가 늘 그랬듯이 실패할 것이다.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의 뒷심 있는 강력한 저항에 부딪칠 것이고, 국민 정서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달 만에 100만의 국민으로부터 '탄핵'당한 대통령의 실패를 곱씹어보기 바란다.


태그:#김도연 장관, #교과서, #한국근현대사, #뉴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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