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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 프로축구팀이 있다고? 에이 설마…."

연중 온도가 20도 밑으로 떨어지는 일이 거의 없는 더운 나라, 서울 면적(605㎢)보다 조금 더 큰 도시국가 싱가포르(641㎢)에 프로축구 리그가 있다고 하면 대부분 보이는 반응이다. 하지만 진짜다. 리그 이름은 S리그. 1996년 8개팀으로 출발한 S리그는 지금 12개팀으로 성장했다. 우승상금은 15만싱가포르달러(약 1억1천여만원).

K리그가 14팀에 지난해 우승상금이 3억 원이었던 점에 비춰보면 결코 적지 않은 크기다. 더욱 놀라운 점은 2008년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이 발표한 각국 리그 순위가 39위로 54위인 K리그보다 높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기준이 실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K리그와 S리그를 모두 경험한 이들은 S리그 수준이 K리그와 내셔널리그(2부리그)의 중간쯤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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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리그의 독특한 면모는 한·중·일 삼국이 각국 선수만으로 이뤄진 팀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2004년 창단한 일본 알비렉스 니가타, 2007년 창단한 중국 랴오닝광유안FC, 2007년 창단한 한국팀 수퍼 레즈가 싱가포르 리그에 소속된 외국인 팀이다. 과거엔 호주팀과 아프리카 연합팀(나이지리아, 카메룬, 가나)도 있었지만, 지금은 동북아 3개팀만 남았다.

이중 올해 S리그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팀은 한국팀인 수퍼 레즈(Super Reds). 지난해 단 3승만 올리며 13위로 꼴찌를 기록한 수퍼 레즈는 올해 들어 전혀 다른 팀으로 변신했다. 5월초까지 10승1무1패를 기록하며 단독 1위를 달리고 있다. 처음엔 모두들 "이변"이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젠 올해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 한국팀의 돌풍을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올해 1월에서야 팀이 꾸려질 정도로 선수들이 발을 맞출 시간이 부족한데다, 후원사 한 곳 없을 정도로 재정도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S리그에선 싱가포르 국가대표팀이나 다를 바 없는 SAFFC (Singapore Armed Forces FC)와 홈 유나이티드(Home united)가 철벽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개막전에서 수퍼 레즈가 우드랜드를 2대1로 간신히 이겼을 때도 "어쩌다 한 번" 정도로 생각했을 뿐이었다. 연승을 계속할 때도 곧 꺾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분수령이 된 경기는 지난해 1위팀 SAFFC와 만났을 때. 도박문화가 강한 싱가포르에서 구경꾼들은 5-1로 SAFFC의 승리를 점쳤다.

전·후반을 마친 결과 점수는 2-2. 인저리 타임 3분 만에 골을 넣으며 수퍼 레즈는 승리를 거머쥐었다. 싱가포르의 상징과도 같았던 SAFFC가 지난해 꼴찌팀에게 패하자 싱가포르는 술렁거렸다.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수퍼 레즈에 열광하는 팬도 생기기 시작했다.

지난 5월 12일 수퍼 레즈는 게이랑(Geylang)과 치른 컵대회에서 또다시 승리를 거두며 승수를 쌓았다.

지난해 꼴찌팀의 3위 목표... 모두 "말도 안돼" 비웃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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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 레즈는 국가대표 선수 출신으로 서울시청 감독과 S리그 스포팅 아프리카팀 감독을 맡았던 홍인웅씨가 만들었다. 홍인웅씨가 구단주 겸 초대 감독을 맡았고, 싱가포르 스포츠관련 사업가인 콜린 치씨가 부구단장을 맡았다.

본토 외 최초 한국인 프로스포츠팀이 싱가포르에 만들어지자 1만5천여 교민들도 관심을 보였다. 그것도 잠시. 연패가 이어지자 관심은 시들해졌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현지 반도체회사 사장인 찰리 윤(Charlie Yoon)씨가 구단을 인수하고 전북 현대 선수 출신인 전경준씨가 감독을 맡으면서부터. K리그 2군과 내셔널리그, 대학리그 출신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팀 분위기를 바꿨다. 전경준 감독은 1993년부터 2005년까지 K리그에서 뛰면서 287경기 출장에 28골, 37도움을 기록했다.

이미 전성기가 지난 2006년 홈 유나이티드 소속 선수로 활약하면서 25경기 출장에 13골 득점이라는 놀라운 득점력을 자랑했다.

올 시즌 시작 전인 2월 16일 수퍼 레즈는 탁재훈 연예인 축구단이 싱가포르 연예인 축구단과 벌이는 친선경기를 주최했다. 이 경기서 탁재훈 연예인 축구단은 싱가포르 연예인 축구단을 3-0으로 꺾었다. 이 때까지도 여전히 수퍼 레즈 전력은 안개속이었다.

하지만 시즌 전 전경준 감독은 2008년 성적을 묻는 질문에 "3위"라고 말했다. 터무니없다고 느낄 만한 수치였다.(싱가포르는 1-3위는 상위권으로 항상 고정돼 있다. 상위권과 4위 이하는 실력차가 많이 난다.) 이젠 "3위"라고 말하면 너무 겸손한 예상치라는 반응이다. 몇 달 사이에 그렇게 위상이 변했다.

지난 8일과 12일 두 차례 홈구장을 찾아 전경준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

"외국팀에게 질 수 없다는 정서 있어 견제 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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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꼴찌팀이 1위를 달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글쎄…. 우리가 운이 좋았다. 우리가 3위 떨어질 수도 있었다. 우리가 지거나 비긴 팀에 우승권 팀들도 똑같이 지거나 비겼으니까."

(한 구단 관계자는 "한국에서 더 이상 뛸 기회를 잡지 못한 선수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싱가포르행을 택했기 때문에 실력 이상의 투지가 생기는 것 아니겠냐"고 분석했다.)

-위기가 있었을 텐데, 가장 큰 고비는 어느 팀과 치른 경기였나.
"꼴찌팀에게 비겼을 때다. 전반 6분 만에 골을 먹었다. 선수들이 모두 당황했다. 지시를 해도 안 먹혔다. 그럴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선수도 답답하다. 골포스트를 다섯 번이나 맞고 나왔다. 결국 비겼다. 나중에 선수들에게 수고했다고 말했다. 5-0으로 한 번 이긴 적이 있다. 그 때는 전반을 1-0으로 마쳤는데, 경기 내용이 좋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심하게 꾸짖었다. 이겨도 이처럼 혼을 낼 때가 있다."

-싱가포르에서 뛰면서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가장 큰 어려움은 더위다. 내가 2006-2007년 이 곳에서 선수생활을 했다.(홈 유나이티드 소속) 숨이 턱턱 막히는데 너무 힘들더라. 처음엔 잘 하다가 한 달 지나니까 탈수증세가 일어났다. 체력이 떨어지는 게 표가 나더라. 그런데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았고, 도움을 얻을 사람도 없었다.(더위 때문에 여기선 항상 경기가 저녁 7시45분에 열린다.)

- 더위 말고도 어려움이 있을 텐데.
"다른 팀 견제가 심하다. 외국팀에게 질 수 없다는 정서가 있는 것 같다. 중국팀과 일본팀도 있지만, 싱가포르 1, 2위팀한테는 진다. 그런데 우리는 이긴다. 어떻게 우리의 자존심을 꺾다니… 하는 정서가 있는 것 같다. 상대편 선수들이 팔로 쳐서 우리팀 선수가 턱을 다친 적이 있고, 누워 있는데 밟힌 적도 있다. 그 때마다 심판이 모른 척했다. 올해 우리가 유일하게 진 경기에선 골대를 맞고 들어간 골을 심판이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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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가 없는 날은 뭘 하고 지내나.
"그게 참 고민이다. 싱가포르엔 쉴 곳이 없다. 큰 숲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산도 없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높은 산이 200m가 안된다. 산이 없으니 당연히 강이라고 할 만한 곳도 없다. 섬이지만 대부분 항구로 개발돼 있어 해수욕장이라고 할 만한 곳도 없다. 놀이문화가 없다. 고민이다. 쉴 때 마음 편하게 놀아야 하는데…."

- 한국 교민들 반응은 어떤가.
"많이 좋아졌다. 처음엔 정말 냉랭했다. 한국팀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으니까. 지금은 수퍼 레즈를 아는 분이 많이 늘어난 것 같다. 홈경기를 할 때는 보통 3천명 정도씩 관중이 들어온다."

- 후반기 예상은?
"후반기가 걱정이다. 부상당하면 안된다. 우린 바꿀 선수가 없으니까. 그래도 선수를 믿는다. 전반기보다 더 잘하리라고 생각한다."

수퍼 레즈 돌풍... 후원사 없어 앞날 불안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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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저녁 7시. 38도를 오르내리던 기온이 해가 지면서 34도 가량으로 떨어졌다. 습도가 높아 제 기온보다 더 후텁지근한 느낌이다. 숨을 쉬면 텁텁한 공기가 입 속 가득 들어온다.

저녁 7시 45분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이 열심히 몸을 풀고 있다. 빨간색 유니폼이 강렬하다. 마케팅팀 직원 레베카 리씨가 "선수들 너무 잘 생기지 않았나?"라면서 웃는다. 한국 선수들은 지역 신문과 잡지에 몇 차례 크게 난 적이 있다. 이곳에도 한류바람이 불면서 한국선수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고 있다.

전경준 감독에게 이날 경기에서 쓸 작전을 묻자 "무조건 이기는 게 작전이죠"라면서 웃는다. 이날 만날 팀은 올 시즌 수퍼 레즈에게 한 번 패한 적이 있는 게이랑(Geylang). 지난해 6위팀으로 올해도 5월 초까지 6위를 달리고 있다.

컵대회는 시즌경기와 달라 한 번 패하면 바로 탈락이다. 전 감독은 "초반부터 강하게 나올 것 같다"고 예상했다. 게이랑은 수비가 미드필드 지역까지 올라오면서 강하게 압박하는 팀이다. 압박은 강하지만, 대신 한 번 뚫리면 속수무책인 게 약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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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감독은 "빠른 선수들을 배치해 수비선을 뚫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수들 몸놀림은 가벼워 보였다. 홈구장 스피커에선 소녀시대의 '소녀시대', 빅뱅의 '거짓말', 렉시의 '애송이'와 같은 한국가요가 흘러나온다. 한국에서 근래 유행한 노래만 골라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도중, 해바라기의 '행복을 주는 사람'이 울려퍼진다. 1983년 곡이다.

객석은 썰렁하다. 든 자리보다 빈 자리가 훨씬 많다. 구단관계자는 태평이다. 관객이 없다고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다.

"원래 경기 시작하고 나면 들어와요. 코리안타임보다 더 하더라고요. 처음엔 우리도 당황했어요. 왜 이렇게 사람이 안 오나. 경기 시작하고 나면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중에 다 차더라고요. 이젠 걱정 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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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경기가 시작하고 난 뒤 본부석 방향 객석 빈 자리는 거의 채워졌다. 한국팀 응원 지역 제일 앞에선 북을 두드리는 수퍼 레즈 팬이 있다. 한국인이 아닌 싱가포르인이다. 두 사람은 수퍼 레즈 경기가 열릴 때마다 경기장을 찾는다.

어느 샌가 북을 두드리는 일은 두 사람 몫이 돼 버렸다. 구단 관계자는 "싱가포르 사람들에게 북을 두드리는 게 익숙지 않아서 두드리다 살갗이 벗겨진 적도 있다"면서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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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전 경기가 시작됐다. 골은 좀처럼 터지지 않았다. 한국팀 선수가 찬 공이 골대를 맞고 나오는 불운도 있었다. 답답한 가운데 전반전 경기가 끝났다. 비행기 시간 때문에 후반전을 못 봤지만, 나중에 물어보니 2-1로 이겼다고 한다.

구단 관계자의 말대로 "승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1위팀에게 쉽게 이길 수도 있고, 꼴찌팀에게 의외로 고전할 수도 있다. 한 두 골로 승부가 나는 게 축구니 그만큼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전반기 돌풍을 일으키고 있지만, 수퍼 레즈의 앞날이 밝지는 않다. S리그 소속 12개팀 중에서 후원사가 없는 유일한 축구팀이란 사실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수퍼 레즈 돌풍을 조마조마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허나 수퍼 레즈는 이미 신화를 만들고 있다.

덧붙이는 글 수퍼 레즈 구단 홈페이지 www.superredsfc.org
구단관계자가 운영하는 다음 카페 cafe.daum.net/SRFC
수퍼레즈 전경준 S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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