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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의 쇠고기 협상과 교육정책 등을 성토하며 거리에 선 수만 시민들의 절반 이상이 학생들, 그것도 중고등학생들이다. 정부와 경찰·교육부의 대응이 사람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청와대는 "놀이문화가 없어서 재미있으니까 참석했다"고 하고, 경찰은 "불법 집회라 형사 처벌하겠다. 문자 메시지에 대한 압수수색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고, 교육당국은 학생들이 집회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긴급 교육감 회의를 소집했고 학교로 공문을 내려보내고, 학생부장과 장학사들을 집회 현장에 파견했다.

 

MB 정부와 경찰, 교육부가 지목하는 배후세력? 그러나 모두 틀렸다

 

정부와 경찰은 "이 집회에 학생들이 이렇게 참가하는 데에는 배후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지금 그 배후를 캐기 위해 열심히 뒷조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도대체 전교조가 어떻게 한 것이냐? 어떻게 했길래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대통령 탄핵 집회에 참가할 수 있느냐?"

 

그들이 지목하는 첫 번째 배후는 '전교조'이다. 청계천 첫날 집회에 수천명의 학생들이 대규모로 참석한 것이 확인되자 다음날 바로 국정원에서 전교조에 다짜고짜로 물었다. 그리고 7일 비상회의에서 공정택 서울교육감은 "청계천 쪽 시위보다 여의도 쪽 시위에 학생도 많고 늦게까지 이어졌는데, 이 곳에서 가까운 남부·동작·영등포는 전교조가 심한 곳"이라며 다시 전교조 배후론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잘못 짚었다. 전교조는 2002년 미선이-효순이 사건 때와는 달리 아직 공동수업 한번도 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 광우병 공동수업이라도 했을라 치면 바로 전교조를 배후세력으로 하여 압수수색하고 난리가 났을 텐데, 그러지 못해 그들도 좌불안석이다.

 

또다른 배후로 지목하고 있는 것이 연예인이다. 배우 김민선의 "광우병 쇠고기를 먹느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먹겠다"는 글에서부터, 이휘재·이동욱·정찬 등 많은 연예인들이 광우병에 대한 글을 남기거나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정부는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엄청난 이들 연예인들이 분별없이 광우병 글을 올려서 흥분한 청소년들이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신문은 이런 연예인들의 글을 '미친 글'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 또한 잘못 짚었다. 청소년들이 정치인보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은 맞지만, 연예인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그대로 믿고 따라하지는 않는다. 중고등학생들을 어린애로 취급하고, 생각도 없는 바보로 취급하는 그들의 학생관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만약, 그들이 정녕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어 연예인이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으면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을 지지했던 연예인들부터 못하게 했어야 한다. 연예인이든 학생들이든 어떤 사안에 대해 생각을 밝히고, 어떤 주장을 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다.

 

또한 그들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특정 정치세력, 좌파 언론, 그리고 광우병 괴담을 무분별하게 확산시키는 인터넷과 휴대폰이 학생들의 배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또한 틀렸다.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던 특정 정치세력이 그들의 배후라는 주장이 틀렸다는 것은 최근 여론 조사에서 MB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한 것이 증명하고 있다. 언론 탓 역시 모든 일간지에 국민세금으로 "미국 쇠고기는 안전합니다"라는 광고를 며칠간 실은 것에서 알 수 있듯 훨씬 더 많은 언론과 방송을 통하여 정부가 나서 광우병 걱정없다고 미국 대신 광고까지 하고 있는 사실로 쉽게 반박되어 버린다.

 

청소년들의 문화이자 매개체가 되어 있는 인터넷과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탓하는 것 역시 그들의 무능과 무책임을 드러내는 것 이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학생들의 배후를 암시하는 몇 가지 장면들

 

학생들의 배후는 야당 정치세력도, 비판적 언론도, 전교조도, 인터넷도 아니다. 지난 연휴에 우연히 방송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 방송의 몇몇 장면들을 통하여 우리 학생들 배후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배후①-교육정책] 0교시부터 야자까지... "잠좀 자게 해주세요"

 

"교장 선생님, 12시까지 하는 야간자율학습 11시까지만 하게 해 주세요. 너무 늦어서 잠이 부족해요. 제발 잠 좀 자게 해 주세요."

 

'KBS 도전 골든벨'이라는 프로그램이 찾아간 곳은 경북의 한 여고였다. 최후에 남은 한 여학생에게 아나운서가 학교에 바라는 소원이 뭐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밤 12시까지 일제히 자율학습을 시키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다. 여기에 대한 교장 선생님의 답도 가관이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한 번 생각해 보자"라고 태연히 말하였다. 잠을 못 자게 해서라도 12시까지 자율학습을 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고, 0교시에 우열반까지 허용하겠다고 하는 오늘의 교육현실과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 이 학생들을 거리로 내몬 첫 번째 배후이다.

 

[배후②-학생인권 침해] 교복공동구매는 학교장 자율권 침해?

 

"교장 선생님, 제발 이 체육복 좀 바꾸어 주세요. 이거 입고 수련회 가면 다른 학교 뭐라고 하겠습니까? 완전 스머프 군단이라고 놀려요."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퀴즈 대한민국'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여기에 가끔 학생들이 나오는데 이 학생회장이라는 한 중학생이 출연했다. 아나운서가 그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탁자 밑에서 그 학교 체육복을 꺼내 보이며 체육복과 교복을 바꾸어 달라고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체육복은 가급적 일률적으로 맞추지 말고 단체로 맞출 때에는 학생, 학부모의 요구를 파악하여 공동구매하라는 것이 교육부의 방침이었다. 단 한 번뿐인 수련회를 가는데도 그런 체육복을 입게 할 정도로 우리 학교들은 "학생들은 언제 사고를 칠지 모르는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 그런데도 이번에 교육부는 학교장의 자율권 침해라며 교복 공동구매지침을 없애버렸다. 체육복으로 드러나는 우리 학교의 인권 수준과 교육부의 인식 수준이 학생들을 거리로 내몬 두 번째 배후이다.

 

[배후③-경찰] 밤길이 위험하다? 학생들이 웃어요

 

"여중 여고생 여러분 시간이 늦어 밤길이 위험합니다. 여중생, 여고생을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우리 원래 야자(야간자율학습) 12시에 마쳐요."

 

5월 5일 아침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말과 말'에서 선정한 말이다. 지난 주말에 열렸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서 '일몰후 집회는 불법이니까 해산하라', '사법처리할테니까 경고한다'고 했다가 사람들이 돌아가지 않자, 여학생들이 위험하니까 집에 보내주라고 하면서 한 여경이 한 말에 대한 여학생들의 답이다.

 

여경이 이 말을 한 시각이 저녁 8시가 조금 넘었다 하니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금지 지침이 있을 때에도 12시까지 강제학습을 시키고 있는데 8시에 경찰들은 밤이 늦어 위험하다고 학생들을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니 웃지 않을 수 없다. 12시까지 학교에서 강제학습을 하고, 새벽까지 학원을 다녀야 하는 우리 교육 현실과 그런 우리 학생들의 슬픈 현실을 모른 체하는 경찰들이 학생들을 거리로 내모는 세 번째 배후이다.

 

[배후④-학교급식] "고기 선택권 없는 우리가 바로 피해자" 

 

"너나 먹어 미친소"
"저는 아직 15년밖에 안 살았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스스로 만들어서 집회에 들고 나오는 피켓 문구이다. 방송에도, 언론에도 가장 많이 나오는 구호가 '너나 먹어 미친소'이다. 그리고 왜 그들이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충격적인 장면이다.

 

세계 어느 나라도 수입하지 않고, 미국인들조차도 잘 먹지 않는 30개월 이상된 쇠고기가 수입된다면 청와대나 국회의 높으신 분들은 그분들의 말처럼 안 먹으면 그만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미친 소 고기인지 알 지도 못하고, 먹을 고기에 선택권도 가지지 못한 학교나 군대에서 급식으로 제공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을 학생들이 제일 먼저 직감으로 깨닫고 있는 것이다.

 

1년에 몇 번씩 터지는 학교 급식 사고, 그럼에도 여전히 이윤 때문에 학교 직영급식으로 전환하지 않고 위탁으로 운영되고 있는 학교 급식 시스템과 미친 소 고기에 대한 공포가 학생들을 거리로 내모는 네 번째 배후이다.

 

[배후⑤-이중잣대] 조류독감과 광우병, 뭐가 다른 거야?

 

MB 정부는 조류독감에 감염된 꿩 한 마리만 발견되어도 인근의 모든 닭·오리·거위·타조 등 날개달린 짐승들을 모두 산채로 땅에 파묻으면서 광우병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한다. 또한 미국은 위생을 이유로 14년째 우리나라 삼계탕의 수입을 금지시키고 있으면서 자기 국민들도 잘 안 먹는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를 수입하라고 윽박지른다.

 

MB 정부는 광우병과 조류독감, 그리고 삼계탕과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우리 정부와 미국의 이중적 태도를 우리 학생들에게 이해시키지 못한다. 이런 정부와 미국의 이중잣대가 학생들을 거리로 내모는 다섯 번째 배후이다.

 

학생들을 거리로 내몬 배후는 바로 그들(?) 자신이다

 

4.19 혁명 때 학생들을 거리로 내몬 것은 교사들이 아니라 3.15 부정선거를 일삼은 정부와 그들의 친구 김주열 학생의 죽음이었다. 2002년 미선 효순이 사건 때 학생을 거리로 내몬 것 역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아니라 한미 소파로 상징되는 미국에 굽신거리는 정부와 그들의 친구 미선이와 효순이의 죽음이었다.

 

2008년 다시 학생들을 거리로 내몬 장본인은 언론이 아니라 0교시, 우열반, 강제 야자의 금지를 학교장의 자율권 침해라고 하면서 학생들을 공부하는 기계로 취급하고 학교를 시장으로 만들어버린 MB 정부이며, 언제 먹게 될지 모르는 미친 소 고기로 인한 그들과 그들 친구들의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것을 그들만 모른다.

 

나는 차마 학생들에게 "청계천으로 가서 너희들의 권리를, 너희들의 생명을 지키는 목소리에 동참하라"고 얘기하지 못한다. 그러나 "너나 먹어 미친소", "우리는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입니다"를 말하러 가는 그들에게 절대로 가지 말라고 말리지 못한다. 그들의 말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말할 수 있다. 오늘 학생들을 거리로 내모는 진짜 배후는 "미친 소와 미친 교육을 주도하는 미친 정부"다.

덧붙이는 글 | 김행수 기자는 고등학교의 교사입니다. 이번 학생들의 거리 시위의 배후는 정부만 모르지 온 국민이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들 자신입니다.

이 기사는 민중의소리에도 송고하였습니다.


태그:#광우병, #4.15 학원 자율화, #MB 정부, #미국산 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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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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