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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한 토요일 오후(4월 26일), 거실에서 뒹굴거리다 텔레비전 채널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돌려봤습니다. 리모컨의 위아래 버튼만 누르니 케이블 유선방송으로 99번까지 나오더군요.  
 
'이 많은 것 중에 왜 이렇게 볼 게 없지?'하며 계속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ETN에서 멈췄습니다. 화면에는 <돌싱러브프로젝트 - 응사마! 장가가자!(3월 10일 첫방송, 매주 월요일 새벽 0시 5분 본방송)>라는 문구가 떠있고 <전원일기>의 '응삼이' 역으로 유명한 박윤배씨가 환하게 웃고 있더군요. 제가 시청한 방송은 4월 21일 본방송된 7회 내용이었습니다.
 
'돌싱러브프로젝트'란 '돌아온 싱글의 사랑 찾기'로 재혼남녀들을 위한 매칭 프로그램이라는 뜻입니다. '원조얼짱'인 '응사마' 박윤배씨가 좋은 재혼상대를 만날 수 있도록 12주 동안 다양한 여성들을 소개해준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입니다.
 
매주 2명의 여성이 박씨와 데이트를 하고, 박씨의 선택을 받은 한 명이 살아남아 다음주에 또 다른 여성과 경쟁을 하는, 서바이벌 형식이지요.
 
"중년의 재혼에 대하여 바른 인식을 심어주고 건전한 '돌아온 싱글' 문화를 정책시키겠다"는 기획의도가 ETN 홈페이지에 실려 있습니다.
 
성희롱 상황 속에서도 미소짓는 여성 출연자들
 
'응사마' 박윤배씨의 이미지 변신도 궁금하고, 저희 부모님도 재혼을 하셨기 때문에 재혼문화를 과연 어떻게 그릴지 궁금해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프로그램을 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를 뻔 했습니다.
 
제가 시청한 방송의 데이트 장소는 '집'인 것 같았습니다. 박씨가 데이트 상대인 두 여성과 집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제가 소스라치게 놀란 이유는, 특히 아래 두 장면 때문이었습니다.
 
 
첫번째 사진은 가슴성형수술을 받은 직후인 김성희씨를 위해 박씨가 마사지를 해주겠다고 나서는 모습이고, 두번째 사진은 김수연씨와 함께 거실에서 간질이기 내기를 하는 모습입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응사마, 많이 참는다" 이런 식의 내레이션입니다.
 
상황 자체의 선정성에 놀라신 분들도 있겠지만, 제가 열변을 토한 것은, 여성을 향한 폭력성 때문입니다.
 
박씨의 결혼상대(라기보다는 섹스파트너 분위기에 더 가깝게 그려지는)로 선택되기 위해 경쟁 중인 여성들은 스스로를 철저히 상품화시켜 박씨의 주목을 끕니다. 재혼상대로서 고려해야할 조건이나 성격들은 이미 프로그램의 진행 방향과 멀어진 상태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출연 여성들의 '젊고 아름다운 몸'만 부각시킵니다. 
 
프로그램 속 성희롱·성폭력적 상황 설정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미소를 잃지 않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같은 여성으로서 안쓰러울 정도입니다. 
 
이 프로 '올바른 재혼문화 정착' 위해 만든 거 맞나?
 
물론, 이 프로그램은 외국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처럼 돈을 걸고 서바이벌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박씨의 연인이 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는 설정입니다. 그럼에도 방송을 통해 여성 출연자들이 얻을 유명세나 연예계 진출 등을 빌미로 폭력에 침묵하게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왜일까요.
 
'정말 좋아하는 남녀끼리 스킨십을 하는 것에 대해 비판할 필요가 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선 '첫 만남'에서부터 좀 과하다 싶을 정도의 '스킨십'이 이뤄집니다. 외모에 대한 박씨의 지나친 집착과 욕망은 걸러지지 않은 채 폭력이 되어 여성 출연자에게 가해지지요.
 
"올바른 재혼문화 정착"이란 당초 기획의도는 어디가고 여성의 훑어내리는 무차별적인 '성희롱'만 남았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성폭행을 재연하는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의 출연자들을 등장시키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는 것도 문제 중 하나입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에도 대본은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는 영악한 시청자라면 누구나 알지만, 그 자체의 현실성으로 인해 충격은 더욱 커집니다.
 
최근 M.net <오프 더 레코드 효리> <서인영의 카이스트> 등 연예인 개인을 주인공으로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이미지 상승에도 도움을 주고 있는데, <돌싱러브프로젝트 - 응사마! 장가가자!>는 돌이킬 수 없는 이미지 하락을 박윤배씨에게 가져다 줄 것 같습니다.
 
케이블 방송에 대한 규제 수위는 지상파 방송보다 낮지만, 그래도 '방송윤리'라는 것은 엄연히 존재합니다. 채널간 과다 경쟁으로 갈수록 선정성이 극에 달하는 것 같습니다. 부디 앞으로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상처받는 시청자가 존재하지 않기를 빕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블로그 ansi.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응사마, #성희롱, #ETN, #박윤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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