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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배추 
 
"이건 마늘이에요. 이게 뭐예요?"
"마~늘."
 
"이건 양배추예요. 이게 뭐예요?"
"영 배추."
 
아직은 'ㅑ'와 'ㅕ'의 구분이 힘든 베트남 학생 인태영씨가 '양배추'를 '영배추'로 발음하여 양배추가 '젊은 배추'로 둔갑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양'은 '서양'을 말하고, '배추'는 '중국 배추(Chinese cabage)'라고 알려주었더니 영어로 하면 양배추는 '서양 중국 배추'라고 해석되는 우스운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건 떡볶이 떡이에요. '떡'은 '쌀 케이크'이고, '볶이'란 '프라이팬에 볶은 음식을 말하는 것인데 '떡볶이'를 만들기 위한 떡이 바로 '떡볶이떡'이에요."
 
'떡볶이떡'은 볶은 떡을 만들기 위한 떡'이라는 식의 영어로 설명을 하고 나니 다시 우스운 설명이 되고 만다.
 
유난히 한국 노래와 드라마, 그리고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모여 있었던 이스트베이 분교 겨울학기 수업을 모두 마치고, 자신의 집에 노래방 기계가 있다고 자랑하던 태진아씨의 집에 모여 떡볶이를 같이 만들고 노래방 기분을 내기로 하였다.
 
한국 식당이 가까이에 있는 사우스베이 본교의 학생들은 한국 식당에 가서 한국 음식을 한국어로 주문하고 한국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지만 한국 식당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이스트베이 분교의 경우는 한국 식당에 가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번 학기에는 기꺼이 자신의 집에서 함께 떡볶이를 만들고 노래방 기계를 사용할 수 있도록 우리를 초청해준 태진아씨 덕분에 함께 떡볶이를 만들고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맛을 그리워하는 입양아 박아영씨
 
지난 여름에 한국에서 떡볶이를 먹어보고 돌아와 그 맛을 잊을 수 없다는 박아영씨는 한 살 때 미국인 부모님에게 입양된 입양아다. 요리사가 꿈이라는 아영씨는 아직 고등학생인데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서 바쁜 학교생활에도 한 번도 수업에 빠지지 않는 열성을 보였고 미국인 어머니께서도 이번 학기 수료식에 직접 참석하여서 딸의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함께 축하해 주시기도 하였다.
 
떡볶이를 만들기로 한 날도 어김없이 아영씨의 어머니께서 아영씨 집에서 좀 떨어진 태진아씨 집까지 자동차로 데려다 주고 다시 모임이 끝날 때쯤 데리러 오는 성의를 보여주셨다. 아영씨 또한 떡볶이를 만들 때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나하나 유심히 살피며 어떻게 만드는지 기억하려 하는 모습이 보였다.
 
난생 처음 떡볶이를 만들어 본 싱가포르 학생 지선아씨
 
준비해 간 재료도 많을뿐더러 직접 만들어 보는 것이 좋을 듯싶어서 프라이팬 하나는 본 기자가 시범을 보여주기 위해서 맡았고 다른 하나는 싱가포르 식당을 경영하는 전문요리사 지선아씨가 맡아서 떡볶이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역시 전문 요리사답게 보기에도 먹음직스런 떡볶이를 만들어냈다.
 
지선아씨는 한국 요리뿐 아니라 한국 노래를 부르는 시간에도 진가를 발휘하였는데, 한국 사람들도 어렵다는 '왁스'의 최근 노래들까지 섭렵하고 있었다. 특히 '화장을 고치고'를 부를 때에는 거기 모인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낼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노래방 기계 화면에 뜨는 한국어 가사들을 전혀 어려움 없이 읽어 내려가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한국 사람 같았다.
 
지선아씨도 자신의 집에 노래방 기계가 있는데, 태진아씨의 집에 있는 노래방 업소용 기계가 훨씬 더 좋다고 당장 집에 돌아가면 바꾸겠다고도 했다. 지선아씨는 일본 노래도 불렀는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지선아씨는 일본어를 전혀 읽을 줄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일본 노래를 부를 수 있느냐고 했더니, 하는 말이, 일본 노래 가사 밑에 뜨는 한국어 자막을 보고 일본 노래를 부른 것이라고 하면서 일본에 가서는 일본 노래를 하나도 못 불렀다고 하여 모두 함께 웃었다.
 
김치에 고추장까지 갖춰놓은 백인 학생 태진아씨 부엌
 
태진아씨는 자신의 애창곡이 가수 '태진아'씨의 '동반자'라고 하면서 자신의 한국이름을 '태진아'로 정하겠다고 했던 백인 엔지니어이다. 한국에 출장 차 다섯 번 정도 다녀오면서 한국 음식과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고, 지금도 새로운 좋은 곡들이 나오면 CD로 사서 듣고 집에 있는 노래방 기계로 연습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한 태진아씨의 한국 가요 사랑은 한국 음식 사랑으로 이어진다. 태진아씨의 집 냉장고에는 김치가 들어있었고 태진아씨는 하루도 김치 없이는 밥을 못 먹는다고 하여 혹시 부인이 한국 사람인가 하는 의혹이 들었지만 태진아씨의 부인은 역시 백인 간호사로 거의 요리를 태진아씨가 맡기 때문에 아주 즐겨하지는 않지만 함께 김치를 먹는다고 했다.
 
함께 떡볶이를 만들던 그날도 바비큐를 하겠다고 한국 갈비를 재워놓아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고, 찬장에서 한국 고추장이 발견되어 그의 한국 음식 사랑을 다시 한 번 보여주기도 하였다.
 
태진아씨는 '도전 1000곡'의 애청자이다. 태진아씨는 '도전 1000곡'을 보면서 한국어를 연습한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노래 자막이 나오기 때문에 따라 부르기가 쉽고 출연자들이 가사를 못 외워서 당황하는 모습들이 재미있다고 했다. 마침 그날도 '도전 1000곡'을 틀어놓고 있었는데 거기서 가수 '김건모'씨의 '잘못된 만남'이 나오고 있었다. 그 노래는 앞부분이 랩으로 되어 있고 속도도 아주 빨라서 따라 부르기가 힘들었는지 기자에게 불러보라고 해서 진땀을 빼기도 하였다.
 
"선생님! 여기에 나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어떤 거요?"
"이거요. 이거."
 
태진아씨가 가리키는 것을 본 순간 기자는 폭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노래방 기계 화면에 뜬 '저희 업소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라는 문구였기 때문이다. 좋은 음질과 좋은 배경 화면을 원한 태진아씨는 직접 L.A.까지 가서 노래방 업소용 기계를 구입해 왔기 때문에 그 문구가 화면에 뜬 것이었다.
 
이렇게 10주간의 마지막 수업은 모두 즐겁게 끝이 나고 다음 학기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국어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을 위해서 떡볶이도 더 잘 만들어야겠고, 랩도 연습해서 학생들에게 실망을 주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며 이렇게 한국 음식과 한국 음악을 사랑해주는 한국인이 아닌 한국어 학생들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덧붙이는 글 | 어드로이트 칼리지는 실리콘밸리 지역에 위치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학교입니다. 더 많은 '어드로이트 칼리지 한국어 교실 이야기'는 산문집 '한국어 사세요~!'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떡볶이, #노래방 , #어드로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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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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