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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콩사원 5층 피라미드 위에는 수미산을 상징하는 성소탑이 세워져 있다.
▲ 피라미드에 핀 연꽃탑 바콩사원 5층 피라미드 위에는 수미산을 상징하는 성소탑이 세워져 있다.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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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양공육 선생 집에서 삽살개 강아지 한 마리를 가져왔다. 몇 날을 '낑낑'거리며 '킁킁' 거리더니 한 달이 지나서야 제집인 양 활보하고 다닌다. 하물며 어린 강아지도 제 난 곳과 어미를 그리워하는데 고향을 찾는 사람의 마음은 어쩌면 당연한 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하다 보면 난생 처음 가본 곳이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곳이 있다. 이른 봄날 햇살에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춘곤증처럼 스믈 없이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절대 죽지 않는 다는 불사신 나가신상은 머리가  7개로 주로 사원 앞을 지킨다.
▲ 코브라 형상의 나가신상 절대 죽지 않는 다는 불사신 나가신상은 머리가 7개로 주로 사원 앞을 지킨다.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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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처음 보는 사람인데 괜스레 슬퍼져 눈물이 나는 사람도 있다. 시골장터에 나물봇짐을 풀어놓은 할머니, 어린 동생을 업은 예닐곱의 여자아이, 지게를 내려놓고 폐부깊이 담배를 빨아 삼키는 촌부는 그렇다고 치자.

도시거리에서 우연히 지나치는 아이들의 콧등에 맺힌 땀방울에도, 모임에서 만난 노교수에게서 풍겨오는 은은한 스킨냄새에도 눈물이 '핑' 돌 때가 있다. 때로는 3류 에로영화에도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서글픔이 있다.  

장흥 사자산 비동마을에서도 그랬고 보성 회천면 율포를 지나 바닷가 언덕 위에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를 보고도 그랬다. 지리산 피아골에 이르기 전 작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의 돌담과 봄꽃을 보고도 그랬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약산도 가사리 언덕 빈집과 마른 억새를 보고도 그랬다. 굳이 전생의 인연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내가 풀꽃이고 돌멩이고 흙이었을 때 이곳에 머물렀던 것은 아닐까 싶어졌다. 본향(本鄕)은 있는 것일까?

개신교에서 본향은 흙이 속한 세계에서 하늘나라에 속한 신의 세계로 간다는 의미다. 마가복음 22장 30절에 보면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따라서 성경의 입장에서 보면 결혼하고 생육하는 에덴은 본향이 아니다. 다만, 인간이 원초적으로 느끼는 그리움일 뿐이다.

정상이 마치 연잎에 둘러쌓인 연꽃 봉우리 같다.
▲ 연꽃 형상의 수미산 정상이 마치 연잎에 둘러쌓인 연꽃 봉우리 같다.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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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드라바르만1세가 시바신에게 헌정한 바콩사원 전경
▲ 바콩사원 전경 인드라바르만1세가 시바신에게 헌정한 바콩사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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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와 불교에서는 우주의 중심을 이룬다는 수미산을 본향으로 일컫는다. 세계는 풍륜(風輪)·수륜(水輪)·금륜(金輪)이라고 하는 원통형의 기둥이 바치고 있고 금륜 위에는 큰 바다가 있는데 9개의 산과 8개의 바다가 있다고 한다. 그 중심에 112만㎞로 솟아 있는데 꼭대기에는 제석천의 궁전이 중턱에는 사천왕이 머물고 있다고 한다. 

중생들은 욕계(慾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라고 하는 3계에 머무는 데 고통스러운 곳이라 고계(苦界)라고도 하고 윤해하면서 머무는 곳이라 하여 삼유(三有)라고도 한다. 욕계는 식욕·성욕·수면욕으로 불리는 삼욕(三慾)의 욕망을 극복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곳이다. 색계는 욕계의 위 단계의 천인(天人)들의 세계로 삼욕은 벗어났으나 미세하고 청정한 색법에 묶여 있는 곳이다. 무색계는 물질세계를 초월한 사람이 죽은 뒤에 새로 태어나는 천계(天界)를 일컫는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에게사원은 훌륭한 놀이터다.
▲ 사원에서 노는 캄보디아 아이들 학교를 마친 아이들에게사원은 훌륭한 놀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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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이나 고통의 수위는 다르지만 3계가 다 고통이듯이, 어떤 이 에게는 웃어넘길 일이 내게는 참을 수 없는 노여움이듯이 사람이 느끼는 결핍의 색깔과 맛은 다 다른 것 같다. 물론 해탈해 윤회를 벋어 나거나 고통의 3계에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인간은 오늘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본향에 대한 근원적인 그리움이 있는 것 같다.

앙코르와트의 여러 사원이 미물 계에서 시작해 인간계, 천계에 이르는 3단형 피라미드로 이뤄진 것도 수미산을 그리워하는 그들의 바람을 담은 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 사람이 본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결핍의 실체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힌두교와 불교인들의 본향 수미산을 형상화한 성소탑
▲ 수미산을 오르는 계단 힌두교와 불교인들의 본향 수미산을 형상화한 성소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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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콩사원은 881년 인드라바르만 1세때 착공하여 300여 년 동안 지어진 사원이다. 힌두의 신인 시바신과 빗수르신을 위해 헌정된 사원으로 신들의 세계를 지상에 재현하는 의미에서 메루산(수미산)의 다섯 봉우리를 상징하는 형태로 건축되었다. 메루산은 우주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며 시바신이 살고 있다는 힌두교의 성지다.

회색 라테라이트 석으로 기초했는데 이 돌은 지하에서 캐낼 때는 연질의 진흙 형태인데 수분과 공기를 접촉하면 강도 8(다이아몬드 10)의 단단한 암석으로 변한다고 한다. 돌을 무 다루듯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불교도의 기도공간으로 쓰인다.
▲ 성소탑의 내부모습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불교도의 기도공간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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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은 초기 수도였던 하리하라라야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인공으로 쌓은 언덕 위에 15m 높이의 성벽을 두 겹으로 설치했고 사각의 라테라이트석 기초위에 5층의 피라미드 형식으로 중앙에 연꽃을 상징하는 성소탑이 자리 잡고 있다. 바콩은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앙코르의 후기 대형 신전의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독일의 시인 노발리스(1772~1801)는 '종교는 아편으로 만든 마취약'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관변학자가 사실을 왜곡했지만 이 말은 칼 마르크스가 처음 한 말은 아니다. 그는 노발리스가 사망한 지 17년 후에 태어났다.  아편이 치유 효과 보다는 진통 효과와 중독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말이 아닌가 싶다.

탑을 지키고 있는 사자상과 멀리 불교 사원이 보인다.
▲ 탑위에서 내려다 본 전경 탑을 지키고 있는 사자상과 멀리 불교 사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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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1844년 '헤겔의 정의 철학 비판에 대한 거고'를 통해 "종교는 억압을 정당화하는 장치다. 그러나 동시에 억압으로부터의 피난처이기도 하다. 종교적 고난은 현실적 고난의 표현인 동시에 현실적 고난에 대한 항의다.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들의 한숨이며, 심장 없는 세상의 심장이며, 영혼 없는 상황의 영혼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말했다.

나도 때로는 아편이 그립다. 치유되지는 않더라도 통증이라도 잊을 수 있었으면 하는 서러움이다.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무신론자의 슬픔이다. 사무치는 그리움에 사나흘 마른 몸살을 앓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방문을 열면 쏟아지는 햇살과 폐부로 쏟아지는 바깥공기가 얼마나 중독성이 강한지. 이렇듯 항상 세상이 살아볼 만한, 중독성 강한 아편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게도 본향은 있는 것일까?

사원은 앞 모습 뿐만 아니라 4면 모두가 화려하다.
▲ 사원의 뒷 모습 사원은 앞 모습 뿐만 아니라 4면 모두가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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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산을 상징하는 성소탑을 감싸고 있는 탑고 사원 앞의 탑
▲ 바콩의 연잎 수미산을 상징하는 성소탑을 감싸고 있는 탑고 사원 앞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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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바콩사원, #수미산, #인드라바르만1세, #힌두교, #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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