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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오카방고의 숲속학교

- 글 : 트래버스, 앵것, 메이지, 오클리

- 옮긴이 : 홍한별

- 펴낸곳 : 갈라파고스(2005.1.7.)

- 책값 : 15000원

 

 (1) 봄과 학교

 

서른네 번째 맞이하는 봄입니다. 서른세 번째 겨울을 지났고 서른세 번째 가을도 지났습니다. 앞으로는 서른네 번째가 되는 여름과 가을입니다. 그런데 서른네 번째 여름이 두렵습니다. 지난 여름을 가까스로 넘겼는데 올여름은 얼마나 무더울지 두렵습니다. 다가올 가을도 두렵습니다. 더위가 가라앉으며 울긋불긋 높아가는 가을내를 맡고 싶은데 지난 가을에도 가을내를 못 맡았습니다. 돌아올 겨울이 두렵습니다. 겨울답지 않게 푸근하다가 내처 한두 달 동안 꽁꽁 얼어붙은 채 풀리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이리하여 2008년에 태어날 새 목숨붙이한테 봄을 봄대로, 여름을 여름대로, 가을을 가을대로, 겨울을 겨울대로 느끼도 받아들이도록 해 주지 못할까 싶어서, 무엇보다도 두렵습니다.

 

.. 사자들은 무자비한 자연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 자연에는 옳고 그른 것이 없다. 단지 야생의 삶은 힘들 뿐이다 … 사자들은 공간과 자유만 주어지면 자기들의 문제를 영리하게 창의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 그렇지만 사자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단 한 가지 있다. 총이다 … 누가 우선되어야 할까? 사람 아니면 사자? 지구의 일부를 따로 떼어놓아 야생동물이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야생동물에게 삶의 터전을 돌려주어야 할까, 아니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 생존조차 힘든 삶을 살도록 내버려두어야 할까? 물론 내 생각은 확고하다 ..  (208∼210쪽)

 

초중고등학교마다 새 학년 새 학기가 열렸습니다. 벌써부터 2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가 되어 3월은 아주 따뜻하다 못해 때로는 살짝 덥습니다. 종알종알 재잘재잘 하면서 집과 학교를 오가는 아이들을 봅니다. 서울 나들이를 하며 서울 시내와 골목길을 차 옆으로 아슬아슬 걸어가는 아이들을 봅니다. 인천에서 살며 인천 시내와 골목길을 차방귀 맡으며 걸어가는 아이들을 봅니다.

 

아이들 얼굴은 더없이 싱그럽고 살결은 뽀얗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폭신폭신한 운동신이나 딱딱한 구두를 신고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된 길만 밟습니다. 흙도 풀도 밟을 일이 없습니다. 때로는 아스팔트길조차 못 밟습니다. 자동차 시트만 밟습니다.

 

.. 무엇보다도 ‘마운’에서는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하지 않고 함께 놀고 어른들과도 잘 어울린다 ..  (28쪽)

 

골목길 한켠에 자라는 나무에는 참새라도 머뭅니다. 까치나 비둘기는 머물지 못합니다. 그래서 골목길에서 귀기울이고 걷거나 가만히 서거나 앉으면, 새소리를 듣습니다. 도심지에 심긴 나무에는 참새조차 살지 못합니다. 나무는 죽지 않고 어떻게든 버티며 줄기를 올리지만, 이놈 줄기마저도 봄을 앞두고 싹둑싹둑 잘립니다. 나무는 나무다울 수 없습니다. 나무다울 수 없는 나무에는 새가 보금자리를 틀지 못합니다. 새가 보금자리를 틀지 못하는 나무 둘레에는 그늘이 없고 자연이 없으며, 동네 아이와 어른도 모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메말라가는 나무 옆으로 맥도널드 가게가 있고 피자헛 가게가 있습니다. 과일주스와 커피를  파는 가게가 있고 이름난 신발과 옷을 파는 가게가 대낮에도 전기불을 환히 밝혀 놓고 있습니다. 햇볕은 못 들어오게 막아 놓으면서.

 

목이 마른 아이들은 곳곳에 있는 자판기를 찾아내어 동전 몇 알 집어넣고 탄산이 톡 쏘는 마실거리 깡통을 쪽쪽 빱니다. 또는 편의점이나 구멍가게에 들러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어 종이돈 한 장 내밀고는 쭉쭉 빱니다.

 

.. 숲에서 피터 아저씨와 함께 살기 전까지는 사자는 그냥 사자였다. 다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그놈이 그놈 같았고, 우리가 사자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은 엄마가 사 준 여행 안내서에서 주워모은 지식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사자를 너무나 잘 안다. 한 마리 한 마리를 잘 알고 사랑하기 때문에 사자 없는 삶은 이제 상상할 수 없다 ..  (83쪽)

 

학교에서는 틀림없이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거나 가르칩니다. 그러면 아이들 집에서는 얼마나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는가요. 학교에서 ‘환경 문제’를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가 없는가를 떠나서, 우리네 집에서는, 아이 아버지나 어머니는, 또 언니와 누나들은 얼마나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고 몸소 보여주는가요.

 

아이가 변기에 누고 내리는 똥과 오줌이 정화조를 거쳐서 하수도로 들어가고, 이 하수도로 들어간 물이 돌고 돌아서 수도물로 나오며, 정수기를 거쳐서 우리 물잔에 담기는 줄 배우는지요. 아이를 집과 학교와 학원으로 태워 주는 자동차가 내뿜는 배기가스가 하늘로 꾸역꾸역 모여서 산성비가 되어 땅으로 돌아온 뒤 땅속으로 스며들어서, 아이들이 사마시는 탄산음료 물이 되는 줄 느끼는지요. 아이 방을 채우고 있는 갖가지 장난감을 만드느라 공장에서 써 버리는 쓰레기물(폐수)이 강과 바다로 흘러들어가서 물고기를 병들게 하고, 우리는 이렇게 병든 물고기를 잡아서 저녁밥상에 올려놓고 있음을 헤아리는지요.

 

 

.. 지난 3년 간 우리는 아주 많이 성장했다. 우리는 이제 동물에 대한 이해자 자연을 보존하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사자를 직접 관찰하고 매일 사자의 일상을 쫓다 보니, 책이나 텔레비전에서 얻은 정보가 실제와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읽거나 본 것을 모두 맹목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직접 고생하면서 깨달은 것이다 ..  (97쪽)

 

제가 살고 있는 인천에서는, 옛 도심지에 있던 학교들이 일찌감치 ‘새 도심지가 될 곳’에 땅을 사서 학교 건물 새로 지어서 옮겼습니다. 새로 지은 학교마다 체육관이며 실습관이며 시설이며 …… ‘현대식’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들어섭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다니는 ‘새로 지은’ 학교에서 쓸 수 있는 ‘도서관 책 장만하는 돈’은 한 해에 200만 원을 겨우 넘을 뿐입니다. 다른 학교도 엇비슷합니다만, 그나마 이 200만 원도 ‘책 사는 데에 제대로 쓰이는지’ 아닌지 알 길이 없습니다. 더욱이, 이 돈 200만 원으로 ‘어떤 책을 사고 있는지’를 알 턱조차 없어요.

 

새 학교 짓는 데에 수십 억을 쏟아붓지만, 또 학교도서관을 꾸민다고 수 억이나 수천만 원을 들이지만, 정작 이 도서관에 갖출 책을 장만할 돈은 없습니다. 국공립도서관 형편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출판사에 공문을 띄워서 ‘책 기부를 해 달라’고 할 뿐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부천에 있는, 또 성남에 있는 어느 초등학교 교장이었을 때 찾아갔던 일을 떠올려봅니다. 당신 일하는 학교에서도 도서관 꾸미는 데에 정부 뒷배로 수천만 원을 받아서 깔끔하고 멋들어지게 꾸며 놓았지만, 정작 책을 사들여서 갖추어 놓는 데에는 ‘국고예산으로 한 해에 떨어지는 200만 원’에만 기댈 뿐이었습니다.

 

.. 우리가 상처를 돌보았다면 오히려 살아남을 가능성이 낮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자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무척 힘들었다. 사자가 사람이 만들어 놓은 덫에 걸렸거나 사람 때문에 다쳤다면 도와줘야 하겠지만, 자연 상태에서 다치거나 병에 걸렸을 때에는 스스로 이겨내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  (108쪽)

 

이제는 학교마다 급식실이 생겨서 도시락 싸들고 갈 일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급식비 내는 새로운 짐이 생깁니다. 또한, 아이마다 몸이 다르고 밥버릇이 다른데, 학교 급식은 얼마나 아이 하나하나에 맞출 수 있을까요. 집에서 도시락을 싸들고 오면 남기거나 버려지는 밥과 반찬이 거의 없을 텐데, 학교 급식실에서는 음식물쓰레기를 어떻게 간수하지요. 몸에 더 낫다고 하는 유기농 곡식을 학교 급식실에서 영양사가 사들여서 지지고 볶고 하기보다는, 학교 텃밭을 마련해서 아이와 교사가 손수 푸성귀를 길러서 먹도록 하면 한결 낫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괜한 걱정에 쓸데없는 마음씀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하나, 동네 아이들을 보면서, 또 우리 집에서 태어나 자라날 아이를 생각하면서, 이런 데에 눈길과 마음길이 쏠립니다. 부모 된 우리 어른들부터 ‘도시락 싸는 마음’을 잃고 ‘돈으로 때우는 마음’을 키우면서, 아이들한테 마음이 아닌 돈을 가르치고 있구나 싶어요. ‘더 많이 배웠으니 더 많이 나누자’ 하는 뜻을 가꾸기보다는, ‘더 많이 배웠으니 더 많은 돈을 나 혼자 벌자’는 뜻만 북돋우고 있구나 싶어요.

 

 

 (2) 아이들과 삶아갈 곳

 

.. 나는 지금 열여섯 살이고 운전을 한 지는 올해로 5년째다. 운전은 엄마한테 배웠다 … 이 사자를 아주 어릴 때부터 죽 봐 와서 이 녀석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녀석을 무척 좋아한다 ..  (16쪽)

 

학교 앞에서 차에 치여 죽은 아이 소식을 들으며, 국민학교 적 일을 생각해 냅니다. 저 다니던 국민학교에서도 한 차례인가 두 차례인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이가 있었습니다. 워낙 수출입 물동량이 많은 인천이고, 제가 다니는 국민학교 앞으로는 그때나 이제나 그 수출입 물동량 큰 짐차(컨테이너차나 자동차를 두 겹으로 싣고 다니는 짐차 따위)가 뻔질나게 다닙니다.

 

건널목이 있어도 건널목 푸른불에 제때 멈추는 차보다는 휙 하고 지나가는 차가 더 많습니다. 푸른불에 멈추지 않고 씽씽 달리는 차 때문에 건널목 푸른불이 다 바뀌도록 건너지 못한 적도 잦았습니다. 이럴 때에는 누군가 어른이 건널목에서 기다리다가 건너 주어야 겨우 마음을 놓고 후다닥 뜀박질을 하며 함께 건넜습니다. 건널목을 건너며 동무한테 ‘잘 가’ 하고 손인사를 하다가 귀옆을 쌔애액 하며 지나가는 큰 짐차가 일으키는 바람에 몸뚱이가 후들후들 떨리리며 간이 콩알만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다니던 국민학교 앞길부터 해서 일곱 군데나 되는 초중고등학교 앞을 지나가는 또다른 산업도로를 내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이 몹쓸 일을 지켜보던 동네사람들이 ‘생존권을 또 짓밟으려 하느냐’ 하면서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만, 이 일을 꾀하는 인천시 공무원들은 우리들 주민한테 한결같은 목소리로, “여기에 이런 찻길이 놓이면 오히려 공해가 줄고 동네가 살기 좋아지는데, 왜 반대를 합니까?” 하고 대꾸를 합니다. 올해에도,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 처음에는 숲을 돌아다녀도 아무것도 보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몇 차례 가다 보니 눈이 밝아지고 주변 환경에 더 민감해졌다 … 숲에 다닌 지 여러 달이 되었지만 사자를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사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한테 사자를 볼 수 있는 예리한 눈이 없었기 때문이다 ..  (52,58쪽)

 

동네 주민들이 인천시 도로과 공무원한테 따집니다. “당신들 집 앞에 이런 길을 낸다고 하면 거기서 살겠느냐”고. 도로과 공무원은 대꾸합니다. “나라면 내 집 앞에 이런 길을 내는 것을 찬성하겠다”고.

 

허허, 허허. 주민들은 말문이 막힙니다. 속이 울컥하면서, ‘당신 아이가 초등학생이고, 그 아이가 집에서 학교로 걸어가는 길에 그렇게 널따란 찻길이 새로 뚫리면서 그 길을 건너다녀야 하는 판이라면 마음놓고 학교에 보낼 수 있겠느냐’고 묻고 싶지만 묻지 않습니다.

 

이렇게 물었다가는, ‘부모가 뭐 하는 사람입니까, 그럴 때는 자가용에 아이를 태워서 학교를 다니게 하면 되잖습니까?’ 하는 대꾸가 돌아올 테니까. ‘차없는 사람은 어떡하라고?’ 따져 보았자, ‘차 한 대 장만하시면 되지요. 요새 차값이 얼마나 싼데, 그거 하나 못 사요. 그리고 요새 차 없는 집이 어디 있어요?’ 하는 대꾸만 돌아올 테고.

 

.. 우리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우리 삶을 이상화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비가 오는 날이면 눅눅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거나, 변소가 가득 차면 새로 파야 한다거나, 한밤중에 토했는데 물도 나오지 않고 전기도 나갔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  (122쪽)

 

자동차 이름 줄줄 외는 아이들, 게임 아이템 달달 외우는 아이들, 연예인 이름뿐 아니라 개인 삶까지 속속들이 꿰는 아이들. 아이들을 둘러싼 삶터가 이러하다면, 아이들한테는 한갓지고 조촐한 골목길이나 놀이터보다는,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오토바이가 훨씬 반갑고 고마운 선물일 수 있겠어요.

 

좀 더 깨끗한 물과 맑은 공기와 탁 트인 하늘과 따순 햇살과 싱그러운 무지개와 하이얀 구름과 파란 바다를 물려주고 싶은 제 마음이지만, 좀더 조용하며 이웃끼리 어깨동무하면서 살아가는 동네 삶터를 이어주고 싶은 제 마음이지만, 이런 제 마음은 한낱 헛꿈이나 개꿈일 수 있겠어요. 아이한테는 사랑보다는 돈을, 믿음보다는 큰 아파트를, 나눔보다는 빠른 차를 물려주어야 하는가 봐요.

 

.. 아기 때는 모래밭에서 기면서 곤충들을 보았고, 어린아이 때는 나무에 올라가 새를 보았고, 좀더 자라서는 아버지와 함께 사냥을 나가 동물들의 마음을 읽는 법을 배웠다 … 차 뒷좌석에 앉아서는 절대로 발견할 수 없는 아주 작은 것들이다. 숲을 보려는 사람들은 이렇게 자연을 이루는 구성원들을 먼저 보아야 한다. 아프리카에 오는 사람들이 그저 ‘다섯 거물(사자, 버펄로, 코끼리, 표범, 코뿔소)’만 보려고 하는 걸 보면 안타깝다. 조그만 생물들의 세계를 완전히 놓치고 마는 것이다. 왜 그런지 사람들은 이런 작은 동물들을 무서워한다. 인체에 무해한 벽거미를 텐트에서 눈에 뜨이는 족족 잡아 죽인다. 이 거미들이 자기들이 가져온 살충제만큼이나 모기를 죽이는 데 유용하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  (170쪽)

 

그나마 우리 집에 갖추고 있는 책들로 아이 마음밥을 넉넉히 살찌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집에서 마음밥을 아무리 넉넉히 받아먹는다고 해도, 이 삶터가 온통 자동차 소리와 배기가스로 어지럽고 시끄럽다면 어쩌지요. 아이 몸뚱이가 맑은 바람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아이 눈이 싱그러운 하늘을 올려다볼 수 없다면, 아이 발이 풋풋한 흙내음을 밟을 수 없다면, 아이 얼굴을 타고 땀방울이 흐를 만큼 뛰어놀 골목이 없다면.

 

 

 (3) <오카방고의 숲속학교>를 다시 한 번 덮으면서

 

영국 도심지에서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아프리카 벌판으로 옮겨가서 어린 나날을 보내게 된 네 아이 삶과 생각이 담긴 책 <오카방고의 숲속학교>를 읽어냅니다. 한 번 읽고 덮은 뒤 한 해쯤 묵히다가 다시 펼쳐서 읽고 덮습니다. 처음에는 부러운 녀석들이라고 생각하는 한편, 유럽놈들이니까 우리 나라와 같은 걱정이 없어서 이렇게도 살 수 있지 하는 짜증이 살짝 있었습니다. 세계 온나라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괴롭힌 녀석들인데 하는 짜증.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이런 마음은 말끔히 가시지 않습니다.

 

다만, 영국이나 유럽이나 미국이 세계 온나라를 식민지로 삼거나 괴롭히는 짓은 이 아이들 탓이 아니지 않느냐고, 또 이 아이네 부모는 그런 제 고향나라를 달가워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지 않느냐고 하는 생각.

 

.. 젖 떼는 시기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어미가 얼마나 잘 참아 주느냐, 다른 먹이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8개월이 되면 고기를 주로 먹는다. 우리의 관찰에 따르면 오래 젖을 빤 새끼가 더 건강한 것 같다 ..  (216쪽)

 

가만히 보면, 우리 나라가 일본한테 식민지살이를 겪었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 나라는 제3세계 나라에서 찾아오는 사람들, ‘이주노동자’를 모질게 괴롭히고 들볶고 등처먹고 푸대접하고 깔봅니다. 우리 나라는 미국한테 경제 식민지처럼 매여 있으나, 우리 나라가 울궈먹고 못살게 구는 가난한 나라가 퍽 많습니다. 말과 물이 선 나라뿐 아니라, 중국 조선족을 괴롭히고 따돌리는 우리 나라입니다. 일본 조선인을 깎아내리며 콧방귀도 안 뀌는 우리 나라입니다. 러시아 한인은 어떻고요.

 

.. 숲속 생활의 가장 큰 매력은 예측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숲에서 사는 생활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환상적이라고 말하면 거짓이겠지만, 많은 부분은 다른 어떤 삶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 ..  (92쪽)

 

덮었던 책을 다시 펼치며 사진을 죽 훑고, 책을 읽으며 밑줄을 그은 대목을 또 한 번 읽습니다. 마음속 깊은 데까지 건드려 준 좋은 이야기를 맛보았으면서 왜 이렇게 심통을 부리나 싶군요. 아무래도 마음그릇이 좁기 때문에, 마음닦기가 덜 되었기 때문에 이러나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 나라에서 마음짐 내려놓고 ‘개발 삽날’ 걱정 없이 해맑은 바람과 시원한 물을 즐기는 가운데 아이들을 키우면서 함께 살아갈 터전이 그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는 생각 때문에 슬퍼서 이러는구나 싶어요.

 

시골은 시골대로, 도시는 도시대로 제 모습 제 꿈 제 빛깔을 고이 간직하면서 어깨동무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더 많은 돈을 뽑아내는 개발이 아니라, 더 즐겁고 밝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 가꾸기로 눈길을 맞출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더 널리 함께하는 슬기로움이면 좋을 텐데. 더 많은 자격증이나 더 높은 졸업장이 아니라 더 따숩고 살가운 배움과 가르침으로 오순도순 어울릴 수 있는 이야기라면 좋을 텐데. 산업도로든 간선도로든 다른 무슨 길이든, 자동차만 다니는 길 닦는 데에만 수천 수만 수억 수조를 쏟아붓지 말고,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과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길을 있는 그대로 살려 놓으면 좋을 텐데. 그러면서 들짐승들과 날짐승이 살아갈 길을 지켜 주고.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책+헌책방+우리 말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오카방고의 숲속학교

트래버스 외 지음, 홍한별 옮김, 갈라파고스(2005)


태그:#책읽기, #자연, #오카방고의 숲속학교, #오카방고, #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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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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