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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군산꽃게장은 봄철에 잡히는 암게만 쓴다
▲ 군산꽃게장 이 집 군산꽃게장은 봄철에 잡히는 암게만 쓴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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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에서 태어난 나는 까까중일 때부터
어머니께서 뽀글뽀글 끓여주시던 꽃게된장찌개를 참 좋아했다
썬*한 된장국물에 발갛게 피어나던 맛꽃   
쌀알 서넛 섞인 보리밥 입에 물고
네 토막으로 잘린 통통한 몸통 입에 물면
고모부의 바다처럼 향긋하게 달겨들던 짭쪼롬한 맛   
탱자나무집 분이의 하얀 장단지 같은 꽃게다리 쪽쪽 빨면  
고모가 까주던 미더덕처럼 톡톡 불거지던 달착지근한 맛 
나는 지천명의 나이가 다가올 때쯤에서야
꽃게가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으로 거듭난다는 사실을 알았다
매화꽃잎이 함박눈처럼 흩날리는 오늘
김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쌀밥 두 그릇
꽃게장이 후딱 훔쳐갔다   

*썬/‘시원한’의 창원 말
- 이소리 ‘밥도둑! 게 섰거라’ 모두

군산꽃게장을 시키면 10가지 밑반찬이 따라 나온다
▲ 군산꽃게장 기본 상차림 군산꽃게장을 시키면 10가지 밑반찬이 따라 나온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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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난 고향은 경남 창원이다. 중부 경남에 속하는 창원은 삼한시대 철 생산지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창원도호부가 있었을 정도로, 바다를 낀 드넓은 평야가 곳곳에 박힌 경남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내가 태어난 창원 상남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였다. 바다는 마산의 나들목인 서쪽 장복산 끄트머리 봉암에 약간 맞닿아 있었다.

까닭에 창원 상남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간혹 바다가 보고 싶을 때면 1시간 반 만에 오는 미니버스를 타고 마산이나 진해로 가거나, 남천을 따라 2시간가량 걸어 내려가 봉암갯벌에 가야만 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어릴 때 바다를 자주 접하지는 못했다.

꽃게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가 살아있는 꽃게를 처음 본 것은 까까머리였던 여섯 살 무렵 봄이었던 것 같다. 그때 어머니께서는 우리 마을에서 유일하게 해산물을 머리에 이고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파는 진해댁이 저녁 무렵 마을로 돌아오면 쪼끔 남은 해산물을 보리쌀 두어 바가지와 맞바꾸곤 하셨다.

“이기 뭐꼬? 꽃게 아이가? 꽃게가 안주까지(아직까지) 살아 꿈틀대네.”
“마산 선창가에서 산 긴(건)데, 살이 통통하게 오른 기 알까지 꽉 차 있다카이. 아까 몽땅 다 팔라카다가(팔려고 하다가) 근동댁 생각이 나서 몇 마리 남겨 놨다 아이가. 보쌀(보리쌀) 쬐끔만 주라.”

그날 저녁 어머니께서는 꽃게를 깨끗하게 씻은 뒤 맛있는 꽃게된장찌개를 뽀글뽀글 끓이셨다. 밥상 위에 올라온 꽃게된장찌개는 정말 맛이 좋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나는 꽃게는 된장찌개를 끓여 먹는 음식으로 알았다. 하지만 지천명의 나이가 다가오던 지난해 늦봄, 여수에 사는 조찬현(50) 시인과 함께 돌산도 근처 한 식당에서 게장백반을 처음 먹어보았다. 사실, 처음에는 입맛이 그리 당기지 않았다. 근데, 먹으면 먹을수록 짭조름하면서도 달착지근한 게장 맛에 밥을 두 공기나 비워버렸다.

입맛 없을 땐 인사동 군산 꽃게장 드세요
▲ 봄철 잃어버린 입맛 되살리는 꽃게장 입맛 없을 땐 인사동 군산 꽃게장 드세요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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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둑 꽃게, 3월 중순~5월까지 가장 맛이 좋아

꽃게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나라 서해안 연평도 앞바다에서 주로 많이 잡히는 꽃게는 산란기인 5~6월에 약 1백만 개의 알을 낳는다. 따라서 꽃게는 속살과 알이 오동통하게 차오르는 3월 중순께부터 5월까지가 가장 맛이 좋다. 하긴, 꽃게가 오죽 맛이 좋았으면 남북 어부들이 꽃게를 잡기 위해 목숨까지 걸고 군사분계선(1999년 일어난 서해교전)을 넘나들었겠는가.

꽃게는 꽃게과에 속하는 갑각류의 하나이다. 조선시대 명의 허준이 쓴 <동의보감>에 따르면 “꽃게는 열기(熱氣)를 풀어줘 환자의 회목을 도와주며 어린이의 성장발육에 좋다. 꽃게살은 혈압을 정상적으로 유지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고 나와 있다.

꽃게는 단백질이 많고 지방질이 적은 데다 비타민과 아미노산이 듬뿍 들어 있어 특유의 감칠맛이 난다. 특히 간장에 담가 삭힌 뒤 등딱지를 떼고 반으로 잘라 양념장을 고루 끼얹어 하루쯤 두었다가 먹는 꽃게장의 감칠맛은 그야말로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그 맛이다.     

‘밥도둑’이란 애칭까지 가진 꽃게장은 전라남북도 향토 음식이다. 꽃게장을 담그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양념간장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꽃게장의 맛이 달라진다. 꽃게장이 짜고 비릿한 맛이 나는 것은 양념간장을 제대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꽃게장을 담그기 위해서는 우선 살아 있는 꽃게를 물에 넣고 게딱지와 다리를 문질러 가며 씻어 물기를 빼야 한다. 그다음 게의 등딱지를 떼고 배 쪽의 딱지를 반으로 썬 다음 집게발을 떼고 다시 반으로 가른다. 끝으로 간장에 채 썬 파, 마늘, 생강, 고춧가루, 깨소금을 넣어 양념간장을 만들어 그릇에 게를 담고 양념간장을 골고루 끼얹어 하루쯤 두었다가 먹으면 된다.

꽃게장!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 쟁반 위에 피어난 꽃 꽃게장!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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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그 집에 가면 꽃게장이 있다

“소리형! 오늘 군산꽃게장이 마악 도착했어. 요즈음 봄철이라 입맛도 없을 텐데 어서 맛보러 와. 맛이 끝내준다니깐.”
“1인분에 얼만데?”
“조금 비싸. 2만5천원이야. 하지만 혼자서는 다 못 먹어. 2~3명이 함께 먹어야 하는 거니까 그리 비싼 편도 아니지 뭘. 형이 손님 모시고 오면 특별히 푸짐하게 차려줄게.” 

지난 5일(수) 저녁 7시께, 오랜만에 윤재걸(시인, 언론인) 선생과 함께 인사동 그 집에 들렀다. 인사동 사거리 골목에 있는 그 집은 가난한 시인, 작가를 포함한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는 식당 겸 주막이다. 특히 이 집은 전라도에서 직접 공수한 해산물로 맛깔나게 조리를 해 그야말로 ‘배고프고 술고픈’ 서울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이 집 주인 김여옥(46, 시인)씨는 “꽃게는 군산에서, 홍어는 목포에서, 매생이는 해남에서, 참꼬막은 벌교에서, 굴비는 영광에서, 조기와 서대는 여수에서 직송해온다”고 말한다. 김씨의 고향이 전남 해남이니 ‘맛의 고장’ 전라도 음식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 있다는 투다.

막걸리 한 주전자와 함께 이 집이 자랑하는 ‘군산꽃게장’을 시킨다. 5분쯤 지났을까. 주인 김씨가 밑반찬으로 두부조림, 무나물, 고추장아찌, 김치, 마늘종조림, 멸치볶음, 싱건지, 조개젓, 계란찜 등을 차근차근 놓는다. 이윽고 오늘의 주인공인 꽃게찜이 식탁 한가운데 황제처럼 떡 하니 버티고 앉는다.

널찍한 쟁반 위에 초록색 파슬리와 양념장을 머리핀처럼 예쁘게 꽂고 있는 꽃게장이 꽃보다 더 아름답다. “저희 집은 봄에 잡히는 살아있는 암꽃게를 급속 냉동시켜 조리해요. 가을 꽃게는 봄 꽃게에 비해 알과 살이 적게 차거든요”라는 주인의 말을 들으며 꽃게장 한 토막을 집어 입에 물고 슬쩍 깨물자 꽉 찬 속살이 쏘옥 빨려든다.

밥 한 숟가락 입에 물고 꽃게장 입에 물면 세상 부러운 게 없다
▲ 꽃게장은 비리지 않고 달착지근하면서도 향긋하다 밥 한 숟가락 입에 물고 꽃게장 입에 물면 세상 부러운 게 없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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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 꽃게장, 혀끝을 끊임없이 농락하다

“히야! 역시 군산꽃게장이 최고야. 이 꽉 찬 알 좀 봐.”
“게장이 짜지도 비리지도 않고 달착지근하면서 향이 솔솔 나네요. 대체 양념장을 어떻게 만들었기에 이런 기막힌 맛이 날까?”
“쉬잇! 그건 저희 집만의 일급 비밀이에요.”
“군산꽃게장은 서해안산 생젓국에 감초와 당귀, 대추 등 한약재를 넣고 양념장을 넣은 뒤 중불로 3~4번 달여 숙성시켜 쓴다던데….”
“…….”   

더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쌀밥 한 숟가락 입에 넣고 꽃게를 쪼옥쪽 소리가 나게 빨아먹는 향긋하면서도 은은한 맛! 밥 한 숟갈 입에 넣고 딱딱한 게 다리를 물고 살짝 씹으면 톡톡 불거지는 게살의 짭조름한 듯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맛! 물컹한 살이 남아있는 게딱지에 밥을 얹고 참기름 두어 방울 떨어뜨려 비벼먹는 기막힌 감칠맛!

밥 도둑이 따로 없다. 다른 반찬도 필요 없다. 오로지 꽃게장 하나만 있으면 밥 두어 공기가 후딱 비워진다. 게다가 게장을 다 먹고 남은 간장은 더운 밥을 김에 싸 먹을 때나 각종 장조림, 고기절임, 생선조리, 비빔밥 등에 넣어 먹으면 그 맛이 3~4배 뛰어나다.     

밑반찬으로 나온 싱건지와 붉은 고추, 파가 송송 박힌 계란찜, 마늘종조림 맛도 그만이다. 특히 핑크빛이 맴도는 싱건지 국물은 해남 갓김치에서 우러난 국물이어서 그런지 약간 매콤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술을 확 깨게 만든다. 핑크빛 싱건지 국물 위에 동동 떠 있는 오이와 쪽파, 송송 썬 잘 익은 무를 아삭아삭 씹는 재미도 기막히다. 기분까지 상쾌해진다.

해남 갓김치로 우려낸 핑크빛 국물이 곱다
▲ 싱건지 해남 갓김치로 우려낸 핑크빛 국물이 곱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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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고추와 송송 썬 파가 박혀 있는 계란찜
▲ 계란찜 붉은고추와 송송 썬 파가 박혀 있는 계란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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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깔스럽게 나온 마늘종조림
▲ 마늘종조림 맛깔스럽게 나온 마늘종조림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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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봄철! 인사동 그 집에 가면 맛이 보인다. 인사동 그 집에 가면 군산꽃게장이 잃어버린 입맛을 끝없이 희롱한다. 살가운 벗들과 술 한 잔에 군산꽃게장을 맛깔스레 나눠 먹고 있으면 이 세상 시름이 저절로 사라진다. 하얀 쟁반 위에 꽃처럼 피어난 군산꽃게장! 너 이제 죽었다.


태그:#꽃게장, #군산꽃게찜, #인사동, #군산꽃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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