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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초에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어린이 가운데 짝꿍이 없는 '나홀로 입학생'은 전국적으로 130여 명에 이른다(잠정 집계). 이들이 다니게 될 대다수의 학교는 농·어촌 학교다. 사라져가는 농촌공동체를 아프게 대변하는 '나홀로 입학생'은 농·어촌의 '마지막 잎새'다. 지난 2000년 창간돼 올해로 만 여덟살이 된 <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여덟살의 '나홀로 입학생'의 벗이 되고자 한다. 시민기자, 독자와 함께 그들이 어떻게 '더불어 함께'의 기쁨을 찾을 수 있을지 모색해보고자 한다. 또한 이 기획을 통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함께 하는 마을' '더불어 함께'의 소중함도 되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전남 여수시 소라면 현천리 중촌마을. 여수 시내에서 5㎞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조그만 마을이지만 '기네스북 등재'라는 독특한 이력을 자랑한다. 등재 사유는 바로 '쌍둥이마을'. 1989년 기네스북에 오를 당시 중촌마을은 75가구 중 35가구에서 쌍둥이가 태어났다.

 

기네스북 등재와 함께 국내 방송국은 물론 일본 NHK가 취재를 해가기도 했다. 아이를 가지려는 여자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었음은 당연하다. 마을 어르신들에 따르면 약 120년 전 첫 쌍둥이가 태어난 후로 계속 쌍둥이가 태어났다고 한다.

 

이 기이한 쌍둥이마을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연구소에서 조사도 했지만 특별한 원인을 밝혀내진 못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마을 앞 동쪽에 자리 잡은 쌍봉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중촌마을은 북·남·서쪽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트인 곳은 동쪽 뿐이다. 그 동쪽에 바로 산봉우리가 두 개인 쌍봉산이 있다. 예전에는 소가 새끼를 낳아도 쌍둥이였다는 얘기까지 있었다고 하니 사람은 물론 동물까지 쌍봉산의 정기를 받는 셈이다.

 

기네스북에도 오른 쌍둥이마을의 학교, 지금은...

 

하지만 한 해 한 집만 아이를 낳아도 두 명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던 중촌마을에서도 이젠 아이 울음소리를 듣기 어려워졌다. 소라초등학교 소라남분교도 중촌마을의 부침과 운명을 같이하고 있다.

 

1943년 개교해 6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소라남초등학교는 개교 당시에는 현천리뿐만 아니라 복산·죽림·관기리의 학생들이 통학하는 제법 큰 규모의 학교였다. 1963년 근처에 관기, 신흥국민학교가 생기면서 학생 수가 줄긴 했지만 1972년에도 전교생이 505명이나 될 정도였다.

 

주민들이 노후된 교사를 철거하고 현대식 건물로 개축하는 등 노력했지만 결국 1999년 소라남초등학교는 폐교 위기에 처한다. 주민들의 반대 운동 끝에 결국 1999년 9월 1일 소라초등학교 소라남분교로 폐교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당시 폐교 반대 운동을 주도했던 정용준씨는 소라남'초등학교'가 소라남'분교'가 된 것에 대해 무척 속상해했다.

 

"'소라초등학교 소라남분교'라는 명칭 자체가 창피하다. 원래 관기와 신흥 초등학교는 이 학교에서 분교한 학교다. 그런데 그 두 학교는 건재하고 오히려 모교가 이 지경이 됐다는 게 속상하다."

 

관기리는 장애인을 보호하는 동백원이 있어 취학 아동이 있고, 신흥리는 해안가를 끼고 있는 부락이 많아 돈 벌려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 반대로 옛날부터 교통이 불편한 오지에다 정씨 집성촌이었던 현천리는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기 쉽지 않았다.

 

소라남분교 한 쪽에는 정용준씨의 할아버지 고 정병권옹이 6000여평에 달하는 학교 부지를 희사해 학교가 설립됐음을 기록한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소라남분교의 화려했던 역사는 이제 쓸쓸함만을 풍기며 서있다. 정용준씨가 심은 은행나무가 20여m까지 자라났고 집에서 옮겨 놓은 연자방아는 여전히 아름답게 서있지만 교정은 텅 비어 보인다.

 

3대가 소라남분교 동창생... 친구 한명 보내줘요

 

소라남분교는 올해 한 명의 입학생을 받았다. 지난 3월 3일 교무실에서 나홀로 입학식을 치른 정시온양.

 

시온이에게는 2학년 2명, 3학년 1명, 4학년~6학년 3명의 언니오빠들이 있을 뿐 동갑내기 한반 친구는 없다. 교사가 3명인 이 학교는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복식수업을 한다. 시온이는 아버지(정종필)·할아버지(정홍준)와 동창생이다. 소라남분교 3회 졸업생인 정홍준옹은 "자유당 시대에 학교가 지어졌는데 창문에 창호지를 바른 목조건물이었다. 당시에는 같은 학년이라도 7~8살 나이 차이가 나기도 했다. 그래서 신학기가 되면 공부를 못해도 나이 많은 학생을 상급 학년으로 진급시키기도 했다"고 말했다.

 

시온이는 아직은 학교 가는 게 좋다.

 

"집하고 학교가 가까워서 좋아요. 근데 친구가 한 명 더 있으면 좋겠어요. 2학년은 남자와 여자 2명인데 나는 혼자라 싫어요. 한 명만 보내줘요."

 

시온이의 어머니 김현숙씨는 예상보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시골에 내려온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 아파트에 살다 시골 주택에 사니 불편해 하던 아이들도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해졌다. 특히 시내에서는 평범한 아이였는데 여기서는 공부도 잘하니 자신감도 생기고 특별한 느낌을 받는 것 같다. 시골에 내려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수시는 저소득층·한부모가정·조부모가정·다문화가정 아동을 위해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현천리에도 현천지역아동센터가 있는데 유치부 3명, 초등부 24명, 중등부 8명이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현천지역아동센터 교사인 김승희씨는 "학교가 존재하는 것이 너무 좋다, 몇 년 전 우리 큰 아이도 그 학교에 보냈는데 이 작은 곳에서도 세계를 향한 꿈을 펼칠 수 있게 해줘서 학교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갔다"고 말했다.

 

무조건 사수 vs 학력 저하... 폐교 논란의 현주소

 

하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 있는 양미란 교사(분교장)의 고민은 좀 더 복잡해 보였다.

 

"아이들과 함께 자연과 더불어 살며 공부하는 게 좋아서 폐교를 반대했다. 4년째인 지금은 복식수업의 단점도 있다는 걸 느낀다. 고학년은 교육과정 면에서 너무 소규모다 보니 설명학습·협동학습·발표력·예체능 등에서 부족함이 있을 수 있다."

 

이같은 아쉬움은 학교 교육뿐만이 아니다. 방과 후 아이들은 어떻게 지낼까.

 

"엄마들이 인근 식당에서 일하거나 조부모 가정은 학업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래서 학생들이 센터에 나와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사교의 장소가 됐다. 때때로 학교 선생님들이 센터에 연락해 학생이 이런저런 부분이 부족하니 보충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사정이 이래도, 아이들은 여전히 '우리 학교'가 좋다. 센터에서 나와 동네로 들어가는 길에 강아지와 놀고 있는 아이들을 만났다. 소라남분교 2학년이라는 한 아이에게 "이 학교가 폐교돼 다른 학교로 전학가면 괜찮겠니?"하니 "싫어요, 그냥 여기 다니고 싶어요"라고 한다.

 

한 집 건너 쌍둥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나던 마을은 이제 한명의 입학생만 바라보는 적막한 곳이 되어 버렸다.

 

다행인 것은 지역 주민들이 학교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폐교 반대 운동에 열심이었던 현천중앙교회 김영천 목사의 고민도 비슷했다.

 

"학교를 없애기는 쉽지만 만들기는 어렵다. 대안학교도 만드는데 이 좋은 환경에서 학교가 없어진다는 건 안 된다. 현재 마을에서 약 15명 정도가 5㎞ 정도 떨어진 도원초등학교로 자가용이나 버스를 타고 다닌다. 복식수업 때문인데, 복식수업을 하면 교육 효과가 떨어진다. 학년별 수업을 하는 데 최소 12명이 필요한데, 그게 안 되니 복식수업을 하는 거다."

 

분교를 관장하는 소라초등학교 송규종 교장은 얼마 전 지역 학교 활성화 방안에 대한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에서는 "학교를 살려야 인구 유입이 되기 때문에 인구 유입이 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법적 뒷받침을 할 수 있는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논의들이 오갔다고 했다.

 

소라남분교는 현천리의 과거이자 미래다. 그 역사를 살리는 것은 사람들의 몫이다.

 

"체육대회 때 한번 가 보세요. 노인잔치 겸 마을의 축제입니다. 학교는 단순히 공부만을 위한 곳이 아니고 농어촌 지역의 정보센터이며 주민 공동체의 중심에 있습니다." (소라초등학교 류윤석 교감)


태그:#나홀로 입학생, #정시온, #소라남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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