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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조선일보> A2면에 실린 기사
 지난 15일 <조선일보> A2면에 실린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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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너무 실망스럽고 너무 화가 납니다. 역시 인종차별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은 힘든 일인가요? 저는 주한미국인이고 또 '흑인'이에요. 그냥 무식하게 쓴 기사라고 생각하면서도 꼭 내 칼럼을 통해 한마디 하고 싶었어요. 지난 15일 <조선일보> A2면에 실린 기사 "오바마, 미국인의 色안경 벗기다" 때문입니다.

"민주당의 흑인 예비후보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어머니가 백인"이고 "백인 외조부모와 함께 자라나 백인의 말투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를 '100% 흑인'으로 볼 수도 없"다구요? 진짜 토할 것 같았습니다.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정말로.

오바마의 인기가 '백인의 말투' 덕분?

지금 미국은 대단히 역사적인 시점에 서 있는데, 한국에서는 버락 오바마를 보고 "어머니가 백인"이기 때문에 성공했다거나 "백인의 말투"라서 말이 잘 통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군요. 그런 식이면 부모가 한국인인 재미교포는 모두 영어를 못한다는 건가요?

아, 맞다. 한국 사람들은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얼굴이 한국인이고 피부색이 흰색이 아니면 영어를 제대로 못한다는. 문화는 혈통으로 내려오는 것처럼. 맞다 맞아. 아직도 단일민족이란 의식에서 못 벗어났지요.

또한, 아직도 '사대주의'에 빠져있구요. 그래서 '흰' 피부를 보고 선하다고 생각하고 '검은' 피부를 보면 너무 싫어하는 것이지요. 하인즈 워드의 이야기는 너무 지겨우니 안 할게요. 무슨 말인지는 아실 거 아니에요.

앞서 언급한 <조선일보>류의 기사는 논리가 참 단순하지요. 오바마 같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아무리 대단하고 아무리 높이 올라간다 해도 개인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꼭 백인의 은혜 덕분이죠. 그런데 그것도 이제 지겨워요.

정치인 오바마의 오늘이 있게 한 학교·선생님·책·언론·친구들·주변 사람들과 같은 여러 요소는 전혀 고려할 수 없나요?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좋은 '말투'를 배운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고 그 모든 배경에는 오로지 '백인 어머니'밖에 없는 것인가요?

그러니 한국에서는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재미교포를 보고도 '진짜 미국인이 아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똑같은 논리로 흑인을 보면 '바보'로 보이는 거구요. '피'에 쓰여 있는 것처럼.

그런데 미국인의 색안경을 벗겨준 <조선일보> 기자는 너무 무식하네요. 오바마의 말투는 '흑인' 말투로 들릴 수 있거든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오바마가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의 고급스러운 남부 흑인 말투를 일부러 조금 키우려고 한 것 같은데, 무슨 "백인의 말투를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헛소리'를 하시나요? 잘 들어보면 분명히 멋진 '흑인의 말투'로 얘기하는 건데요.

무식한 기자의 헛소리는 현실

그렇다면 왜 이런 '헛소리'가 가능할까요? 아직도 한국에는 영어에 '흑인' 말투가 조금이라도 섞여있으면 무식하다고 생각하는 편견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미국 원어민인 저도 알아듣기 힘든 억양을 가진 호주·뉴질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 사람들도 너무 쉽게 영어 강사로 일할 수 있는 곳이 한국입니다. 그런데도 흑인은 혹시라도 아주 미묘한 '흑인' 말투가 있을까 봐 수준이 낮은 학원에서조차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곳 또한 한국이지요.

일단 한국에서는 흑인이면 제 아무리 자격이 있더라도 어렵다는 말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최고의 명문 사립고 가운데 하나인 필립스 앤도버 아카데미를 나왔고, 학부는 브라운 대학교에서, 대학원은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했지만 한국에서는 일반 학원에서조차 일하기 힘듭니다.

언젠가 박사학위 논문을 연구하면서 한국의 한 외고에서 미국사를 가르쳤던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취직된 후 "사실 여기서 떨어질 뻔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 "학교에 흑인이 있는 걸 학부모님들이 싫어할까 봐"라고 했다더군요. 덧붙여 "그런데 이력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뽑힌 것"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기분이 특별히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의 현실을 어느 정도 알고 왔으니까요. 저는 그 자리에 다른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서 갔고 거부할 수 없는 화려한(?) 이력서가 있었기 때문에 취직이 가능했겠지요. 그런데 만약 제가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어땠을까요? 제 이력서를 '빽'으로 이용 안했다면?

한국인에게 익숙한 흑인의 과장된 캐리커쳐의 예. 2004년 4월 <조선일보> 만평.
 한국인에게 익숙한 흑인의 과장된 캐리커쳐의 예. 2004년 4월 <조선일보> 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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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저는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을 때면 언제나 이메일로 이력서를 보낸 후에 먼저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하곤 합니다. "우와! 한국말 잘하시네요!"라는 말로서 긍정적인 의사를 확인했다 하더라도 실제로 만나면 쉽지 않습니다.

약속한 시간에 도착하면 "네, 어떻게 오셨어요? 아… 혹시… 마이클씨세요?"라고 묻지요. 그렇게 제 얼굴보고 이력서 보고 다시 얼굴보고 확인하는 식으로.

왜냐하면, 이메일과 전화만으로는 백인인 줄 알았을테니까요. 그래도 이력서와 통화로 미리 좋은 첫인상을 만들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나 봐요.

한국에서는 학원강사도 되기 어려운 오바마

아직도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이 마음속으로 백인 피부를 동경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미국이란 나라가 흑인 대통령을 선출한다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꼭 '백인 어머니'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흑인 최초의 미 국무장관이었던 콜린 파월은? '피부색이 그렇게 검지는 않다'고 할 테지요. 미국을 대표해 한국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자세히 조사하면 나타나지 않은 백인 조상의 유전자들이 많다'고 할 건가요?

오바마는 미국에서 대통령이 될 수 있을 테지만 한국에서는 학원강사도 될 수 없을 겁니다. "오바마, 미국인의 색안경 벗기다"고 말하는데 정작 한국에서는 아직….

덧붙이는 글 | 마이클 허트 기자는 1994년 미국 브라운대를 졸업한 후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한국에 처음 와 제주도의 한 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후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원에서 인류학으로 박사과정을 밟았으며 2002년 학위논문 연구를 위해 한국에 다시 왔다. 현재는 '폭탄영어'(www.bombenglish.com)를 비롯한 몇 개의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태그:#흑인, #오바마,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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