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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 찍으려고 '0번 버스'를 기다리며
▲ 좁은 산길 사진 한 장 찍으려고 '0번 버스'를 기다리며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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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여기 버스가 몇 시에 온댔지?”
“여긴 하루에 두 번밖에 안 온대. 아까 성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간표 봤을 때, 오전 10시에 한 대, 오후 3시에 한 대랬어.”
“그러면 우리 아까 저 위에 내리막길에 가서 버스 오는 거 기다리자. 시간도 얼추 됐겠다.”


산골 마을 경북 성주군 수륜면 작은리에는 하루에 버스가 두 대밖에 안 다닌다고 합니다. 게다가 여긴 길이 좁아서 버스 한 대가 가까스로 지나갈 만한데다가 때마침 맞은편에서 다른 차가 온다면 뒤로 한참 물러나서 길을 터줘야만 갈 수 있지요.

사진 한 장 찍으려고 두 시간을 목 빠지게 기다리다

산거리와 덕골까지 구경하고 나니 어느새 3시가 되었네요. 하루에 두 번밖에 안 온다는 ‘0번 버스’를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을 생각이었어요. 좁은 산길에 하얀 먼지를 내뿜으며 달리는 버스 사진은 꽤 남다를 듯했지요. 우리는 가장 좋은 구도가 잡힐 만한 곳에 자리를 잡고 한쪽으로 비켜서서 버스를 기다렸어요.

버스를 기다리면서 수첩에다가 산골마을 구경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갈무리도 하고 군것질도 하면서 무척 설레는 마음이었지요.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이렇게 깊고 좁은 산길에서 버스를 만나다니요. 그 모습을 사진기에 담으려고 하는 우리 마음이 어땠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거예요. 어쩌면 멋진 작품이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도 했고요.

기다리는 버스는 오지 않고... 아까 작은리 가는 길을 물었던 아저씨만 두 번 봤어요. "아따 두분, 보기 좋습니다." 하고 얘기했지만 '이 사람들 안 가고 여기서 뭐해!' 라곤 하지 않았을까?
▲ 다리 밑에서 기다리는 버스는 오지 않고... 아까 작은리 가는 길을 물었던 아저씨만 두 번 봤어요. "아따 두분, 보기 좋습니다." 하고 얘기했지만 '이 사람들 안 가고 여기서 뭐해!' 라곤 하지 않았을까?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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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모델이 된다. 기다리는 버스는 오지 않고 애꿎은 시간만 자꾸 축내고...
▲ "자! 이쪽으로 바짝 붙어서 가봐!" 나는 또 모델이 된다. 기다리는 버스는 오지 않고 애꿎은 시간만 자꾸 축내고...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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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하네. 틀림없이 아까 차 시간표에서 3시라고 쓰여 있었지?”
“그렇다니까, 아까 시간표 사진 찍었잖아? 한 번 봐봐!”


벌써 4시가 다 되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는 거였어요. 성주시외버스 터미널에서 3시에 떠났다면 지금쯤 너끈히 오고도 남을 시간인데 말이에요.

“하긴, 멋진 사진 한 장 찍기가 그리 쉬운 일인가? 더 기다려보자. 4시 반까지만 기다려보지 뭐.”
“하하하! 하긴 그래. 작품도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다면 훨씬 더 뿌듯할 거야!”


우리는 무턱대고 앉아서 기다렸어요. 좁은 흙길에 하얀 먼지를 날리며 달려오는 0번 버스를 찍으려고….

기다리다 지쳐 사진 찍기에 조금 더 좋은 자리도 알아보고, 또 우리끼리 가파른 산길에 자전거 타고 내려오는 걸 연출해서 사진도 찍곤 했어요.

나는 부지런히 모델만 되었다.
▲ 버스를 기다리며... 나는 부지런히 모델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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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안 되겠다. 우리가 버스 시간을 잘못 알고 있거나 아니면 이 길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희한하네. 틀림없이 3시 차라고 했는데…. 그나저나 이젠 어떡해? 벌써 다섯 시가 다 되었는데, 이대로 구미로 다시 가야 하나? 구미로 갈려면 시간이 빠듯한데 빨리 서둘러야 해.”
“가만 있어봐! 여기 이정표는 저쪽이 고령이라고 하니까 저기 위에 고개까지만 가보자.”


웬일인지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야속하게도 기다리던 버스는 오지 않았어요. 거의 두 시간 동안 기다렸는데 애꿎은 시간만 축내고 말았지요. 사실 아직 이틀 동안은 쉬는 날이기 때문에 오늘(8일)은 작은리 구경을 하고 구미로 갔다가 내일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고령에 다녀올 생각이었어요.

이쪽으로는 ‘구글어스’ 위성지도가 나와 있지 않아서 자전거를 타고 갈 ‘길 정보’가 하나도 없었어요. 마음 같아서는 고령까지 자전거로 가보고 싶었지만, 너무 위험한 생각이 들어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던 게지요. 여기 작은리에서 구미까지는 적어도 60km쯤 되는데, 날이 어두워지면 돌아갈 일이 걱정이라서 빨리 서둘러야 했답니다.

덕골 아래에는 작은 저수지가 하나 있어요. 그 곁으로 또 좁은 산길이 하나 있었는데, 아마 거긴 모방골로 가는 길인 듯했어요. 시간이 없어 거기까진 가보지 못했답니다.
▲ 저수지 덕골 아래에는 작은 저수지가 하나 있어요. 그 곁으로 또 좁은 산길이 하나 있었는데, 아마 거긴 모방골로 가는 길인 듯했어요. 시간이 없어 거기까진 가보지 못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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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절이라서 버스가 안 온다고요?

이정표에 고령이라 쓴 길을 따라 고개를 올라가니 그만 입이 딱 벌어졌어요.

“어! 여기도 마을이 있다!”
“어, 진짜! 여긴 또 무슨 마을이지?”


고갯마루에 서서 내려다보니 한 열 집쯤 되어 보이는 마을이 눈앞에 펼쳐졌어요. 굴뚝에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나고 낮은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퍽 정겨워보였답니다. 마치 고향집에 온 듯한 그런 풍경이었지요. 마을 앞에는 키가 큰 감나무가 있었는데, 그 위에 금방이라도 마을 이장님 목소리가 흘러나올 듯한 확성기가 높이 매달려 있어요.

작은리 마을 가운데 가장 꼭대기에 있는 거뫼 마을이에요. 고갯마루에 올라섰다가 난데없이 마을이 나와서 깜짝 놀랐지요. 마을 풍경은 참말로 아늑하고 정겹더군요.
▲ 거뫼 마을 작은리 마을 가운데 가장 꼭대기에 있는 거뫼 마을이에요. 고갯마루에 올라섰다가 난데없이 마을이 나와서 깜짝 놀랐지요. 마을 풍경은 참말로 아늑하고 정겹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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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풍경에 놀라 구석구석 살피며 구경을 하는데, 어떤 집 마당에서 아주머니 두 분이 무언가 일을 하고 있어서 얼른 달려가 인사를 했답니다.

“안녕하세요. 여긴 무슨 마을인가요?”
“여는 거뫼라요.”
“아아~! 여기가 거뫼 마을이네요.”
“그런데 버스가 여기까지 오나요?”
“여 우리 집 마당 앞에가 바로 버스 종점이라요. 여서 돌아갖고 다시 나가는데….”
“아, 그래요. 그런데 버스가 몇 시에 오는 대요?”
“오늘은 안 와요. 명절이라서 4일 동안 안 온다고 했어요.”


어이가 없었어요. 명절이라서 버스가 안 오다니요. 알고 보니, 명절 때는 고향 찾아오는 차가 많이 오니까, 다른 차와 마주치면 좁은 길에 서로 빠져나가기 힘드니까 버스가 안 들어온다는 거였어요. 우리는 그런 줄도 모르고 ‘0번 버스’를 찍으려고 거의 두 시간이나 무턱대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으니….

마을 앞에는 키가 큰 감나무가 있었는데, 그 위에 금방이라도 마을 이장님 목소리가 흘러나올 듯한 확성기가 높이 매달려 있어요.
▲ 확성기 마을 앞에는 키가 큰 감나무가 있었는데, 그 위에 금방이라도 마을 이장님 목소리가 흘러나올 듯한 확성기가 높이 매달려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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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락모락 연기가 피어나고 한 폭 그림 같아요.
▲ 굴뚝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나고 한 폭 그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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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왔다 해도 못 찍을 뻔 했네

더욱 기가 막힌 일은 이날 저녁에 밥을 먹으면서 알았는데, ‘0번 버스’는 우리가 작은리 마을로 들어오던 그 길로 다니는 게 아니었어요. 성주 대가면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왔던 그 길이 아니라 곧장 넘어가서 거꾸로 올라오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거뫼→ 산거리→ 덕골 이런 차례로 내려갔지만, ‘0번 버스’는 배티→ 개티→ 덕골→ 산거리→ 거뫼 이렇게 거꾸로 올라오는 길이라는 거지요. 그제야 아까 거뫼 마을 아주머니가 한 말을 알겠더라고요. 우리 집 마당 앞이 버스 종점이라고 하던 말이….

이날, 조금 비뚤어진 이정표 때문에 길을 찾는데 몹시 헷갈렸답니다. 이 사진으로 봐도 저기 왼쪽이 고령가는 길이라고 보이는데, 사실은 아래쪽 (사진에는 길이 보이는 쪽)이 고령가는 길이었어요. 정작 왼쪽은 거뫼 마을 가는 길이지요.
▲ 이정표 이날, 조금 비뚤어진 이정표 때문에 길을 찾는데 몹시 헷갈렸답니다. 이 사진으로 봐도 저기 왼쪽이 고령가는 길이라고 보이는데, 사실은 아래쪽 (사진에는 길이 보이는 쪽)이 고령가는 길이었어요. 정작 왼쪽은 거뫼 마을 가는 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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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르신, 이 길로 가면 고령으로 가나요?”
“언지, 여 내려가서 저 아래로 쭉 내려가야 되는데…. 절로 가면 산으로 가는 길이여.”


그러고 보니, 거뫼 마을 앞으로 난 길은 산꼭대기로 가게끔 길이 나 있었어요. 고령은 아까 우리가 내려갔다가 왔던 그 길로 다시 가야 하는 거였어요. 처음 올 때 이정표가 조금 비뚤어져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우리가 잘못 알았던 거였어요.

“자기야, 우리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고령까지 잔차로 가보자. 여기서 고령까지는 한 15km쯤 되니까 오늘 구미 갔다가 내일 다시 오느니 차라리 바로 가는 게 안 낫겠어?”
“그럴까? 그런데 고령까지는 길이 어떨지 몰라서 말이야. 갓길이라도 넓으면 괜찮은데 아까 대가면 들어올 때처럼 그런 길이면 거리가 아무리 짧아도 몹시 신경 쓰이거든.”
“구글 지도만 잘 나왔어도 미리 가늠할 수 있으니까 괜찮은데…. 어쨌든 가보자. 어차피 구미까지 간다 해도 거리가 만만찮으니까 날도 금방 어두워질 테고, 그래 가자!”


끝내 '0번버스'는 찍지 못하고 이제 고령으로 냅다 달려갑니다. 작은리 마을을 모두 벗어날 때까지 오직 보이는 건 산과 골짜기 뿐이랍니다. 그야말로 깊은 두메산골이에요.
▲ 이제 고령으로! 끝내 '0번버스'는 찍지 못하고 이제 고령으로 냅다 달려갑니다. 작은리 마을을 모두 벗어날 때까지 오직 보이는 건 산과 골짜기 뿐이랍니다. 그야말로 깊은 두메산골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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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를 따라 내려오면 '개티(개고개) 마을'이 나와요. 마당 안까지 훤히 들여다 보이는 집이 고향 생각 많이 나게 했답니다.
▲ 개티 마을 어느 집 골짜기를 따라 내려오면 '개티(개고개) 마을'이 나와요. 마당 안까지 훤히 들여다 보이는 집이 고향 생각 많이 나게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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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까지 돌아갈 거리를 생각하니 시간이 너무 빠듯하고, 고령까지는 거리는 짧지만 길이 어떨지 몰라 몹시 걱정은 했지만 덮어놓고 고령으로 가기로 했어요. 그런데 막상 작은리 마을을 벗어나 33번국도로 나오니 길이 아주 시원시원했어요. 지나가는 차는 많았어도 생각보다 갓길이 넓어서 아주 즐겁게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었지요.

‘0번 버스’ 사진 한 장 찍으려고 두 시간이나 무턱대고 앉아서 기다린 일이나, 비뚤어진 이정표 때문에 헷갈린 일이나 또 구미로 가려다 말고 고령까지 자전거로 넘어온 일이나, 오늘 하루 동안에 벌어진 일을 생각하니 어이없기도 하고 퍽 재밌기도 했답니다. 자 이제 다음에는 ‘대가야국 고령’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태그:#0번버스, #거뫼 마을, #자전거, #작은리, #오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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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자전거는 자전車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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