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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츠(Straats) 다리를 지나 잘츠부르크(Salzburg) 구시가에 들어섰다. 잘츠부르크 구시가 북쪽은 잘자흐(Salzach) 강이 흐르고, 남쪽에는 묀히스베르크(Mönchsberg) 산이 버티고 서 있다. 우리는 묀히스베르크 산의 절벽 아래에 세워진 큰 성당에서부터 걸음을 시작했다. 산 위의 호엔잘츠부르크(Hohensalzburg) 성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거리이다.
▲ 게트라이데 거리.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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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사이의 골목은 고건축물들을 훼손하지 않도록 건물 1층을 관통하여 연결되어 있었다. 차 두 대 정도가 지나가면 꽉 찰 것 같은 700여년 전의 거리가 눈앞에 다가왔고, 동서 방향으로 길게 이어지는 거리 양쪽에는 지어진 지 수백 년이 된 가게들이 도열하듯이 늘어서 있었다.

모차르트가 이 도시에서 살던 당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듯한 이 거리는 그 이름 유명한 게트라이데 거리(Getreide Gasse)이다. 나에게 이 거리를 표현하라고 한다면, 유럽에서 가장 예쁘고 운치 있는 거리 중의 하나라고 말할 것이다.

이 거리를 가득 메운 5, 6층 건물들은 대부분이 상점들인데, 핸드백, 하이힐, 신발을 파는 고급 명품 가게에서부터 크리스마스 장식품과 선물용으로 좋은 부활절 달걀을 판매하는 가게까지 다양한 상점들이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수공예로 만든 파티 의상과 오스트리아 전통의상을 판매하는 가게들 앞에서 아내가 멈추어 섰다. 예쁜 옷가게들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는 아내는 어린이들의 전통의상을 파는 한 가게로 들어갔다.

배색이 예쁘고 유럽의 정취가 풍긴다.
▲ 전통 옷가게. 배색이 예쁘고 유럽의 정취가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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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들의 옷이었지만 옷의 배색이 유럽의 향취가 물씬 풍길 정도로 아기자기하고 우아하다. 수공예로 만들어졌을 옷들은 푸른색과 붉은색 원단이 적절히 어울려 있고 오스트리아인들의 취향을 보여주는 레이스가 예뻤다. 게트라이데 거리 쪽 쇼윈도에는 이 어린이 전통의상 중에서도 가장 앙증맞은 옷이 전시되어 있다.

아내는 어린 신영이의 옷을 사려고 가장 예쁜 옷을 들어 신영이의 몸에 대 보았다. 눈으로 보기에는 그리 커 보이지 않는 옷이었는데, 옷의 크기가 신영이보다 꽤 커서 살 수는 없었다.

옷과 몸에 온통 황금색으로 도색을 한 사나이이다.
▲ 게트라이데 거리의 퍼포먼스. 옷과 몸에 온통 황금색으로 도색을 한 사나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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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관광객들의 인파로 넘쳐나고 있었다. 거리에는 나무 바구니에 장난감을 가지고 와서 파는 아주머니도 있고, 옷과 몸을 온통 황금색으로 도색을 하고 퍼포먼스를 펼치는 거리의 예술가도 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자기가 관심이 있는 물건을 사기도 하고, 잠시 퍼포먼스를 감상하기도 한다. 퍼포먼스를 하는 황금빛 사나이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신영이는 그와 기념사진을 찍고 나는 그에게 약간의 공연료를 주었다.

게트라이데 거리를 한층 더 멋스럽게 하는 결정적인 볼거리는 가게마다 거리를 향해 삐죽 튀어나온 청동제 간판들이다. 어느 거리에건 상점에는 간판들이 있지만, 이곳 상점의 간판들은 모두 건물의 외관과 기막히게 어울리고 있었다. 수공예로 만들어진 이 간판들은 그 가게에서 파는 상품들의 특징을 한눈에 보여주는 독특한 간판들이다.

이 그림 모양의 간판들은 중세 시대에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가게에서 파는 물건을 알리기 위해 제작되었던 것들이다. 가게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그림 위주의 간판만 보고도 그 가게가 무엇을 파는 가게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간판에 글이 없어도 무엇을 파는 가게인지 알 수 있다.
▲ 게트라이데 거리의 간판. 간판에 글이 없어도 무엇을 파는 가게인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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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청동제 간판들에는 가게 주인의 개성이 가득 묻어난다. 우산 가게에는 입체적인 우산이 간판에 걸려 있고, 신발 가게 간판에는 황금색 부츠가 걸려 있다. 이 고전적인 거리에서는 미국 패스트푸드 음식점인 맥도날드의 간판마저도 예쁘고 조잡하지 않게 만들어져 있다.

역동적인 근육을 자랑하는 사자와 독수리가 월계관을 잡고 있는 간판 속에 맥도날드를 상징하는 'M'자가 들어 있고, 세계적으로 맥도날드를 상징하는 희화적인 피에로 ‘로널드 맥도날드(Ronald McDonald)’는 이 거리에 없다. 루이뷔통 같은 국제적인 브랜드 가게의 간판도 자사 간판의 디자인을 거부하고 이 거리의 간판 문화에 동조하고 있었다.

이 거리의 간판을 통해서 가게의 역사도 한눈에 알 수 있다. 한 아이스크림 가게는 1958년부터 영업 중이라고 간판에 적혀 있고, 역사가 무려 200년이나 된 간판도 있다. 이 작은 거리가 이름이 자자한 것은 현대에까지 이런 전통이 죽지 않고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적이고 깔끔한 간판만으로도 이 거리는 명성을 얻고 있었다. 나는 저 예쁜 간판들을 뜯어 와서 서울의 현란하고 무질서한 간판들을 바꿔놓고 싶었다.

게트라이데 거리에서는 예쁜 간판들만 내 눈에 계속 들어왔다. 나는 간판들을 향해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나는 간판을 한 개, 두 개 찍기 시작하다가 계속해서 이 거리의 거의 모든 간판들을 찍고 있었다. 한 간판도 놓치기가 아까울 정도로 모두가 예쁘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의 디지털 카메라 메모리 카드는 예상치 않은 용량으로 꽉 차게 되었다.

나의 가족은 우산가게, '키르크탁(kirchtag)'에 들어갔다. 우산은 비 올 때 쓰는 것이지만 쇼 윈도에 진열된 형형색색의 오스트리아 전통 우산은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우리는 마음에 드는 우산 2개를 골라 서로 품평을 하였다. 신영이와 내가 정확히 동일한 타이밍으로 오렌지색과 노란색이 무지개 같이 어울린 우산을 손가락으로 지목했다. 가게의 아주머니는 가게에 들어와서 순식간에 한 우산을 결정하고 계산을 하는 동양의 한 가족을 시종 웃으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거리의 소파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것도 여행의 재미
▲ 거리의 아이스크림 가게. 거리의 소파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것도 여행의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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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트라이데 거리에는 옷을 파는 가게들 외에도 카페와 레스토랑,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었다. 아이스크림 가게, ‘트렘 아이스(treml eis)’ 앞에 다리를 쉬어갈 만한 플라스틱 소파가 놓여 있었다. 우리는 마침 비어 있는 플라스틱 소파에 앉아 조금 쉬어가기로 했다. 아내는 초콜릿 아이스크림, 나와 신영이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사서 자리에 앉았다. 유럽의 양 많은 아이스크림 콘이 신영이의 한 손 가득히 들어왔다.

여행 중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이는 나는, 역설적이게도 여행 중에 이렇게 편안히 앉아 있는 시간을 너무 좋아한다. 아이스크림 가게 앞의 수많은 인파는 나의 눈앞을 지나가지만 전혀 시끄럽지 않았다. 내 머리 속에는 다음 여정이 떠나가지 않지만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고풍스러운 가게들은 내가 왜 이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국제화된 우리나라의 아이스크림 맛과 잘츠부르크 게트라이데 거리의 아이스크림 맛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머리는 이 게트라이데 거리의 아이스크림에 대단한 만족을 하고 있었다.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이지만 역사를 자랑하고 있고, 가게의 아름다운 간판이 문화적 풍만감을 전해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이스크림의 콘까지 남김  없이 먹었다. 나는 마치 잘츠부르크 구시가의 문화적 전통을 남기지 않고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게트라이데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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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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