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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케인(Citizen Kane)'

 

'거물'이 죽었다. 오늘날로 치면 루퍼트 머독 정도로 여겨도 될 사람이다. 아니, 능가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신문과 잡지의 소유주이자 출판인이며,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였다. 그의 이름은 '찰스 포스터 케인'이다.

 

사망 당시 70세였던 찰스 포스터 케인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였으며, 많은 정치인들과의 교분을 바탕으로 미국의 정치와 사회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어떻게 그런 엄청난 영향력을 견지하는 부자가 됐는지부터 돌아보자. 그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다. 아버지의 구타가 끊임없이 이어졌으며, 어머니의 사랑만이 그를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었다. 그런 그의 어린 시절 유일한 친구는 눈사람과 썰매였다. 그것이 그가 세상과 소통하며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길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얻게 된 쓸모없는 광산에서 노다지가 쏟아져 나와 엄청난 부자가 된다. 뉴욕 인콰이어러지 인수와 함께, 과감한 폭로기사들이 줄을 이어 발행부수가 급격히 늘어난다. 이를 바탕으로 케인은 언론재벌이 됐다. 아버지에게 구타당하면서, 어머니와 눈사람, 그리고 썰매에 의지하던 어린 시절의 아픔을 극복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 아니다. 대통령의 조카사위가 됐지만, 여가수와의 불륜 때문에 선거에서도 낙선했으며, 이혼도 경험한다.

 

아들도 이혼한 아내와 함께 교통사고로 사망했으며, 가수로서의 큰 재능이 없음에도 케인이 가수 활동을 밀어붙였던 그 여가수도 자살을 선택한다. 돈을 많이 벌고, 권력도 거머쥐었지만, 그는 외로웠다. 죽어가던 마지막 순간에도 그는 혼자였다.

 

 

그의 유언은 단 한마디였다. '장미 꽃봉오리(Rosebud)'.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기자 톰슨이 그 의미를 파악하고자 열심히 노력하지만, 끝내 그도 실패한다.

 

하지만 영화 <시민 케인>을 마지막까지 지켜본 관객은 그 마지막을 지켜보고서야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게 된다. '장미 꽃봉오리'는 그의 어린 날에 숨어 있었다. 그는 뭐든 다 가진 것 같은 지금의 삶 속에서, 어린 날의 한때 기억을 떠올리며 그리워한 것이다.

 

"짐이 곧 국가"임을 주장했고, '태양왕'으로 불리었다던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이야기를 떠올려도 좋다. 나라의 재정을 파탄낼 정도로 호화로운 궁정생활을 유지했던 루이 14세의 장례식에서 신부는 뭐라고 이야기했을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루이 14세든, '시민 케인'이든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장미 꽃봉오리'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는 우리들의 현실에도 많은 것을 전해준다.

 

'시민 이건희'

 

오손 웰즈가 그린 '시민 케인'은 이중적이다. 돈과 권력은 얻었지만, 일생동안 그를 괴롭혔던 외로움을 해소하지는 못했다. 아니, 돈과 권력은 오히려 그 외로움을 심화시켰다. 물론, 그렇다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왜 '장미 꽃봉오리'를 유언으로 남겼을까? '장미 꽃봉오리'는 아버지의 구타 속에서, 그가 삶의 위안을 느끼게끔 했던 '친구'나 다름없는 단어다.

 

수많은 돈과 거침없는 권력을 얻었지만, '장미 꽃봉오리'만큼의 위안을 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에 대한 집착이 아내와 애인, 그리고 아들까지 떠나보내게 했으며, 결국은 그에게 더 큰 외로움을 안겨줬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내가 부자가 되지 못했더라면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 됐을텐데 말야."

 

<탈무드>에도 그와 비슷한 취지의 이야기가 있다. "아무것도 칠해지지 않은 창문을 볼 때는 창밖의 풍경이 그대로 보이지만, 그 유리에 은을 칠하면 거울이 돼 결국 나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시민 이건희'는 현재, 이런 위기에 처해져 있다. 수많은 불법과 비리를 저질렀다는 의혹의 중심에 서 있다. 수많은 관료들과 법조인들을 '장학생'으로 뒀으며,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비자금으로 고가의 미술품을 대량으로 구입했으며, 아들에게 자신이 소유한 부와 지배력을 그대로 물려주기 위해 법을 어겼다는 의혹도 있다.

 

그의 책임 하에 있는 중공업은 기름유출 사고의 주역이면서도 뒤늦게 사과를 했고, 보상 문제에 대해 소극적으로 나서면서 국민적인 지탄을 얻고 있다. 사과 광고조차도 비판적인 언론에는 제공하지 않았을 정도다.

 

그렇다면, '시민 이건희'는 행복했을까? 아닌 것 같다. 부와 권력은 그만큼의 무게를 주기도 한다. 그는 1995년에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거대한 책임의 산 앞에 서 있는 나는 절대 고독을 느꼈다."

 

그의 회사에서는 '노조'를 만들 수 없었으며, '노조'를 만들려 했다가 큰 봉변을 당했다는 사람들의 증언과 사례들도 쏟아진다. 그래서 그는, 양식있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온갖 불법 비리 의혹이 불거짐으로써, 최악의 위기와 '절대 고독'을 다시 느끼게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양식있는 사람들은 그 '절대 고독'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이해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가 부와 권력을 누리고 아들에게 전하기 위해 저질렀다는 불법 비리 의혹은 너무도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설령, 특검의 수사와 법원의 재판 결과를 거쳐 그의 정당함이 입증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시민 이건희'가 '장미 꽃봉오리'를 말한다면,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물론, 그는 '시민 케인'과는 달리 가족이 있으며, 충실한 부하들도 있다. 하지만, 그 범위를 벗어난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는 '시민 케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주목받는 대재벌이기는 해도, 존경받지는 못한다는 의미니까.

 

누군가 <시민 이건희>라는 영화를 제작하려 한다면?

 

<시민 케인>과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고 한다. '시민 케인'의 모델은 따로 있다. <코스모폴리탄>과 <에스콰이어>, <레드북> 등을 소유한 미디어 그룹의 창시자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다.

 

그는 <시민 케인>의 주인공 모델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면서, 대단히 불쾌해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소유한 언론에서는 <시민 케인>의 제작사인 RKO의 광고를 받지 않도록 했다고 하며, RKO를 향해서도 영화 제작을 멈추는 조건으로, '제작비 보상'을 제안했다고도 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라는 생각, 혹시 들지 않으시던가?

 

혹시, 어느 용감한 영화인과 영화제작사가 <시민 이건희>라는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발표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과연, 그는 그것을 그저 지켜보기만 할까?

 

비판적인 언론에 대해 '광고 제공'을 매개로 통제하려 했으며, 뛰어난 정보력으로 비판적인 시민단체의 회의록을 곧바로 입수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음을 돌아보자.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와 비슷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을 것 같다.

 

과연, '시민 이건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부터 시작된 '삼성 특검'이 결국 그에게 치명적인 결과로 작용될까? 아니면, 수많은 사람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면죄부를 받게 될까? 하지만, 혹시 '면죄부'를 받는다 해도, 그의 '절대 고독'은 여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장미 꽃봉오리', 혹시 '시민 이건희'도 이 말을 읊는다면, <시민 케인>을 지켜본 수많은 영화학도와 영화 마니아들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시민 케인>에서는 톰슨 기자가 '장미 꽃봉오리'의 의미를 결국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처리됐지만, 영화학도와 영화 마니아들은 오손 웰즈의 기막힌 연출 솜씨 덕분에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한가지 열쇠를 제공한다면, 그가 느꼈다는 '절대 고독'은 지배와 보전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시작된다. '시민 케인'이 외롭게 된 이유와 똑같은 것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게 오손 웰즈 감독 겸 주연의 <시민 케인>을 추천해본다. 마지막 장면, 결코 놓치지 말길 바란다. 그 마지막 장면에, '시민 케인'의 외로움과 그 외로움의 끝이 모두 담겨있기 때문이다.

 

'시민 이건희'도 그 마지막 장면에서 '열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가졌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한 사내가 느낀 외로움과 슬픔이 담긴 키워드이니, 그도 깨달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인생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지만, 인간에게 한가지 이상의 교훈을 느끼게 해줄 수는 있다. '시민 이건희'는 그 진리를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삼성 특검, #이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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