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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
- 글 : 쿠루사
- 그림 : 모니카 도페르트
- 옮긴이 : 최성희
- 펴낸곳 : 동쪽나라(2003.10.15.)
- 책값 : 6800원

 

 (1) 눈과 길


밤부터 눈이 내립니다. 소록소록 내리는 눈발은 멎지 않습니다. 차곡차곡 쌓이며 온 동네를 하얗게 물들입니다. 요 가까이에 있는 제일제당 공장에서 내뿜는 연기도, 두산중공업 공장에서 내뿜는 연기도, 동일방직 공장에서 내뿜는 연기도, 동국제강과 인천제철에서 내뿜는 연기도 잠재우면서 눈이 내립니다.

 

집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철길에도 눈이 쌓입니다. 서울로 들어서는 경인고속도로 들머리에도 눈이 쌓일 테지요.

 

걸어가면 코 닿을 자리에 있는 인천 제2부두, 제3부두, 제4부두, 만석부두, 화수부두에도 눈이 쌓일 겝니다.

 

얼마 앞서까지 유리공장이 있던 터에도 눈이 쌓일 터이고, 골목집을 쓸어내고 우뚝 솟아 버린 아파트 지붕에도 눈이 쌓이겠지요.


.. 그리 멀지 않은 옛날, 칼리토스의 할아버지가 어린아이였을 때만 해도, 베네수엘라의 산에서는 퓨마가 울부짖었습니다. 당시의 산은 거의 원시의 모습이었습니다. 커다란 나무들과 작은 잡목들이 우거진 숲속에는 계곡이 뻗어 있고, 좁은 오솔길이 나 있었습니다 ..  (1쪽)


아침에 뒷간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다가 창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건너편 빈집 3층 창가에 비둘기 한 마리가 오들오들 떨며 옹크리고 있습니다. 그러게, 참. 이렇게 눈이 소복소복 쌓이면 날짐승들은 어떻게 먹이를 얻지? 어디에서 따순 잠자리를 마련하지? 보금자리 틀 나뭇가지 하나 찾을 수 없는 도심지에서, 보금자리 틀 키큰나무 한 그루 없는 도심지에서, 짓궂은 사람들 손길을 안 탈 만한 조용하고 호젓한 자리 하나 찾을 길 없는 도심지에서, 비둘기며 까치며 참새며 박새며 어떻게 겨울나기를 할 수 있담.

 

비둘기가 자주 앉아서 쉬는 창턱에 옆지기가 빵조각을 뜯어서 놓곤 합니다. 그러나 비둘기는 이 빵조각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저 앉았다 떠날 뿐입니다.


..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무엇보다 베네수엘라 각지의 소도시와 농촌에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몰려와 산기슭에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어른들이 집을 짓는 동안, 아이들은 나무에 오르거나 계곡에서 물장구를 치거나 널찍한 공터를 뛰어다니며 놀았습니다 ..  (5쪽)


눈이 쌓이니 자동차는 하나같이 굼벵이가 됩니다. 이런 길에는 아예 차를 못 몰겠다며 투덜거리며 길을 나설 분이 있을까요. 대중교통 타야겠구나 하며 일찌감치 길을 나설 분이 있을까요.

 

방학을 맞이하여 집에서 쉬는 아이들은 방학숙제며 학원숙제를 잠깐이마나 제쳐놓고 동무들한테 사발통문을 돌려서 ‘눈싸움 하자!’고 들떠 할까요. ‘뭔 놈의 눈이 이렇게 와?’ 하면서, 골목집 사람들은 빗자루를 들고 골목길을 쓰윽쓰윽 쓸고 있을까요.

 

저도 사진기를 어깨에 메고 살그머니 골목길 마실을 나가 보아야겠습니다. 눈발 날리는 골목길에서 뒹굴며 노는 아이가 있는지, 눈발이 멎기를 기다리며 사람들이 미끄러지지 않게 언 손 녹여가며 골목길 쓰는 어르신이 있는지 살펴보러.


.. 예전에는 계곡 아래가 풀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높다란 건물들이 차지해 버렸습니다. 그곳에서 바라본 언덕배기는 집들로 빈틈없이 뒤덮여 있었습니다. 큰길은 고속도로가 되어 더욱 위험해졌습니다. 산에는 나무 몇 그루만 겨우 남아 있었고, 그 많던 꽃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뛰어놀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  (11쪽)


(2) 종합건설본부 공무원과 길


어제, 1월 10일 낮 세 시, 인천종합건설본부는, 인천 동구 청소년수련관에서 ‘주민 몰래 주민설명회’를 열려고 했습니다. 중구 삼익아파트 앞부터 동구 동국제강까지 2.51km 길이에 너비 50m가 넘는 산업도로를 뚫겠다는 생각을 그예 밀어붙이려고만 했습니다.

 

어제 ‘주민설명회’라는 자리를 하기 앞서, 종합건설본부는 인천 동구청과 동구에 있는 동사무소에만 7일날 깜짝통보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이 산업도로라는 길이 뚫릴 때 피해를 입게 될 주민들한테는 아무 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귀띔도 알림글도 공문도 걸개천 같은 것 하나 없이 몰래 하려다가 주민대책위 사람들이 알게 되었고, 허울로만 주민설명회를 열었다고 내세우면서 막공사를 밀어붙이려 했기 때문에 이런 짓을 못하게 막았습니다.

 

종합건설본부 사람들은 말합니다. “설명회가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지만 협조와 의견수렴을 거치고자 했다. 그러나 필요성을 알리려 해도 도저히 설득이 안돼 답답할 따름”이라고(경인일보 2008.1.11.).


.. 아이들은 풀이 죽은 채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계단에 앉아 각자 자기의 생각을 말했습니다. “우리들이 놀 만한 장소가 어딘가에 틀림없이 있을 거야.” 맨 먼저 말한 아이는 키가 큰 카밀라였습니다. “그런 장소는 없을 것 같아. 차라리 시장님을 만나서 우리한테 놀이터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드리자.” 한 아이가 그렇게 제안했습니다. “시장님 집이 어딘데?” ..  (22쪽)


인천시 공무원은 말합니다.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지만 계획안을 내놓기 전에 이미 많은 대화를 했기 때문에 시 계획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 다음 주민설명회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았지만 시가 세운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고(인천일보 2008.1.11.).

 

이런 말도 덧붙입니다. “지난 달, 동 자치위원들과 도로개설에 따른 소음방지를 위한, 터널 확장, 녹지조성 등 여러 대안과 관련해 설명하는 자리에서 설명회 요청이 있어 이번에 개최하는 것 … 이미 행정절차는 다 끝난 마당에 굳이 절차적인(요식적인) 설명회를 열 이유는 없다”고(인천신문 2008.1.11.).

 

그러면, ‘굳이 안 해도 되는 설명회’를 왜 열려고 했을까요. 게다가 ‘굳이 안 해도 되는 설명회를 왜 몰래 하려고’ 했을까요. 종합건설본부와 시청 공무원들이 만난 ‘주민’은 참말로 어디에서 뭘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일까요. 이들은 ‘주민’이라는 사람을 만나기라도 했을까 모르겠습니다. 또한, ‘주민을 부르지 않으면’서 왜 ‘주민설명회’라는 이름을 내걸었을까 모르겠습니다.

 


.. “네, 그래요. 저희들은 시청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만나러 왔어요. 저희들은 놀이터가 필요해요.” “아저씨, 들어가게 해 주세요.” “한가하게 너희들을 만나 줄 사람은 이곳에 없다. 그러니 다들 집으로 돌아가거라.” 경비원 아저씨가 그렇게 말했지만 아이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돌아가라는데 왜 말을 안 듣는 거야? 어서 돌아가! 여기에서 얼쩡거리면 경찰을 부를 거다!” “아저씨, 저희들은 이런 놀이터를 갖고 싶어요. 자, 보세요!” 가장 어린 칼리토스가 요구사항이 적힌 종이를 펼쳐 보였습니다 ..  (31쪽)


사람이 사는 곳이니 집을 마련해야 하고, 길도 내야 하고, 가게도 들이고, 일자리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논밭 일굴 땅이 남아야 하고, 숨 쉴 바람을 마련해 주는 숲이 남아야 합니다. 숲에서 베어내는 나무는 우리들이 날마다 엄청나게 써대는 온갖 종이로 바뀝니다. 그러니 숲에는 나무도 많이 남아 있어야 하고, 우리들이 나무를 베어내는 만큼 새 나무를 심어 주어야 합니다. 또 새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도록 지켜야겠지요.

 

그러면 우리한테는 집을 마련하는 땅이 얼마나 있어야 할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는 길이 얼마만큼 있어야 하나요. 우리 동네에는 가게가 몇 군데쯤 있으면 좋을까요. 우리 동네 일자리는 몇 가지쯤 있어야 할는지요. 우리 동네에는 쉼터와 숲이 얼마만큼 남아 있어야 하며, 우리는 동네 숲을 얼마만큼 간직하면서 가꾸어 나가야 좋을까요.


.. 시장과 직원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희들은 그런 공간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안내해 드릴게요.” “거기가 어딘지 함께 보러 가시지 않겠습니까?” 사서 선생님이 시장과 직원을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글쎄요, 지금은 좀…….” 직원이 말을 흐렸습니다. “으흠.” 시장이 헛기침을 하고 슬그머니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습니다 ..  (40쪽)


우리 사는 이 땅에는 나라밖으로 내다 팔 물건을 실어나를 길만 있으면 좋은가요. 우리 사는 이곳에는 하루하루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으로 부자를 만들어 주는 크고 높은 아파트만 있으면 되는가요. 우리 사는 이 동네에는 흙 한 줌 밟지 않고도, 풀 한 포기 쓰다듬지 않고도, 나무 한 그루 돌보지 않고도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수 있는가요.


.. 카밀라의 말이 맞았습니다. 몇 주일이 흘러도 시청 사람들은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공터는 갈수록 잡초가 무성한 가운데 온갖 잡동사니들만 쌓여 갔습니다. 놀이터가 들어설 만한 자리 같지가 않았습니다. 어른들은 어느새 그 일을 까맣게 잊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조금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  (52쪽)


이른 아침부터 방송차가 다니면서 ‘눈이 많이 오니 집 앞 눈을 쓸자’는 이야기를 외칩니다. 그러나 이런 방송차가 다니지 않아도 골목집 사람들은 알아서 집 앞 눈을, 골목길 눈을 씁니다. 골목집 사람들 문간에는 언제나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마련해 놓고 ‘청소부가 치울 쓰레기’도 먼저 치우고 쓸며 살아왔거든요.


(3) 책과 길


아침 나절, 창영동과 금곡동과 숭의동을 두루 돌아봅니다. 눈 덮인 길을 걸으며 돌아봅니다. 한 번 쓸어 놓은 길, 두 번 쓸어 놓은 길, 세 번째 쓸려고 사람들이 나와서 일하고 있는 길,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길, 자동차가 밟고 지나가며 눌러 놓은 길을 어기적어기적 걷습니다.

 

골목집 사람들은 비질을 하며 걸을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해놓습니다. 동사무소 사람들은 염화나트륨까지 뿌리며 아예 눈을 다 녹여 버립니다.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골목길을 거닐며 눈을 뽀도독뽀도독 소리나게 밟습니다. 차가 오가는 조금 넓은 길은 눈 녹은 질퍽거림을 잔뜩 느낍니다. 시커멓게 바뀌어 가는 얼음물이 바지로 튑니다.

 


.. 어느 날 아이들이 거리에서 신나게 놀고 있을 때였습니다. 식료품을 가득 실은 트럭이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왔습니다. “얘들아, 저리 비켜! 왜 길에서 노는 거야!” 트럭 운전사가 소리쳤습니다. “왜요? 길에서 놀면 안 돼요?” 아이들은 그렇게 맞서며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트럭은 아이들보다 훨씬 더 크고 힘도 셌습니다. 화가 난 운전사가 아이들 쪽으로 트럭을 몰았습니다. 아이들은 하는 수 없이 그곳을 피해 언덕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  (16쪽)


두 시간 남짓 동네 마실을 하고 집 앞에 닿습니다. 바로 들어갈까 하다가, 가까운 헌책방 한 곳에 들어가서 손을 녹입니다. “모처럼 눈이 많이 오는데 눈 구경 안 하셔요?” “저희는 (책방에 일하러) 오는 길에 했지요. 이제 눈 구경 가시려고요?” “아니요, 아침부터 죽 돌고 이제 막 들어오는 길이에요. 조금만 늦으면 눈을 다 쓸어내서 없으니까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웅크리면서 녹이고 있을 무렵, 열대여섯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들어와서, “<궁> 있어요?” 하고 묻습니다. “아니요, 없는데요.” “네, 알겠습니다.” 아이들은 돌아나갑니다. 바라는 만화책 한 가지만 물어 보았습니다. 이웃가게에 들러서도 똑같이 물어 볼까요? 그러다가 아무 헌책방에도 자기들이 바라는 만화책이 없으면 어떻게 할까요. 가까운 새책방에 가서 살까요?


.. “음, 좋은 의견이구나. 아주 훌륭하다. 그런데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지?” 사서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문제는 어른들이에요.” 카밀라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만약 어른들이 우리와 함께 시장님을 만나러 가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좋고 훌륭한 의견을 내놓으면 뭐 해요? 실행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죠.” “어른들이 너희들과 함께 시장님을 만나러 가지 않으려고 하시니?” “어른들은 우리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아요.” “그래? 그렇다면 너희들끼리 가지 그러니? 그럴 생각은 없나 보구나?” ..  (28쪽)


모든 아이들, 또는 모든 어른들이 “무슨무슨 책 있어요?” 하고만 물으며 그 책이 없으면 돌아나가지는 않습니다. 제법 많은 아이들은 자기가 살 참고서나 문제모음도 꼼꼼히 살피고 들여다 보면서 고릅니다. 적잖은 어른들도 자기 마음밭을 살찌울 책을 고르려고 짧으면 한 두 시간, 길면 서너 시간이나 대여섯 시간 동안 다리아픔도 잊은 채 서서 책을 고릅니다.

 

“무슨무슨 책 있어요?” 하고 묻는 사람들이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만 찾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들은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만 찾습니다. 자기한테 낯선 사람이 쓴 책, 낯선 출판사에서 펴낸 책, 아직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이 붙은 책은 코앞에 있어도 알아보지 않고 거들떠보지 않으며 꺼내어 들춰보지도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보기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되고 스테디셀러가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찾아본다고 하여 우리 자신한테도 도움이 되거나 재미가 있거나 읽을 만할까요. 우리가 책 하나를 고르거나 사는 잣대는, ‘다른 사람들도 많이 보는 책’이나 ‘두루 사랑받는 책’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요.


.. “와, 우리에 대한 기사다!” 케오가 소리쳤습니다. “우리가 신문에 나오다니, 우리는 이제 유명한 사람들이네!” 칼리토스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래, 우리는 유명한 사람들이야. 하지만 여전히 이루어진 건 아무것도 없어.” 카밀라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  (48쪽)


지금 꼭 <궁>이 보고 싶으니까 <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고픈 그 <궁>이 없으면 어쩌지요? 언제까지나 <궁>만 찾아야 할까요.

 

꿩 대신 닭이 아니라, <주식회사 천재 패밀리>도 눈길이 갈 만하고, <조폭 선생님>도 손길이 갈 만하고, <테르미도르>도 마음길이 갈 만합니다. 때로는 <교도관 나오키>에, 때때로 <어시장 삼대째>에, 가끔은 <태일이>에 손을 뻗어 볼 수 있어요. 오늘은 <위안부 리포트>에, 내일은 <따끈따끈 베이커리>에, 모레는 <요츠바랑!>을 펼칠 수 있겠지요.

 

학교에서 ‘이런저런 책을 읽고 독후감을 내십시오’ 하는 숙제를 낸다고 해서 꼭 ‘이런저런 책’만 읽고 느낌글을 써야 하지는 않습니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이런저런 책’은 그다지 마음이 안 가고 재미도 없을 듯하며 읽은 보람이 없다고 느낀다면, 손수 책방 나들이를 해서 자기 나름대로 자기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든 다음, 이 책을 차근차근 읽고 자기 깜냥껏 느낌글을 써서 내도 좋아요.

 

‘1 + 2 = 3’이라고 맞는 답만 적어서 내야 숙제를 잘하는 셈은 아니거든요. ‘1 + 2 = 4’라고 적으면서 틀릴 수 있는 숙제이고, 자기는 다르게 생각하서 다르게 마무리를 지었다는 이야기를 적어도 좋은 숙제입니다.


.. 어느 날, 칼리토스는 삼촌이 친구들과 함께 놀이터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시장이나 시청 따위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뭐 있어? 우리끼리 힘을 합쳐 만들면 돼.” 삼촌이 탁자를 ‘쾅!’ 소리나게 치면서 말했습니다. 하지만 삼촌의 친구들은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정신나간 소리하지 마. 무슨 힘을 합친다는 거야? 자기 집 앞 골목도 치우지 않는 사람들이야. 그런 사람들이 힘을 합쳐 놀이터를 만들기나 하겠어? 그건 어림도 없는 소리야.” ..  (55쪽)

 

 (4) <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라는 그림책


그림책 <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를 읽습니다. 책을 고르던 책방에서 한 번 읽고, 책을 사들이고 집으로 돌아오던 전철길에서 한 번 더 읽습니다. 집으로 와서 다시 한 번 살펴봅니다. 이웃집에 놀러가서 ‘동네사람끼리 모여서 책읽기 모임을 해 볼까요?’ 하고 말문을 열면서 또 한 번 넘겨봅니다.


.. “시장님 도움을 받지 않고 우리들끼리 놀이터를 만들면 안 될까?” 칼리토스가 말했습니다. “놀이터를 만드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인 줄 아니? 그건 아주 복잡한 일이야.” “하지만 우리 모두 힘을 합치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끼리 놀이터를 만든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산호세 아이들은 저마다 친구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또 형이나 누나들을 모았는데, 나중에는 어머니와 아버지들까지 나섰습니다 ..  (53쪽)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났던 일을 차근차근 그림책으로 엮어내 보여주는 <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입니다. 달동네 아이들은 자기들이 마음놓고 뛰어놀 곳이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집안 어른들한테 놀이터 마련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모두들 ‘바쁘다’는 핑계로 손사래를 칩니다. 시청 공무원들도 말로만 다짐을 하고 자기들 다짐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놀아야 합니다. 놀 곳이 있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놀이터였던 골목이 자동차가 빵빵거리며 내달리는 곳이 되어 버리는데, 처음에는 누구나 신나게 뛰어놀던 빈터에 빌라가 들어서고 아파트가 들어서고 고속도로로 바뀌면서 자꾸만 산꼭대기로 쫓겨나고 있는데, 아이들은 마냥 팔짱을 끼거나 나 몰라라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바로 놀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 “우리의 손으로 놀이터를 만듭시다!” 이렇게 주장한 사람들은 칼리토스의 삼촌과 아이들뿐이었습니다 ..  (58쪽)


어른들은 일을 해야 하니 바쁘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른들은 왜 일을 하지요? 무엇 때문에 일을 하지요? 누구 때문에 일을 하지요? 일을 해서 얻은 돈으로 무엇을 할 생각이지요?

 

아이들은 바로 지금 놀고 싶어합니다. 놀이동산에 가자는 소리가 아니라, 동네에서 동무들하고 웃고 떠들고 울고 복닥이면서 놀고 싶어합니다. 미끄럼틀이나 시소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터만 있으면 됩니다.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터, 못이나 병조각이 흩어져 있지 않은 터, 차가 함부로 들어와 빵빵거리지 않는 터, 맑고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땀흘려 뛰고 구를 수 있는 터를 바랍니다.

 

키 크고 굵은 나무가 있어 그네를 맬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요. 잎 많은 나뭇가지 그늘이 있으면 한결 좋겠지요. 팽이를 치고 연을 날리고 구슬을 치고 땅따먹기를 하고 고무줄을 뛰며 오재미나 오징어도 하고 빗돌치기나 자치기도 할 수 있는, 아이들은 신나게 놀고 어른들도 함께 놀거나 곁에서 수다 떨면서 느긋하게 쉴 수 있는 놀이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r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책과 헌책방과 우리 말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

쿠루사 지음, 최성희 옮김, 동쪽나라(=한민사)(2003)


태그:#그림책, #산업도로, #베네수엘라, #쿠루사, #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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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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