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937년 12월 13일부터 1938년 1월까지 일본군은 당시 중국 수도인 난징을 점령하여 30만 명을 학살했다.
 1937년 12월 13일부터 1938년 1월까지 일본군은 당시 중국 수도인 난징을 점령하여 30만 명을 학살했다.
ⓒ 모종혁

관련사진보기


13일 오전 10시 중국 장쑤(江蘇)성 난징(南京)시 전역에는 33분간 사이렌이 울렸다. 1937년 7월 중국 전체를 손에 넣으려는 일본 제국주의는 중·일 전쟁을 일으켰다. 파죽지세로 중국 대륙을 유린하던 일본군은 12월 초 당시 중국 수도이던 난징을 포위, 점령했다.

1937년 12월 13일 일본군은 난징성을 넘어 진공하여 20세기 최대의 참극을 벌였다. 목불인견(目不忍見), 천인공노(天人共怒)…. 그 어떤 말로도 묘사하기 힘든 대량 학살과 강간, 고문 등이 난징 곳곳에서 한 달여 동안 벌어졌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오늘날, 난징은 과거 대학살의 흔적을 말끔히 씻어냈다. 난징은 2005년 현재 총면적 6516㎢, 인구 530만 명의 현대적인 도시. 개혁개방정책 이후 소비도시에서 화학·기계·식품·전자 등 산업이 크게 일어나 장쑤성 최대의 공업도시로 성장했다.

대학살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그 아픔과 기억은 여전히 난징 사람들 가슴 깊이 새겨져 있다. 중국정부는 70년 전 난징에서 발생한 현대사 최악의 비극을 기리는 추모 행사를 성대하게 벌였다. 난징에 울려 퍼진 사이렌은 대학살의 영혼들을 위로하는 진혼곡이었다.

재개관된 난징대학살기념관은 수백 명의 인명이 대량 학살된 현장 위에 지어졌다.
 재개관된 난징대학살기념관은 수백 명의 인명이 대량 학살된 현장 위에 지어졌다.
ⓒ 모종혁

관련사진보기


만인갱에서 발굴된 수천 점의 유골은 어린아이에서 노인까지 다양한 성별과 연령대를 보여주고 있다.
 만인갱에서 발굴된 수천 점의 유골은 어린아이에서 노인까지 다양한 성별과 연령대를 보여주고 있다.
ⓒ 모종혁

관련사진보기


한 달여 만에 30만 명을 학살한 일본군

일제의 대학살 70주년 기념일을 맞아 난징대학살기념관은 18개월의 공사 끝에 재개관했다. 공사비 3.28억 위안(한화 약 410억원)이 투입된 기념관은 과거보다 3배나 넓은 2만5000㎡에 달한다.

기념관에는 3500여 점의 사진과 3300여 점의 문물, 13곳의 현장복원장이 전시되어 일제의 만행을 다각도로 재현했다. 특히 만인갱(萬人坑)에서 발굴된 수천 점의 유골은 일본군이 난징 점령 이후 가한 대학살의 참혹함을 생생히 증명하고 있다. 새로이 추모장과 묵념실 뿐만 아니라 평화공원을 조성한 것도 이채롭다.

난징대학살 70주년 기념식은 재개관한 기념관 광장에서 열렸다. 일본에서 온 400여 명을 비롯해 200여 명의 대학살 생존자, 중국정부 고위관료, 학생 등 8천여 명이 참석한 기념식은 예년에 비해 엄숙하면서도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중국에서는 난징대학살을 전후하여 대규모의 반일 시위가 일어나곤 했다. 2005년에는 상하이와 여러 대도시에서 중국정부의 허가를 받은 대규모 항의시위가 일어났고, 작년에도 난징 내 일부 대학에서는 반일 시위가 벌어졌다. 올해는 중·일관계가 급속히 가까워지는데다, 내년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후쿠다 일본 총리의 상호 방문을 앞두고 있어 조용히 지나가는 듯하다.

대학살의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플래카드에 굳은 다짐의 맹세를 사인하는 난징 시민들.
 대학살의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플래카드에 굳은 다짐의 맹세를 사인하는 난징 시민들.
ⓒ 모종혁

관련사진보기


뜻있는 난징 시민들은 자라나는 어린 세대도 난징대학살을 영원히 잊지 않길 염원하고 있다.
 뜻있는 난징 시민들은 자라나는 어린 세대도 난징대학살을 영원히 잊지 않길 염원하고 있다.
ⓒ 모종혁

관련사진보기


"일본은 난징대학살의 진실과 역사를 직시하라"

기념석상에서 쉬중린(許仲林) 장쑤성 정치협상회의 주석은 "난징대학살은 2차 세계대전 중 발생한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유대인학살)와 더불어 인류 최대의 참혹한 비극이었다"고 말했다.

쉬 주석은 "중·일관계는 국교정상화 이래 35년간 전면적인 협력과 발전을 이뤄왔다"면서도 "소수이긴 하지만 일본 내에는 여전히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난징대학살을 부정하면서 중·일관계의 건강한 발전을 해치는 우익세력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주청산(朱成山) 난징대학살기념관 관장은 "오늘 거행하는 기념식엔 두 가지 목적이 있다"면서 "첫째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역사적 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전 세계를 향해 인류의 영원한 평화를 호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살의 생존자 중 한 명인 양주린(78·여)은 "일본군의 잔악한 학살로 어머니와 외삼촌을 제외한 일가족이 몰살당했다"면서 "일본정부는 난징대학살의 진실과 역사를 직시하고 자라나는 젊은 세대에게 일본군이 저지른 참상을 제대로 가르쳐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난징대학살기념관 추모장의 영원한 불꽃 앞에서 피해자의 넋을 기리는 관람객들.
 난징대학살기념관 추모장의 영원한 불꽃 앞에서 피해자의 넋을 기리는 관람객들.
ⓒ 모종혁

관련사진보기


난징대학살의 생존자 중 한 명인 양주린. 생존자들은 대부분 70·80대 고령으로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난징대학살의 생존자 중 한 명인 양주린. 생존자들은 대부분 70·80대 고령으로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 모종혁

관련사진보기


갈수록 줄어드는 생존자, 관심에서 멀어지는 대학살

중국 언론매체도 일제히 난징대학살에 관한 기사와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기념일'이라는 제목으로 난장대학살에 관한 특집 기사를 다루고 있다.

중국공산당지 <인민일보>는 시론에서 "70년 전 난징에서는 6주 동안의 대학살로 12초마다 한 생명이 사라져 30만 명이 죽어갔다"면서 "지금도 일본 우익분자들은 난징대학살의 역사를 '20세기 최대의 거짓말'로 부정하고 역사교과서에마저 기재되지 못하도록 획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념관에서 만난 장젠궈(42)는 "금세기 들어서는 대학살의 생존자들이 점차 사망하면서 난징 시민들조차 대학살의 기억을 차츰 잊어가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난징대학살을 부정하고 역사왜곡을 자행하는 일본정부와 우익세력의 행태를 보면 여전히 일본에 대해 치를 떨게 된다"고 말했다.

출판사에 다니는 천다숑(31)은 "솔직히 난징대학살에 대해 관심을 보이거나 기념관을 찾는 난징 시민은 그리 많지 않았다"면서 "한동안 기념관을 무료로 개방하여 찾는 사람들이 늘겠지만 정부가 더욱 노력하지 않는 한 난징대학살기념관은 찾는 이가 별로 없는 고리타분한 역사기념관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난징대학살기념관을 참관하는 일본인 관광객들. 일본인은 난징대학살기념관에서 역사의 진면목을 직시하고 무엇을 느낄까.
 난징대학살기념관을 참관하는 일본인 관광객들. 일본인은 난징대학살기념관에서 역사의 진면목을 직시하고 무엇을 느낄까.
ⓒ 모종혁

관련사진보기



태그:#난징대학살, #만인갱, #중일관계, #홀로코스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