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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9일자 <동아일보> 사설
 11월29일자 <동아일보>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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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울 마포에서 생활고를 비관한 40대 가장이 아홉 살짜리 딸을 목 졸라 숨지게 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으려다 잠에서 깬 아내의 신고로 경찰에 구속된 끔찍한 일이 있었다. 한창 일할 나이에 명예퇴직한 뒤 사업에 손댔다가 빚만 안게 되고, 재취업에도 실패한 가장의 실직이 부른 참극이다.

여기까지 쓴 글에 따옴표를 붙이지 않았다. 표절이다. <동아일보> 11월 29일자 사설의 들머리다. 사설을 부러 표절한 까닭은 있다. <동아일보>도 모르쇠 할 수 없을 만큼 대다수 민중의 삶이 불안해서다. 통계청 자료가 입증한다. 대한민국에서 여섯 집 가운데 한 집은 가장이 무직이다. 새근새근 잠든 딸의 어여쁜 목을 조른 가장도 본디 대기업에 다녔다. 이른바 '희망퇴직'이 부른 절망의 참사다. 

<동아일보>만이 아니다. 같은 날 <중앙일보>도 실직 가장을 사설 소재로 삼았다. 삼성 비자금 사건에서 줄기차게 삼성을 두남두던 두 신문이 갑자기 실직 문제를 강조하기란 뜬금없어 보이기도 한다.

부자신문들의 갑작스런 실직 가장 '조명'

하지만 아니다. 실직 가장의 비극을 조명한 의도는 <중앙일보> 사설에 또렷하게 나타난다. '집에서 노는 가장 1년 새 18만 명 늘어' 제하의 사설은 "다음 정부는 공허한 이념 다툼에서 벗어나 일자리를 늘리는 실용을 추구하기 바란다"며 부르댄다.

"일자리를 늘리는 기업가가 애국자요, 그런 여건을 만들어 주는 정치인이 훌륭한 지도자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27일 오후 대전광역시 으능정이 차없는 거리에서 유세를 전에 목도리를 두르고 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27일 오후 대전광역시 으능정이 차없는 거리에서 유세를 전에 목도리를 두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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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 차라리 '경탄'스럽다. 실직 가장을 이용해 돌 하나로 두 마리 새를 잡는 꼴이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밀어주는 은근한 선동에 더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애국자'로 교묘히 여론화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가. 실직 가장을 위해 지금 절실한 것은 기업의 규제를 푸는 데 있지 않다. 객관적 통계가 입증한다. 국제통화기금의 구제 금융을 받은 1997년 이후 지난 10년 동안 100대기업의 일자리는 65만 개나 줄었다. '평생직장' 개념도 일터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대다수 민중이 고통 받던 10년 동안 삼성전자를 비롯한 수출 대기업의 순익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따라서 지금 경제를 살리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단순한 '실용'이 아니다. 물론, '공허한 이념'일 수도 없다. 정답은 실용적 이념, 또는 이념적 실용이다.

그렇다. 앙증맞은 딸을 목 졸라 죽인 아비의 손을 누가 움직였는지 정체를 밝혀야 한다. 세 아이를 고층아파트에서 떨어뜨려 죽인 어미의 마음을 누가 어둡게 했는지도 명토 박아둬야 한다. 누구인가. 바로 신자유주의다.

더러는 '신자유주의'를 말하면 어렵다고 한다. 신자유주의 반대를 대선 쟁점으로 삼을 수 없다는 윤똑똑이들도 있다. 하지만 아니다. 자유주의는 쉽고 신자유주의는 어려운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정체를 적극 알려나가야 옳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는 처음 선거에서 이겼을 때 열광하는 국민 앞에 자랑스럽게 외쳤다. "신자유주의여, 지옥으로 가라"고.

대다수 국민이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이 신자유주의에서 비롯됨을 정확히 인식할 때, 한국 정치도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 있다. 생활고를 비관하여 하루 평균 35.5명이 자살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독자가 이 글을 읽은 이 순간도 누군가는 춥고 배고픔을 못 견뎌 생명을 끊고 있다.  

신자유주의 반대해온 진보정당 정책에 인색한 언론

문제는 신자유주의가 대다수 국민에게 낯선 데 있지 않다. 대다수 언론이 신자유주의 문제를 모르쇠 한 데 있다. 한국 정치에서 줄곧 신자유주의를 비판해온 진보정당의 정책을 진보언론조차 온새미로 소개하지 않는다.

진보언론마저 신자유주의 문제를 외면한다면, 진보언론마저 신자유주의 반대를 '이념 지향'이라고 눈 돌린다면, 진보언론마저 진보정당의 정책을 온전히 알리지도 않고 '비현실적'이라 딱지 붙인다면, 이 땅에서 진보정치는 영원히 꽃필 수 없다.

신자유주의는 영원히 활개칠 수밖에 없다. 생활고로 하루에 3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저 비극의 행렬은 영원히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살려달라며 울부짖는 자녀를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뜨리는 어미의 '지옥도'는 영원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영원할 수밖에 없다. 딸을 목 조른 아비의 참극마저 이용해, 자신의 기업에 자녀를 위장취업 시켜 다달이 월급을 준 아비를 대통령으로 세우려는 저 부라퀴들의 살천스런 선동도.


태그:#위장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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