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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의 캠핑장에서 하룻밤을 잔 뒤 다음날 오전 8시 오카방고 델타의 모코로 여행을 떠났다.
 
모코로는 소시지 나무나 에보니 흑단나무로 만든 보츠와나의 전통적인 작은 나무배. 모코로 여행은 모코로를 타고 오카방고 델타 강줄기를 따라 습지대를 구경하고, 수풀 길을 따라 걸으며 야생동물을 보는 '덤불산책' 사파리를 즐기는 투어다.
 
오카방고 델타는 세계 최대의 내륙 삼각주다. 앙골라에서 시작되는 오카방고강은 세롱가 지역에서 갈라지면서 넓은 삼각형의 습지대를 만든다. 결국 바다에 이르지 못하고 1만5000㎢의 오카방고 삼각주를 만들면서 칼라하리 사막의 모래 속으로 사라지는 것. 바다에 이르지 못하는 대신, 칼라하리 사막을 생명의 섬으로 만들었다.

 

1년 내내 오카방고강의 물이 흘러들어 만들어 내는 미로 같은 강줄기의 수로와 습지·섬과 초원으로 이루어진 오카방고 델타의 넓은 습지대가 코끼리와 얼룩말·기린·아프리카물소·하마 등 야생동물과 수많은 새, 다양한 물고기들을 부르고 있다.

 

동물만 부르는 것이 아니다. 오카방코 델타의 자연은 어업과 농업·유목·수렵·채집생활을 하는 보츠와나 주변의 부족들을 불러왔다.

 

함부쿠슈 부족과 드세리쿠 부족, 바예이(와예이) 부족은 수수 농업과 어업·유목·수렵을 같이 하면서 살아가고, 모두 산족에 속하는 부가크웨 부족과 이아니크웨 부족은 주로 어업에 종사한다. 특히 이아니크웨 부족은 '강 부시맨'으로도 불리는데, 물고기를 잡아 생활하는 등 원시생활을 하고 있다.

 

바다로 흐르지 못한 생명의 강
 

오카방고 델타에서의 모코로 여행은 동부델타와 내부델타, 모레미 동물보호구역, 오카방고 팬핸들 지역 등 4개 지역에서 할 수 있다. 나는 보로강 하류와 산탄타디베강을 탐험하는 하루짜리 동부델타 여행을 선택했다. 이미 탄자니아 등에서 동물 사파리를 실컷 했기 때문에 사파리보다는 삼각주의 습지대 자체에 관심이 쏠렸다.

 

트럭을 개조한 오카방고 델타 사파리 차량에는 독일에서 온  가족 5명과 네덜란드 가족 3명, 스페인 남녀 4명, 이탈리아 남자 1명 등 모두 13명이 탔다. 주로 유럽에서 온 여행팀이다.

 

마운에서 쇼로베까지는 포장도로지만, 그 이후부터는 비포장도로를 달려 오카방고 델타로 향했다. 나무와 갈대로 지은 원주민의 둥근 집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1시간 정도 달렸을 때 검문소가 나왔다. 카사네에서 나타로 갈 때 보았던 '가축검역소'다. '다우나라 가축검역소'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검역소 직원들이 나와 차량을 일일이 검사한다.

 

검역소 주변에는 철사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는데, 공식적으로는 '가축방역울타리'지만 '아프리카 물소 울타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아프리카 물소 울타리'는 물소 등 야생동물과 소떼 등 가축을 분리하고, 물소로부터 가축에게 구제역이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한 철사방벽이다. 구제역은 소와 양, 돼지 등의 동물의 입과 발굽에 물집이 생기는 바이러스성 급성전염병으로, 특별한 치료법이 없어 가축에게는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

 

오카방고 델타 주변에는 1.5m 높이의 철사로 둘러 쳐진 아프리카 물소 울타리를 자주 볼 수 있다. 보츠와나는 1954년 처음으로 구제역 피해를 막는다는 취지에서 아프리카 물소 울타리를 세우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오카방고 델타 뿐 아니라 칼라하리 자연보호구역 등 전국에 걸쳐 무려 3000㎞나 된다.

 

그러나 이 울타리의 설치로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철사 울타리에 걸려 죽고, 계절에 따라 물웅덩이를 찾아가는 야생동물들의 자연적인 이동을 막아 생태환경을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검역소를 지나면서 델타 입구에 들어선다. 나무숲과 갈대숲이 나타나고 새들의 천국이다. 아카시아와 모파인 나무숲을 지나면 푸른 초원이 펼쳐지는데, 다양한 새들이 날아다닌다.

 

배는 희고 날개는 검은 '대머리황새'인 마라부 황새가 성큼 성큼 걸어가고, 푸른색과 붉은색 기운이 도는 무지개색깔의 아름다운 새인 '분홍가슴파랑새'는 자신의 몸에 모든 자연의 색깔을 품고 있었다. 분홍가슴파랑새는 보츠와나의 상징 새이기도 하다.

 

사파리 차량이 다가가자 다른 새들은 모두 날아가는데, 메추리 같이 생겼으나 닭처럼 큰 새만이 걸음질로 쫄랑쫄랑 숲속으로 재빨리 달아난다. 날개가 작아 멀리 날지 못하는 대신 빠른 걸음을 갖고 태어났다. 버첼스 샌드그라우스 같기도 하고, 마다가스카르의 베마라하 칭기 국립공원에서 보았던 자이언트 쿠아와 비슷하게 생긴 새였다.

 

만물주는 인간에게도 그렇지만, 새에게도 날아가는 재주와 달아나는 재주를 모두 주지는 않았다. 모든 생물은 자신만이 갖고 있는 재능을 환경에 맞춰가면서 살아가야 한다. 오카방고 델타에는 400 종류 이상의 다양한 새들이 살고 있다.

 

 

마을 주민을 뱃사공으로 쓰는 모코로 여행

 

모코로 출발 장소에 도착했다. 모코로 여행을 시작하는 동부델타의 강까지는 마운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오카방고 델타의 동부에 있는 산탄타디베강 하류의 모루차 마을의 모코로 선착장이다.

 

선착장이라고 해야 무슨 팻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강물 위에 모코로 10여척만이 떠 있다. 동부델타의 모코로 여행은 산탄타디베강과 보로강 하류 사이의 섬과 수로사이를 모코로를 타고 탐험한다.

 

오전 10시께 사파리 차량이 델타 강변에 이르자 현지인 남자 4명과 여자 3명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한다. 현지인들은 모두 모코로 배를 조종하는 뱃사공인 폴러 겸 안내자이다. 여자들도 남자와 똑같이 여행객을 태우고 모코로 여행을 담당한다. 모코로는 노를 저어 깊은 강물에 배를 띄우는 것이 아니라, 얕은 물에서 긴 장대인 삿대를 강바닥에 밀면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여자들도 가능하다.

 

내가 묵고 있던 아우디 캠핑장에서 운영하는 모코로 탐험은 모루차와 디치피 마을의 사람들과 계약을 맺고 있었다. 현지 여행사와 근처 마을 주민들과의 협력이다. 관광산업의 이익을 현지 주민들에게도 돌려주는 구조이다.

 

이들은 모두 '바예이' 부족인데, 수백 년 전부터 이곳 오카방고 델타의 동쪽에 와서 주로 어업을 통해 살아왔다. 바예이 부족에게 모코로는 고기를 잡는 배이자 물건과 사람을 실어 나르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모코로에는 2명의 여행객과 배낭, 음식물 등 작은 짐만을 싣고, 1명의 뱃사공 겸 가이드가 조종한다. 모코로는 나무판자를 붙여서 만든 커다란 배가 아니라, 하나의 통나무를 나막신처럼 안쪽을 파내 만든 작은 배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태울 수가 없다.

 

모코로는 길이가 보통 4m 정도 되고 폭도 50㎝ 정도 되기 때문에, 어른의 경우에는 배 바닥에 앉은 뒤 몸을 가능한 움츠리고 다리를 앞으로 쭉 내밀고 타야 한다. 삿대를 젓는 사람이 3m정도의 나무장대로 델타 강바닥을 밀면서 모코로를 나아가게 한다.

 

나는 네덜란드 60대 남자와 같은 배를 타고, 네덜란드 부인과 20대 중반의 딸이 한 배를 탔다. 다른 여행객들도 별도로 2명씩 짝을 지어 배에 탔다. 나와 네덜란드 가족만 하루짜리 여행이고, 나머지는 델타 위쪽의 모레미 동물보호구역으로 들어가 사파리를 하는 3일짜리 일정의 여행이다.

 

 

순백의 고고함을 자랑하는 오카방고 델타의 연꽃

 

내가 탄 모코로의 삿대질을 하는 뱃사공은 20대 초반의 젊은이였다. 모코로의 맨 앞쪽에 내가 앉고 바로 뒤에 네덜란드 여행객이 자리 잡았다. 젊은 뱃사공이 맨 뒤에 서서 삿대를 이용해 배를 밀고 델타 중심으로 들어갔다.

 

3일짜리 모코로 여행을 하는 팀은 고모티강을 따라 모레미 보호구역으로 올라가고, 우리는 산탄타디베강을 따라 상류로 나아갔다. 배 바닥에는 방석처럼 마른 갈대풀이 깔려 있어 엉덩이를 푹신하게 한다. 배가 작기 때문에 여행객은 앉아 있고, 삿대질을 하는 사공만이 일어서 있다.

 

모코로는 젊은이가 삿대를 한 번 밀자 앞으로 쑥 밀려갔다. 삿대질 몇 번 만에 갈대숲으로 빨려 들어갔다.

 

강물에 자라고 있는 갈대숲을 헤치면서 작은 나무배에 몸을 맡기고 수초와 새, 하마와 악어 등을 가까이서 관찰하는 재미가 있다. 밖에서 보았을 때는 갈대숲사이에 강물이 있었는데, 갈대숲으로 들어와 보니 거꾸로 강물위에 갈대가 자라 숲을 이루고 있다. 뱃머리에 갈대숲이 갈라지면서 모코로가 지나가는 물길이 만들어진다.

 

물길이 너무 얕은 곳에 이르자 모코로 바닥이 강바닥에 닿았다. 모코로가 옴짝달싹도 못한다. 모코로는 델타의 아무데나 다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갈대숲사이에 도랑처럼 깊게 파인 수로로만 다닐 수 있다. 적당한 물 깊이가 있는 물길이어야 한다.

 

델타의 물길은 갈대숲과 억새풀에 가려져 있는데다, 물길의 깊이도 1~2m밖에 안되어 노련한 뱃사공이 아니면 그 길을 알 수 없다. 갈대숲으로 미로처럼 얽힌 오카방고 델타의 물길을 헤쳐 가려면 힘보다는 길을 찾는 혜안이 필요하다.

 

오카방고에서 여자들도 삿대질을 하는 것은 차분하게 물길을 잘 찾기 때문이다. 역시 우리 배의 젊은이는 힘은 있지만, 노련함과 경험이 부족해 여러 번 물길이 아닌 곳으로 들어갔다 배를 빼내기 위해 고생을 해야 했다. 다른 배의 60대 노인과 50대 후반의 여자 뱃사공은 한 번도 좌초하지 않고 노련하게 갈대숲 사이에서 모코로를 날렵하게 밀고 갔다.

 

오카방고 델타의 물길은 폭도 1~3m밖에 안되다 보니 모코로처럼 작은 배가 아니면 애초부터 다닐 수가 없다. 커다란 선박이 바다의 산호초에 걸려 좌초되듯이, 오카방고 델타에서 큰 배는 갈대숲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게 된다. 배가 갈대에 얽히게 되면 거미줄에 나비가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과 같다.

 

모코로는 좀 더 물이 깊은 쪽으로 들어갔다. 갈대숲에 가려 보이지 않던 작은 웅덩이 같은 연못에 모여 있던 수십 마리의 황새 떼들이 물을 박차고 하늘로 오르고, 작은 물새들도 비행기 편대처럼 무리를 지어 하늘을 난다. 날개 끝부분만 검고 날개와 몸통이 하얀 황새는 바로 '노란부리 황새'다. 회색을 띤 회색 왜가리 떼도 보인다. 얼굴 부분과 꼬리 부분만 일부 하얗고 모두 검은색의 '아프리카 물수리' 한 마리는 하늘을 날면서 물길의 고기를 노려보고 있었다. 델타 강은 새들의 집단무용인 떼춤을 볼 수 있는 좋은 곳이다.

 

갈대숲에는 새들 뿐 아니라 연꽃같이 생긴 하얀 꽃이 물위에 떠있어 고고함을 자랑한다. 물속의 연꽃이라고 하여 수련이라고 부른다. 하얀 꽃잎에 노란 꽃술을 띠고 있다. 오카방고 델타에 피어있는 한 송이의 수련은 검푸른 강물과 누런 갈대숲에 둘러싸여 있어 더욱 순백의 순결함과 고고함을 보여준다.

 

 

하마와 고래는 사촌사이

 

모코로를 타고 갈대숲을 헤치며 1시간쯤 델타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그때 앞쪽 갈대숲 너머로 갑자기 "끄~윽"하는 소리가 들린다. 옆쪽 갈대숲에서는 "푸~우~"하며 물 내뿜는 소리도 들려온다. 하마 소리다. 갈대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바로 가까이에 하마들이 떼를 지어 놀고 있다. 모코로가 갈대숲사이를 뚫고 앞으로 나아가자 넓은 연못 같은 물웅덩이가 나타났다. 하마 연못이다. 30여 마리가 넘는 하마들이 각기 다양한 몸짓을 하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입을 쩍쩍 벌리며 하품을 하는 하마가 있는데, 그 하마의 하얀 입천장이 훤히 보인다. 어떤 하마는 "뿌~우~욱" 하면서 마치 분수대에서 물을 뿜듯 코에서 여러 갈래의 물을 하늘을 향해 뿜어댄다. 또 다른 하마는 물속으로 깊이 들어가 나오질 않는다. 다른 사파리 회사에 온 모코로를 비롯해 네다섯 대의 배가 한꺼번에 하마를 보려고 몰려들자 하마들이 우리의 인기척을 알아차렸다.

 

하마들이 일제히 우리 쪽을 쳐다보며 다가온다. 마치 일렬횡대로 무리를 지어 우리 배를 공격할 자세다. 삿대를 젓는 젊은이가 모코로를 갈대숲 뒤로 후퇴시킨다. 갈대숲에 가려 우리 모코로가 보이지 않자 하마도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다.

 

삿대질을 하는 젊은이는 "하마는 초식동물이지만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면, 물불가리지 않고 공격하기 때문에 사람에게도 가장 위험한 동물 중 하나"라며 "하마 옆에 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라고 말했다.

 

실제로 아프리카에서는 사자나 표범 등 포식동물에 물려 죽는 사람의 숫자보다 하마에 죽는 숫자가 많다고 한다. 풀이나 뜯고 큰 덩치 때문에 둔할 것으로 우습게보았다가 쏜살같이 달려드는 하마의 큰 아가리에 물리거나 들이받혀 큰 코를 다치기 십상이다.

 

하마가 물속에서 내는 "끄~윽 끄~윽" 소리는 어느 동물의 소리와 비슷할까. 생김새가 비슷한 돼지와 비슷할까. 아니다. 돼지는 "꿀꿀"하고 소리낸다. 하마의 소리는 놀랍게도 고래와 비슷하다는 것이 음성학자들의 음향분석 결과 나타났다.

 

동물 유전학자들의 연구결과, 하마의 DNA는 돼지가 아니라 고래와 비슷하다. 인간과 침팬지의 관계처럼 하마와 고래는 사촌이다. 인류가 6백만 년 전 정글에서 침팬지와 떨어져 육지로 내려온 뒤 두발로 서서 걸으면서 진화했듯이, 고래는 5000만 년 전 하마와 헤어져 바다로 들어간 뒤 두 다리가 지느러미로 바뀌면서 오늘날의 고래가 되었다.

 

이번에는 갈대숲사이로 조용히 접근해 하마가 있는 10m 가까이 다가갔다. 하마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듯이 볼 수 있었다. 모코로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수십 마리의 하마를 배를 타고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은 오카방고 델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다.

 

다시 하마가 우리의 움직임을 알아챈다. 배를 돌려 나오는데 "피~익"하는 하마소리가 들린다. 하마가 우리 배를 추격해오는 소리가 갈대숲사이에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진다. 모코로를 타고 즐기는 2시간의 오가방고 델타의 오전 탐험은 이렇게 훌쩍 지나갔다.

 

 

걸어서 동물을 보는 덤불산책

 

점심을 먹기 위해 뭍에 내렸다. 나는 준비한 도시락을 먹고 하늘을 향해 누웠다. 아프리카의 따뜻한 햇살이 나의 맨 얼굴에 쏟아진다. 아프리카 햇살은 한낮의 달콤한 낮잠을 불러왔다.

 

삿대질을 하던 젊은 안내자가 덤불산책을 가자며 깨운다. 덤불산책은 델타주변의 파피루스와 갈대, 나무숲을 걸어 다니면서 동물을 구경하는 사파리다.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초원처럼 차량을 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걸어 다니면서 동물을 보는 도보 사파리라는 차이가 있다.

 

강 주변의 파피루스는 종이나 배·옷감 등을 만드는데 이용될 뿐 아니라 최고의 자연 '환경오염방지 식물'로 대우받고 있다. 최근 관광객의 증가와 각종 생활오수로 인해 오염된 오카방고 델타의 강물을 파피루스가 빨아들여 줄기와 잎을 통해 정화시키는 것이다. 파피루스는 물을 빨아들인 뒤 정화함으로써 자연 필터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동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안내자는 "코끼리 등 동물들이 아침에는 강으로 물을 마시러 나오는데, 낮에는 햇볕을 피해 숲속으로 들어가 나오지를 않는다"고 말한다. 나무사이를 조금 지나자 얼룩말 10여 마리가 풀을 뜯고 있었다.

 

안내자는 모래 위에 있는 코끼리 발자국을 가리키며 "코끼리가 방금 지나간 흔적"이라며 추적한다. 그러나 끝내 코끼리를 찾지 못했다. 1시 30분 동안의 도보 사파리 동안 본 것은 얼룩말 10여 마리와 아프리카 대머리황새 몇 마리, 아프리카 검은 독수리 두 마리 뿐이었다.

 

안내자는 갑자기 길에 있는 코끼리의 배설물을 손으로 집 든다. 그는 배설물 속에 있는 나뭇가지를 꺼내 보여주며 "코끼리와 하마는 풀잎 뿐 아니라 나뭇가지도 통째로 먹어치운다"고 말한다. 그가 말한 대로 축구공만한 커다란 코끼리 똥에는 소화 안 된 나뭇가지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네덜란드 가족 중 20대의 딸은 이미 오래 전부터 투덜투덜 거리면서 입이 뾰로통해졌다. 모코로 여행 때도 배에 드러누워 도통 흥미가 없는지 하마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부모 말에도 퉁명스럽게 대꾸하고 뭐가 불만인지 말을 하지 않는다. 안내자가 오히려 무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한다.

 

마치 오기 싫은 여행을 부모의 등살에 끌려 온 것 같다. 저 나이 때는 부모보다는 친구들과의 여행을 즐거워할 때다.

 

여행은 같이 가고 싶은 사람하고 떠나야 제 맛이 난다. 여행은  누구하고 가느냐에 따라 똑같은 장소라도 느낌이 다르다. 누가 옆에 있느냐에 따라 즐거울 수도 있고, 고독해질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고독을 감수하면서 홀로 배낭여행을 떠나는 것은 바로 누군가로부터 여행의 즐거움을 방해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오카방고 델타 갈대숲에서 <오페라의 유령>이 들려온다

 

수풀산책에 이어 오후에 다시 1시간 동안 모코로 여행을 즐겼다. 델타 강의 갈대숲사이를 오가는 강물위의 산책이다. 점심을 먹은 뒤 덤불산책으로 피로마저 겹쳐 모코로에 다리를 뻗고 앉아 있으니 저절로 눈이 감긴다. 갈대숲사이로 둘러싸인 오카방고 델타의 강물은 야생의 거친 아프리카 사막의 오아시스이다. 바람에 살랑대는 갈대숲과 수련 꽃 사이를 삿대질로 나아가는 모코로는 평화와 고요함의 세상으로 인간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다.

 

갈대숲 사이로 난 미로와 같은 오카방고 물길을 따라 가는데, 멀리서 "둥 둥 둥"하는 음악소리와 함께 <오페라의 유령>의 노래가 들려왔다. 오카방고 델타의 모코로 여행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가장 감동적인 마지막 나룻배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오카방고 델타의 모코로가 강물의 갈대숲 미로를 헤치며 간다면, <오페라의 유령>은 지하의 안개 속 미로를 저으면 간다. <오페라의 유령>은 가면을 쓴 유령이 미녀를 부르고, 모코로 여행은 갈대의 천사가 여행객을 유혹한다.

 

아프리카 오카방고 델타에서 <오페라의 유령> 노래가 떠오른 것은 오래전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보았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마지막 장면이 너무나 강렬히 내 가슴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여주인공인 신인 프리마돈나 크리스틴을 짝사랑하는 하얀 가면의 '유령'이 화가 나 소리치자, 브로드웨이 극장의 무대 중앙 천장에 매달려 있던 샹들리에가 마치 천둥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관객들의 숨소리마저 멈춰버린다.

 

자욱한 안개 사이로 호수가 생겨났다. 일그러진 얼굴을 가린 '유령'이 납치한 크리스틴을 나룻배에 태우고 노를 저으며 지하세계로 사라진다. 그 때 둥둥 거리는 음악과 함께 타이틀곡인 '오페라의 유령'이 울려 퍼진다. 사랑을 갈구하는 구슬프면서도 아련한 노래 소리가 가슴을 파고든다.

 

'유령'의 나룻배가 지나가는 사이로 지하 호수의 길을 밝히던 <오페라의 유령>의 촛불은 오카방고 델타에서는 하얀 수련 꽃으로 피어나 모코로가 가는 길을 열어 주고 있었다. 나는 오카방고 델타의 갈대숲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만났다.

 

애초 출발했던 선착장으로 돌아오면서 모코로 여행은 끝났다. 모코로 선착장에는 50대 여자가 머리에 나무묶음을 이고 있었다. 그 여자는 모코로를 타고 건너편 섬으로 건너갔다. 모코로는 지금도 오카방고 델타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강을 건너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사파리 차량을 타고 돌아오는 데 "비디에프(BDF·Botswana Defence Force)"라고 쓰인 보츠와나 군 차량 트럭이 모래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우리 사파리 차량이 밧줄을 연결해 꺼내 주었다.

 


태그:#아프리카 여행, #오카방고 델타, #모코로 여행, #보츠와나, #버펄로 울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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