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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탱크 가로 막고 "전쟁연습 중단하라!" 한국과 미군 병사들은 완전 무장한 채 고함을 지르며 군사 훈련에 열중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이들을 향해 "전쟁연습 중단하라!"고 외쳤다.
ⓒ 김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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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이규재 등 5명 징역 3년, 최복렬 등 2명 징역 2년, 김영식 징역 1년”

 

한미연합 만리포 상륙전훈련 반대 기자회견에 대한 1심 결심공판정. 검찰은 마치 무슨 상품의 가격을 읽어내려 가듯 피고인들에 대한 구형량을 주문했다.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8차례에 걸친 치열한 공방을 잊고 싶은 듯 구형 이유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다. 지난 23일(금), 대전지법 서산지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사건은 지난 2006년 3월 30일 오전 9시경, 충남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 해수욕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날 이른 아침부터 백사장이 만 리에 이른다는 만리포 해수욕장에서는 유엔군사령부/한미연합사령부가 '한미연합전시증원연습 및 독수리연습(RSOI&FE)'의 일환으로 진행한 한미연합 상륙전훈련이 진행됐다.

 

오전 9시경, 이에 반대하는 평화활동가들이 백사장에 내려가 이상희 합참의장 등이 자리하고 있는 지휘소를 향해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기자회견이 시작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공포탄과 연막탄이 고막을 찢듯이 터지면서 수륙양용장갑차들이 기자회견 참가자들을 칠 것처럼 바로 뒤로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누가 적이지?" <조선일보> 보도 후 검찰 기소

 

공포심과 함께 분노를 느낀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북침 전쟁연습 중단!”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장갑차 등에 강력히 항의했다. 군과 경찰은 기자회견을 조속히 마치고 귀가할 것을 요청했고, 이에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약 40여분 간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귀가 길에 올랐다.

 

그런데 그 곳을 빠져 나온 지 약 30여분 뒤 경찰이 가로 막아 실랑이가 벌어졌다. 경찰은 신분 확인을 요구했고,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근거와 정당성이 없다며 불응했다. 조금 뒤 경찰을 봉쇄를 풀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귀가했다. 그때 들은 얘기는 군이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날 <조선일보> 1면 오른쪽에 전날 기자회견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누가 적이지?”라는 선정적 제목과 함께. 그 뒤 반북 언론 등 수구세력이 날뛰기 시작했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도 나섰다.

 

“일부 시민단체와 학생들이 ‘방어’가 목적인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대해 ‘북침 훈련’이라는 억지주장을 펼치고 있다”며 “장갑차 위에까지 올라가는 등 매년 위험천만한 불법시위를 벌이는데도 정부가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조선일보> 기사가 나간 다음날, 군 당국이 특수공무집행방해와 집시법위반 혐의로 기자회견 참가자들을 고발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검찰에 기소되었고, 23일 결심 공판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성과도 있었다. 그것은 재판장인 진광철 판사가 만리포상륙훈련이 “통상적인 방어연습”이라는 한미군사당국의 상투적인 거짓 주장을 배척하고 평양 고립 압박을 노린 공격적 훈련임을 확인했다는 사실이다.

 

판사가 이런 판단을 하게 된 데는 <오마이뉴스>의 동영상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오마이뉴스>는 2006년 4월 4일자로 ‘만리포 한미연합상륙전훈련이 평양 고립 압박을 노린 것’이라는 당시 해병대 훈련통제관의 브리핑 내용이 담긴 만리포 현장 동영상을 올려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재판부의 요청에 따라 이 동영상 원본에 대한 사본과 녹취록을 재판부에 제출하여 재판과정에서 공개 검증한 바 있다.

 

만리포상륙훈련의 적법 여부 핵심 쟁점

 

이제 남는 문제는 평양 고립 압박을 노린 상륙훈련이 적법한가 여부다. 이것이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이다. 이것이 핵심 쟁점이 되는 이유는 “공무집행방해죄는 공무원의 직무집행이 적법한 경우에 한하여 성립”(1992.5.22, 92도 506)한다는 판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즉, 적법한 공무집행에 한하여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만리포 상륙전 훈련이 적법하다는 전제 아래 그 훈련이 기자회견에 의해 어떻게 방해받았는지만을 집중적으로 확인하고자 했다. 즉, 그 훈련이 왜 적법한지에 대해서는 전혀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반면 변호인 측은 이 훈련이 ‘북한군 격멸’, ‘북정권 제거’, ‘한반도 통일 여건 조성’을 작전 목적으로 한 작전계획 5027-04에 따른 것으로서 침략전쟁을 부인한 헌법 제5조 1항, 평화통일 원칙을 천명한 헌법 제4조, 방어를 목적으로 한 한미상호방위조약(제1조, 제2조, 제3조), 7·4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남북공동선언,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 등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방어연습이라는 주장이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질 수 없게 되자 군당국은 만리포상륙훈련이 북한의 전면 남침 65일 이후 상황을 상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평양 고립 압박을 위한 훈련의 불법성을 피해보고자 한 것이다.

 

'북한의 전면 남침'은  현실성 없는 가정
 
그런데 북한의 전면 남침이라는 가정은 타당성과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남북정상회담과 총리회담을 통해 남북 관계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키는데 적극 나서고 있고 군사적 요충지인 개성과 해주를 남쪽에 개방하고 있는 북이 전면 남침할 의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북이 남침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도 없다. 오랫동안 남에 비해 10분의 1도 안 되는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고, 경제력이 3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북이 남을 침략한다는 것은 자살행위가 될 뿐이다. 남의 군사력이 북에 비해 열세라고 수십 년 동안 억지 주장을 해오던 국방부도 마침내 <2006 국방백서>에서 “현재의 대북 전력은 양적으로는 열세하나 질적으로는 우세한 수준을 유지하게 되었다”(75쪽) 밝히고 있다.

 

공격이 성공하려면 공격 측의 전력이 방어 측의 전력보다 최소한 3배 이상 되어야 한다는 군사전문가들의 판단에 따르더라도 북이 남을 전면 남침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볼 때, 한미 군당국이 북한의 전면 남침을 가정하는 것은 북이 남을 침략할 의사와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침략적 작전계획과 전쟁연습에 대한 불법성 논란을 회피하고 이를 합법화·정당화하기 위한 허구라 할 수 있다.

  

전면전이 일어나는 경우는 북의 전면 남침의 경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철기 동국대 교수는 이 사건 재판의 증인으로 나서 작전계획 5027에서는 전면전 발발의 경우를 ▲ 미국의 북한 군사시설에 대한 타격과 북측의 반격에 의한 경우 ▲ 국지전에서 전면전으로의 확대 ▲ 군사적인 징후에 대한 남측에서의 선제공격 ▲ 북한의 전면전에 대한 남측의 반격의 경우 등 4가지로 상정하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설사 전면 남침이 있다 하더라도 북 체제 붕괴를 작전계획과 그 실현을 위한 전쟁연습이 합법화·정당화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국제법과 유엔헌장은 무력침략을 받은 경우 예외적으로 자위권을 인정하고 있지만 그 자위권은 필요한 한도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비례성의 원칙을 따라야 하고, 자위권의 행사기간도 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평화와 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만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미군 전력증원은 ‘북정권 제거’ 위한 것

 

이와 관련하여 북한의 남침을 방어하는 데는 남측의 전력만으로도 충분한데도 전면전이 발생하면 수십만 명의 대규모 미군 증원전력과 첨단무기를 동원하도록 작전계획 5027이 규정하고 있다. 이는 북정권 제거라는 방어를 뛰어넘는 전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만리포 상륙전훈련은 이를 가장 앞서 실행하는 해병대의 훈련이라는 점에서 적법한 공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남한 헌법이 평화통일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남침을 핑계로 해서 무력 북진을 감행하여 한반도 통일여건을 조성하는 것은 무력통일을 추구하겠다는 것으로서 평화통일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볼 때, 북정권 제거를 노리는 작전계획과 그 실현을 위한 만리포상륙전훈련은 헌법 상 평화통일 원칙 등에 위배된다. 따라서 적법하지 않은 공무에 일정한 지장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이에 대해 특수공무집행방해죄를 묻는 것은 부당하고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이와 같은 변호인 측 주장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 1심 선고공판이 주목되는 이유다. 1심 선고공판은 오는 12월 21일(금) 오전 11시, 대전지법 서산지원에서 열린다.


태그:#만리포, #RSOI, #작전계획 5027, #상륙전,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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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확하고 진실한 보도를 통해 우리 사회의 진보를 앞당기기 위해 기자회원이 되었습니다. 저는 주한미군문제,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으며 이에 관한 기사를 주로 쓰고자 합니다. 저는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자통협) 사무처장,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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