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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슈퍼맨 리턴즈> 한 장면.
 영화 <슈퍼맨 리턴즈>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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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의가 있다. 성선설과 성악설이 대표적인 주장들이다.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철학은 갑론을박한다. 이런 논의가 진행될 때 난 딱히 할 말이 별로 없다. 인간에 대해 논하기에는 내 철학적 사유는 한참 딸리기 때문이다. 대신에 난 주제를 돌려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 인간이 무엇인지,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논쟁하는 사람들에게 약간은 뻔뻔하게, 그러나 순진한 표정으로 묻는다.

“슈퍼맨은 인간인 거야, 아닌 거야?”

논쟁에 푹 빠져 내 질문을 건성으로 듣거나, 내 순진한 표정에 현혹된 사람들은 대부분 생각 없이 쉽게 대답한다.

“슈퍼맨은 인간이 아니라 외계인이잖아.”

이 답이 나오면 속으로 빙그레 웃으며, 그러나 보다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 질문한다.

“외계인에서 인(人)은 ‘사람 인(人)’자 아닌가? 그러면, 외계에 사는 사람(人)이란 뜻이네? 외계에 사는 사람이면 인간 아니야?”

인간의 기준이 이성이라고?

슈퍼맨이 인간이냐는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인간에 대해 먼저 고민한다. 그러고 나서 슈퍼맨이 그 인간의 기준에 적합한지를 판단한다. 인간의 기준을 이성에서 찾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동물들과 인간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 이성이라는 것이다. 슈퍼맨은 이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와 같은 정서를 공유하기도 한다. 이런 기준에 의하면 슈퍼맨은 인간이다.

슈퍼맨만 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ET도 이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와 다른 외모는 인간 다양성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ET뿐만이 아니다. 스타워즈에 나오는 자자 뱅커스나 츄바카도 인간으로 인정할 수 있다.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에이리언은 어떨까? 에이리언도 이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에 비해 이성이 그다지 떨어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슈퍼맨이나 ET를 인간의 다양성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에이리언을 인간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정서적인 측면도 같이 언급한다. 비록 이성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에이리언처럼 폭력적이며, 잔혼한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 아니라 이성을 가진 외계 괴물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은 일면 그럴 듯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동의하면 한 가지 사소한 문제가 발생한다. 에이리언보다 폭력적이며, 잔혹한 인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에이리언이 이유 없이 살해한 인간보다 최소 몇 백 배의 인간을 보다 잔혹하게 살해했다. 그렇다고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인간이 아니라 지구 괴물이라 판단하는 것도 약간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사소하기는 하지만 아주 약간의 무리가 있어 보인다.

동일성이 인간의 조건?

인간과 인간의 섹스에 의해 태어난 존재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 주장은 인간의 난자와 정자의 결합으로 태어난 존재가 인간이라는 주장과 유사하다. 가장 상식적인 주장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결정적인 논리적 허점이 있다.

슈퍼맨이 인간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인간의 난자와 정자가 결합되어 슈퍼맨이 태어났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난자와 정자가 인간의 난자와 정자인지 알아야 한다. 슈퍼맨의 생물학적 부모가 인간인지 판단해야 한다. 결국 무한순환논법에 빠지게 된다.

이 주장은 논리적 허점뿐만이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반증될 수 있다. 진화론을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인간의 시조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원숭이와 함께 유인원에서 진화돼 왔다. 그러나 인간으로 진화한 유인원이 전부 같은 종류의 유인원이었던 것도 아니다.

우리가 인류라고 인정하는 네안데르탈인은 3만 년 전까지 활동했다. 그러나 현생 인류의 조상은 아니다. 네안데르탈인은 3만 년 전쯤에 멸종했을 뿐이다. DNA 분석을 아무리 해봐도 현생 인류의 조상과 네안데르탈인이 교배해서 혈통적으로 얽혔을 가능성은 없다.

인류의 유골을 살펴보면 키가 2m 이상의 거인족에서부터 1m 미만의 소인족까지 인류의 종족은 다양했다. 생물학적으로 종이 다른 인류가 다양하게 존재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네안데르탈인을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인류는 멸종했고 현생 인류의 조상만이 살아남았다. 지구를 지배하던 공룡이 멸종하던 격변 속에서 인류 중 하나의 생물학적 종이 살아남았다. 어쩌면 인류를 아직까지 존속시킨 원동력은 종 다양성일지 모른다. 동일성이 아니라 종 다양성이 인간 생존의 조건이었는지 모른다.

인간은 스스로를 창조한다

지금까지 보고된 인류 중 가장 오래된 것은 700만 년 전에 있었던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다. '생명의 기원'을 뜻하는 '루마이'란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인간과 침팬지의 공동 조상에서 인류가 갈라진 직후 나타난 인류의 화석이다.

'루마이'의 뇌 크기는 360cc에서 370cc이다. 이정도의 뇌 크기는 인류보다는 오히려 침팬지와 비슷하다. 뇌 용량으로 판단해 보면 이성 수준은 침팬지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혈통도 현생 인류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 그러나 인류는 ‘루마이’를 유인원으로 판단하지 않고 인류로 인정한다.

지난한 진화의 사슬 속에서 ‘루마이’를 인류로 인정한 이유는 구석기 문화를 공유했기 때문이다. 이성이 뛰어나서도 아니고 혈통이 인류와 같아서도 아니다. 구석기 문화를 공유했기 때문이다. 인류의 조상과 비슷한 생활을 영위했고, 비슷한 문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인류로 인정했다. 그렇게 자연을 극복하고 스스로의 미래를 개척했던 존재들을 인류로 인정했다.

인간은 지난한 역사를 통해 스스로를 창조했다. 이를 통해 인간 본성도 창조했다. 10만년이 넘는 호모사피엔스의 역사 동안 현재 우리가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하는 속성들이 나타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9만 5천년 동안 인간의 본성은 다른 모습이었다. 그리고 미래의 인간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미래의 인간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활동에 의해 창조될 것이다.

우리는 우주에서 슈퍼맨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인간은 지난한 역사 속에서 스스로를 창조해왔다. 슈퍼맨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슈퍼맨과 인류가 같은 혈통을 공유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둘 다 문화를 만들어 왔으며, 지난한 역사의 산물이라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그렇게 스스로의 미래를 창조해 갈 것이라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혈통이나 유전자, 신체적 차이는 오히려 부차적일 뿐이다. 차이는 그냥 차이로 인정하면 그뿐이다.

덧붙이는 글 | * 본 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대안정책 사이트 이스트플랫폼(http://www.epl.or.kr)에 공동 게재됩니다.

** 2008년 초에 민연사에서 출판할 예정인 책의 내용을 연재 기사로 묶어 올립니다.



태그:#철학, #인간, #슈퍼맨, #다양성,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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