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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산성을 내려오면 SBS 사극 <연개소문> 세트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연개소문> 세트장에서 고구려 건물과 약간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하고 자세히 보니 수당시대의 중국 건물들을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특히 붉게 칠해 놓은 건물의 모습이 중국의 그것과 비슷한데, 이를 보니 작년 중국에서 발해의 궁궐 복원도에서 붉은 색이 유난히도 많아 씁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연개소문> 세트장은 이국적인 느낌보다도 을씨년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가을이기에 나무의 이파리가 다 떨어진 모습 때문에 그럴지 몰라도, 만들어놓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아무래도 적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싶다.

 

 

<연개소문> 세트장에서 좀 더 걸어가면 온달동굴이 있다. 온달동굴은 천연기념물 제 261호로 지정된 동굴로서, 이곳에는 온달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이곳에서 온달은 수행을 하였다고 하는 게 그것인데, 그 때문에 온달동굴이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또한 조선시대에 이 굴의 깊이가 어디까지인지 궁금했던 마을사람들이 횃불 10개를 들고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횃불이 다 타도록 그 끝이 보이지 않아 다시 돌아갔다고 전한다.

 

4억5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온달동굴

 

 

이 동굴은 조선시대의 문헌인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남굴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성산 아래에 있어서 성산굴이라고도 하였으나, 오늘날에 들어서는 온달산성과 연계하여, 또 그 아래에 있다고 해서 온달동굴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이 온달동굴은 석회암 지대에 형성된 천연동굴로 생성 시기는 최장 4억5천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동굴의 총 길이는 760m로서 입구에서 동쪽으로 길게 나 있는 주굴과 이곳에서 갈라져 나간 다섯 갈래의 굴들로 이루어졌다. 동굴 내부에는 여섯 군데의 광장이 있고 군데군데 다채로운 석순과 종유석이 많이 발달되어 있다. 또한 종유석의 생성 과정을 살펴 볼 수 있는 종유관도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1966년에 이곳에 대한 동굴학술조사가 시행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975년에 일반에게 잠시 공개하였으나 지리적 여건으로 폐쇄되었으나, 다시 1997년 11월에서 일반에게 전면 개방되고 있다고 한다.

 

동굴 내부는 안쪽이 지대가 높아 맑은 물이 동굴 입구 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윤달이 있는 해 음력 2월에는 물이 흐르지 않는 기한현상을 볼 수 있다. 동굴 내부의 기온은 사계절 내내 대체로 16℃ 내외가 유지되어, 이 때문에 한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입구 쪽으로 흘러나오는 물에 물고기가 서식하기도 한다.

 

 

온달동굴의 입구에는 머리를 보호할 수 있도록 안전모가 있다. 이 안전모를 쓰는 이유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안전을 지키기 위함인데, 동굴의 특성상 머리가 동굴의 천장에 부딪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달동굴의 대다수 천정의 경우 머리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군데군데 높이가 낮은 곳이 있고, 그곳에 잘못 부딪치면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안전모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

 

내부에는 철판으로 길과 계단들을 만들어 놓았다. 아무래도 이러한 것이 없으면 땅이 미끄러워 넘어질 경우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에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군데군데 불이 켜져 있기에 그 황홀한 모습을 쉽게 감상할 수 있다.

 

온달동굴은 과연 그 명성대로 여기저기가 장관이다. 이곳을 들락날락거리던 이들이 붙여 놓은 이름으로 그 운치를 더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동굴의 길가에 있는 삼봉바위의 경우 3개의 산봉우리로 이뤄진 산과 비슷하다는 데에서 그 이름이 붙여진 듯하다. 실제로도 약간 울퉁불퉁하여 바위산을 닮은 모습 때문에 어느 경치 좋은 바위산을 축소시켜 통째로 옮겨놓은 듯하다.

 

이 외에도 극락전, 망부석, 만물상 등 다채로운 이름들이 붙여져 그 운치를 더해준다. 사실 이곳에 머물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 오래 보지는 못하고 다시 나와야 하였다.

 

고구려 무사의 힘찬 활쏘기, 그러나...

 

 

온달관광지의 밖으로 나오는 길에 보면 간단한 기념물이 하나 세워져 있다. 들어갈 때에는 미처 자세히 보지 못하였는데, 나오는 길에 보니 조금 달리 보였다. 이 기념물은 산성을 모티브로 삼은 듯한데, 흙색과 강으로 성산과 남한강을 표현한 것 같고, 그 땅 위에는 무용총 무용도에서 춤추는 여인의 모습이 옮겨져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온달산성으로 보이는 성이 간단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그 위엔 다시 말을 타고 달리며 뒤를 돌아보며 힘차게 활을 쏘는 고구려 무사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무사의 상은 자세히 보면 왠지 이상한 점들이 약간 보인다. 우선 말이 달리는 모습인데, 실제로 말이 달리는 모습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앞다리가 앞으로, 뒷다리가 뒤로 펴져서 뛰는 모습인데, 이러한 자세는 말의 자세가 아니라 개구리의 자세일 뿐이다. 즉 이 상을 세울 때 말에 대한 기본적인 움직임도 보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 점이 좀 씁쓸하다.

 

또한 뒤를 돌아보며 힘차게 활을 쏘는 모습, 이를 파르티안 샷이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이러한 모습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많이 보이며, 굉장한 실력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이렇게 활을 쏘고 있는 무사의 어깨 부분에 갑옷이 보인다. 이는 사실상 활을 쏘는 이에게는 전혀 필요가 없는 갑옷이며, 이는 실제로 활을 한 번 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렇게 간단한 것도 뭐 얼마 따질 필요가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만든다고 하면 그에 대해 기본적인 것 정도는 지키고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고증을 따진다는 것은 고리타분하게 역사에 꿰맞추라는 것이 아닌, 단지 기본에 충실하라는 것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 <'테마'가 있는 나만의 여행 >응모글입니다. 11월 3일 단양 온달동굴을 갔다와서 쓴 답사기입니다.


태그:#온달동굴, #온달산성, #온달, #단양, #온달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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