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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 인왕산을 따라 마을이 만들어져 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 인왕산을 따라 마을이 만들어져 있다.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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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주택 1층 방 3칸 전세 1000만원'

4년 전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3동에 방을 얻으러 돌아다닐 때 한 부동산업체 문에서 본 글귀다. 당시 싼 방을 얻기 위해 눈을 불을 켜고 다니던 내 눈에 그 글귀는 확 들어왔다. 인터넷과 서울 시내 정보지를 이잡듯하던 당시, 그처럼 파격적인 정보는 처음이었다. 당장 들어갔다. 그 곳이 어디냐고. "개미마을이라는 곳입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방을 계약하자"고 하고 싶었지만, 너무 좋은 조건이라 오히려 의심이 갔다. "비가 새는 곳입니까?", "수돗물이 안 나오나요?", "전기가 안 들어옵니까?" 등등 몇 가지를 물었지만, 부동산업체 주인은 모두 "그렇지 않다"고 답할 뿐이었다. 그리곤 잠시 뜸을 들이더니 "무허가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개미마을'(얼마 전부터 황금마을로 고쳐 부르고 있음)은 그렇게 그 때 내 기억에 꽂혔다.

개미마을은 경사가 가파르다. 골목 계단 아래서 위를 보면 아찔하다.
 개미마을은 경사가 가파르다. 골목 계단 아래서 위를 보면 아찔하다.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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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허가 집이 이렇게 서울 중심가 가까운 곳에 남아 있다니….' 홍제 지하철역은 시내 중심가인 종로3가역까지 다섯 구간에 불과했다.

개미마을 옆 동네에 방을 정한 뒤, 개미마을을 숱하게 지나쳤다. 약수 뜨러 가고, 배드민턴 치러 가고, 자전거 타러 가고, 등산하러 올라갔다. 민들레 캐러 올라간 적도 있다. 지난해 SBS 드라마 <불량가족>을 이 곳에서 촬영할 때 여주인공인 남상미를 보러 한밤중에 올라간 적도 있다.

그렇게 다니면서 난 개미마을을 볼 만큼 봤다고 생각했다.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올린 집, 잔뜩 녹슨 상태로 거꾸로 매달린 자전거, 올라가서 몇 번 구르면 푹 꺼질 것 같은 기와지붕, 좁고 가파른 골목, 하늘 가까이 있는 배드민턴장을 떠올리며 내가 본 것이 전부일 것이라 생각했다. 얼마 전 사진기를 둘러메고 이곳저곳 속속들이 다니기 전까진 말이었다.

개미마을은 그렇게 보고도 모자란 곳이었다.

하늘 밑 마을, 천천히 숨을 고르며 올라야 하는 곳

개미마을엔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집들이 적지 않다.
 개미마을엔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집들이 적지 않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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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3동 9-81. 개미마을의 공식 주소다. 1만5천여평 정도 되는 이 일대 마을 경사는 가파르다. 자전거를 타고 마을 끝까지 종종 오르곤 하는데, 막바지에 이르면 자전거 앞바퀴가 들린다. 몸을 최대한 앞으로 숙여서 무게 중심을 앞으로 쏠리게 해야 끝까지 오를 수 있다. 물론 기어는 가장 가볍게 하고, 발을 빨리 돌려야 한다. 그 때 조금만 호흡이 흐트러지면 자전거는 금세 옆으로 고꾸라진다.

마을 끝에 이르면 공중화장실과 파출소가 보인다. 그 때 자전거를 세우고 저 멀리 보이는 경치를 구경하면 된다. 북한산, 안산, 백련산 등 인근 산과 내부순환도로 등이 보일 것이다. 탁 트인 경치와 맑은 공기, 조용함은 땀 뻘뻘 흘리며 오르막을 오른 이만이 누릴 수 있는 선물이다.

11월 초 사진을 찍는 정래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개미마을 입구에 도착했을 때, 정래는 경사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전 끌고 갈래요." 대부분 반응이 이렇다. 자전거 타기를 아주 즐기거나 도전 정신이 강한 사람이 아니면 감히 자전거 탈 생각을 하지 못한다.

개미마을엔 연탄을 때는 집이 남아 있다.
 개미마을엔 연탄을 때는 집이 남아 있다.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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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과 내리막이 교대로 이어지는 다른 산길들과 달리, 차도에서 개미마을 끝까지는 1km 가까이 줄곧 가파른 오르막이다. 그래서 만약 이 곳에서 자전거 대회를 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할 때가 많다. '투르 드 프랑스'에 나오는 것처럼 산악왕을 뽑으면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상상 말이다. 그런 대회가 동네 주민들에게 폐를 끼치진 않을까 하는 점에서 확신은 없지만.

개미마을. 담이 휘어 있다.
 개미마을. 담이 휘어 있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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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경사면에 지어진 동네인 만큼 골목 또한 아찔하다. 산길을 따라 놓인 계단은 경사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각도를 만들어낸다. 큰 바위 옆에 대문이 있는 경우도 있다. 좁은 돌길 옆에 있는 대문과 집을 보노라면 사극에서 본 요새가 생각난다. 산길을 따라 담이 휘어진 곳도 있다. 어떻게 해서든 네모 반듯하게 자연을 깎아내고 채워 넣는 요즘 풍토에서 이와 같은 집 모양은 참 색다르다.

골목을 누비던 날 윗동네 입구엔 연탄이 쌓여 있었다. 아주머니 한 분이 부지런히 손수레에 연탄을 싣고 오르내리는 중이었다. 월동준비를 하는 거다. 길 옆엔 줄이 달려 있다. 눈이라도 오는 날엔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길이 가파르면 아무래도 다니긴 불편할 수밖에 없다. 특히 나이 드신 분이나 몸이 불편하신 이들에게 이런 경사는 위험하다. 한 겨울 눈이 잔뜩 온 날 자전거를 천천히 끌고 가다 집 앞에서 넘어진 적이 있다. 내 뜻과는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이다. 다행히 이 곳에는 마을 끝까지 7번 마을버스가 다닌다.

연탄을 나르는 아주머니. 경사가 심해 한쪽엔 줄이 매어져 있다.
 연탄을 나르는 아주머니. 경사가 심해 한쪽엔 줄이 매어져 있다.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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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가 만들어내는 마술, 위와 아래 경계 사라져

경사가 만들어내는 마술은 몇 가지가 있다. 지붕 아래 지붕이 보이고 지붕 아래 또 지붕이 보인다. 지붕 위로 윗집 대문이 고개를 쑥 내밀고, 지붕 위로 윗집 텃밭이 보인다. 아래와 위가 수시로 뒤바뀐다. 아니, 아래와 위의 경계가 섞이고 섞이면서 어느 순간 사라진다. 그런 마술을 개미마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게다가 가파른 땅에서 살기 위한 재치가 곳곳에서 번뜩인다. 절벽 앞에 마당을 만들어내고 아래엔 쇠기둥을 박은 경우다. 개천 위에 집을 세우고 시멘트로 다리를 세운 경우도 있다.

텃밭 안에 집이 있는 것 같다.
 텃밭 안에 집이 있는 것 같다.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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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오르고 오르다 보면 제일 끄트머리쯤에 '하늘문교회'가 나타난다. 참 단출한 교회구나 싶다. 개미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집과 별 차이가 없다. 집은 1층이고, 지붕은 슬레이트다. 나무문과 아무 무늬도 없는 벽 또한 꾸민 흔적을 전혀 볼 수 없다. 그 마을에 가장 어울리는 모습으로 들어와 있는 교회, 이런 교회를 본 적이 언제 또 있나 싶다.

하늘문교회
 하늘문교회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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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서 말린 나물을 손질하던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재개발에 대해서 물었다(개미마을은 2008년 4월까지 개발계획(지구단위계획)을 결정할 계획이다). 마을엔 재개발을 찬성하는 쪽과 이주를 원하는 쪽이 있었는데, 아저씨는 이주를 원한다고 했다. "이주가 될 것 같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안 될 것 같아요"라고 대답한다. 원하지만 안 돼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다.

지금 '황금마을 일명 개미마을 지역연합 공동주택 조합 추진위원회'쪽에선 이주 대신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2005년 서울시가 이주는 불가, 자력개발에 따른 그린벨트 해지 약속을 공문으로 내려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을 벽엔 '이주를 원한다'는 글이 많이 붙어 있다.

한창 사진을 찍고 있으니 옆에 우리들 모습을 보고 있던 한 할아버지께서 "사진 잘 찍혀요"라며 말을 건넨다. "흐려서, 잘 안 찍혀요"했더니 그냥 '허허' 웃으신다.

버려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

서울에서 몇 군데 되지 않는 달동네. 이 곳은 가난이 덕지덕지 붙은 곳이다.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에겐 낭만일 수 있겠지만, 삶인 이들에게는 불편함일 수 있다. 가난을 치부로 생각할 수도 있다. 사진을 찍는 동안 한 분이 신경질적으로 "사진 함부로 찍지 마세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진 방향은 그 분이 살던 곳과는 상관이 없었다. 마을이 드러나는 게 싫었던 것일까. 결국 묻진 못했다.

개미마을에서
 개미마을에서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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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은 오랫동안 '인디언마을'이었다. 인디언처럼 소리지르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 이름을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느 순간 개미처럼 부지런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해서 '개미마을'로 바뀌었다. 이젠 그마저도 '황금마을'로 바뀌었다. 과거를 지우고자 하는 마을…. 과거 흔적을 깡그리 지워가는 대한민국에서 개미마을은 몇 십 년 전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몇 남지 않은 마을이다.

연탄 때는 집, 천막으로 하늘을 가린 노인정 놀이터, 목책으로 가린 담, 슬레이트 지붕, 간판도 없는 조촐한 구멍가게 등 개미마을을 특징짓던 것들이 이제 내년이면 사라질 것이다. 가난의 때는 지우는 게 옳겠지만, 그 때문에 함께 사라지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개미'와 '황금'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덧붙이는 글 | 홍제동 개미마을은 홍제역에서 내려 문화촌현대아파트까지 10분 가량 걸어간 뒤, 그곳에서 인왕산을 보고 10분 가량 걸어올라가면 된다. 개미마을 주민들 이야기는 '서형 인터뷰'(http://www.mediamob.co.kr/2bsicokr/blog.aspx?id=156646#)에 들어가면 자세히 볼 수 있다.



태그:#개미마을, #홍제동, #골목, #미니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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