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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줄거리와 내용

 

.. 책의 줄거리나 내용을 달달 외워 어디에 쓰겠소? 그 뜻을 곱씹어 생각하는 게 중요하오 ..  <김문태-세상을 바꾼 위대한 책벌레들>(뜨인돌어린이, 2006) 16쪽

 

 ‘줄거리’라는 좋은 말이 있어도 제대로 살려쓰지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내용’이라고 하는 한자말에 더 끌리나 봐요.

 

 ┌ 내용(內容)
 │  (1) 그릇이나 포장 따위의 안에 든 것
 │   - 상자의 내용 / 선물 꾸러미의 내용 / 소포의 내용
 │  (2) 사물의 속내를 이루는 것
 │   - 자산의 내용 / 생산 요소의 내용 / 예산의 내용과 규모
 │  (3) 말, 글, 그림, 연출 따위의 모든 표현 매체 속에 들어 있는 것
 │   - 편지의 내용 / 연설의 내용 / 기사의 구체적인 내용
 │  (4) 어떤 일의 내막
 │   - 사건의 자세한 내용 / 영업 내용 / 문예 활동의 내용
 │
 ├ 책의 줄거리나 내용을 달달 외워
 │→ 줄거리를 달달 외워
 │→ 책에 담긴 얘기를 달달 외워
 └ …

 

 ‘내용’ 풀이 (1)에서는 ‘든 것-담긴 것’ 들로 풀면 됩니다. “상자에 든 것”, “선물꾸러미에 담긴 것”, “소포에 든 것”처럼요. 풀이 (2)는 ‘내용’을 아예 덜어도 좋고 ‘어떠한가’를 써서 “자산은 어떠한가”처럼 다듬을 수 있습니다. 풀이 (4)에서는 ‘이야기’나 ‘줄거리’나 ‘속내’로 손볼 수 있어요. 다음으로 풀이 (3). 이 풀이 (3)은 바로 ‘줄거리’로 고칠 말들입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살펴보면 한자말 ‘내용’은 굳이 안 써도 좋은 말입니다. 아니, 여러모로 때와 곳에 따라 알맞게 쓰던 우리말을 밀어내는 얄궂은 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보기글을 보셔요. “책의 줄거리나 내용”이라 했지요? 이 보기글은 어떻게 다듬어 내면 될까요?

 

(5) 이와 치아

 

.. 나도 따라해 보았다. 입술도 아프고 이도 아팠다. 입술과 치아 건강에 나쁜 습관이다 ..  <유은실-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창비,2005) 28쪽

 

 ‘습관(習慣)’은 ‘버릇’으로 고쳐서 써야 좋습니다. “치아 건강에 나쁜 습관이다”는 “치아에 나쁜 버릇이다”나 “치아에 나쁘다”로 다듬으면 좋아요.

 

 ┌[국어사전 말풀이 : 표준국어대사전]
 ├ 치아(齒牙) : ‘이’를 점잖게 이르는 말
 │   - 치아가 가지런하다
 └ 이빨 : ‘이’를 낮잡아 이르는 말
      - 누런 이빨 / 호랑이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울부짖었다

 

보기글을 잘 보면, “입술도 아프고 이도 아팠다”고 말하다가 “입술과 치아 건강”이라고 말합니다. 앞에서는 ‘이’라 하다가 뒤에서는 ‘치아’라 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을 보면 ‘치아’가 점잖은 말이라 나오는데, ‘이’라고 하면 점잖지 못한 말이 되겠네요. ‘이빨’이라 하면 더더욱 그렇고요.

 

 하지만 저는 달리 봅니다. ‘치아’라 말하는 일이 점잖지 못할 뿐 아니라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이빨’이라는 좋은 우리 말을 놓고도 ‘치아’ 타령을 하는 일은, 우리 스스로 우리 말과 문화를 낮춰보거나 깔보는 못난 짓이라고 느낍니다.

 

 ┌ 이 : 우리 몸 가운데, 입으로 무엇을 잡아서 물거나 밥을 씹는 곳
 └ 이빨 : ‘이’를 좀더 억세거나 크거나 세게 가리키기도 하는 말

 

 ‘이빨’은 ‘이’를 좀더 세게 가리키는 말이라고 보는 편이 알맞지 싶습니다. “악어는 무시무시한 이를 드러냈다”라 하면 어딘가 안 어울리지만, “악어는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냈다”라 하면 잘 어울립니다. “썩은 이빨을 뽑았습니다”라 해도 어울리지만, “썩은 이를 뽑았습니다”라 하는 편이 좀더 부드럽습니다. 뜻과 쓰임은 거의 같으면서 ‘이빨’은 좀더 크고 억센 모습을 나타낼 때 쓰는 말로 다루어야 어울리지 싶어요. 낮잡는 말이 아니라 “느낌이 다른” ‘이빨’이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에 놀러오시면 여러 가지 말글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우리말, #우리 말, #겹말, #내용, #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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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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