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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노송과 장승이 서있는 마을입구
 멋진 노송과 장승이 서있는 마을입구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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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아! 이 동네 아주 멋진 곳이구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마을입구로 들어서자 일행들이 우선 감탄을 한다. 마을 입구에 서 있는 거대하고 멋진 소나무들과 두 개의 장승 때문이었다. 대개의 마을에는 정자나무가 서 있는 것이 보통인데 이 마을입구에는 크고 멋진 소나무들이 서 있는 모습이 특별했다.

지난 11월 6일,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군의 경계지역에 있는 희양산 등산을 위해 찾은 괴산군 연풍면 은티마을의 풍경이다. 산골 깊숙이 자리 잡은 마을은 주변에 산들이 빙 둘러 서 있는 모습이 병풍이라도 둘러친 것 같은 아늑한 모습이었다.

“콩 농사를 아주 잘 하셨네요?”
“네 아주 잘 여문 것 같은데요.”

콩을 거두는 할머니와 같은 마을에 사는 듯한 아주머니의 대화 내용이었다. 마을 안길을 지나 산으로 오르는 길가의 밭에서는 잘 익은 콩을 수확하는 할머니의 손길이 느긋해 보인다.

조금 더 올라가자 길가 옆으로 사과밭들이 나타났다. 늦은 품종인지 아직 수확을 하지 않아 빨갛게 익은 사과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고 그 모습은 꽃밭보다 더 아름다웠다. 골짜기와 밭둑에는 잎이 모두 져버린 감나무에 노란 감들이 촘촘히 열려 있어 보기 좋았다.

콩을 수확하는 할머니와 대화를 하던 아주머니도 우리들과 같은 방향으로 걷는다. 희양산 등산로를 물으니 이 길로 올라가라고 한다. 위로 올라갈수록 경작을 포기한 채 잡초만 무성한 묵은 밭들이 몇 개인가 나타나 우리 농촌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하다.

등산길에 앞장선 개 한 마리

“어, 이 녀석 좀 보게? 왜 우리들의 뒤를 따라오지?”

마을을 벗어날 때쯤 일행들의 관심을 끈 것은 한 마리의 개였다. 체구가 크지 않은 잡종개로 보이는 이 녀석은 마을 어디쯤에선가부터 우리 일행과 합류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개가 마을을 벗어났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우리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이거 입산금지잖아? 이걸 어쩌지?”

조금 더 올라갔을 때였다. 등산로 입구에 11월1일부터 입산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이 게시되어 있었다. 안내문에는 입산을 하려면 관계당국의 허가를 받고 들어가라는 안내문과 함께 무단 입산시에는 20만원의 벌금을 물게 된다는 글도 같이 쓰여 있었지만 정작 전화번호는 적혀 있지 않았다.

“왜들 안 올라가시고 여기 서 계십니까?”

그 때 우리들보다 뒤늦게 올라온 다른 등산객 몇이 우리들에게 왜 올라가지 않고 멈칫거리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콩 수확하는 할머니
 콩 수확하는 할머니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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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둘러싸인 은티마을 풍경
 산에 둘러싸인 은티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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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입산금지 안내문이 게시되어 있잖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올라갑니까?”

우리들이 안내문을 가리키자 그들이 웃는다. 뭘 그런 걸 신경 쓰느냐는 것이었다. 지금 산마다 대부분 입산금지인데 그렇다고 안 올라가는 산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었다.

“먼저 올라갑니다.”

그래도 우리 일행들이 멈칫거리자 그들은 우리들을 지나쳐 휭 올라간다. 그러나 우리 일행들은 여전히 망설인다. 일행들은 법이라면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평생을 생각하며 살아온 순박한 사람들이다. 교통범칙금 외에는 다른 과태료 한 번 낸 적 없는 사람들이니 그럴 만도 했다.

“아참, 내가 전화번호 하나 적어온 게 있어. 혹시나 싶어서.”

평소에도 매사에 꼼꼼한 일행 한 사람이 전화번호를 내민다. 인터넷 등산 안내문에 올라 있던 전화번호라고 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네, 여기 00시(군)청 관광과 000입니다.”

군(시)청이었다. 다행이다 싶어 등산허락을 받기 위해 전화했다고 말하자 자기네 소관이 아니라며 산림과로 돌려주겠다고 한다. 옛날에 비하면 요즘 공무원들 정말 많이 친절해졌다.

“네. 산림과 000입니다.”

잠시 후 드디어 산림과로 연결이 되었다. 내가 신분을 밝히고 등산을 허락해 줄 것을 요청했다. 덧붙여 우리들은 담배피우는 사람도 없고, 질서를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들임과 함께 산림애호가들로서 등산로의 쓰레기를 줍고, 산행질서와 산불방지에도 앞장서는 사람들임을 설명했다.

입산금지를 무시하는 등산객들

그러자 담당 직원은 몹시 난처하다는 듯 쩝하고 입맛을 다신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입산은 좋은데 문제는 희양산이 불교재단의 사유지이기 때문에 당국에서 승인을 해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봉암사의 스님들이 길목을 지키고 있는데 그들이 알게 되면 큰일 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전화를 하면서 조금 걷노라니 길가의 정자 옆에 봉암사에서 만들어 걸어놓은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승려들의 수양정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봉암사와 희양산 정상을 피하여 시루봉이나 다른 곳으로 등산하라는 말과 함께 즐거운 등산을 하라는 친절한 문구까지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담당 직원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고, 희양산 정상에 오르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다음 다시 등산을 시작했다.

“아니 그런데 저 녀석은 어디까지 따라올 셈이지?”

강아지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우리들이 멈칫거리며 서 있자 녀석도 주변에서 서성거리고 있다가 우리들이 모두 일어서자 녀석이 재빨리 우리들의 앞장을 서는 것이 아닌가.

말리는 들깨와 묵힌 밭
 말리는 들깨와 묵힌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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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을 안내하고 동행한 개
 산행을 안내하고 동행한 개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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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녀석이 우리들의 앞장을 서서 가다가 어느 때는 맨 뒤로 뒤처진 사람들을 독려까지 한다는 사실이었다. 뽀르르 앞장서 걷는가 하면 어느새 뒤로 처져 꼬리를 살살 흔들며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꼭 “아저씨 힘드세요? 자, 조금 빨리 걸어 봐요?”하고 격려라도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행들은 저 녀석이 조금 더 가다가 뒤돌아서겠지, 하고 생각하며 걸었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올라가자 제법 높은 고갯마루가 나타났는데 건너편으로 내려가는 길과 왼편 희양산 정상쪽으로 가는 길을 나무 막대기들을 엮어 울타리로 막아 놓았다. 그 울타리 너머에는 작은 초막이 세워져 있는 것이 봉암사 승려가 길목을 지키는 장소인 것 같았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정상으로 가는 길에 세워져 있는 울타리가 많이 훼손이 되어 있었다. 길목을 지키는 승려가 없을 때 사람들이 밟고 넘어 간 흔적들이었다. 그 울타리 너머로 바위봉우리가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 희양산의 정상인 것 같았다.

“넘어가지 말라고 울타리까지 쳐 놓았는데 저렇게 짓밟고 넘어간 사람들이 꽤 많았던 모양이구먼.”
“우리들까지 그럴 수는 없지, 우리는 오른편 구왕봉으로 오르기로 하지.”

우리들이 구왕봉으로 가기로 하고 일어서는 순간 강아지 녀석이 재빨리 앞장을 선다. 마치 우리들의 대화내용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아니, 저 녀석 좀 보게, 또 앞장을 서네.”

이곳은 마을에서 상당히 먼 거리다. 더구나 우리들은 생면부지의 첫 만남이 아닌가. 그런데 강아지 녀석은 돌아갈 생각이 없는지 다시 우리들의 앞장을 선 것이다.

“저 녀석 혹시 봉암사에서 파견한 안내견 아닐까? 절이나 희양산으로 가지 말고 이쪽 구왕봉으로 오르라고.”
“글쎄?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는 걸.”

이제는 강아지를 우리들의 동행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왕봉으로 오르는 길은 상당히 험했다.

급경사나 나무뿌리가 있어 강아지가 쩔쩔매는 곳도 있었다. 그런 때면 일행들이 강아지를 안아서 올려 주었다. 그러면 녀석은 재빨리 앞장서서 올라가 약간 높은 곳에서 우리들을 내려다보며 꼬리를 살살 흔들었다.

구왕봉 중턱에서 바라본 희양산 바위봉우리
 구왕봉 중턱에서 바라본 희양산 바위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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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래 골짜기에 봉암사가 보인다
 저 아래 골짜기에 봉암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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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좋아한다면 질서 지키기와 산불방지에 앞장서야

오르는 중에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몇 사람의 등산객들과 마주쳤다. 입산금지인데 허락을 받지 않고 올라오면 벌금을 물어야 하는 걸 아느냐고 물었지만 반응은 영 시큰둥이다. 입산금지에 봉암사와 희양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막혀 있다고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르막 길 안부에 올라서자 시야가 탁 트인다. 맞은편 희양산 봉우리는 마치 한 개의 거대한 바위인 것처럼 어마어마했고 웅장한 기상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오른편 산 아래 골짜기에는 봉암사가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희양산(曦陽山 998m)은 경북 문경시와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를 이루고, 문경새재에서 속리산 쪽으로 흐르는 백두대간의 줄기에 우뚝 솟은 신령스러운 바위봉우리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희양산을 "갑옷을 입은 무사가 말을 타고 앞으로 지쳐 나오는 형상"이라 말했다.

신라시절의 고승 지증대사는 희양산 한복판 계곡으로 들어가 지세를 살펴보고 "산이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모습이 마치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헤치며 올라가는 듯하고, 계곡물은 백 겹으로 띠처럼 휘감고 있으니 용의 허리가 돌에 엎드려 있는 듯하다"고 감탄했다고 전한다.

등산로는 상당히 가파르고 힘들었지만 날씨가 선선하여 땀은 흐르지 않았다. 허위허위 구왕산 정상에 올라서니 정상 표지석도 세워져 있지 않고, 누군가 종이에 “구왕산 884미터”라고 써서 비닐 코팅을 한 것을 나뭇가지에 묶어 놓았다.

구왕산 정상에서 잠깐 쉬며 둘러앉아 간식을 들자 강아지 녀석도 가까이 다가와 우리들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는 모습이 “나도 일행인데 좀 나누어 주세요”라고 하는 듯하다. 일행들은 너도 나도 떡이며 과일을 조금씩 떼어준다. 녀석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며 잘도 받아먹는다. 처음에는 먹지 않던 과일까지 받아먹는 모습이 귀엽기 짝이 없다.

우리들이 쉬고 있는 동안 또 10여명의 등산객들이 올라왔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들 중 그 누구도 산불위험기간의 “입산금지”를 의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아무리 사유지라도 그렇지, 절에서 등산로를 막아놓고 등산을 못하게 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하고 오히려 봉암사를 비난하는 사람들까지 있는 것이었다.

구왕봉 정상과 함께 오른 강아지
 구왕봉 정상과 함께 오른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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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산행을 함께한 강아지
 끝까지 산행을 함께한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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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런 그들도 우리 일행 중의 한 사람이 주변의 쓰레기를 모두 주워 봉투에 담는 것을 보고는 버리려던 쓰레기를 슬그머니 배낭에 다시 주워 담았다. 어떤 등산객은 담배를 빼어 물려다가 우리 일행이 금연하자고 주의를 주자 다시 집어넣기도 한다.

구왕봉에서 바라보는 전망도 일품이었다. 봉암사가 자리잡고 있는 골짜기 너머로는 대야산과 속리산 줄기가 날카롭게 솟아 있고, 서쪽으로는 백두대간을 연결시키는 장성봉과 악희봉 그리고 군자산 등이 마치 병풍처럼 보인다.

북쪽으로는 희양산과 능선으로 연결된 시루봉이 보인다. 동북쪽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조망이 백화산과 운달산, 그리고 문경세재의 주흘산 줄기가 아스라하게 멀리 바라보인다. 이곳에서부터는 내리막길이었다.

끝까지 동행하고 섭섭하게 헤어진 개

강아지 녀석은 여전히 우리 앞뒤를 오가며 열심히 안내를 한다. 어느 순간 보이지 않을 때도 있어서 이 녀석이 이제 먼저 집으로 돌아 갔나보다 하면 어느 순간 다시 나타나 꼬리를 흔들며 다시 우리들 주변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었다.

“이 산은  연중 등산객들을 상당히 통제하는 산인데도 왜 이렇게 쓰레기기 많지?”

정말 그랬다. 그동안 수많은 산을 올랐지만 이 산처럼 쓰레기가 많은 산은 없었던 것 같았다. 산의 중턱쯤 내려왔을 때는 제법 커다란 비닐봉투가 어느새 불룩해 있었다.

“야, 이 녀석아! 너는 주인도 모르니? 왜 모르는 사람들을 따라다니고 그래.”

그렇게 산을 내려와 마을 근처의 사과밭에 이르렀을 때였다. 사과밭에서 사과를 따던 노인부부가 강아지를 알아보고 나무라는 것이었다. 녀석이 우리들을 따르며 우리들과 매우 친숙하게 장난을 치는 것이 이상한 모양이었다.

저 강아지가 우리들과 함께 등산을 했다고 하자 노인부부는 정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마을의 다른 집에서 기르는 개인데 전에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들이 마을을 지나 주차장에 이를 때까지 녀석은 계속 우리들을 따라왔다.

골짜기로 내려가는 일행의 쓰레기비닐주머니가 묵직하다
 골짜기로 내려가는 일행의 쓰레기비닐주머니가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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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 되겠다 싶어 개를 마을로 쫓아 보내기로 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온 녀석을 옆에 있는 막대기를 집어 들며 때리려는 흉내를 내자 녀석이 주춤주춤 물러선다. 마치 “아저씨, 갑자기 왜 그러세요?”하는 표정이다.

내친김에 저만큼 물러선 녀석에게 돌멩이를 한 개 집어 들어 근처에 던지자 녀석은 몹시 섭섭한 듯 꼬리를 내리고 눈을 내리깔며 몇 걸음 더 달아난다. 몇 개의 돌멩이를 더 던졌다. 그러자 녀석은 할 수 없이 마을로 돌아간다. 그러나 돌아가면서 몇 번이나 뒤돌아보곤 하는 모습이 상당히 안쓰러웠다.

“오늘은 참 특별한 산행을 했네 그려, 낯선 개하고 동행을 다 해보고.”
“동행을 한 것이 아니라 안내를 받은 것 아닌가?”
“그러고 보니 오늘 산행 리더는 그 강아지였던 셈이잖아? 허허허.”

한나절 동안 희양산줄기와 구왕산을 동행했던 낯선 개 한 마리에 대한 기억은 앞으로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희양산, #구왕봉 , #은티마을 ,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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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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