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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10월 22일자 기사인 ‘뉴라이트 인사들, 독해력부터 길러라’에 대해 10월 25일 주종환 동국대 명예교수가 “친일파의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면서 오마이뉴스 쪽지함을 통해 필자에게 반박성 의견을 보내왔다. 이 쪽지를 받게 된 경과과정은 이러하다.

안병직·이영훈 교수가 일본 도요타재단의 지원을 받아 식민지근대화론을 연구한 사실을 비판한 필자의 2006년 12월 4일자 기사 ‘안병직·이영훈, 일본 돈 받은 식민지 연구’에 대해 그동안 뉴라이트 측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문제제기를 하다가, 금년 10월에 <권력 저널리즘의 꽃, ‘코드방송과 괴물 포털’>이란 책의 일부분을 통해 또다시 원색적인 비판을 가했다. 위 기사가 안병직 교수를 친일파로 몰았다는 것이 공동 저자 최홍재·김배균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필자는 위의 10월 22일자 기사를 통해, “필자는 안 교수를 친일파로 몰아세운 적이 없으며, 학자에게는 학문윤리 위반자라는 비판이 이 세상에 가장 무서운 것”이라면서 “안 교수가 학문윤리 위반자라는 비판은 친일파라는 비판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필자의 10월 22일자 기사에 대해 10월 25일에 주종환 명예교수가 10월 13일자 <경향신문> 기고문 ‘한나라당은 사대주의 정당인가?’를 함께 보내주면서 “친일파란 일본측의 논리로 한국문제를 보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안병직 교수를 친일파로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필자의 생각에 대해 반박성 의견을 보낸 것이다. 주 교수의 10월 13일자 기고문은 10월 14일자 <오마이뉴스>에도 실렸다.

주종환 교수의 학문과 열정을 존경하고 있고 또 식민지근대화론에 관한 그의 입장에 동조하지만, 친일파의 개념을 확대하는 주 교수의 논리에 대해서는 이의를 갖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주 교수의 주장에 대해 이의를 갖는다고 해서 안병직 교수를 옹호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또 이런 이의를 제기한다고 해서 주종환 교수에 대한 존경심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해방 이후 60년이 넘도록 해결하지 못한 친일청산을 완성하려면, 친일청산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보다 더 굳건히 할 필요가 있다. “친일청산에 관한 한 이미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국민정서를 좀 더 세밀히 살펴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국민들은 친일파가 나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분명히 공감하고 있지만, 지금 시점에서의 친일파 청산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공감하고 있지 않다. “굳이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 적지 않은 수의 국민들이 나타내는 반응이다. 친일청산을 정치투쟁의 일환으로 바라보는 국민들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이것은 친일청산이 지지부진한 요인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사회는 아직도 계속 친일청산에 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친일청산에 대해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적지 않은 수의 국민들을 친일청산의 지지자로 바꾸려면, 대다수의 국민들이 공감할 만한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 의해 친일청산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친일파의 개념이 무한정 확대된다면, 이는 도리어 친일청산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의 형성을 방해하는 일이 될 것이다.

친일파 문제는 ‘과거’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현재’로까지 확대한다면, 많은 국민들은 친일청산을 역사청산이 아닌 정치투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예컨대,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현재의 학자들까지 모두 친일파로 규정한다면, 많은 국민들은 친일청산을 반대파 숙청을 위한 논리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친일파는 ‘과거’로 엄격히 국한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친중국파가 있고 또 친미파가 있듯이, 친일파도 현재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물론 현재도 한국에는 ‘일본과 친한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친일파가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쉽사리 친일파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은, 자칫 이 표현이 일제 때의 그 친일파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친일파라는 용어가 한국사회에서 이중적 의미(‘과거’ 일제에 부역한 사람, ‘현재’ 일본과 친한 사람)를 갖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에, 이 표현은 매우 신중하게 사용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친일파라는 지목은 개인뿐만 아니라 가문 전체에 대한 형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21세기 현재 ‘일본과 친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가급적 친일파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친일파를 ‘과거’의 문제에 국한시키는 것 외에도, 유의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그것은 일제 때에 먹고 살 만한 위치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친일파로 몰아세우는 일부의 경향을 배격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의 이야기는 주종환 교수가 보낸 쪽지와 무관한 것임을 밝혀 둔다.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희망하는 일이다. 일제 때라고 해서 그런 욕망을 접으란 법은 없는 것이다.

일제시대 사람들이라고 해서 망국 조선을 추억하면서 인간의 기본 욕구를 포기하란 법은 없다. 독립운동가나 사회지도자에게나 요구될 만한 높은 수준의 덕목을 평범한 일반인들에게까지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기본 욕망을 무시하고서 단순히 일제 때에 좋은 직장에 다녔다는 사실만으로 그 본인은 물론 그 후손까지도 친일파로 몰아세우려 한다면, 이것은 차라리 한 편의 희극이라고 하는 편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따라서 자기 민족을 배신한다는 ‘명확한 인식’ 하에 일제에 대해 ‘비중 있게 협조’한 인물들에 대해서만 친일파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단순히 일제 때에 잘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친일파가 되는 것이라면, 친일파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일제시대 사람도 아닌 현재의 사람들을 상대로, 또 대수롭지 않게 치부할 수도 있는 일을 상대로 친일파니 친일이니 운운하는 것은 도리어 친일청산을 방해하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친일파라는 지목이 개인은 물론 그 가문에게까지 사형선고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에, 한국사회는 ‘친일파’라는 칼자루를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합리적 기준 하에 차분하게 친일청산을 진행해야만, 대다수의 국민들도 그에 대해 공감하고 협력과 지지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태그:#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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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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