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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은 우리의 위대한 글자 훈민정음이 창제된 지 561돌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 곳곳에서는 많은 행사가 이어졌다. 하지만, 국경일일 뿐 공휴일이 아닌데다가 정부와 사람들의 관심이 적은 탓인지 의례적인 행사가 많았고, 눈에 띄는 행사는 극히 드물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대전역 앞에서 대학생들이 4번째 전시회를 여는 게 있다고 해서 쫓아갔다. 2004년부터 목원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학생들이 벌여온 “한글사랑운동”이 그것. 이들은 지금껏 잘못된 말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고 올바른 말글생활을 외쳐왔다. 올해는 “비속어, 쓰는 이의 인격입니다!”라는 주제로 지난 10월 8일부터 11일까지 목원대학교 교정과 대전역 광장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이번에 “비속어”를 주제로 정한 까닭을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언어는 개인과 사회의 반영물이다. 비속어는 교양이나 문화 수준이 낮고 천한 개인이나 사회에서 널리 쓰인다. 또 비속어는 개인이나 사회의 교양과 문화수준을 낮고 천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우리 고유의 언어와 문자는 더불어 오염되고 파괴될 수밖에 없다.

 

 

이런 비속어가 우리 사회에 폭넓게 쓰이고 있으며, 날로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각종 광고물이나 거리의 간판, 심지어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옷에까지 인쇄되어 번질 정도이다. 생활주변에 우리 말을 멋대로 파괴하고 구부러뜨린 비속어들이 범람하고,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낯부끄러운 성적 표현들까지 거침없이 쓰이고 있다. 한글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일은 물론, 우리 사회의 건전한 발전과 문화 수준의 향상을 위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전시기간 동안 학생들은 아침에 나와 300여 점의 작품을 화가(畵架, 이젤)에 걸고 저녁이면 작품을 걷는 정성스런 작업을 한다. 내용을 보면 우선 비속어로 “간지작살”, “~용”, “꼴통” 등을 지적하며, 쓰지 말라고 호소한다. 또 “Hi Seoul", "Dynamic Busan", “It's Daejeon" 등을 보여주며 "이 무슨 가당치 않은 짓들인가?”라고 나무란다.

 

 

그밖에 “빵구”처럼 잘못된 외래어, '18번'처럼 일본에서 유래된 말, '꼬맬레 쭈릴래'처럼 소리나는 대로 혹은 문법을 무시하고 쓴 것들, '종가집'처럼 뜻이 겹쳐진 말들을 지적한다.

전시회를 여는 학생들의 생각은 어떨까?

 

국어교육과 3학년 최태용(28) 학생은 "처음엔 그저 따라했지만 하다 보니 모두 재미있어한다"며 "몰랐던 것을 알아가며, 뜻 깊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민들이 관심을 보이며, 격려해줄 때는 뿌듯한 마음이 들곤 한다"고 말했다.

 

학교에 가서 이 운동을 제안하고, 지도하고 있는 표언복(55) 교수를 만났다. 그는 그저 이웃집 아저씨처럼 소박하고 밝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

 

먼저 운동의 시작을 어떻게 하게 됐는지 물었다. 

 

“나는 문학이 전공이어서 실제 언어에 대한 지식은 별로 없다. 하지만 말글이 파괴되고 오염되는 걸 보면서 언어환경이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상황에서 뭔가 작은 일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어떤 변화, 어떤 효과가 있었을까?

 

“강의실 안에서 교육보다 수십 배의 효과가 있음을 절감했다. 국어교육과 학생들인데도 이 운동을 하기 전에 말글을 쉽게 파괴하곤 했지만 그들이 직접 조사하고 작품을 만들고 하면서 절실히 깨닫는 것 같았다. 이제 학생들 스스로 말글을 쓸 때 조심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더구나 우리 학생들은 곧 교사가 될 사람들인데 교사가 되어 그들의 제자들에게 끼칠 영향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 뿌듯하다.”

 

그러면서 시민들의 반응에 대해 말한다.

 

“전시회를 연 뒤 시민들에게서 전화와 전자우편으로 오는 격려가 적지 않다. 학생들은 애쓰고 수고하는 것보다 더 많은 보람을 느낀다. 어떤 은퇴 선생님은 해마다 찾아와서 격려를 해주시는데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또 그는 강조했다.

 

"한글 파괴의 주범은 국가기관인지도 모른다. 영어도시에 수천억 원씩 쓰면서 'Hi Seoul'이니 'It's Daejeon'을 외쳐 마치 미국에 온 착각까지 들게 한다. 국가기관이 나서서 말글을 바로잡아도 시원치 않을 판에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온 국민은 나서서 작은 일이겠지만 이런 전시회 같은 것이라도 벌여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전시회는 학교와 대전역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찾아가는 전시회 곧 해마다 20여 곳의 중고등학교에서 초청을 해와 전시회를 열어준다고 한다. 지방의 한 대학 그것도 한 학과에서 벌이는 일치고는 작은 일이 아닐 터이다.

 

그는 같이 자리한 같은 과 김슬옹 초빙교수와의 이야기 하던 중 서울에서도 전시회를 열 것을 합의했다. 서울에서의 준비는 김 교수가 맡아주기로 한 것이다. 이제 서울 시민들도 목원대학교 학생들의 정성어린 작품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또 그는 지금 벌이는 '나라말살리기서명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다짐했다. 대전을 한글운동의 또 다른 진원지로 만들 것을 약속한 것이다.

 

이제 목원대학교 국어교육과는 지방대학의 한 학과가 아니라 지방에서 우리말 운동을 힘차게 펼치는 큰 학과가 되었다. 그들에게 우리 큰 손뼉을 아낌없이 쳐주어야만 할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대자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목원대, #한글사랑, #표언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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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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