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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에 비극적인 아버지(사도세자)의 죽음을 감당해야 했으며 극심한 당쟁의 와중에 어떤 세력의 비호도 없이 성장한 정조 '이산'. 참여정부 들어 노무현 대통령에 비유되며 말도 많았던 정조. 그가 <대장금>을 만들어낸 이병훈 PD의 손에 다시 태어났다.

 

얼마 전 종영한 KBS 2TV <한성별곡-正> 역시 정조시대를 다룬 작품이다. <한성별곡>이 연쇄살인사건을 바탕으로 정조와 민중들의 고통을 진지하게 담아냈다면 MBC 드라마 <이산>은 정조의 아픔과 고통을 이병훈식 미학과 해학에 버무려내고 있는 드라마다.  

 

의상 하나, 소품 하나에도 정성을 다해 사극의 트렌드를 만드어가는 이병훈 PD. <대장금>에서는 수라간을 통해 권력의 암투를 묘사한 그가 이번엔 그 도구로 도화서를 택했다.

 

첫 회부터 꾸준히 드라마의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는 도화서는 그림을 그리는 일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된 관청이다.(원래 도화원으로 칭하였으나 성종 2년(1471년) 도화서로 개칭했다.)

 

산수화는 물론 왕의 어진이나 왕실의 모습, 세세한 왕실의 기록까지 그림으로 그려 자료로 보관해온 도화서는 국가적인 정보창고에 해당한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안기부에 해당하는 부서일 수 있다.

 

예술은 물론 정보적인 가치에도 주목했던 정조 임금이 도화서에 유별난 관심을 보였던 것도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지도나 반차도와 같은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그림이 그려지기도 했다는 도화서지만 지금의 국정원처럼 서슬퍼렇게 묘사되지는 않는다. 다른 화공들의 눈을 피해 춘화를 그려 저잣거리에 파는 화공 이천(지상열 분)은 소재상 지나치게 무거워질 수 있는 드라마를 가볍게 끌고 가는 양념이다. 드라마 곳곳에 드러나는 이병훈식 해학의 하나다.

 

조선의 르네상스라고도 일컬어지는 영·정조시대 특히 문학과 그림에 조예가 깊었던 정조를 도화서를 배경으로 묘사했다는 것은 참으로 탁월한 선택이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정조시대의 대표적인 화풍은 물론 그동안 접하기 어려웠던 그림에 관련된 역사적인 자료를 맛보기로나마 구경할 수 있게 될 것이니 말이다.

 

그동안 영조와 정조 사이의 섬세한 심리묘사에 치중했던 <이산>이 지난 10월 8일 방송 분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내놓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어린 정조와 동무로 인연을 맺은 성송연이 도화서 다모로 정조와 청나라의 사신 앞에서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어린시절 동궁 전 마당에서 조총이 발견되어 궁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게 되었던 어린 산이(정조)를 위해 자신이 보았던 소총 그림을 그렸던 송연이 10여년만에 위기에 빠진 정조를 위해 다시 붓을 잡는다. 이번엔 소총이 아닌 전설의 동물이라는 기린이다.

 

청나라 사신 앞에서 그림 솜씨를 보여야 하는 송연. 그림을 그리기 전 물감을 준비하는 과정이 마치 <대장금>에서 장금이가 한상궁에게 음식재료를 설명하는 과정처럼 흥미롭다.
   
"황색은 무엇을 썼느냐?"

"석황을 썼습니다."


"붉은 색은?"

"소목을 썼습니다."


"소목은 발색이 떨어진다. 천초를 쓰거라, 다른 색은 무엇을 썼느냐?"

"청색은 석청, 녹색은 동록, 그리고 흑색은 백초상을 썼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장면 역시 장금이의 요리솜씨와 비유된다. 날렵한 솜씨로 조리하는 장금이의 손처럼 송연의 손 역시 화선지 위를 나비처럼 날아다니며 빼어난 그림을 그려낸다. 수라간에서 만들어낸 작품(음식)이 입으로 음미하는 것이라면 도화서에서 만들어낸 작품은 눈으로 맛본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드라마 초반이지만 정조의 수호천사 송연의 활약은 눈부시다. 청나라에 조공으로 보낼 백우포가 사라져 백성들로부터 큰 원성을 사게 될 정조를 구해 줄 방도를 찾아낸 것 역시 도화서 다모인 송연이었다.

 

흰색 안료로 쓰이는 호분이 변색된 옷을 희게 물들이는 염료로도 쓰인다는 것을 알고 황우포에 호분 염색을 해 사라진 백우포를 대신할 조공품을 만들어낸 송연. 정조의 가장 믿을 만한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송연은 훗날 정조의 후궁으로 문효세자를 낳은 의빈 성씨가 된다.

 

<대장금> 이후 4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또 다른 역작을 준비해 왔을 이병훈 PD는 초등학생도 즐길 수 쉽고 재미있는 사극을 만들겠다고 장담한 바 있다.

 

문예 중흥을 이루고 개혁정치를 펼치려던 정조는 결국 그 완성을 보지 못하고 제위 24년째 인 1800년 4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어린시절 비극적인 사건으로 아버지(사도세자)를 잃고 평생 자신을 위해하려는 세력의 살해 위협과 싸우다 결국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는 정조.

 

이병훈 PD는 드라마 <이산>을 통해 비장하게 우리의 심중을 눌러왔던 역사 속의 정조를 꺼내 도화서를 통해 아름다운 채색의 작업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다루어 왔던 정치적인 면보다는 정조의 예술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켜 좀 더 드라마틱한 삶의 모습을 표현 하려는 것이다.

 

앞으로 드라마 <이산>은 도화서와 액정서(내시부에 부설되어 왕명 전달, 궁궐 열쇠 보관, 대궐 정원 관리, 임금이 쓰는 붓·벼루·먹 등의 조달을 맡은 관청), 세자익위사(왕세자를 모시고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던 서반(西班)의 관청) 등 세자 측근 친위조직을 중심으로 펼쳐질 것이라고 한다.

 

<대장금>에서 수라간 나인에 지나지 않았던 장금이를 조선 최고의 의녀로 만들었던  마이더스의 손 이병훈 PD가 <이산>을 통해서는 또 어떤 연출의 마법을 부릴지 기대가 크다.


태그:#정조, #이산, #드라마 , #도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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