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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군인이 되겠다고 하는 여자들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지요. 하지만 우리네 군대조직에서는 마치 여자군인들이 "초콜릿을 좋아하며 귀여움을 받으려고 하는 듯" 잘못 생각한다지요. 생각해 보면, 여군도 남군도 아닌 군인인데 말입니다.
▲ 겉그림 스스로 군인이 되겠다고 하는 여자들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지요. 하지만 우리네 군대조직에서는 마치 여자군인들이 "초콜릿을 좋아하며 귀여움을 받으려고 하는 듯" 잘못 생각한다지요. 생각해 보면, 여군도 남군도 아닌 군인인데 말입니다.
ⓒ 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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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 글 : 피우진
- 펴낸곳 : 삼인(2006.11.21.)
- 책값 : 9000원


군대조직질서가 우리 사회에도 고스란히 이어져 있다고 느낍니다. 어쩌면, 군대답지 못한 군대가 우리 군대요, 사회답지 않은 사회가 우리 사회인지 모를 일입니다. 피우진 중령이 강제전역을 겪게 되면서 조용히 자기 지난날을 돌아보며 적어내려간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를 세 번 읽었습니다. 세 번째 다 읽자 비로소 이이가 우리한테 들려주려는 이야기가 살갗으로 와닿습니다. 터무니없는 일이 '관행'이라든지 '공명심'이라든지 '돈바라기-이름바라기-힘바라기'에 얽혀 자꾸자꾸 생겨나는 우리 나라이지 싶어요.

인천에 살림뿌리를 내리면서, 그동안 잊고 지냈다기보다 만나기 어렵다고 느꼈던 고향 동무를 다시 만납니다. 예전에는 어깨동무였다면 이제는 옆동네에 사는 사람, 이웃입니다. 인천공설운동장 건너편에 자리한 체육사에서 일하는 고향동무는 제가 펴내는 1인 잡지를 읽고 한 마디 합니다.

"야, 조정래 씨 소설이 금서야? 나는 군대에 있을 때 <태백산맥>하고 <아리랑> 읽었는데. 보안과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도장 찍어 달라고 하니까, 아무것도 안 보고 그냥 찍어 주더라. (내무반 검사할 때) 도장 찍혀 있으니까 아무 문제 없고."

조정래 소설이 지금도 불온도서인 세상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잦아들었지만, 한동안 헌책방 일꾼을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며 못살게 굴고 구속까지 시키려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지지난달입니다. 그리고 그때 '불온도서'로 찍힌 책들 목록에는 '조정래 씨 소설'이 빠짐없이 올라 있었어요. "그 사람들은 내용 안 봐. 도장 찍혔는가 안 찍혔는가만 봐." 고향동무 말마따나 보안검열을 하는 사람은 '불온도서가 왜 불온도서인지' 따지지 않습니다. '불온도서 목록에 올라와 있으니까 불온도서'일 뿐입니다. 세월이 달라졌다면, 사회가 거듭난다면 '불온도서라는 목록이 있어야 한다고 해도 이 목록에 실릴 책은 달라져야' 합니다. 아니, 불온도서라는 책이 있을 수도 없지만, 억지로라도 불온도서가 있다고 한다면.

.. 전역 심사를 하기 위해 상이 등급 판단을 위한 전공유무심사도 다시 했는데, 나의 상이 등급은 최하위인 7급으로 나왔다. 근무 여부를 결정짓는 장애 등급은 상위의 2급으로 판정되어 전역 대상이 되었는데, 막상 연금 액수가 걸린 상이 등급은 최하위인 7급으로 나온 것이다. 나는 전공상심사를 주관한 의무부서에 항의했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이 "지금 활동하는 데에 아무 이상 없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상이 없다면 장애 등급은 왜 2급이란 말인가. 전역은 시키되 연금은 많이 줄 수 없다는 말인가? ..  〈244쪽〉

지지난달, 헌책방 일꾼을 국가보안법 잣대로 들볶고 괴롭히던 때, 군대에서 겪었던 일이 떠올라 소름이 돋았습니다. 2007년 여름, 헌책방 일꾼은 '조정래 씨 소설을 팔았다는 까닭'으로 구속이 될 뻔했지만, 1997년 봄, 강원도 양구 산골짜기 부대에 있던 스물세 살 젊은이는 '조정래 씨 소설을 불사르지 않았다는 까닭'으로 한 줌 재가 될 뻔했습니다.

소설 <아리랑> 숨겼다고 간첩 '운운'하던 중대장

1997년 봄, 강원도 양구군 동면, 대우산 선점중대에서 내무반검사를 하던 중대장은 1소대부터 화기소대까지 사병 캐비넷을 샅샅이 뒤지면서 '불온도서 색출'을 합니다. 이때 불온도서로 찍힌 책들은, <태백산맥>, <아리랑>, '한겨레신문사에서 찍은 책'들과 몇 가지 섹스소설. 얼추 쉰 권 남짓 걸려든 불온도서를 불사르는 몫은 저한테 떨어집니다. 낑낑대며 책을 들고 소각장으로 갑니다. 몇 가지 책을 찢어서 태우다가 <태백산맥>과 <아리랑>까지 태우는 일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태백산맥>까지만 태우고 <아리랑>은 소각장 한쪽 구석에 잿더미를 쌓아서 안에다 숨겨 놓습니다.

하지만 중대장은 남김없이 찢어서 태웠는가를 알아보려고 몰래 소각장에 왔고, 불쏘시개로 하나하나 뒤적이다가 한쪽 구석에 안 태우고 숨겨 놓았던 <아리랑>을 보고 맙니다. "너 이 새끼, 간첩이지!" "……." "너 같은 새끼들 죽이는 거는 아무것도 아냐! 그냥 총질해서 죽인 다음에 철책 안쪽에 집어던져 놓고 월북했다고 하면 그만이야!" "……."

.. 군인으로도 인간으로도 취급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선택한 길이기에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버티고들 있습니다 …… 그나마 저마저 항공병과를 떠나면 우리 후배들은 어찌 될는지요. 규정을 운운하며 여군들에게만 철저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그들은 과연 규정을 얼마나 지키며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고들 있는지 ..  〈234쪽〉

1997년 12월 31일, 함박눈이 쉬지 않고 쏟아지던 도솔산을 내려왔습니다. 눈이 많이 와서 차가 내려갈 수 없으니 하룻밤 더 자고 가라는 대대장 말에, "걸어서라도 가겠습니다!" 하고 외치면서. 눈밭에서 뒹굴다가 골짜기에서 떨어지더라도 군막사에서는 1분도 더 있기 싫었던 전역동기들. 그예 대대장은 억지로 작은 군짐차 바퀴에 쇠사슬 감아서 내려보내도록 했고, 걸어서 한 시간 길이던 곳을 덜덜덜 천천히 달리는 짐차가 두 시간이 걸려서야 비로소 산밑마을, 팔랑리에 닿습니다. 속옷과 '깔깔이'는 후임병한테 빼앗겼고 장갑까지 빼앗긴 동기들도 있어서 두 시간 동안 벌벌 떨어야 했지만, 부처님오신날까지 녹지 않는 도솔산과 대우산 눈을 올려다보면서 '이제 눈은 참말 싫어' '이 차에서 얼어죽더라도 다시 돌아가지 않을 테야' 하고 이야기하던 우리들.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서울에 닿아 전철을 타고 한강다리를 지나며 인천 부모님 집으로 갈 때는 저녁 여섯 시가 넘어갈 무렵. 붉게 노을지는 햇살이 전철에 깃들었고, 저녁햇살은 머리 희끗한 아저씨 얼굴로도, 꾸벅꾸벅 졸다가 떨어뜨린 생활정보지로도 비추었습니다. 저 아저씨가 이런 시간에 왜 전철에서 생활정보지를 보다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줄은 한 주쯤 지난 뒤 알았습니다. 아이엠에프.

.. 나는 그 여군 장교를 고소하고 문제를 공론화시키라고 여군 하사관에게 충고했지만 본인이 주저하였다. 실상 그런 일은 아주 흔하다곤 할 수 없지만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마다 여군들은 대개 혼자 눈물을 흘리며 잊어버린다. 군 생활을 거기에서 끝낼 생각이 아니라면 부사관이나 하급 장교들이 여군 고위직 간부와 정면 대립하기는 힘든 것이다. 자기 부하를 남군의 노리개로 전락시키는 이런 파렴치한 짓을 하는 사람은 대개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 것일까? 그녀 또한 살아남기 위해서였다고 이해해야 하는 걸까? ..  〈201쪽〉

아이엠에프는 전역하고서 한 주가 지나서 알았으나, 열 해가 지나도록 몰랐던 일이 있습니다. 제가 몸담았던 군대에서 '멀쩡히 있던 짐차 엔진이 한낮에 과열로 터져서 죽은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와 '대인지뢰를 밟고 두 사람이 그 자리에서 죽었다'는 이야기가 무엇을 뜻했는지를. 대인지뢰를 밟고 둘이 죽었다고 하던 그날 밤, 저도 밤근무를 서고 있었는데. 지뢰 터지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지오피 옆옆 초소에서 있던 일이었는데.

.. 언론은 그런 행사에 참석한 여군 장성, 전투기 조종사, 수석 졸업자 등등 성공한 여군들에게만 카메라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50년 넘는 세월 동안 남성 중심의 군 문화 속에서 여성의 자리를 찾기 위해 피땀 흘려온 사람들은 이름 없는 대다수의 여군들과 사회 각지에서 보이게 보이지 않게 도와준 분들이다 ..  〈6쪽〉

그제 밤마실을 하다가 옆지기한테 군대 적 이야기 하나 들려줍니다. 마침 빵집 옆을 지나가고 있었기에 그때 일이 떠올랐습니다. "첫 휴가를 나와서 친구들한테 크림 잔뜩 있는 케익을 하나 사 달라고 했어요. 생일도 아닌데 무슨 케익이냐는 친구들한테, 그냥 크림케익이 먹고 싶다고 했어요. 군대에 가서 첫 훈련으로 혹한기훈련을 뛰었는데,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을 만큼 배고프지, 행군은 끝나지 않지, 그때 중대장이 뭔 일로 앵돌아져서 열여덟 시간 동안 못 쉬게 하고 산악행군을 했는데, 이등병이라고 처지면 미움받고 까이는 거 뻔하고, 밥도 안 멕이고 무거운 군장 멘 채 걷기만 하자니 죽을 맛이었어요. 그런데 내 앞에 가는 고참이 숲길에서 눈을 떠서 먹더라고요. 옳거니 나도 눈이라도 먹자 싶어서 자꾸자꾸 눈을 퍼먹었어요. 속으로 생각했지요. 난 진짜 케익 싫어하는데, 이 눈을 케익으로 생각하며 먹자. 그러니까 뒤에서 걷던 고참이 불쑥 한 마디 했어요. '야, 너무 많이 먹지 마. 탈난다.'"

.. 우리 사회에는 나이 어린 사람이 정면으로 지적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풍토가 있다. 원칙과 예의를 들먹이며 항의하는 나를 대견하게 보고 격려해 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못마땅하게 보는 경우가 늘 더 많았다. 그래서 언젠가는 학교 선생에게 100대까지 맞아 보기도 했다 ..  〈35쪽〉

첫 휴가 받고 세상바람을 쐬게 되던 날(1996년 2월) 고향동무들이 고기를 사 주었습니다. 불쌍한 군인은 고기도 못 먹을 테니 고기 잔뜩 먹으라고. 저는 한손으로는 크림케익을 먹고 한손으로는 고기를 먹었습니다. 혼자서 케익 한 통 다 먹었습니다. 맛은 없더라구요.

군대에서 벗어난 지 열해,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얽매어 있어

.. 군대라서 남녀 차별이 없을 거라는 건 나 혼자의 순진한 생각이었다. 제도적으로 이미 여군은 남군을 보조하는 것으로만 정해져 있었다 ..  〈46쪽〉

군대에서 벗어난 지 열 해가 지났습니다. 몸은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마음이나 몸이나 군대에서 못 벗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앞으로도 군대에서 못 벗어나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몸짓이나 말투나 생각이나 마음까지도.

군대에서 벗어나서 대여섯 해가 지난 때였나, 어릴 적부터 저를 알던 고향동무들이 '너 왜 그렇게 무섭게 말하냐?'고 말합니다. '왜?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했습니다만, 군대에 있을 적 아침부터 밤까지 욕이란 욕은 죄 주워섬기면서 모든 말마다 욕을 달았던 버릇이 씻기지 않았어요. 잠자리에 들 때만은 이맛살을 찌푸리지 않았지만, 눈을 뜨고 있는 동안은 눈알을 부라리며 미친년 개잡놈 씨부랄새끼 들을 주워섬기며 살던 말짓과 몸짓을 도무지 털어내지 못했어요. 저만 못 느끼고, 제 둘레사람들은 다 느끼고 있었어요. 이제는 그나마 욕설은 조금만 내뱉도록 추슬렀지만, 마주한 사람을 칼로 후비는 듯한 말투나 말씨까지는 추스르지 못했습니다.

.. 군기를 잡는 것과 기를 죽이는 것은 다르다 ..  〈61쪽〉

살아남자고, 죽을 수 없다고, 나를 골로 보낸 뒤 군대 의문사로 지워버리겠다는 그 중대장 이야기를 잊을 수 없다고, 주먹질이면 주먹질 욕질이면 욕질 삽질이면 삽질, 그 온갖 이야기가 그저 숨죽인 채 대물림되도록 하고 싶지 않다고, 그런데 아직도 살아남아야 하나요. 아직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나요.

머리에 별이란 것을 단 녀석이 부대방문을 한다는 계획이 연중행사 가운데 하나로 잡혀 있으면 '도로보수'라는 이름으로 한 달 동안 산골짜기 부대 흙길을 도톰하게 메우는 일을 합니다. 별 단 개새끼가 탄 찌프가 잔돌에라도 튕겨서 움찔하면 대대장한테 불호령이 떨어진다나, 중대장이 진급을 못한다나……. 연대에서도 설설 기면서 덤프를 지원해 주며 어디선가 모래를 퍼 옵니다. 덤프가 지나가면서 모래를 술술 뿌립니다. 그러면 주특기 100 우리들 땅개는 삽 한 자루씩 들고 조르르 서서 그 흙길이 올록볼록 하나 없이 반반하게 되도록 두들기고 밟습니다. 행정보급관은 옆에 서서 삽질이 어수룩한 땅개를 발로도 차고 주먹으로 배를 어루만져 주기도 합니다. 땅개니까, 사람이 아니니까. 사람이라면 10종이고 개라면 9종이었으니까. 비라도 오는 날이면 낮이고 밤이고 모든 훈련과 행사를 접어두고 '비상 출동'이 내려졌지요. 모래 다 쓸려내려간다고. 모래 쓸려내려가지 않도록 출동해서 물골을 트고 모래를 잡아 두라고.

.. 함께 조종사가 되었던 여군 동료들은 모두 정조종사가 되어 보지 못하고 항공단을 떠났다. 우선 후배가 가장 먼저 군을 떠났다. 출산 때문이었다. 여군도 결혼은 할 수 있지만 아이를 낳으면 전역을 해야 했다. 그것이 규정이었다. 참 우스꽝스런 제도이다.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여군이 무슨 성직자도 아닌데 결혼까지 못하게 하는 건 너무 말도 안 되니까 결혼은 허용한 듯한데 막상 출산을 하면 강제 전역시킨다. 결국 결혼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이건 비합리적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제도다 ..  〈79쪽〉

괴로워하는 후임병을 보면서, 익살쟁이 고참병 한 사람이 "야, 북한 애들은 천삽뜨기 운동(천 번 삽질을 한 다음 허리 한 번 펴기) 하잖아. 그러면 우리는 만삽뜨기 운동 하자. 헤헤헤." 저도 따라 웃었지요, 헤헤헤. "하나, 둘, 셋, 넷, 다섯, …… 스물, …… 서른, 어 허리 폈네. 허리 왜 펴? 죽을래? 헤헤헤. 다시 만 번. 하나, 둘, 셋, ……"

삽질을 해 보면 백 번을 뜨고 허리 한 번 펴도 힘든 판인데.

그런 우리를 보며 행정보급관이 힘을 북돋워 준다면서 하는 말, "야, 늬들은 말야, 군대에서 좋은 거 배운다는 거 잊으면 안 돼. 늬들이 전역해서 뭐 할 일 있겠어? 공사판에나 가서 일해야지. 그때 우리 부대 야상 입고 나가란 말이야. 야상에 백두산 그려진 거(제가 나온 부대에서 쓰는 사단 무늬) 입고 가면 오천 원을 더 받아, 오천 원을, 알아?"

.. 어느 날 밤이었다. 10시 반쯤 잠을 자기 위해 누웠는데 난데없이 초인종이 울렸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문을 열라는 것이었다. 초인종을 누른 사람은 내가 비행학처로 오기 전의 처장이었다. 나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처장들하고 술 한잔 했는데, 2차로 여기서 한잔 더 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취침중이라 안 된다며 문을 열어 주지 않자, 그는 "왜? 술이 없어서 그래? 술하고 안주는 내가 다 준비할 테니까 어서 문이나 열어" 하면서 …… "여자 아니라도 취침중인데 취해서 찾아와 무조건 문 두드리는 건 결례 아닙니까?" "결례? 남자들은 상관이 술 마시자고 찾아오면 황공해 하면서 얼른 문 열어 줘. 내 부하 중에 너 같은 앤 하나도 없어. 알아?" "그럼, 그런 부하 찾아가세요. 왜 싫다는 사람에게 그러십니까?" ..  〈144쪽〉

적으면 열아홉, 많으면 스물여섯이었던 젊은이들. 저도 젊은이였을까요. 제 입영동기인 또래 동무는 소대 배속을 받은 첫날부터 고문관으로 찍혀서 전역하는 날까지 눈치밥과 미움밥과 주먹밥을 먹었습니다. 제가 병장 때 들어온 스물여섯 살짜리 후임병은 열아홉 살밖에 안 된 이등병 고참한테도 뒷간으로 끌려가서 얻어맞고 몰래 눈물을 흘렸습니다. 울고 있는 스물여섯 살짜리 고참(그때 제 나이는 스물셋)한테, "○○○ 이등병, 밖에 나가면 형이었을 텐데, 다들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되었어. 나도 그 꼴 보기 싫어서 남들보다 군대 일찍 들어온 편이지만, 내 바로 위에 동갑내기가 있었거든. 그 자식 생각만 하면 전역하고 대구에 가서 그놈 찾아내서 족치고 싶은데, 어쩌겠어. 살아야지. 진짜 힘들겠지만, 일 년 참아야지. 3소대 ○○○도 스물네 살에 들어와서 진짜 고생했는데, 이제 일병 달고 나니 많이 나아졌잖아. 이 좆 같은 곳에서 개죽음 당할 수 없잖아. 미쳐버릴 수 없잖아." 하고 이야기하며 담배 한 개비 내밀었습니다. 이런 달래기가 몇 번 이어졌습니다. 아니, 거의 날마다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곧 전역할 사람, 스물여섯 살짜리 이등병, 중대장보다 한 살 어리고 모든 소대장들보다 나이 많은 이등병은 앞으로 스물넉 달을 군대에서 견뎌내야 할 사람.

.. 입맞춤을 당한 후에도 마찬가지다. 이 한 번의 일로 그 여군 장교가 사단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노라고 군 검찰에 바로 고소할 수 있었을까? 나는 모든 여군들이 그러기를 바라고, 나라면 당연히 그랬겠지만, 대개는 그런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일개 소위가 자기 부대의 사단장을 고소하여 그것이 제대로 처리될지 자신할 수 없고, 만약 흐지부지 끝나면 그 후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  〈196쪽〉

저보다 열한 살 어린 고향후배 한 사람이 지난주에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훈련소에서 한창 설설 기고 있겠군요. 그 어린 넋은, 아니 그 젊은 넋은 군대에서 얼마나 젊디젊은 넋 그대로 이어갈 수 있을까요. 옛날과 견주면 '좋아졌다'고 하는 군대이지만, 군대가 아무리 좋아진다한들, 남과 북이 총부리 맞들고 싸우는 지금 형편을 무너뜨리지 않는다면, 미국한테 식민지처럼 이리 끌려다니고 저리 끌려다니며 온갖 무기를 사들여야 하는 쇠사슬을 끊지 않는다면, 나라가 아닌 권력을 지키는 군대 조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다면, 총이 아닌 낫과 연필을 들고 평화를 가꾸는 마음으로 우리 삶을 돌려놓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 땅에서 새로 태어나서 자랄 젊은 넋들은 어찌 될는지요. 아이를, 사내아이를 낳아야 할까요.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 개정판

피우진 지음, 삼인(2017)


태그:#피우진, #책읽기가 즐겁다, #군대,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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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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