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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7년 스탈린의 소수민족 분리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연해주 고려인들의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의 첫 출발지로 알려진 라즈돌노예역 전경. 복선으로 잘 정비된 지금의 역 주변에서 그때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 서부원
영문도 모른 채 짐짝처럼 중앙아시아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타야 했을 당시 고려인들의 한을 아는지 모르는지 '라즈돌노예'역은 이따금씩 지나가는 화물 열차의 경적 소리만 빼면 평온하기 그지없습니다. 주변에 드문드문 자리한 집들도 숲에 파묻혀 있어 이곳에 역이 세워진 까닭이 외려 궁금할 정도로 한적한 시골 마을입니다.

비로소 이곳으로부터 '연해주의 대자연'이 시작됩니다. 러시아의 맨 동쪽 끝에 매달린 연해주(러시아어로 프리모르스키)는 크게 두 가지 자연환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야생 호랑이가 서식하고 있다는, 극소수의 원주민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살지 않는 시호테알린 산맥의 원시림 지역과 끝없는 벌판이 펼쳐지는 우수리스크(Usurisk) 주변 초원 지역이 그것입니다.

블라디보스토크와 함께 현재 200만 명 남짓인 연해주의 인구 대부분은 드넓은 이 벌판을 생활 터전 삼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그저 먹고 살기 위해 두만강을 건넜던 고려인들이 온갖 역경을 헤치고 정착한 곳도 이곳이고, 일제에 의해 국권을 빼앗긴 후 수많은 선각자들이 망명해 치열하게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했던 곳도 이곳입니다.

또, 러시아 혁명 후 집권 세력의 정치적인 희생양이 되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한 뼈아픈 역사가 서린 곳도 이곳이며, 옛 소련이 해체되고 여러 민족 국가들이 독립한 후 중앙아시아로부터 다시 아버지, 어머니의 고향인 이곳으로 재이주해 오고 있는 고려인 후손들이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는 곳도 바로 이곳입니다.

사통팔달로 트인 연해주 제2의 도시 우수리스크

▲ 우수리스크 주변에 펼쳐진 광활한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야생마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 서부원
좀더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이곳은 옛 발해 왕국의 지방 행정 조직인 5경 12부 중, 솔빈부가 자리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규모로 말을 사육할 목적으로 설치했던 옛 솔빈부 땅 곳곳에서는 지금도 대초원을 마당삼아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야생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매끈하게 뻗은 4차선 도로로 연결된 탓에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한 지 채 두 시간이 못 되어 우수리스크에 닿습니다. 하바롭스크를 지나 모스크바에 이르는 러시아 1번 국도, 전 구간을 현재 4차선으로 확대 포장하고 있어 오래지 않아 기차와 더불어 시베리아 횡단 버스도 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허허벌판에 조성된 연해주 제2의 도시, 우수리스크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된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만주로 넘어가는 동만(東滿) 철도와 교차하는 곳이며, 중국 훈춘(琿春)과 이어지는 도로와 하바롭스크 방면의 러시아 1번 국도가 사통팔달로 트인 교통의 요지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비좁은 반도에 위치한 블라디보스토크나 춥고 궁벽한 하바롭스크보다 우수리스크의 발전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러시아 정부는 우수리스크를 한-중-러 동북아 교역의 결절지로 개발할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합니다.

▲ 우수리스크 시내에는 유난히 고려인들이 많다. 길거리에서 서로 장난치고 있는 러시아인 꼬마와 고려인 꼬마를 담았다.
ⓒ 서부원
한편, 블라디보스토크와는 달리 도로나 건물 등에서 여전히 예스러운 맛이 남아있고, 길거리에 '낯익은' 얼굴들을 종종 볼 수 있어 특히 우리에게는 친근한 느낌마저 드는 도시입니다. 그러고 보니 현재 연해주에 사는 약 4만 명의 고려인 중 그 절반이 이곳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려인을 위한 학교도 운영되고 있고, 시내 한복판에는 '고려인 이주 140주년 기념관'이 건설 중이며, 시 근교에는 그들을 위해 우리나라의 몇몇 시민단체와 종교단체가 조성하고 지원하는 마을과 농장이 자리하고 있을 만큼 우리와는 사뭇 가까운 도시입니다. 우수리스크에서의 첫 일정으로 고려인이 사는 집에서 하루를 묵으며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잡은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그들을 만나러 우수리스크 시내를 벗어나 북쪽으로 10여 분쯤 달리니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1번 국도가 교차하는 지점에 흔히 '고려인 우정마을'이라고 부르는 '까레이스키 두르즈바 제레비냐'가 널찍하게 조성돼 있습니다.

'아리랑' '새마을' 등 우리말 곳곳에 붙어 있는 '고려인 우정마을'

▲ 까레이스키 두르즈바 제레비냐(고려인 우정마을) 한복판에 조성된 한-러 우정 기념 공원
ⓒ 서부원
우리나라의 한 시민단체가 1990년대 후반 대한주택건설협회의 도움을 받아 고려인들의 정착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곳으로, 현재 33가구에 100여 명이 살고 있으며 러시아인 6가구를 제외하면 모두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에서 재이주해 온 고려인 가정으로 이뤄진 마을입니다.

정방형으로 터를 잡은 마을에는 생김새가 똑같은 집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자리했고, 마을 한 가운데에는 한-러 우정 기념공원이 갖춰져 있어 이 마을이 조성된 유래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을을 휘감으며 난 길에는 '아리랑', '새마을' 등의 우리말 이름이 붙여져 있고, 고려인들의 정착과 경제적, 문화적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센터와 유기농 청국장 공장이 세워져 있습니다.

아직은 고려인 정착 지원 사업이 걸음마 단계인데다 한-러 교역의 장벽 등으로 생산된 제품의 판로까지 막혀 있어 힘들어하고 있지만, 재외동포재단 등의 후원을 받아 유기 농업을 위주로 한 경제 개발 프로젝트와 다민족, 다문화 공동체 사업을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 마을을 휘감고 있는 길은 모두 우리말로 이름지어졌다. 동서 방향으로 난 '아리랑로'
ⓒ 서부원
자녀들을 외지로 떠나보내고 홀로 살아가는 고려인 가정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습니다. 집 주인은 우리와 똑같은 외모에다 낯선 사람 앞에서 수줍어하는 표정, 위성 안테나를 통해 한국 방송을 즐겨보는 일상에 이르기까지 영락없는 우리 동포이지만, 우리말을 단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고려인 여성입니다.

그와 나눌 수 있는 대화라곤 손짓, 발짓을 통해 건네는 인사말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중앙의 거실을 방과 부엌이 에워싸고 있는 구조의 집안 곳곳을 둘러보았습니다. 두꺼운 벽과 이중, 삼중의 창문, 바닥마다 깔린 털실로 짜여진 카펫 등에서는 러시아 느낌이 물씬 나지만, 거실의 TV와 라디오, 주방 세제와 조미료 등 우리글이 선명한 물건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여느 가정과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워진 집들은 그 모양이 한결 같다. 그러한 집들이 연이어져서 그런지 마을의 분위기가 단조롭고 차분하다.
ⓒ 서부원
기실 이 마을에 정착해 살아가는 고려인의 의식 속에 흐르는 정체성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한인'이나 '조선인'으로 부르지 않고, '고려인(까레이스키)'으로 부르며, 그들 자신 역시 그렇게 불리기를 바라는 것도 역사의 격랑과 세월의 더께 속에 몸에 밴 그들의 범(汎)민족적 정체성에 기인한 때문일 겁니다.

저 멀리로부터 가끔 들리는 기차의 경적 소리를 자장가로 삼고, 쏟아져 내리는 별빛을 이불 삼아 낯선 땅, 낯선 집, 딱딱한 소파 위에서 잠을 청합니다. 내일 아침 일어나면 우수리스크 시내와 근교에 산재해 있는 우리 동포의 흔적을 찾아볼 예정입니다.

그곳에서 과거 항일독립운동의 흔적과 현재 새로운 다민족, 다문화 공동체를 꿈꾸며 자신들의 혼을 쏟아 붓고 있는 젊은 사회운동가들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나아가 그 옛날 발해 왕국을 호령했던 선현들의 자취와 그 터전에 발 디딘 채 현재를 살아가는 수많은 고려인들의 진솔한 삶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옛 사람이든,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든, 그 자취와 숨결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땅 연해주가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기대됐듯, 오늘보다 내일이 더 설레는 까닭입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7월 22일부터 8월 5일까지 (사)동북아평화연대에서 주관하는 '연해주-동북3성 답사'에 참가하였습니다.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톡, 우수리스크를 시작으로 하바롭스크를 지나, 중국 할빈, 옌지, 지안 을 답사하는 여정이었습니다.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태그:#연해주, #러시아, #우수리스크, #여행, #고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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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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