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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애 아빠가 휴직하면 뭐 먹고 살아?"
"그 회사 참 좋은 회사네. 육아 휴직하면 눈치 안 보여?"
"나중에 승진이나 구조조정 시 불이익 당하는 거 아냐?"
"좋겠다. 우리 신랑도 육아 휴직 한두 달만 했으면 소원이 없겠다."


▲ 책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365일>
ⓒ 브리즈
2005년 딸이 태어나고 애 아빠가 두 달 간 육아 휴직을 한다는 소리에 사람들이 보인 반응이다. 특히 시어머니께서는 수원에서 가게를 운영하시는 것도 마다하시고 본인께서 애를 봐줄 테니 애 아빠가 직장이나 충실히 다녔으면 하시는 눈치셨다. 어른들이 보기에 남자가 육아 휴직한다는 게 영 맘에 걸리셨나 보다.

나야 남편 덕분에 두 달 간은 편안히 산후조리도 하고 갓 태어난 아이를 함께 돌보며 초보 엄마의 힘든 마음을 위로 받을 수 있었다. '영아 산통'이라고 하여 저녁마다 한두 시간 기본으로 울어대던 아이도 백일 즈음이 되니 착한 아가가 되어 회사로 돌아가는 아빠를 기쁘게 해주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책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365일>은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육아 휴직을 한 아빠의 육아 경험기다.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의 남성 육아 휴직도 사회에서는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데, 1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집에서 남자가 아이를 키웠으니 할 말도 참 많았을 거다.

애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엄마 혼자 낑낑거리며 아이를 돌보는 걸 본 저자 강성구씨는 육아 휴직을 결심한다. 요새는 인터넷으로 장을 볼 수도 있고 이래저래 편리한 육아 관련 시설과 도구도 많지만, 예전처럼 대가족이 아닌지라 아이를 봐 줄만한 손이 부족하다. 이런 점은 아마도 많은 엄마들이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저자는 동네에서 만난 사람들이 육아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을 마음에 몸에 가지고 있는 걸 발견한다. 아기 마사지 교실에서 만난 한 엄마는 둘째를 임신해서 만삭일 때 시어머니 생신이라고 큰 애 데리고 내려가서 장 다 보고 하루 종일 음식했다면서 눈물을 글썽인다. 어떤 엄마는 애 낳고 처음에 손목이 너무 아파 바닥에서 일어날 때 손목 말고 팔꿈치로 짚고 일어났더니만 팔꿈치도 상했다고 말한다.

이런 엄마들의 모습을 보면서 미루 아빠는 남자의 육아 휴직을 법으로 의무화하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의무화는 아니더라도 어떤 회사에서든 남성의 육아 휴직을 인정해 주는 분위기라면 좀 낫지 않을까? 제도가 있더라도 '회사일 제대로 안 하는 사람'이라고 찍히기 싫어 휴직을 기피하는 남자들도 많으니 말이다.

책은 좌충우돌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하는 온갖 에피소드로 가득 차 있다. 1년의 기간이 긴 것 같지만 아이의 발달 과정을 보면 정말 경이롭기 짝이 없는 순간의 연속이다. 어느 날 아이가 뒤집기를 시작하면서 미루 아빠는 잠 한 번 제대로 잘 수 없게 된다. 자다가 아내가 깜짝 놀라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 보니 아이는 엎드려서 잠을 자고 있다. 애가 숨이라도 막힐까봐 전전긍긍하는 초보 엄마 아빠.

다른 아이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미루 아빠도 아이를 업고 일한다. 징징거리는 아이를 안아주다가 짜증이 나기도 하고 아기 띠에 아이를 매단 채 청소를 하기도 한다. 아이를 업고 설거지를 하면서 아빠는 힘들어서 어쩔 줄 모른다. 이런 일들을 평범한 아이 엄마라면 누구나 당연히 해야 하니 육아가 얼마나 힘든 것인가.

"한참 동안 애 업고 일하고 나면 누가 절 좀 업어 줬으면 좋겠습니다."

여자보다 힘이 세다는 남자도 이렇게 고통을 호소하는데 다른 아빠들은 아기 엄마들의 이런 마음을 알까 모르겠다. 미루 아빠처럼 육아 휴직은 못하더라도 저녁이나 주말에 엄마 대신 아이를 봐주고 가사를 도와준다면 많은 엄마들이 행복할 것이다. 밖에 나가서 일하는 것도 힘이 들겠지만 소중한 아내와 아이를 위해서 조금은 노력해 볼만하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미루네 가족은 참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 아빠가 엄마의 노고를 이해해 주고 육아에 동참하면서 가족에 대한 사랑을 몇 배로 키워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의 짧은 육아 휴직 기간이었지만 나도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산후조리와 육아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다른 아빠들도 기회가 된다면 육아휴직을 해 보길 권하고 싶다. 아이 키우는 소중한 경험을 그때 아니면 언제 맛볼 수 있으랴. 직장은 평생 다니는 것이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딱 그때뿐이 아닌가. 게다가 요새는 남성의 육아 휴직이 법제화되어 그나마 법적으로 보장 받는 좋은 시대다.

1년의 휴직을 끝내고 미루 아빠는 일터로 돌아갔다. 엄마 아빠의 충분한 사랑을 받았던 미루는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여 부모님이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착한 아이로 자랐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영아기 때 '부모와의 애착 관계 형성'을 가장 먼저 본다고 한다. 18개월 이전에 부모와 애착이 잘 형성된 아이는 어디에서든 잘 적응하고 사람들과 친화력 있는 아이로 자란다. 그렇지 못한 아이는 어린이집이든 학교든 가기 싫다고 하거나 어른들에 대해 반항을 하는 등 엉뚱한 행동을 많이 보인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충분한 애정을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육아 휴직을 결심하는 많은 엄마와 아빠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1년의 기간이 끝나고 나면 아이도 부모도 한층 더 성숙하여 사회의 큰 일꾼이 될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아이를 키우는 경험은 부모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소중한 체험이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365일 - 미루의 좌충우돌 1년 나기

강상구 지음, 브리즈(토네이도)(2007)


태그:#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365일, #아빠의 육아일기,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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