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J 엔터테인먼트
일목요연하게 한 문장으로 이 영화를 대신하면 '극적인 반전이 영화 탄생의 당위성을 말하다'이다. 기대한 것만큼의 흥행 성적을 올리진 못했지만 작품성이 만만히 볼 수준은 아니고 시사성도 내포하고 있다.

영화의 또 다른 수확을 꼽으라면 김수로의 발견이다. 애당초 이 영화를 김수로의 이전까지의 행보에 초점을 맞추고 보려 했다면 감상 포인트를 잘못 잡은 것이다. 김수로의 코믹 연기와 애드리브는 곳곳에 배치되어 있지만 지루함을 없애기 위한 장치 정도로만 쓰인다. 여전히 코믹 배우의 탈을 완전히 벗는데 머뭇거리기는 하지만 웃음을 주지 않고도 자신을 주시할 수 있게끔 하는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각설하고, 그럼 이제 영화 내용에 관한 얘기를 더 해보자. <잔혹한 출근>은 개봉 전부터 유괴라는 소재로 유괴범의 딸이 유괴를 당한다는 다소 황당하고 독특한 설정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나도 영화는 어제(1일) 봤지만 영화가 한창 홍보를 할 시기에 간략한 줄거리에 눈길이 갔던 기억이 있다. 주인공인 김수로의 입장이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한 어정쩡한 위치였기 때문에 김수로를 중심으로 얽혀 있는 인물들의 관계를 얼마나 유연하게 풀어나가느냐가 관건이었다.

아마도 감독은 충격적인 반전에 영화의 메시지를 담으려 했던 것 같다. 영화가 결말에 다다르기까지 마치 외줄타기를 하는 듯한 불안함을 계속 지니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의중을 알 수 있다. 사실 이 건 매우 위험 부담이 큰 흐름 전개다. 관객의 예상 범위를 뛰어넘어야 하기 때문에 감독의 담대함이 올곧아야만 했다. 영화는 다행히도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다라는 주장을 확실히 전달했다.

김수로의 딸을 유괴한 유괴범의 존재가 밝혀졌을 때, 우리는 그 사실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김수로 또한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첫 번째 범행에서 이선균의 막무가내에 가까운 꼬드김에 자신의 딸과 비슷한 나이대인 여아를 얼떨결에 납치한 꼴이 되어 버리지만 갑자기 아파하는 걸 보고 바로 병원에 데려가 도망쳐버리는 부성애와 순수함은 관객의 연민을 산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 행동이다. 김수로는 짓누르는 현실을 이겨내지 못하고 유괴가 극악무도한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먼저 이선균에게 두 번째 범행을 제안한다. 철저한 계획 끝에 고등학생을 납치하는 데 성공하지만 이윽고 김수로의 휴대폰에 벨소리가 울리고 당신의 딸을 유괴했다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기서 감독은 김수로를 사면초가에 놓이게 하면서 유괴의 무서운 실상을 잔혹하게 보여준다.

고리대금업자에게 시달리며 한 가정의 가장 역할까지 (물론 잘못된 방법으로) 충실하려 하는 때묻지 않은 김수로가 타겟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안타깝지만 관객과 더 깊게 소통하기 위해선 김수로가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고, 앞서 언급한 거와 같이 유괴의 그릇된 사고관을 피부로 와 닿게 하기 위함이었다.

유괴는 엄연히 범죄다. 해서는 안 될 범법 행위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이 점을 염두해 둔 감독은 범인이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 유괴의 해악을 보다 생동적으로 표현해냈다.

"네 딸은 네가 버린 그곳에 있다."

범인이 김수로와 만나서 마지막으로 남긴 이 대사는 김수로나 범인이나 모두 악역이었음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명령과 복종의 관계였지만 어쨌든 둘 다 '유괴범'인 사실은 명백했으니까. 다시 말해 김수로는 '선역의 가면을 쓴 악역'인 셈이다.

괜찮은 영화 한 편을 본 소감이 꽤 길었다. 보면서 왜 이렇게 알려지지 않았을까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몇 가지 원인을 집어낼 수 있었다.

하나는 영화의 잘못된 홍보 방식이다. 이건 영화를 보고 나서 인터넷을 둘러보다 알게 된 사실인데 개봉 전에 <잔혹한 출근>을 코미디 영화라고 소개했다는 것이다. <잔혹한 출근>의 장르는 엄연히 '드라마'다. 스릴러라고 하기엔 크게 과격하진 않다. 유괴를 컨셉트로 한 영화가 코미디로 분류되는 자체가 약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건 분명히 제작사 측에서 섣부른 판단을 한 것이다.

김수로에 대한 어긋난 기대치도 영화가 뜰 수 없었던 이유라면 이유다. 김수로의 필모그래피를 보고 영화관을 찾은 관객이라면 무엇을 기대하고 왔는지는 뻔하다. 더군다나 코미디 영화라고 홍보를 했겠다, 당연히 관객은 박장대소할 준비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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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 속에서 김수로는 '웃겨야 하는 남자'가 아니다. 간혹 그 끼가 발산되기도 하지만 속사포처럼 나오진 않고 그렇게 자극적이지도 않다. 처해 있는 상황도 그렇거니와 김수로가 힘을 내야 하는 항목에 유머는 극히 일부였다. 영화를 보고 나서 잔뜩 실망한 관객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어쩌면 김수로의 이러한 이력 때문에 <잔혹한 출근>을 코미디 영화라고 속임수를 쓸 수밖에 없지 않았나, 그 속사정을 이해해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군데군데 보이는 '헛점이 많다'라는 걸 지적하고 싶다. 영화가 남긴 가장 큰 구멍은 범인이 어떻게 자신의 딸을 납치한 유괴범이 김수로란 걸 알게 되었는지 명확한 복선이 뒷받침되고 있지 않다라는 것이다.

혹자는 '딸의 옷에 묻은 지문을 단서로 김수로에 도출할 수 있었다'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거의 대부분의 견해가 이러했다) 솔직히 그건 납득할 수 없다. 전과자도 아닌, 그저 그런 민간인에 불과한 김수로를 지문 하나만으로 찾아 낼 수 있다는 게 너무 억지스럽다. 그리고 힌트를 줬더라면 영화가 그렇게 알기 쉽게 주었을 리 만무하다.

완성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영화 마니아들에게는 후한 점수를 주기가 힘들지 몰라도 그분들이 영화의 핵심까지 부인하려고들 한다면 난 대놓고 반박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같은 유괴를 소재로 한 영화 <그 놈 목소리>보다 <잔혹한 출근>을 높게 쳐주고 싶다.
2007-07-02 18:59 ⓒ 2007 OhmyNews
잔혹한 출근 김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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