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 저널 내세요."

여느 때처럼 지난주에 학생들이 제출했던 저널에 답장을 달아서 나눠주면서 이번 주 저널을 걷고 있었다. 이번 주에는 어떤 이야기가 적혀 있을까, 이번 주에는 어떤 한국 단어들이 그들의 저널 속에 들어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저널을 걷을 때에는 항상 호기심에 가득 차게 된다.

특별히, 이번 주에는 할리우드볼에서 열린 한국 음악 축제에 다녀온 강수진씨와 강만석씨가 있어서 그들의 저널이 더욱 기대되었다. 그래서 강만석씨의 저널을 흘깃 보았는데, 그 저널을 보는 순간 정말 숨이 멎는 듯했다.

▲ 한국어 배운지 7주된 강만석 씨의 저널
ⓒ 구은희
"저는 백지영을 톱으로 자르다"

"저는 백지영을 톱으로 자르다. 저는 fly to the sky도 톱으로 자르다."

이렇게 쓰여있었다. 백지영은 강만석씨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가수이다.

"강만석씨! 이게 뭐예요?"
"네? 뭐요?"
"이거요."

필자는 강만석씨 저널 중에 나온 '톱으로 자르다' 부분을 가리켰다.

"제가 할리우드볼에서 백지영을 보았다고요(영어로)."

순간, 이게 무슨 뜻일까? 고민하다가 강만석씨의 말을 듣고서야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챘다. 그것은 영어의 'saw(보았다)'를 'see(보다)'의 과거로 생각하지 않고, 막바로 'saw'를 영한사전에서 찾아서 그 뜻을 바로 한국 문장에 넣은 것이었다. 아마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가수 백지영을 보았을 때의 기쁜 마음을 한국어로 표현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 가수 백지영을 좋아하는 브라질 학생 강만석 씨
ⓒ 구은희
"'백지영을 보았다'라고 해야돼요."
"그럼, 이 사전이 잘못된 거예요?"
"아니요. 사전은 맞아요. 그런데 'saw'는 'see'의 과거동사쟎아요? 그러니까 'saw'를 찾으면 안 되고, 'see'를 찾아서 그것을 과거로 만들어야지요."
"그럼, 이건 무슨 뜻이에요?"

"그건 '톱으로 자르다'라는 뜻이에요." 라고 영어로 설명해 주었다. 그 설명을 들은 다른 학생들도 모두 놀라면서도 재미있어했다.

사전을 잘못 이용할 경우

사실, 한국어를 처음 접한 지 8주밖에 안 된 강만석씨로서는 힘든 문장이다. 그래도 사전을 찾아가며 열심히 써 온 그의 저널이 고맙기만 했다.

'톱으로 자르다'와 '보았다'는 강만석씨에게는 모두 같은 뜻으로 영어 단어의 'saw'에 해당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아주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영한사전이나 한영사전에서 단어나 숙어를 찾아서 문장의 흐름과 상관없이 대입을 하면 전혀 다른 문장이 되고, 심지어는 이렇게 끔찍한 말까지도 잘 모르고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영작을 할 때에도 단어를 용법과 관계없이, 혹은 동음이의어의 경우 잘못 선택해서 이상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은 것을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외국어를 배울 때에 전체적인 문장에 대한 이해 없이 단어의 뜻만 외우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강만석씨, 저널 참 잘 썼어요. 그런데 다음에는 백지영씨를 톱으로 자르지 마세요."

한글 자모도 모르고 "안녕하세요"도 모르던 강만석씨가 7번째 수업 만에 써 온 저널에서 한국어 선생님으로서의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태그:#어드로이트 칼리지, #한국어교실, #강만석, #자르다, #보았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미국에서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