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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막내 조폭과 함께 꼬냥이와 친분을 쌓았던 둘째 조폭.

첫째 조폭은 워낙 어르신이라 알 수 없는 진짜 조폭의 향기가 솔솔 풍겨 감히 접근을 할 수 없었지만 어중간한 중년인 둘째 조폭은 막내 조폭보다 조금 더 어수룩한 분위기여서 꼬냥이랑 죽이 잘 맞는 편이었다.

주로 대화를 나누는 곳은 건물 출입구의 계단 앞. 햇빛 좋은 날이면 둘이 요구르트에 빨대 꽂아 하나씩 나눠 먹으며 멍… 하니 광합성을 하곤 했다.

"아저씨는 취미가 뭐예요?"
"술 마시기."
"아따~ 그건 생활이고. 취미, 시간 날 때 즐기는 것."
"음… 당구? 독서?"
"도… 독서? 무슨 독서요?"
"…용하다 용해…."
"…무대리?"
"신문도 독서지…."

신문 보는 것도 독서에 포함된다 생각하는 이 둘째 조폭. 하긴 아예 안 보고 사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아무튼 이들에게 떠나기 전 뭔가 선물을 하고 싶었던 꼬냥이. 목욕탕 가기 위해 분홍색 때타올을 목에 두르고 나온 막내 조폭을 불러 앉혔다.

"게임방 가봤어요?"
"오락실 갈 나이는 지났지, 우리 형님 연세에 꼬맹이들이랑 50원짜리 넣고 오락할 순 없잖아, 가오 떨어지게."
"막내야, 아가씨가 말하는 게 오락실이 아니고 게임장을 말하는 것 같다. 아가씨, 우리가 예전엔 전문적으로 업소 관리를…."
"아 쫌! 그거 말구요! 뭔 50원짜리, 요즘 50원짜리 오락이 어딨어요, 그리고 뭔 게임장은 게임장, 카드 같은 거 말구요!"
"…그럼 빠찡코?"

아… 진짜 말 안 통하네. 하긴 인터넷 전용선에 케이블 티비 선을 연결한 자들이 PC방을 갈 리가 없지.

"요즘은 컴퓨터를 모르면 대화가 안 되는 시대예요. 일도 컴퓨터로 하고 연락도 컴퓨터로 하고 노는 것도 컴퓨터로 노는 시대라고요."

멀뚱멀뚱.

"그 비싼 컴퓨터로 뭘 하고 놀아?"

그때 당시 이미 수많은 조폭들이 온라인 게임을 점령하여 한바탕 휩쓸던 시대인데 어찌 이놈의 반지하 구닥다리 조폭 삼총사는 이마저도 모른단 말인가. 절로 나오는 건 한숨이요, 이토록 문명의 혜택을 거부하며 살아온 이들에게 그동안 내가 너무 모질었나 싶은 자책감이 살포시 고개를 쳐들었다.

"일단 갑시다. 내가 아저씨들께 삶의 오아시스를 선사할 터이니."
"그렇게 좋은 거면 우리끼리만 즐기면 안 되지, 큰형님 모시고 와라, 막내야."
"예, 옷 좀 다려입고 오겠습니다, 형님."

게임방 가는데 옷은 왜 다려, 말을 말자, 말을 말어.

조폭 삼총사, 게임방 입성!

이유없이 멀끔하게 차려입은 조폭 3인방과 동네 노는 백조 언니의 후줄근함으로 무장하고 게임방으로 들어가니 대낮부터 옹기종기 모여앉아 게임삼매경에 빠져 있던 백수 오빠들 기겁하시는 눈길을 보낸다.

제아무리 등짝에 벽화를 가렸다고는 하지만 남자들끼리는 척 보면 '아, 저 어르신 어디서 공구리 좀 치셨겠구나' '아, 저 형아는 사시미로 포 좀 뜨셨겠구나' 하는, 쉽게 말해 '견적'이 나온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형아들이 셋이나 납시셨으니 사자 우리에 던져진 오리새끼 된 기분이었겠지.

더군다나 알바군은 회피하고 싶다고 회피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닌 덕에 무방비 상태로 형아들 앞에 노출되어버린 불쌍한 오리 신세가 되었다.

"자리 4개 있어요?"
"아, 저기… 같이 앉으실 자리는 3개밖에 없는데… 따로 앉으시면… 안되죠?"

이봐, 질문은 내가 했는데 왜 눈길은 조폭들에게 주는 거야.

"형님, 그럼 저희끼리 앉을 테니 형님은 상석에 착석하십시오."

웃기시네, 게임방에 상석이 어딨어. 바보들.

또 멋모르고 좋다 하시는 우리 첫째 조폭님. 졸지에 상석이 돼버린 구석자리로 가 '착석'하신다.

"음료수 뭐 드실래요? 제가 살게요. 전 커피 마실 건데…."
"우리도 커피 마시지 뭐, 큰형님 뭐 잡수시겠습니까?"
"음… 난 요즘 커피 마시니 잠을 통 못 자겠더구나. 쌍화차 한잔 마시지 뭐. 뜨끈하게."
"이봐, 학생, 우리 커피 셋에 쌍화차 한 잔."

우리 알바군, 순간 덜덜덜 당황 모드 돌입하신다. 게임방에 쌍화차가 어딨느냐고!!

"저… 저기, 게임방에는 쌍화차가… 있을 리가…."
"뭣? 그럼 안된다는 거야? 커피는 팔면서 쌍화차는 왜 안 팔아? 우리 형님이 잡수시겠다는데!"
"아뇨, 아뇨!!!! 사다 드릴게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말리려고 하였거늘, 과잉충성 과잉공포 알바군, 가게도 내팽개치고 쏜살같이 달려나간다. 저것이 뭘 사들고 오려고 저러나….

조폭들의 게임 아이디는 무엇일까~요?

알바군이 나간 후, 꼬냥이는 일일이 파워버튼 눌러 부팅시켜주고 어떤 게임이 취향에 맞을지 심각하게 논의하였다.

"각자 좋아하는 종류의 게임을 하면 돼요."
"음… 그러고 보니 어린 애기들이 요즘 만화게임을 한다고 하던데?"
"아, 맞습니다, 형님. 만화들이 돌아다니면서 하는 게임이 재미있다고 하던데요?"
"됐다, 너희들이나 만화 봐라, 나는 바둑이나 해볼런다. 일전에 강사장 보니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바둑 두더군."
"옙, 행님, 즐거운 시간 되십쇼."

첫째 조폭에게 바둑게임 사이트 회원 가입을 시켰다. 아이디… onetwothree… 원… 투… 쓰리…. 이 양반도 은근히 단순해.

바둑 게임의 간단한 조작 방법을 알려주고 나머지 조폭들에겐 그들이 말하는 만화게임, 즉 온라인 게임 리니지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막 게임에 접속하려는데 헐레벌떡 들어오는 알바군. 육수로 범벅이 되어 첫째 조폭에게 머뭇머뭇 다가간다.

"저… 저기… 제가 다방을 다 다녀봤는데 테이크아웃은 안된대서요… 배달시키면 사장님이 뭐라 하실 거 같고…."
"내가 언제 스테이크 시켰나, 이 학생 보게…."
"아… 아니요, 그게요…."
"그래서 못 샀다?"
"아니요, 이거라도…."

불쌍한 알바군이 벌벌벌 떨며 살며시 건넨 것은 광둬제약 쌍화탕! 알바군의 정성이 갸륵했는지 나름 만족한 표정으로 쌍화탕 병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첫째 조폭. 새삼 뭐가 저리 흡족해.

"학생이 고생이 많군, 정성이 기특하니 마시도록 하지. 계속 수고해."
"옙! 열심히 하겠습니다!"

뭐를 열심히 할 건데, 짜슥….

알바군의 갸륵한 정성에 감복한 첫째 조폭, 쌍화탕을 홀짝거리며 바둑 삼매경에 빠져들었고 이미 게임 세상의 노예가 된 나머지 두 조폭들은 저거들 형님이 뭘 마시고 말고는 이미 안중에도 없이 레벨 1짜리로 계속 죽다 살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둘째 조폭 캐릭터 아이디 개돼지.

막내 조폭 캐릭터 아이디 박승복요정님.(지 이름이지 싶다… 허어….)

이렇게 처음 온라인 세상에 눈뜬 조폭 삼총사. 그날부터 이들에게 더 이상의 주먹도, 더 이상의 업소도 없었다.

오로지 게. 임. 뿐.

두둥!

덧붙이는 글 | 거의 한달만에 연재를 다시 씁니다. 

이번에 난데없이 백내장 선고를 받아서 다음주 정도에 수술을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올려놓지 않으면 무한정 늦어질 것 같아 지금이라도 업데이트합니다.

원래 안좋은 시력이 현재는 글을 쓰기 불편할 정도로 떨어져 있어 수술 후에나 다음 편 연재 이어갈 듯합니다. 몸관리 제대로 못한 제 탓이 가장 크겠지요. 프리랜서로 글쓰면서 이런 고난은 정말 벼랑끝에 서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군요.

내일 초음파 검사 후에 단순 백내장인지 망막에 이상이 있는 것인지 결과 나올 것 같습니다. 

기다려주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나아진 후에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로 빠른 연재 해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태그:#꼬냥이, #조폭삼형제, #게임방, #쌍화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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