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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가씨와 건달들’에서 선보이는 비보이의 화려한 브레이크 댄스.
ⓒ 여성신문
[박윤수 기자]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공연장 안은 관객들로 가득 찼다. 아이를 데리고 온 주부에서 연인 또는 친구들과 함께 온 젊은 세대들, 3040세대까지 그 구성원도 다양했다. 무대에 불이 꺼지고 마술사의 공연이 시작되자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크로스오버 비보잉-아가씨와 건달들>이 공연되고 있는 서울 명동 메사 '비보이 씨어터'의 평일 모습이다.

최근 공연계의 화두는 단연 '비보이(B-boy)'다. 현재 극장에 올려진 비보이 공연만도 10여개가 넘고 홍대 앞에 세계 최초의 비보이 전용극장도 생겼다. '비보이'란 '브레이크 댄스'를 전문적으로 추는 남자를 가리키는 말로 1970년대 미국 뉴욕의 뒷골목에서 흑인들과 히스패닉계 간의 '브레이크 댄스 배틀'에서 유래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의 비보이 팀들이 세계대회에서 연달아 입상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하나의 문화코드로 자리잡았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비보이 공연물도 다양하게 진화하기 시작했다. 비보이와 발레를 결합한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비보이와 국악을 접목시킨 <비보이 코리아>, 여성 춤꾼인 비걸을 주인공으로 한 <굿모닝 비보이 2-비걸의 반란>까지. <크로스오버 비보잉-아가씨와 건달들>은 이런 상황에서 기존 비보이 공연물과 차별화하기 위해 인기 원작을 바탕으로 하고 스토리를 배재한 채 다양한 춤으로 볼거리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원작이 된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은 1950년 뉴욕에서 초연된 후 50년 넘게 전세계적으로 공연 중인 인기작품이다. 그러나 '크로스오버 비보잉'이라는 신종 장르를 표방하는 이 작품은 뮤지컬과는 다르다.

우선 막이 오르기 전 울려퍼지는 내레이션에서 "본 공연은 뮤지컬이 아닙니다"라고 단정하고, 발단부터 결말까지의 전체 줄거리를 친절하게 들려준 후 시작된다. 줄거리나 노래에 신경쓰지 말고 '춤만을 즐겨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줄거리는 원작과 같다. 배경은 도박과 환락의 거리인 뉴욕의 떠돌이 건달 '프로드'와 '젠틀러'의 내기, 그리고 젠틀러와 선교사 신시아 커플의 밀고 당기는 사랑이야기가 주가 된다.

ⓒ 여성신문
작품의 가장 강한 볼거리는 37명이나 되는 대규모 등장인물이 보여주는 다양한 춤의 향연이다. 비보이들의 브레이크 댄스뿐 아니라 선교사 일행의 탭댄스, 클럽 무희들이 선보이는 플라멩코와 재즈댄스, 러시아 댄서들의 캉캉, 인라인 스케이트의 질주 등 여러가지 춤과 함께 마술과 노래까지 선보이며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비보이 공연의 단점을 커버하고자 애쓴다. 특히 건달들의 참회의 시간을 브레이크 댄스로 표현한 부분은 가장 화려한 춤을 보여주며 관객들의 환호를 이끌어낸다.

다양한 공연을 하나의 작품에서 보여주려는 노력이 돋보였으나 아쉬움도 있다. 한 춤에서 다른 춤으로 넘어가는 사이 암전이 너무 자주 있어 흐름이 끊겨 버리고, 내용과 연결되지 않는 노래는 듣는 사람을 의아하게 만든다. 배우들의 연기력 부족과 듀엣 곡에서 전문 뮤지컬 배우가 아닌 남자주인공의 노래 실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도 눈에 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었던 비보이 공연에 40대 이상 관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객석을 누비면서 관객들과 호흡하려는 모습, 한쪽 취향에 치우치지 않는 다양한 춤 때문일 것이다. 공연장에서 자칫 찬밥 신세가 될 수 있는 2층 객석에 와인 테이블을 설치함으로써 먹고 마시며 공연을 보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점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비보이 공연물의 새로운 성공신화를 쓸 수 있을지, 단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비슷한 종류에 묻혀버릴 것인지, '오픈 런(종료일을 지정하지 않은 공연)'으로 달리고 있는 이 작품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비보이 공연의 진화는 어디까지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여성도 있다"... <굿모닝 비보이 2-비걸의 반란>

▲ <비걸의 반란>에 출연중인 여성들. 왼쪽부터 백경아, 임예림(보컬), 조진우, 김선영, 최현영, 정지아, 민은희, 채선이, 배에스텔(보컬).

남자들의 전유물로 알려진 '비보이' 공연계에 '비걸'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 등장했다. 기존 비보이 공연물에서 여성 댄서가 단역에 머무르거나 섹시한 춤을 맛뵈기로 선보이는 데 그친 것이 사실.

그러나 <굿모닝 코리아 2- 비걸의 반란>에 등장하는 7명의 비걸들은 강렬한 힙합댄스를 선보이며 비보이들이 독점하던 스포트라이트를 자신들에게 끌어온다. <인간극장> 출연으로 잘 알려진 혼혈가수 배에스텔 등 2명의 여성보컬의 힘 있는 노래도 작품에 '여성파워'를 더했다.

"여성들은 남성들처럼 현란한 기술을 구사하기에는 힘이 부족한 게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여성들만의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장점을 가질 수 있어요."

7명의 출연자 중 맏언니 격인 정지아(26)씨는 댄스 스쿨의 디렉터를 맡고 있는 '걸스 힙합' 계의 유명 강사다.

정씨 외에도 출연자들의 이력은 다양하다. 김선영(25)·조진우(26)씨는 KBS 무용단에서 활동하다 힙합으로 전향했다. 채선이(25)씨는 중1 때부터 춤을 췄고 중3 때 오디션에 합격해 댄스팀에 들어갔던 가장 긴 경력의 소유자다.

최현영(24)씨는 "춤은 또다른 언어"라며 "내 춤을 이해하는 관객들과 교감이 이뤄질 때 희열을 느낀다"고 답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습을 하다가 밤을 새우기가 일쑤고 부상도 끊이지 않지만 "몸이 움직이는 한 춤추고 싶다"고 이들은 자신있게 말한다.

불량 청소년 취급을 받았던 거리의 댄서들이 주류문화에 진출하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 따라서 댄서로 사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처음 춤을 출 땐 지하철역이 유일한 무대였다"는 정지아씨. "밥 굶는 게 가장 힘들었다"는 채선이씨는 빵 하나만 먹고 하루 종일 춤을 춘 적도 있다.

최근 비보이 붐이 일면서 관련 공연과 교육기관이 늘어나고 전문댄서들을 위한 활로가 확대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정지아씨는 "학원에서 춤을 쉽게 배울 수 있는 세상이 됐지만 정말 춤을 좋아하기보다 연예인이 되기 위해 춤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며 경계한다. 이들은 "정말 노력하는 사람은 살아남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우리는 예술인"이라고 다시 한 번 다짐하며 오늘도 춤을 춘다.

덧붙이는 글 | <크로스오버 비보잉-아가씨와 건달들> 문의전화 2128-7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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