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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위예술가 김은미씨가 새만금 갯벌에 엎드려서 갯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 김교진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갯벌에 섰다. 잠시 갯벌을 바라보다가 겉옷을 벗고 속옷만 입은 채 갯벌 위로 엎어진다. 그녀 뒤에는 그녀가 벗어놓은 빨간색 원피스와 구두가 놓여있다.

한동안 꼼짝 않고 갯벌에 엎드리고 있던 여자는 갯벌에서 일어나 바닷물 속으로 풍덩 몸을 담근다. 다시 그녀는 노란색 종이 옷을 입고 너울 너울 춤을 춘다. 갯벌위로 날아든 한 마리 나비처럼 갯벌 생명을 찾아 날고 있다.

지난 4월초,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도 살금갯벌에서 독립영화감독 오종환씨와 행위예술가 김은미씨가 만나 새만금 갯벌의 부활을 기원하는 행위예술을 하는 장면이다.

2년 전 새만금 갯벌을 살리자는 투쟁의 중심지인 계화도의 주민이 된 독립영화감독 오종환씨의 새로운 영화 촬영을 위해 행위예술가 김은미씨가 갯벌을 위한 행위 예술을 펼친 것이다.

계화도 하리에서도 어민들이 조개를 잡는 갯벌 가운데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경운기를 타고 20여분은 더 들어가야 했다. 매일 아침이면 조개를 잡으러 들어가는 어민들의 경운기 소리가 요란하다. 경운기 수십 대가 줄을 지어 갯벌로 들어가는 모습은 계화도의 장관이었다. 갯벌에서 조개를 잡는 어민들은 하루에 몇 시간을 일하고도 도시 노동자 이상의 소득을 올렸다.

매일 아침 들리던 경운기 소리는 사라지고

그러나 새만금 방조제가 막히면서 갯벌이 죽어갔고 갯벌에서 사는 생명들도 죽어갔다.

어민들의 수입원이던 조개도 줄어들었다. 조개를 잡으러 더 먼 갯벌로 들어가야 했고 가슴까지 물에 잠기는 곳에서도 조개를 잡아야 했다. 그러나 이것도 오래 가지 못하였다. 갯벌에서 더 이상 조개가 잡히지 않아서 작년 12월 이후로는 갯벌에 들어가지 않는다.

줄을 지어 갯벌에 들어가던 경운기 행렬은 이제 볼 수 없게 되었다. 경운기들은 집 앞에 놓여져 바닷바람을 맞으며 썩어가고 있다. 조개를 잡던 어민들은 농사지을 땅 한평 없으니 더 이상 경운기를 쓸 일도 없다.

계화도 어민 김기철씨도 마찬가지였다. 오종환 감독 옆집에 사는 기철씨도 바다에 나가본 지 오랜만이었다. 그가 오감독의 부탁으로 이날 사람들을 태우고 경운기를 몰아 갯벌에 들어가는 일을 수락한 것도 갯벌에 나가지 못하고 집안에 앉아 있는 것도 답답한 일이었고 외지인들에게 갯벌의 상황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의 아내는 요즘 다른 지역의 식당에서 일을 한다. 조개를 잡던 이가 이제는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지만 이런 일도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의 아내가 아직 젊으니까 식당에서라도 일할 수 있지 나이 많은 이는 하려고 해도 받아주는 곳이 없다. 기철씨도 달리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도시에 나가 막노동이라도 할 수 밖에 없다.

기철씨의 경운기가 오랜만에 갯벌의 물을 만났다. 몇 달 동안 갯벌에 들어가지 못했던 경운기도 신이 나는지 갯벌을 파헤치며 나아간다. 그러나 비가 와서 물에 잠겨있었던 질척한 곳에서는 아무리 경운기라고 해도 바퀴가 갯벌에 빠져 나아갈 수 가 없어서 오 감독과 내가 내려서 경운기를 밀어야 했다.

오랜만에 밟아보는 갯벌의 느낌이 좋았다. 사막처럼 말라만 가던 갯벌이 이날은 물에 젖어 촉촉하였다. 우리 일행이 정오를 넘어 갯벌에 들어갔음에도 안개가 끼어 어두웠다. 땡볕 밑이 아니라서 영화나 사진을 찍기에는 좋았다. 안개까지 끼어주니 몽환적인 영상을 만드는 데에는 좋은 날씨였다. 다만 바다의 거센 찬바람이 불어 추웠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도 추위를 느낄 정도였는데 은미씨는 속옷만 입고 갯벌 위를 기고 물에 뛰어들어야 했다. 은미씨는 왜 추위를 무릅쓰고 보아 주는 사람이 없는 허허벌판 갯벌에서 행위예술을 했을까?

갯벌은 생명을 잉태하는 자궁

▲ 김은미씨가 얇은 속옷만을 입고 바닷물에 뛰어 들었다.
ⓒ 김교진
김은미씨는 "갯벌은 자궁"이라고 했다. 생명을 잉태하는 자궁. 그는 인간이 자기의 모태인 갯벌을 버리면 나중에 그 대가를 반드시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물속에 몸을 담그는 것은 회귀의 개념이라고 한다. 죽은 다음에 환생하여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일이 연속적으로 벌어져 왔다. "지구의 역사는 생명파괴의 역사였지만 그 속에서 또 다른 생명이 나온다 그전에는 찾아 볼 수 없었던 생명이 나온다"고 그는 말했다.

김은미씨는 물에 들어가는 것은 어머니의 자궁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궁인 물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비록 갯벌에서 생명들은 죽어갔지만 다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기다린다는 것을 나타내는 행위예술을 하는 것이다.

한 시간이 넘게 한 사람은 행위예술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이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 촬영을 하고 또 한 사람은 사진을 찍었다. 속옷만 입고 행위예술을 하는 그의 몸을 녹여주기 위해 잠시 쉬면서 뜨거운 차 한 잔을 마시기로 했다. 경운기는 이동수단도 되지만 겨울에는 바람을 막아주며 쉬는 장소로도 쓰인다. 찬바람을 맞고 와서 두꺼운 외투를 입고도 오돌오돌 떠는 그를 위해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이고 찻물을 끓였다.

차를 마시면서 오 감독과 기철씨는 새만금 갯벌 얘기를 했다. 기철씨는 예전 어렸을 적에 보았던 갯벌 얘기를 해주었다. 이제는 아득한 옛날 일이 되어버린 몇 십년전의 갯벌의 풍경이었다. 아이들이 갯벌에 나가서도 조개를 가득 캐왔던 이야기이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먼 과거의 일이었다. 옛날 이야기를 하는 기철씨의 얼굴이 밝지 않다. 아니 처음 만난 이날 아침부터 밝지 않은 얼굴이었다. 기철씨의 얼굴이 밝을 수가 없을 것이었다. 평생 다녔던 직장인 갯벌이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어서 놀고 있어야 하는 형편이니 그의 얼굴에는 그늘이 가득하였다.

차를 마시고 나서 다시 행위예술을 담는 촬영을 했다. 각본은 따로 없이 김은미씨가 행위예술을 하면 오 감독이 이를 찍었다. 만족할 만한 영상을 찍기 위해서 그는 차가운 갯벌위로 몇 번씩이나 엎어져야 했다.

▲ 김은미씨가 노란 종이 옷을 입고 행위예술을 하고 있다.
ⓒ 김교진
▲ 김은미씨가 파란색 천을 펼쳐놓고 행위예술을 하고 있다
ⓒ 김교진
이번에는 김은미씨가 얇은 속옷만 입고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얕은 바닷물 속에 죽은 듯이 누워있다가 갯벌을 기며 나아간다. 오 감독도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린 채로 바다에 들어가 촬영을 한다. 그런데 얼핏 보면 마치 에로영화 한편 찍는 것처럼 보인다.

여자가 옷을 벗고 갯벌을 기어간다. 감독은 여자의 몸을 가까이서 촬영을 한다. 나중에 촬영한 영상을 보니 아주 육감적인 영상이었다. 우리들도 남들이 에로영화라고 오해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했다. 예술과 외설은 종이 한장의 차이라고 한다. 여자의 벗은 몸이 성적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갯벌을 살리자는 뜻을 담고 있으면 훌륭한 예술영화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 행위예술가 김은미씨가 파란색 천을 끌어 올리는 행위를 하고 있다.
ⓒ 김교진
바닷물 속에서 나온 김은미씨가 이번에는 노란 종이 옷을 입고 환상적인 춤을 보여주었다. 파란 천을 펼쳐놓고 춤을 추다가 천을 당겨 올리고 몸에 감는다. 행복에 겨워 추는 춤이 아니라 갯벌의 아픔을 표현하는 춤이었다. 그래서 그는 천을 온몸에 둘둘 말고 슬픔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 독립영화감독 오종환씨가 행위예술가 김은미씨를 촬영하고 있다
ⓒ 김교진
이날의 마지막 장면은 김은미씨가 갯벌에 꽂힌 작은 종을 매단 대나무를 잡고 무표정한 얼굴로 서있는 것이었다. 가까이서 있으면 작은 종이 바람에 부딫혀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이내 바다의 거센 바람소리에 묻혀버렸다.

▲ 김은미씨가 갯벌에 꽃힌 대나무를 잡고 서있다.
ⓒ 김교진
오종환 감독은 계화도에 내려와서 '계화갯벌여전사전 1과2'를 만들었다. 그의 영화의 주제는 새만금 갯벌이다. 주로 어민들의 시위모습과 인터뷰가 담긴 다큐멘터리 영상이었으나 이번 영화는 갯벌에서 행위예술가가 펼치는 동작과 음악이 들어가는 영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존의 작품과는 다른 형식의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새만금은 새만금에서 끝나는 것이라 우리 사회의 문제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영상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환경을 파괴하면서도 경제성장을 이루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 의식을 갖고 영상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 오랜만에 경운기를 타고 갯벌에 들어갔다. 계화도주민, 행위예술가, 독립영화감독이 모여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 김은미
3시간 동안의 작업을 끝내고 우리는 다시 경운기를 타고 갯벌을 나왔다. 갯벌에는 그 많던 게, 조개, 새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농촌공사에서 심은 보리 싹이 나와서 갯벌 한쪽은 잔디밭처럼 보였다. 바다생물이 살던 갯벌을 죽이고 보리나 벼를 심겠다니 이게 말이나 될 소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만금 방조제가 막힌 지 일년, 갯벌과 지역주민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 새만금 갯벌에 보리가 자라고 있는 모습이 낯설다.
ⓒ 김교진
서산으로 귀농한 선배의 농사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선배가 땅을 사서 몇 년을 보리농사를 하였다. 선배는 내 땅에 내가 먹는 곡식을 심겠다며 몇 년을 보리 농사를 지었더니 마을사람들이 혀를 끌끌 차며 땅을 자기들에게 빌려달라고 한다. 그 좋은 땅에 다른 돈 되는 작물을 심어야지 돈도 안 되는 잡곡 농사를 짓느냐고 했단다. 농촌에 돈 되는 작물이 별다른 것이 있지도 않지만 보리 농사 짓는 다는 게 다른 사람의 눈에는 한심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선배의 말이었다.

그렇다면 농산물보다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는 해산물을 못 잡게 하고 갯벌에 벼나 보리를 심겠다는 정부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지금이 보릿고개가 있는 60년대라서 갯벌을 막아 농토를 확장해야 하는 시대도 아니고 정부가 나서서 쌀농사를 짓지 않으면 돈을 주겠다고 하는 시대이다. 더 이상 갯벌을 메워 농토를 넓히는 것이 정당성을 가질 수 없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바다생명을 죽여놓고 농작물을 심겠다는 정책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백 번을 양보해서 갯벌을 막아 농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에 찬성한다고 해도 그 계획대로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전라북도는 새만금 갯벌에 농지 이외에 산업단지와 위락시설 등 다른 시설을 만들겠다고 나서고 있다. 유력한 대통령후보들도 새만금 갯벌에는 농지보다는 다른 시설이 들어서야 한다고 부추기고 있으니 앞으로 새만금 갯벌이 어떻게 쓰여질지 걱정스럽다.

하지만 갯벌은 오늘도 말없이 누워있다. 많은 바다생물을 낳아 기르는 어머니인 갯벌이 죽어가고 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말은 없으나 갯벌의 아픈 흔적을 여기 저기서 볼 수 있었다. 갯벌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는 검은 거품 띠가 생겨 마치 유조선이 바다에 빠졌을 때 흘러나온 기름이 바닷가를 오염시키는 것 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다던 이 띠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학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이 띠는 갯벌 생물들이 죽어서 분해된 것이 부패되어 거품으로 떠다니는 것이라고 한다. 바다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갯벌 생물들의 죽음이 있었고 생물체가 부패되어 거품으로 바다를 떠돌아 다니는 실정이다.

4월 21일로, 새만금 방조제가 막힌 지 일년이 되었다. 일 년 동안 갯벌도 달라졌고 어민들의 삶도 달라졌다.

갯벌은 죽어가고 있고 어민들은 집 앞의 갯벌을 두고 도시에서 막노동을 하거나 식당에서 그릇을 닦고 있다. 하지만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젊은 사람들이나 해당되는 것이고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계화도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바다만 보면 속이 터진다고 말한다. 왜 바다를 막아서 바다도 죽게 하고 사람도 죽게 만드느냐고 원망한다.

▲ 지난 3월말, 부안과 군산 등 새만금 지역의 어민들이 김제에 있는 한국농촌공사 새만금사업단에 가서 해수유통을 주장하는 시위를 벌였다.
ⓒ 김교진
그러나 그뿐 어민들도 더 이상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지난 3월 말, 어민들이 김제의 새만금 사업단에 몰려가 농성을 벌이며 해수유통을 주장하였지만 방조제가 막힌 후 싸우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만 확인 했을 뿐이었다. 새만금 갯벌의 부활을 위해서 이제 누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찬바람만 윙윙 불어 대고 이제는 바다생물은 사라진 갯벌에서 오종환, 김은미, 김기철과 나는 새만금의 부활을 위한 행위예술 겸 기원굿을 하고 왔다.

이날의 결과는 오종환 감독의 새로운 영화 <蕪題(무제)>에서 볼 수 있다. <蕪題>는 제4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상영된다. 서울환경영화제는 5월 17일 부터 23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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